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가 유비한 확장팩, ‘디비전 2: 뉴욕의 지배자들’ 체험기
출시 직후, 한동안의 서버 문제로 하루 이틀 정도를 날린 후에 저도 게임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일단 출시 전 공개했던 아론 키너와 그의 사천왕을 소개하는 애니메이션 트레일러로 디비전 뽕을 한껏 충전한 후라 의욕은 충만했습니다. 미리 총평하자면, 이번 확장팩은 유비와 매시브가 평소에 하던대로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담고 있습니다.
게임에 접속하면 바로 아론 키너가 돌아와 뒤집어 놓은 뉴욕 맨하탄 남부로 날아가게 됩니다. 페이 라우를 포함한 뉴욕의 반가운 얼굴들도 다시 보이는군요. ‘뉴욕의 지배자들’에 추가된 싱글 플레이 캠페인은 ‘고스트리콘: 와일드랜드’ 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볼륨을 많이 줄였다는 차이가 있지만 말입니다. 4인방을 먼저 사냥한 다음 아론 키너를 드디어 척살하게 되는 구조 자체는 좋습니다. 일명 사천왕을 잡는 동안에는 그 4명보다 오히려 아론 키너에 대한 스토리텔링에 집중하기 때문에, 최후 결전인 아론 키너전에는 매우 몰입이 잘 됩니다. 4명에 대한 배경 설명도 어차피 10시간 안에 썰려나갈 친구들 치고는 인상적인 편입니다.
‘디비전 2’ 의 초기 워싱턴을 하나씩 해방시켜 나가던 작업이 그랬던 것처럼, 이 싱글 캠페인은 재미있습니다. 사실 멀티플레이어 슈터 루터인데도 디비전의 전통적 큰 장점 중 하나는 싱글 캠페인이 정말 재미있다는 것이죠. 매시브는 사실 장기적인 업데이트 플랜을 짜는 것보다 이런 단기적인 콘텐츠를 짜는데 특화되어있는 개발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4명의 중간보스, 사천왕들의 보스전은 제각각 다르게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고, 아론 키너 전도 플레이어의 예상에서 허를 찌르는, 그렇지만 로그 요원이라는 그의 특성을 잘 살렸다고 봅니다. 주제 전달도 좋고요.
워싱턴 D.C. 가 풍성해 보였던 것은 그 안에서 계속해서 돌아가는 콘텐츠 플로우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주기적으로 공격해오는 블랙 터스크와 현상수배, 프로젝트 이런 것들이 장비가 아니더라도 플레이어들에게 동기를 부여했고 물론 이 마저도 질리면 요새 밖에 할게 없었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몇십시간 동안 할 거리가 있다는게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뉴욕의 지배자들’ 는 캠페인을 깨면 마지막 장면의 여운을 살짝 느끼면서 이거 이제 이 손가락에서 피가 나는건 아닌가 하면서 계속 엄지를 빨고 있는 수 밖에는 없군요. 그나마 대비를 한다고 해도 시계 레벨을 수백 단위로 올리고, 이전에 가지고 있던 빌드의 장비들을 템렙 높게 다시 뽑아내는 작업이라 지루합니다.
물론, 아직 제가 ‘뉴욕의 지배자들’ 자체의 전체 콘텐츠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며 그러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콘텐츠와 콘텐츠의 연결이 다소 부실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론 키너와 일전도 치렀고, 숨겨져 있던 비밀도 파악했으니 거기서 빨리 이어가고 싶은데 ‘다음 타겟 도착 X일 X시간 후’ 를 보고 있으니 그런 느낌이 오는거죠.
다만 칭찬할 부분도 있습니다. 일단은 장비 관련 시스템이 기어 2.0 을 도입하면서 격변이 되었는데, 이전의 불합리하던 부분들이 많이 해소되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속성 보정치를 이제 추출해서 보관할 수 있다는 부분이 장비 파밍의 무의미한 불확정성을 정말 많이 감소시켜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전에는 장비 제조사도 맞고, 원하는 속성도 3~4개 다 맞고, 거기다 수치도 좋아야했는데 여기서 각 특성과 속성을 핵심, 보조로 나누어 추출하여 보관할 수 있게 되면서 원하는 장비를 보다 수월하게 맞출 수 있게 되었죠.
스킬 티어 시스템도 꽤 직관적인 변화입니다. 이전에는 플레이어들 끼리 대강 ‘어느 정도 이상의 스킬 파워를 맞추어야 쓸만하다’ 정도로 공유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스킬 티어로 별도의 속성으로 분리하게 되면서 빌드가 좀더 명확해졌습니다. 스킬 티어에 따른 스킬의 강화 효과 매우 환영할만한 변화이며 또 직관적이고요. 특화나 특성, 속성이 가지치기 되면서 없어져서 아쉬운 것도 있지만 그만큼 속성치 파밍에 대한 스트레스는 줄어서 다른 부분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뉴욕의 지배자들’ 가 남긴 가장 큰 업적이 바로 이 기어 2.0 이 아닐까 합니다. 이전까지는 파밍의 목표치라는게 꽤 두루뭉술했죠. 하지만 이제는 파밍이 보다 목적성이 강하고 직관적이게 되었습니다. 비유를 들자면 나무가 스무그루 있는 과수원에서 어느 나무에 내가 원하는 과실이 달려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돌아다니면서 한 번 씩 나무를 흔들어보는 거였다면, 이제는 어떤 나무에 어떤 과실이 달려있는지 정도는 알게 되어서 두세개의 나무만 번갈아가며 흔들어보기만 해도 된다는 정도입니다.
