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토스가 풍성할 뻔? 세실 킴에게 듣는 게임 업계 ‘썰’
앞서 ‘지스타 2024’ 컨퍼런스 연사로 나선 댓게임컴퍼니 세실 킴 아트 디렉터는 ‘패러사이트 이브’부터 ‘스카이’에 이르는 자신의 오랜 업력을 소개한 바 있다. 고교 시절 막바지에 미국으로 떠난 그가 어떻게 스퀘어와 소니 등 굵직한 스튜디오를 거쳤고 거기서 누구와 만났는지 등등. 요컨대 일종의 제작 비화가 퍽 흥미로우며 뭇 지망생의 열정과 영감을 북돋기도 했다. 다만 짧은 강연의 한계상 깊은 맥락까진 듣지 못한 만큼, 지난 주말 ‘스카이 – 빛의 아이들’ 협력의 날 이벤트서 다시금 그와 이야기 나눴다.
[강연] 세실 킴, ‘FF9’부터 ‘갓 오브 워’를 지나 ‘스카이’까지
무민과 함께 선, 댓게임컴퍼니 스튜디오 아트 디렉터 세실 킴
● 강연서 이야기한 메탈 앨범 커버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길 좋아했는지
: 어제도 친구를 만났는데 내가 옛날에 메탈 뮤직으로 테이프를 만들어줬다더라. 자기가 모르는 세상을 알려줘 참 고마웠다고. 그게 중학생 때다. 다만 미대 진학 자체는 고3이 되어 갑자기 정했다. 어린 시절에는 꿈이 자주 바뀌잖나. 소위 좋은 대학을 가려니까 공부가 너무 힘들고 내가 그래도 재주가 있는데 이걸 살리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 담임 선생님께 상담했더니 “나는 노래를 잘하는데, 그럼 가수 해야겠네?”하고 혼났던 기억이 난다(웃음).
● 그러다 미국으로 가 ACCD(Art Center College of Design)를 진학했다. 당시 상황을 들려줄 수 있을까
: 고3 때 넘어가 곧바로 편입했으니 뭘 제대로 준비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SAT-북미 입시를 위한 표준화 시험-부터 봐야 했으니까. 그래서 우선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며 그림을 그렸는데, 당시 학생을 모집하러 온 패서디나 아트 센터의 카운셀러가 나보러 괜찮으니 응시해보라 제안했다. 솔직히 자신은 없었고 실제로도 시간이 좀 걸렸지만 어찌저찌 ACCD를 다닐 수 있게 됐고, 영어가 서투르니 그림만 열심히 그렸는데 그게 또 교수님과 친구들에게 좋게 비쳤던 듯하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앨범 커버가 어린 그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 ACCD를 1996년 졸업했는데, 그러고 바로 게임 업계로 뛰어든 건가. 스퀘어 입사까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 내가 졸업할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애니메이션이 굉장히 각광받았다. 드림웍스가 막 설립돼 ‘이집트의 왕자’를 만들 때였으니까. 여러 스튜디오서 ACCD 졸업생을 많이 뽑아갔는데 어쩐지 나는 번번이 낙방하는 거다. 이제와 돌아보면 내 그림 스타일이 그 즈음 주류 애니메이션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지금처럼 e메일이 있는 것도 아니라 포트폴리오를 두툼히 인쇄해 여기저기 가져다주고 돌려받길 반복했다.
그러다 ‘게임 디벨로퍼 매거진’서 스퀘어의 구인 광고를 봤다. 아마노 요시타카 씨의 그림이 딱 박힌 페이지였다. 스퀘어가 북미 스튜디오를 차린 이유가 할리우드 영화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였는데, 마침 내가 졸업 후 파트타임으로 스토리 보드 그리는 일을 했었다. 덕분에 이야기가 잘 풀려 LA로 찾아갔더니 ‘파이널 판타지 7’ 영상을 보여주더라. 너도 저 배-비공정-를 디자인할 수 있다고. 그땐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웃음).
