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덕분인지 요즘은 다중우주나 평행세계 같은 이론이 아주 친숙하게 느껴진다. 필자 역시 몇 년 전 브라이언 그린作 ‘멀티 유니버스’를 퍽 흥미롭게 봤다. 우리는 왜 그처럼 과학적, 경험적으로 증명된 적 없고 어쩌면 영원히 증명될 리 없는 이론에 열광하는가. 어딘가 지금과 비슷하지만 다른, 더 나은 삶이 존재한다는 달콤 쌉싸름한 위안 때문일까. 그런 의미에서 소싯적 SF계에 불었던 시간여행 시류의 최신 버전스럽기도 하다. 삶의 어떤 결정적인 순간을 바꾸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2015년 첫 선을 보인 3인칭 어드벤처 게임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가 바로 그런 이야기였다. 미국 오리건 주에 사는 10대 소녀 맥스 콜필드는 얼마간 시간을 되돌리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다. 그 힘으로 일상 속 소소한 문제를 해결하던 중 어쩌다 자신과 친우의 목숨이 걸린 일대 사건에 휘말리고, 스스로 행한 선택에 의해 희망적이거나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다. 그렇게 에피소드 5로 게임이 막을 내리고 강산이 한 번 바뀌었다. 몇 편인가 후속작도 나왔으나 맥스는 귀환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 촬영이 일절 불허였던 관계로 공식 배포 자료를 활용해 편집하였습니다.

 맥스와 클로이, 두 소녀의 이야기를 그렸던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더블 익스포저'의 주인공으로 맥스가 돌아왔다

시간을 달리던 소녀가 세계를 뛰어넘는 여인으로

내달 30일 출시되는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 더블 익스포저’는 초대 타이틀 롤이며 여전히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인 맥스 콜필드의 두 번째 이야기다. 이 시리즈가 낯설다면 당최 무슨 소리인가 싶을 텐데, 본작을 제외하고 여태껏 외전까지 다섯 편이 나왔으나 매번 주인공이 달랐기 때문이다. 작중 세월도 우리 현실만큼 흘렀는지 1편의 소녀가 어느새 대학교 사진 강사가 됐다. 오랜 취미이자 재능인 사진을 결국 직업으로 삼은 셈. 참고로 부제인 ‘이중 노출(Double Exposure)’ 역시 촬영 용어다.

스토리가 게임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장르 특성상 TGS 미디어 프리뷰 역시 분절된 구간을 조금씩 플레이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시연은 칼레돈 대학 옥상에서 세 친구가 함께 유성우를 관찰하는 장면이다. 아마도 본편 도입부로, 주요 캐릭터의 관계성에 충분히 몰입하라는 안배일 터. 겉모습이 후덕한 남성 모지스는 실제로도 순하고 섬세한 성격 같고 소위 ‘차도녀’스러운 인상의 사피는 치열함 가운데 여유가 느껴진다. 여기서 모지스가 천문 강사나 연구원이고 맥스와 사피는 우정을 위해 따라와준 모양.

오리건 주 아카디아 만의 10대 소녀가 어엿한 대학 사진 강사로 성장했다

새로운 친구 사피, 모지스와 함께 잠시나마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맥스

세 친구의 평화로운 한 때가 지나고 머잖아 예상치 못한 사건이 터진다. 스포일러를 최소화하고자 딱 게임 소개문에 적힌 만큼만 언급하자면… 사피가 죽는다. 그 직후 친구의 주검과 마주한 맥스는 치닫는 비통함에 신음하다 이윽고 새로운 초능력을 각성하니, 바로 두 평행세계를 왕래하는 힘이다. 한때 시간을 달리던 소녀가 이제 세계의 간극을 뛰어넘는 여인이 된 것. 이쪽 세계서 사피의 죽음이란 비극이 발생한 반면 저쪽 세계는 모든 게 그대로다. 사피도 모지스도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살아간다.

물론 그렇다고 세계를 갈아타면 만사형통일리가. 이쪽 사피가 누구에게 왜 죽었는지 진상을 밝혀야지. 서로 굉장히 닮은 평행세계라 저쪽 피도 언제까지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다. 우발적 범행이 아니라 계획 살인일 경우, 당장은 어떻게 넘겼더라도 결국 또다른 비극이 기다릴 터. 이것이 ‘라이프 오브 스트레인지’ 1편과 ‘더블 익스포저’간 뚜렷한 차이다. 본작의 맥스는 시간을 되돌려 비극 자체를 부정하는 대신 원인이 무얼까 살피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애쓴다. 9년의 세월만큼 성숙해졌다.

