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빼고 다 바뀐 느낌, 내러티브화된 '문명 7' 시연
굉장히 많은 변화가 이루어진 타이틀인 만큼 변화점 위주로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플레이하며 핵심적으로 느껴진 변화를 정리하자면,
1. 3개 시대, 각 시대별 문명 선택 및 시대의 명확한 분리
2. 일꾼 삭제, 도시/마을 구분, 도시 기능으로 인프라 구축
3. 지휘관 중심의, 유지력 대신 소모전 위주의 전투
4. 영향력 자원 바탕으로 선택과 집중의 외교
5. 길이는 줄었지만 밀도가 높아진 기술&문화 계통도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시대가 고대 시대/대항해 시대/근대 시대의 3개로 압축되었고, 각 시대의 시작마다 새로운 문명을 선택한다는 정보는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여러 디테일한 부분들도 바뀌었다.
시대가 넘어갈 때 새로운 문명을 고르게 되는데, 문명 선택지는 이전에 어떤 문명이었느냐에 따라 정해진 가짓수의 선택지에 더해 플레이하면서 달성한 조건으로 해금된 문명 중에서 고를 수 있다. 고르고나면 유산 포인트로 이점을 챙기는 단계가 이어진다.
또한 시대 간의 플레이도 명확하게 분절되어 있다. 예를 들어 기술&문화 계통도의 경우에도 각 시대별로 매우 짧은 길이의 계통도만을 가진다. 이전에는 계속해서 발산하고 수렴하며 계통도를 시대를 넘어 이어가던 것과 달리 해당 시대의 계통도를 모두 채우면 미래 기술이라는 보너스를 주는 기술만 연구할 수 있다. 이에 더불어 특정 문명에 따라서 추가 기술 계통도나 문화 계통도가 주어진다.
위기는 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사건이며, 대체로 자신이 선택한 유산의 길에 걸맞는 위기가 주어진다. 미리 어떤 사건이 오는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플레이어가 달성해야 위기를 클리어하고 다음 시대로 넘어갈 수 있다. 또한 시대별로 할 수 있는 활동도 제한되는데, 예를 들어 고대시대에는 절대 원양항해를 할 수 없어서 자신이 속한 대륙 내에서 모든걸 해결해야 한다.
2. 일꾼 삭제, 도시/마을 구분, 도시 기능으로 인프라 구축
일꾼이 삭제되고, 도시의 개발은 도시의 인구수, 발전도 상승에 따라 특정 타일을 지정해 건물을 짓거나 도시 경계를 확장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영토는 자동으로 확장되지만 도시 경계는 플레이어가 선택하여 확장해야 한다. 그리고 도시로 발전하기 이전에 마을이 있으며, 도시/마을 두 정착지는 도시가 일방적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니고 목적에 따라 마을이 유용할 수도 있다.
3. 지휘관 중심의, 유지력 대신 소모전 위주의 전투
병종 구성은 전과 같이 근접보병/원거리보병/정찰보병의 체계로 시작하는 방식을 이어가나, 이전과 전체적인 전투의 양상이 조금 다르다. 이번에도 하나의 보병을 최대한 살리면서 활용하는게 중요하지만, 일반병은 더 이상 진급하지 않으며(즉, 진급으로 체력을 채울 수 없고) 지휘관의 성장이 더욱 중요해졌기에 군단장을 중심으로 병력을 계속 생산하고 회전하며 싸우는 소모전의 양상이 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함인지 단순 생산 외에도 병력 충원 루트가 매우 많아, 계속해서 여러 방법으로 병력을 채워 전투하게 된다.
그리고 상기한 변화들로 내정 상의 플레이 요소가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인지 몰라도, 점점 더 많은 야만인이 달려든다. 정확하게는 이제 야만인이 아니라 독립 세력으로 기능하는데, 독립 세력은 자신들의 정착지를 가지고 그 일대를 점거하며 플레이어를 공격한다. 플레이어는 적 병력을 정리하고 정착지를 공격해 이를 차지하거나 파괴할 수 있고, 정착지를 차지하게 되면 자신의 마을로 획득하게 된다.
4. 영향력 자원 바탕으로 선택과 집중의 외교
새로운 자원인 영향력은 외교에 쓰이는 전용 자원이다. 모든 외교 활동, 결정에 영향력이 소모되며 턴마다 일정량이 수급된다.
외교 관계로 얻을 수 있는 이점이 비단 영토나 군사, 경제 영역 뿐만 아니라 문화, 연구 쪽에서도 보다 수월해졌다고 볼 수 있다.