● ‘파이널 판타지’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반쯤 우연히 스퀘어에 입사해 결국 전설적인 게임 아티스트가 됐다
: 전화위복이란 표현이 딱 맞다. 솔직히 그땐 디즈니나 드림웍스에 간 친구들이 부러웠는데, 결과적으로 게임 업계로 온 것이 옳은 결정이었다. 스퀘어서 ‘패러사이트 이브’ 개발에 참여하며 일본인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처음에는 미국인으로 팀을 꾸리려던 게 계속 일본서 인력이 넘어왔다. 아무래도 그 특유의 감성까지 미국인이 표현하긴 어려웠으니까. 당시 토키타 타카시-대표작 ‘반숙영웅’, ‘라이브 어 라이브’, ‘크로노 트리거’ 외 다수-와 특히 친했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 번번이 낙방하다 반쯤 우연히 스퀘어로
● 그러면 LA서 ‘패러사이트 이브’를 마무리하고 하와이 스튜디오로 옮겨가 ‘파이널 판타지 9’ 개발에 참여했나
: 정확히는 ‘패러사이트 이브’ 후반 작업이 한창일 즈음이다. 미국 이민법상 하와이가 일본인이 들어와 살기 편했다. 그래서 LA 스튜디오는 미국인, 하와이 스튜디오는 일본인이 주로 근무하다 막바지에 몇몇 핵심 인력만 넘어간 거다. 6개월 후 ‘패러사이트 이브’를 출시하고 이제 여기서 ‘파이널 판타지 9’를 만들건대 하와이에 남을지 말지 선택권을 주더라. 나는 남았다. 당시 하와이 스튜디오가 100명이 넘었는데 미국인은 20~30명 정도였다.
● 게임을 만들면서 일본인 개발자와 소통은 어떻게 했나. 한국어랑 영어뿐 아니라 일본어까지 유창한지
: 일본어 잘 못한다(웃음). 긴히 소통이 필요하면 통역을 불렀다. 그 탓에 아트 디렉터였던 미나바 히데오-대표작 ‘파이널 판타지 9’, ‘파이널 판타지 12’ 외 다수-가 상당히 힘들어했지. 그래도 그 친구에게 굉장히 많이 배웠다. 특히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그림을 잘 그렸다. 이제와 돌이켜보면 ‘스카이’ 작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하와이서 3~4년 지냈는데 본사 출장이 꽤 자주 오더라. 그들도 나도 영어를 잘 못하니 그냥 모여서 바닷가에 놀러가고 테니스 치고. 우에마츠 노부오-대표작 ‘파이널 판타지’ OST 거의 전부- 씨와 술도 마시고.
미나바 히데오에게 그림을 배운 경험이 '스카이'서 큰 도움이 됐다
● 스퀘어에서의 즐거운 한 때를 끝내고 소니 산타 모니카 스튜디오에 합류해 대표작 ‘갓 오브 워’를 만들게 된다
: 당시 사카구치-‘파이널 판타지’의 아버지- 씨가 영화-‘더 스피릿 위딘’-를 만드는 데 자금이 너무 많이 소모됐다. 결과적으로 흥행도 고배를 마시며 하와이 스튜디오가 직격탄을 맞았다. 말하자면 정리해고지. 그렇게 LA로 돌아와 소니에 합류했다. 아직 ‘갓 오브 워’는 계획조차 없었을 때고 데이비드 재프와 ‘트위스티드 메탈: 블랙’을 만들었다. 간단히 말해서 온갖 미친놈들이 차를 몰고 싸우는 내용인데, 데이비드가 내가 그린 신부 스케치를 좋아해서 실제로 게임에 들어갔다. 그 후로 경찰, 갱스터, 힙합 문화가 혼합된 액션 게임을 개발하던 중 ‘GTA 3’가 딱 나와버린 거다. 아무래도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프로젝트가 캔슬돼 다들 충격이 컸다. 그리고 이제 데이비드가 ‘갓 오브 워’를 기획한 거지. 그것도 망했으면 아마도 산타 모니카 스튜디오는 사라졌을 거다.
