16비트 호러 클래식의 귀환, 클락 타워 리와인드
90년대를 풍미한 주식회사 휴먼이란 게임 개발사가 있다. 훗날 ‘노 모어 히어로즈’나 ‘롤리팝 체인소’로 더 유명해진 스다 고이치, 신 소피아의 창립자 요시다 슈우지, 휴지끈 긴 이들에게 고로상(…)으로 친숙할 나루사와 켄이치, 그리고 오늘 소개할 ‘클락 타워’의 아버지 코노 히후미 등 독특한 면면이 가득하던 곳이다. 덕분에 비교적 소규모임에도 ‘파이어 프로레슬링’, ‘포메이션 사커’, ‘태권도(テコンドー)’처럼 컬트적인 작품을 여럿 배출하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2000년 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 주식회사 휴먼서 95년 슈퍼 패미컴으로 선보인 호러 어드벤처 ‘클락 타워’ 역시 여러모로 범상찮은 작품이었다. 주인공 제니퍼는 반격할 수단 없이 시종일관 도망치기 바쁜데, 요즘이야 흔한 방식이지만 당시에는 무척 색다른 시도였다. 또한 게임을 다시 시작할 때마다 작중 무대인 저택 내 몇몇 방과 단서 위치가 바뀌고, 총 아홉 가지 엔딩이 존재하는 등 지금 봐도 놀라운 구석이 많다. 덕분에 약 30년이 흐른 오늘날까지 호러 클래식으로 인정받아 내달 31일 ‘클락 타워 리와인드’로 현세대기에 귀환하게 됐다.
90년대를 풍미한 주식회사 휴먼의 호러 어드벤처 '클락 타워'
30년 가까이 지나 '클락 타워 리와인드'로 현세대기에 이식된다
악몽 같은 저택, 시저맨으로부터 살아남아라
이야기는 고아원 친구인 제니퍼, 앤, 로라, 롯테가 교사 메리와 함께 버로어즈 저택에 방문하며 시작된다. 모두를 양녀로 들인다는 소식에 들뜨거나 불안해하던 이들은 이내 끔찍한 위협과 맞닥뜨리는데, 마침 홀로 거실을 벗어났던 제니퍼가 친구의 비명소리를 들으며 본격적인 게임에 돌입한다. 일명 시저맨이라 불리는 난쟁이 살인마가 저택을 배회하는 와중에 제니퍼의 기지로 최대한 많은 친구를 살릴 수도, 본인 포함 모두가 처참히 살해당할 수도 있다. 이들의 생존 여부가 엔딩이 분기되는 핵심 조건이다.
사이드뷰 게임이므로 기본적인 조작은 좌우(PS 기준 L1, R1)로 이동하며 십자키로 커서를 옮겨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스러운 조사가 가능하다. 제니퍼의 걸음걸이가 상당히 느린 편인데, 원한다면 달릴 수 있지만 그래봐야 굼뜬 움직임은 여전하다. 슈퍼 패미컴 게임이라 기술이 부족한 탓은 당연히 아니고 공포감이 배가되도록 의도된 것. 열심히 돌아다니다 보면 화면 속 제니퍼 얼굴에 지친 기색이 나타나니 틈틈이 앉아(△) 쉬어주자. 스태미나가 바닥났을 때 시저맨한테 붙잡히면 후술할 RSI고 뭐고 끝장이다.
아이들을 입양한다던 가문의 저택은 살인마가 날뛰는 장소였다
그 와중에 생존력 넘치는 제니퍼, 조사는 포인트 앤 클릭 스타일
조사 대상은 커서를 올렸을 때 활성화 여부로 확인 가능하다. 무작정 모든 방과 물건을 들춘다고 능사가 아닌 게 특정 지점을 확인하는 조건으로 생사가 갈리는 친구도 있다. 또한 살충제 입수 → 고기창고 확인처럼 순서를 잘 지켜야 불상사가 없기도 하니 초심자라면 그저 죽으며 배울 수밖에. 상술했듯 무작위성이 존재하는 게임이나 완전히 제멋대로까진 아니고 열쇠1이 A지점에 없을 시 B지점, 같은 식이라 결국 어찌저찌 진행된다. 전과정이 순탄히 흐를 경우 1시간 안쪽으로 진엔딩 공략이 가능하다지만, 과연?
