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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 사일런트 힐 2 리메이크, 원작과 팬을 존중하는 리메이크 필수 단계
조회수 11752 | 루리웹 |
입력 2025.08.19 (0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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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스컴에 앞서 독일 퀼른에서 열린 개발자 컨퍼런스 '데브컴 2025'에서 블루버 팀이 제작한 ‘사일런트 힐 2’ 리메이크의 레벨 디자인 과정을 다룬 강연 ‘사일런트 힐 2 미궁 사례로 보는 5가지 리메이크 필수 단계’가 진행됐다.
강연에서는 원작에서 강렬한 인상을 줬던 ‘미로’ 스테이지를 리메이크하면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리메이크에 필요한 다섯 가지 원칙을 소개했다. 발표는 블루버 팀 안나 오포르스카 시비스 게임 레벨 디자이너가 맡았다.
안나 오포르스카 시비스 게임 레벨 디자이너
'사일런트 힐 2 리메이크'는 원작 출시 후 2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 만들어진 만큼, 개발팀은 단순히 그래픽과 컷신을 현대적으로 다듬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시대가 바뀌며 게이머들의 기대와 개발사의 게임 제작 기준이 달라진 만큼, 리메이크라는 새로운 표준에 맞춘 정밀한 조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사일런트 힐 2 리메이크는 원작을 충실히 구현하는 것을 넘어 현대적 재해석도 더한 형태로 진행됐다. 원작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면서도, 현대 게이머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에 맞추는 것이 핵심 과제였는데, 플레이어가 원하는 바를 이해하되, 그것에 너무 매몰되지 않고 일관성과 창작자의 의도를 지키는 균형점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미궁’ 스테이지의 레벨 디자인을 재설계하는 것이 특히 중요했다. 미궁은 주인공 제임스의 마음을 투영하는 공간인 만큼 팬들에게 인상 깊은 존재로 남았다. 동시에 난해한 구조로 악명이 높기도 한데, 플레이어가 직접 지도를 그려 나가야 한다는 시스템은 참신했지만,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미궁의 통로가 어딜 봐도 비슷하게 보이는 형태였기에 길을 잃기 쉬웠기 때문이다.
개발팀은 최대한 원작과 팬을 존중하는 형태로 미궁을 재설계했다. 기준이 된 것은 다섯 가지 원칙이다.
첫 번째 단계는 원작 스토리는 물론, 그 스토리를 경험한 팬들이 느낀 점과 해석까지 연출로 녹여내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궁은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는 장치로 활용되는데, 끝없는 구멍에 떨어지는 연출로 플레이어가 제임스의 내면으로 깊숙이 잠겨 드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두 번째 단계는 게임이 지닌 강점과 약점을 구분하고, 약점을 강점으로 만드는 것이다. 원작에서 미궁이 보여준 약점은 공간이 다 비슷하게 보여서 길을 잃기 쉬웠고, 시스템상 지도는 직접 그려야 해서 독특한 경험을 가져다줬지만 동시에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는 점이다.
개발팀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우선 원작에서 하나의 거대한 미궁이었던 것을 리메이크에서는 세 가지 구역으로 분리했다. 각 구역은 노란색, 푸른색, 붉은색 등 상징색을 지니고, 질감도 달리해 확실하게 다른 구역에 있다는 것을 전달하면서도, 미궁이 주인공의 감정을 반영한다는 점을 보다 부각시켜 게임에 몰입하게 만든다.
첫 번째 공간은 노란색을 주로 사용했으며, 녹슬고 먼지가 낀 듯한 질감을 표현해 병들어 죽어가는 아내와 그것을 보며 슬픔에 잠기는 제임스의 감정을 표현했다. 두 번째 공간은 푸른색을 사용했으며, 죽어가는 아내를 보며 소중한 이가 사라진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는 제임스의 감정을 표현했다. 세 번째 공간은 붉은색을 주로 사용했으며, 분노를 주제로 한다. 플레이어가 전투나 회피를 선택할 수 있는 구조로 꾸며졌는데, 이는 분노를 표출할 것인지, 스스로를 다스리고 인내할 것 인지 선택하는 과정을 뜻한다.
지도를 직접 그려야 하는 부분은 통로에 희미한 실 같은 것을 보여주거나, 지도에 숫자를 표기하는 것으로 층을 구분하는 등으로 길을 완전히 잃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했다. 실을 보여주는 부분은 '크레타의 미궁'에서 영감을 얻었다. 지도를 그려 나가야 하는 시스템 자체를 바꾸지 않은 이유는, 길을 잃는다는 것은 불편함을 초래하지만, 적절히 활용하면 공포와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경험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약점을 강점으로 만든 것이다.
세 번째 단계 원작을 대폭 수정하고 싶어지는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다. 안나는 “무작정 바꾸는 것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라며 원작과 리메이크 간 균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원작을 그대로 두면 현대 게이머 기준에서 낡고 불편한 게임이 돼 버릴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새롭게 바꿔버리면 원작 팬이 사랑한 핵심 요소를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정육면체 블록을 회전시켜 문을 맞추는 ‘큐브 퍼즐’은 이해하기 힘든 구조로 악명이 높았지만, 삭제하거나 다른 퍼즐로 대체하기 보다는 큐브라는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더 직관적인 형태로 재설계하는 방향으로 개선했다. 작은 큐브와 직관적으로 연동되는 큰 큐브를 등장시키고, 거기에 상징적인 요소와 색상을 더하는 것으로 원작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접근성을 높였다.
네 번째는 적이 새로워졌다면, 레벨 디자인도 그에 맞춰 새로워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로 ‘맨더린’이 있다. 원작에서 맨더린은 손만 보여주며, 매우 짧게 등장하고 대처법도 단순해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지만, 리메이크에서는 보다 위협적인 존재로 재탄생했다. 맨더린은 철망에 매달려 플레이어를 공격하는 크리처인데, 그 특징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맨더린이 등장하는 구역에는 통로 전체에 철망을 설치해 맨더린이 플레이어를 추적하도록 하고, 플레이어는 철망만 보면 자연스럽게 그 존재를 떠올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섯 번째는 팬들의 기억을 존중하는 것이다. 팬들에게 강하게 각인된 요소라면 리메이크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흔적을 남겨야 한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교수형 퍼즐이다. 교수형 퍼즐은 미궁보다 감옥이라는 공간적 맥락에 더 어울린다고 판단해 리메이크에서는 감옥 구역으로 재배치했다.
그러나 팬들이 오랫동안 기억해온 상징성은 지우지 않았다. 미궁에서도 이 퍼즐을 연상할 수 있는 '과거의 흔적'을 남겨 팬들이 원작을 추억할 수 있게 했다. 관련하여 안나는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고, 이를 게임에서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강연은 원작의 상징성과 팬들의 추억을 존중하면서도, 현대적 감각과 기술에 맞춰 균형 있게 게임을 다듬는 리메이크 과정이 얼마나 세심한 감각을 요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앞으로도 이와 같은 시도가 더 많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 안민균 기자 ahnmg@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