그 결과 플레이어 요원들의 빌드는 특색이 더 강해졌고 전력맨, 화기맨, 탱커 같은 구분이 보다 명확해졌습니다. 각자 할 수 있는 역할도 좋게 말하면 특화되었죠. 이건 긍정도 부정도 있다고 보는데, 저는 일단은 긍정에 한 표를 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번 확장팩 ‘뉴욕의 지배자들’ 를 게임의 틀을 다시 짜는 역할이라고 본다면 그 의도는 꽤 잘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기어 2.0 은 확장팩 포함 사항이 아니라 확장팩 비 구매자에게도 적용되는 공통 업데이트이긴 하지만요.

여전히 징글맞게 투닥거리는 두분도 다시 보니 좋았구요...
이렇게 하나씩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아쉬운 점은 앞으로 나올 콘텐츠가 얼마나 방대하고 훌륭한가에 따라 상쇄될 수 있고, 좋은 점은 게임의 기틀을 다시 다지는 큰 역할이었다는 점에서 종합적으로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문제는 앞으로입니다. 사실 보통 업데이트의 경우, 현재 남아있는 게임의 불완전함을 개선해줄거라는 기대감을 들게하는게 보통입니다. 하지만 현재 ‘디비전 2’ 의 업데이트 추세는 유저들에게 크게 원성을 사고 있는 상태입니다. ‘디비전 1’ 때부터 매번 새로운 DLC 가 나올 때마다 출시 당시에는 밸런스가 잘 맞지만, 점점 세기말이 될수록 새로 출시된 콘텐츠의 난이도, 너프 위주의 빌드 밸런스, 새로운 빌드의 지지부진한 출시 등이 맞물려 항상 밸런스가 어긋났죠. 이쯤이면 전통적이네요.
이는 ‘디비전 2’ 에서도 이어져서 항상 콘텐츠 세기말이 되면 플레이어들의 원성이 커졌습니다. 이번에도 네게브의 너프는 발빠르게 하면서 난이도가 지나치게 높은게 아니냐는 플레이어들의 반응에는 ‘아론 키너의 시계 레벨을 올리라’ 며 반응한 사례도 있죠. 물론 이런 빌드를 짜고 아이템을 맞추는 게임에서 처음부터 모든게 쉬울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당장은 그 빌드를 짜기 위한 시도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네요. 분대 전투에서의 역할 분담을 보다 강하게 요구하는건 좋지만, 그럴 수 있는 발판은 주고 환경을 조성해야죠. 각 플레이어가 자신이 설정한 세팅, 그리고 역할을 미리 고지하고 매치메이킹을 할 수 있는 기능만이라도 넣었다면 어땠을까요.
‘디비전 2’ 는 RPG 라는 큰 틀 안에 있기 때문에 흔히 말하는 불렛 스펀지 현상은 어느정도는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중요하죠. 그런 면에서 지금의 매우 어려움 난이도는 이전의 영웅 난이도를 생각나게 하는데, 그게 뭔가 빌드의 최적화나 구성, 아니면 팀워크의 문제가 아니라 플레이어의 공격력과 적의 방어구 수치 상의 문제라고 느껴지는게 현재 가장 큰 아쉬움인 것 같습니다. 저는 ‘디비전 1’ 에서 ‘디비전 2’ 로 넘어오면서 바뀐 보다 호전적이고 지능적인 AI 들은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난이도 조절을 전적으로 방어구 수치에 의존하는 듯한 지금의 상태는 좀 아쉽습니다. 기껏 기어 2.0 으로 파밍하기도 좋게, 또 빌드 짜기도 좋게 만들어 놓고 그게 의미가 없는 상황을 만들어가고 있네요.
제 생각입니다만, ‘디비전 2’ 는 지금 외양간을 고칠 부분이 많습니다. 물론 ‘뉴욕의 지배자들’ 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고, 부착물의 부조리함 같은 문제를 해결한 건 좋아요. '뉴욕의 지배자들' 자체는 좋은 시도가 더 많아서 저는 이후 시즌 콘텐츠만 잘 나온다면 충분히 돈값을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여전히 한 두 개를 빼면 그저 예능용이고 수도 부족한 특급 무기들(경쟁작인 데스티니의 경이 무기에 비교한다면), 결국 또다른 수치상의 스펙 증가로 밖에 안보이는 시계 업그레이드, 여전한 전문화 및 기술 간의 격차 등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습니다. 지금의 개선 속도를 보면 이걸 다 고치는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이고, 그리고 그에 앞서 개발진이 플레이어의 니즈에 얼마나 공감하고 있는지도 의문이 듭니다. 일단 기어 2.0 을 보면 분명히 니즈를 파악하고 있는 것은 맞는데, 관건은 개발속도인걸까요?
종합해볼 때, ‘뉴욕의 지배자들’ 는 지금까지 유비, 그리고 매시브가 잘하던 것은 그대로 잘했는데, 잘못하던 것도 그대로 잘못한 확장팩입니다. 솔직히 우리가 이 게임을 사랑하는 것은 멋진 세계관과 거기에 빠져들게 만드는 도시 숲의 레벨 디자인이라는 감성적 요소 외에도 현대 총격전의 달인인 요원이 펼치는 분대 단위로 택티컬하게 짜여있는 빌드 중심 RPG+TPS 라는 게임 핵심 메카닉의 뽕맛인데, 이걸 위해서는 보다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다는걸 이제 매시브도 깨달아주었으면 합니다. 저도 이 게임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그러니 정말 한구석이라도 흠잡을데 없는 초갓겜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