5. 길이는 줄었지만 밀도가 높아진 기술&문화 계통도
기술&문화 계통도 역시 전술한 것처럼 시대에 따라 제한되지만, 시대가 끝날 때까지 계통도는 계속해서 돌아간다. 이유는 각 기술&문화 계통도가 2단계로 세분화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를 연구해도 그 바로 아래에 있는 2차 발전을 찍어야 해금되는 요소들이 있으며, 연결되어 있는 이전 선택지를 모두 완료해야 다음 선택지를 고를 수 있기에 마구잡이로 하기보다는 확실하게 목표를 잡는 것이 권장된다.
■ 변화 요소들의 장단점, 그리고 호불호
이러한 변화들의 영향으로, ‘문명 7’ 에서는 각 시대를 플레이하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건 이전과 매우 다른 느낌을 준다. 마치 1라운드를 마무리하고 새 라운드를 시작하는, 아니 새로운 게임을 시작하는 느낌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문명 7’ 이 어떤 선형 구조의 게임처럼 된 것은 아니다. 여전히 큰 목표 아래 이를 달성하는 방식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달려 있으며, 단지 그것을 게임이 이전보다 훨씬 많이 관여하며 가이드해준다는 느낌이 강하다. 플레이는 여전히 재미있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가장 먼저 느껴지는 장점은 초반부터 여러모로 선택을 하면서 플레이하게 된다는 점이다. 초반 세력 구도에서 모두와 항상 잘 지낼 수는 없으며, 영향력을 신중하게 투입하고 십몇턴씩 걸리는 외교 선택지를 골라가며 동맹과 적을 확실히 하고 내실을 쌓으면서 발전의 기틀을 쌓아야 한다.
즉, 전반적인 변화의 방향성은 게임 내 가이드가 많아지고, 플레이어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고 고민만 하게 되는 순간을 줄이는 쪽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완전한 숙련 플레이어에게는 내가 원하는대로 플레이하는 걸 방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플레이하며 느낀 바로는, 유산의 길이 기초적인 ‘문명 7’ 의 플레이 방향을 넘어서서 세부적으로 플레이어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또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위기도 몇가지 경험해보지 못하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게임 플레이에 그다지 관여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위기가 좀더 극적이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오히려 위기가 너무 강하면 반대로 플레이를 너무 제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호불호를 넘어서서 확실하게 문제로 느껴진 부분들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게임 전반에 걸친 개악된 UI 와 편의성 악화다. 문명 시리즈의 UI 는 전통적으로 간결하면서도 필요한 정보를 쉽게 담아두는 굉장히 모범적인 UI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는 게임 자체가 가진, 최대한 간결하게 정보를 정리하고 가공하여 보여주는 특성과 맞물려 여러모로 복잡한 4X 게임임에도 플레이의 불편함을 최소화 해주는 장점이었다.
‘문명 7’ 은 이전 시리즈에 비해 여러 면에서 바뀐 부분이 자잘하게 많기 때문에 하나씩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예를 들어 정착지를 처음 개척하면 마을로 취급하여 건설할 수 있는 건물이나 생산 가능한 유닛이 매우 제약되는데, 왜 그런 생산을 할 수 없는지, 생산제한을 해소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지 즉각적으로 마을 메뉴에서 확인할 수 없고 가이드로 들어가야만 이 마을을 도시로 전환해야 생산할 수 있다는 걸 볼 수 있다.
또한 유닛 관리에서도 대항해 시대에 들어서면 굉장히 많은 정찰 유닛을 운용하게 되는데, 정찰 유닛의 자동 정찰 기능이 삭제되었으며 유닛 조작도 다소 좀더 귀찮은 방향으로 바뀌었다. 지휘관의 존재로 전투 자체는 좀더 편리해졌지만 역시 여러 개의 군단을 동시다발적으로 굴리려면 좀 귀찮아진다.
■ 총평
이번 ‘문명 7’ 은 그동안 시리즈를 통틀어 가장 많은 변화를 추구한 작품이 아닐까할 정도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실제로 첫 시연은 그동안 내가 가진 ‘문명’ 시리즈에 대한 상식과 싸우는 시간이었다.
3개 시대 중 근대 시대는 이번 프리뷰에서 다룰 수 없기에 제한적으로 서술할 수 밖에는 없지만, 일단 굉장히 많은 변화들이 제각각의 이유와 의도가 보인다. 전체적으로 게임의 가이드라인을 자연스럽게 넣기 위한 노력이 엿보이며, 또 전체적인 플레이가 하나의 내러티브로서 흘러가도록 각 시대의 플레이 패턴을 디자인한 것이 눈에 띈다.
결국 핵심 키워드인 수많은 변화요소가 얼마나 각각의 플레이어들에게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지가 관건이다. 모든 변화의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으나 그것이 효과적이기는 상당히 어렵다. 일단 최소한 3시간의 플레이 동안에는 불안감과 새로운 재미가 공존했다. 출시 버전의 플레이는 과연 얼마나 완성된 형태일지 궁금해진다.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