본작의 마스코트이자 살인마 시저맨은 앙증맞은 두 다리로 뛰는지 걷는지 모호하나 어쨌든 계속 움직이면 따라잡히지 않을 정도다. 다만 사이드뷰 특성상 다가오는 반대 방향밖에 길이 없고 그나마도 봉쇄된 저택이라 늦든 빠르든 몰리기 마련. 여기서 정석은 차 안이나 침대 아래로 숨어 서컹서컹 가위 소리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는 건데, 불행히 그 전에 걸릴 경우 패닉 버튼(×)을 마구 눌러 RSI를 시도하자. Renda Sezuniha Irarenai(연타하지 않고 견딜 수 없어)란 뜻 그대로 연타 성공 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엔딩까지 곧장 달리면 1시간이지만, 다들 숱한 시행착오를 겪는다
시저맨에게 걸렸다면 RSI(연타하지 않고 견딜 수 없어)로 탈출하자
SFC vs PS1? 고민할 필요 없이 둘 다 수록했다
95년 슈퍼 패미컴으로 처음 나온 ‘클락 타워’는 머잖아 PC, PS1, 원더스완에 이식됐다. 당시는 플랫폼 확장과 함께 기존 사양을 조정하거나 추가 요소를 넣는 게 보통이라 각 버전마다 조금씩 차이는 존재한다. 보통 휴대형 기기 한계상 전체적으로 열화된 원더스완 버전을 제하고 슈퍼 패미컴 지지파와 PS1 지지파가 나뉘는데, 오늘날 그나마 좀 더 건재한 쪽은 전자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클락 타워’를 붙잡고 있는 게이머라면 스피드러너일 가능성이 크고 슈퍼 패미컴 버전이 스피드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PS1 버전, 즉 ‘최초의 공포(First Fear)’는 무작위성이 상당히 강화됐다. 게임성 측면에서 긍정적인 변화지만 스피드러너 입장에선 난감할 노릇. 거기다 슈퍼 패미컴서 지원(?)하던 버그, 글리치가 대부분 수정됐다. 이 역시 개발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나 문제는 스피드런에 여러 글리치를 쓴다는 거다. 아는 사람을 알다시피 적잖은 스피드런이 글리치 활용을 인정하며 아예 실력의 척도로 여기기까지 한다. 그들도 소중한 유저이자 팬덤인 만큼 품어가는 게 상책이다.
SFC, PS1 버전 모두 수록. 스피드러너 아니라면 대부분 후자일듯
시간을 되감는 신규 기능. 다만 위기를 회피하기에 15초는 좀 짧다
그래서 ‘클락 타워 리와인드’는 슈퍼 패미컴과 PS1 사이에서 택일하는 대신 그냥 둘 다 수록했다. 95년 원작을 오롯이 경험하고 싶다면 오리지널 모드, PS1 버전에 각종 편의 기능이 더해진 최신 사양으로 즐기겠다면 리와인드 모드를 고르자. 새롭게 도입된 편의 기능은 자유로운 저장과 되감기인데, 전자야 두말할 나위 없이 유용하나 후자는 좀 웃기다. 최대 15초까지 회귀한다지만 굼뜬 제니퍼에게 그 정도면 겨우 몇 걸음 떼기 전이다. 때문에 한껏 되감아봐야 이미 엎질러진 물이나 다름없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이외에도 일종의 동봉 특전인 모션 코믹스, 이미지 갤러리, 판촉용 데모(JP), 코노 히후미P 특별 인터뷰를 확인 가능하다. 판촉용 데모는 비매품이었으니 이제와선 정말 귀한 자료인 셈. 본지도 최근 코노P와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 바 있는데, 서로 겹치지 않는 내용도 많으니 아울러 살펴주기 바란다. 끝으로 레트로 감성 물씬 풍기는 CRT 스캔라인 필터와 16:9 화면비, 4:3일 때 여백을 메울 월페이퍼를 지원하니 취향껏 꾸미길. 다만 16:9는 기존 화면에서 좌우만 잡아 늘린 모양새라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여러 화면비와 필터를 지원하는데, 16:9는 그냥 좌우로 늘리는 식
코노 히후미P와의 특별 대담 등 동봉 특전으로 소장 가치가 있다
호러 게임을 좋아한다면, 이제 원조와 만나자
다소 짧게 소개했으나 보다시피 기획만 놓고 보면 전혀 30년 전 게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래픽이나 여러 면에서 진짜 최신작과 일대일 비교하긴 무리가 따른다. 그래도 스팀 등지서 ‘클락 타워’의 영향을 받은 뉴트로 호러 게임이 꾸준히 나오고 또 사랑받는 걸 보면 원조에 대한 관심과 수요도 얼마든지 있을 터다. 슈퍼 패미컴과 PS1 양쪽을 섭렵하고 특전까지 동봉된 완전판이므로 소장 가치는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원작의 아트워크가 더 취향에 맞으나 새로운 오프닝 애니메이션도 나름 좋은 눈요기다.
IP 홀더 선소프트와 함께 ‘클락 타워 리와인드’를 만든 북미 유통사 리미티드런 게임스의 주요 전략은 일찍이 서구권에 정식 발매되지 않은 명작을 찾아 이식하는 거라고. 기존 팬덤에게 팔고 손 털 요량이면 수지가 맞기 힘든 사업이다. 따라서 올드 게이머가 먼저 관심을 보일지언정 꼭 소위 추억팔이 콜렉터블 굿즈는 아닌 셈. 과연 30년 전 고전 게임과 신세대 게이머의 극적 만남이 성사될는지. 그저 불만은 아시아판의 경우 다운로드 버전이란 건데, 아무래도 패키지로 들여오기 좀 부담스러웠을 법하다.
원작 분위기와 어울리나? 싶지만 한 번쯤 볼만한 새 오프닝 영상
신세대 게이머에게도 여전히 경쟁력 있는 호러 게임이라 본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