사피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며 다시금 운명의 소용돌이 속으로 휩쓸려간다

1편이 시간을 달리는 소녀였다면, 이번에는 세계를 뛰어넘는 여인이다

이쪽과 저쪽 세계를 오가며, 친구의 죽음을 파헤쳐라

두 번째 시연은 모지스의 대학 사무실 주변서 맥스와 앨더만 형사가 작은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이다. 사피가 죽었으니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혹은 추정되는- 둘은 위로받아 마땅한 동시에 살인 용의자기도 한 것. 심지어 모지스는 감정이 복받쳐 사피 곁에 놓인 그녀의 카메라를 챙긴 터라 한층 더 위태로운 처지다. 어디까지나 친구가 소중히 여기던 물건을 대신 수습해줄 요량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살인 사건이 벌어진 현장서 증거를 빼돌려 은닉한 꼴이다. 걸리면 해명할 길이 없다.

아직 앨더만 형사가 거기까지 파악하진 못 했겠으나 어쨌든 둘이 용의자인지라 대학 사무실로 찾아왔다. 문제는 하필 피의 카메라를 대학 사무실에 뒀다는 거다. 당황한 모지스는 마치 농성하듯 열쇠를 잃어버렸다고 둘러대며 버티는 중이다. 그래봐야 공권력 앞에 무의미한 저항이지만. 결국 별수 없이 맥스가 초능력으로 온통 꼬여버린 상황을 풀어간다. 앨더만 형사의 감시를 피해 모지스와 상의하긴 어려우니 그녀 홀로 사무실에 숨어들고,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찾아내고, 무사히 챙겨 빠져나와야 한다.

소피의 주검에 감정이 복받쳐 시쳇말로 '빌런짓'을 저지르고만 모지스

그리고 자기 일을 할 뿐인데 빌런 취급인 앨더만 형사, 물론 더 두고봐야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게임 플레이의 영역이다. 어떻게 사무실 안에 숨겨둔 카메라를 챙길까. 우선 두 평행세계 사이의 틈을 찾는다. 제아무리 맥스라도 빛나는 균열이 발생한 곳에서만 평행세계 왕래가 가능하다. 저쪽 세계는 살인 사건이 없었으니 앨더만 형사도 없고 사무실 문도 잠기지 않았다. 그러니 평범하게 걸어 들어간 다음 사무실 내부에 빛나는 균열로 돌아오면 된다. 이쪽 세계 A지점에 입장 → 저쪽 세계 A지점서 B지점으로 → 이쪽 세계 B지점서 퇴장은 ‘더블 익스포저’의 주요 퍼즐 기믹 가운데 하나다.

카메라 역시 너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저쪽 세계서 평범히 근무 중인 모지스 본인에게 물어보면 된다. 물론 초능력이니 살인 사건이니 자초지정을 다 읊긴 그렇고 ‘뭔가 꼭꼭 숨겨야 할 때 어디가 좋을까’ 정도로 에둘러 묻자. 끝으로 맥스는 아예 특정 사물을 평행세계와 바꿔치는 것도 가능하다. 가령 관측 설비가 다 조립된 저쪽 세계와 달리 이쪽은 박스인 채라 경로를 가로막는데, 둘을 바꿔치고 지나가는 식이다. 다만 이쯤 되면 주위 사람들도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슬슬 눈치채기 마련이다.

두 평행세계를 왕래하고 간섭하는 능력에서 다양한 퍼즐 기믹이 파생된다

물론 이외에 크고 작은 행동, 대화, 선택이 스토리에 영향을 미치는 건 동일

여전히 인생은 요지경, 이제부터 한국어로 즐기자

국내에선 ‘라이프 이즈 스트레인지(Life is Strange)’를 흔히 ‘인생은 요지경’이라 부른다. 우스개긴 한데 딱히 완전히 번역도 아니라. 거진 10년 만에 복귀했더니 또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새로운 초능력까지 얻은 맥스의 인생이야말로 정말 요지경 속이다. 과연 두 평행세계를 넘나드는 힘이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짧은 시연으로는 짐작조차 안된다. 그래서 클로이랑은 어떻게 됐는지도 궁금하고. 결국 한 달 후 뚜껑을 열어봐야 알 노릇이다. 참고로 상술에 놀아나는 기분이지만 얼티밋 에디션 구매자는 보름 후다.

그리고 국내에 한하여 맥스의 복귀만큼이나 반가운 소식이 있다. 시리즈 최초로 정식 한국어화를 지원한다는 것. 워낙 열성 팬이 많은 시리즈라 꾸준히 유저 패치가 제작돼왔으나, 아무래도 게임 출시 후부터 번역을 시작하니 배포까지 상당히 시간이 걸리곤 했다. 특히 스포일러가 치명적인 어드벤처 게임으로서 전세계 동시 발매에 맞춰 한국어로 플레이한다는 건 더없이 기쁜 일이다. 넘쳐나는 빠르고 시끄럽고 파괴적인 게임들에 지쳤다면 오는 10월 ‘인생은 요지경 ~이중노출~’을 추천하는 바다.

이쯤되면 코난이나 김전일처럼 본인이 사건사고를 부르는 게 아닌가 싶다

시리즈 최초 정식 한국어화로 스포일러 걱정 없이 출시 첫날부터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