● 데이비드 재프가 ‘갓 오브 워 2’까지 관여했고 이제는 코리 발록의 대표작으로 더 유명하다. 코리와도 잘 아는지
: 코리는 ‘갓 오브 워’ 개발 중반쯤 애니메이터로 들어왔다. 굉장히 멋진 미노타우로스 보스 애니메이션이 그의 솜씨다. 거기다 아버지가 작가-훗날 ‘갓 오브 워’ 공식 소설을 집필한 J.M.발록-인 영향인지 말도 글도 퍽 능숙했다. 언제나 저녁 늦게까지 데이비드 옆에 붙어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더라. 그렇게 2편서 그가 디렉터 자리를 물려받았지만 게임이 완성되자 스튜디오를 떠났다. 조지 밀러 감독으로부터 ‘매드 맥스’ 타이-인 게임 제작을 의뢰 받아서 호주로 넘어갔는데 결국 실현되진 못한 것으로 안다.
'갓 오브 워' 디렉터 데이비드 재프의 전작 '트위스티드 메탈'부터 참여
● 배경 아트로 업계 정상에 다다른 분이지만 혹시 ‘갓 오브 워’서 직접 디자인한 캐릭터도 있는지 궁금하다
: 찰리 웬-훗날 MCU 비주얼 디벨롭 헤드까지 오른다-이란 친구가 캐릭터를 워낙 잘 그렸다. 그래서 찰리가 캐릭터, 내가 배경을 담당하는 식이었다. 다만 ‘갓 오브 워’ 개발 초기에 크레토스 디자인은 함께 고민했다. 지금의 크레토스가 탄생하기까지 거진 2년 걸렸으니까. 처음에는 로마풍 투구를 쓴 디자인이 데이비드 마음에 들었는데, 찰리가 상체를 다 드러낸 화난 대머리 전사를 그려온 거다. 알다시피 거기서 우리가 아는 크레토스가 나왔다.
아, 그리고 가이아는 내가 디자인했다. ‘갓 오브 워 3’ 초반에 가이아의 몸 자체가 스테이지인 구간 말이다. 다만 나는 늘 배경 아트가 더 좋았다. 배경이란 게 밖에선 몰라줘도 팀은 다 날 알기 마련이다. 레벨 디자이너와 계속 소통하니까. 그들의 필요로 뭔가 그리기도 하지만 역으로 내 컨셉 아트를 보고 디렉터가 이걸 만들자고 결정하기도 한다. 그게 우리 작업의 묘미다. 결국 내가 유명해진 것도 그렇게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인정받은 덕분일 터다.
● 크레토스를 처음 봤을 때가 떠오른다. ‘디아블로 2’ 바바리안 같기도 하고, 여로모로 전통적인 주인공 상은 아니었다
: 대머리에 대한 인상은 문화적인 차이라 본다. 미국서는 그걸 흉하다 여기지 않으니까. ‘갓 오브 워’가 출시될 당시 SCEK-現 SIEK-도 설립된 지 얼마 안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한국판은 크레토스한테 머리를 붙여달라더라(웃음). 실제로 머리가 난 크레토스를 한 번 그려 보기도 했다. 아, 참고로 ‘갓 오브 워(2018)’과 비교할 때 인체 비율이 다른 건 카메라 시점 때문이다. 그땐 먼 발치서 액션이 잘 보여야 하니까 거의 10등신 정도로 디자인했다.
당시 SCEK 요청으로, 국내 한정 풍성(?)한 크레토스를 볼 뻔했다
● 소니 산타 모니카 스튜디오를 떠나서 창업을 했는데 잘 안됐다. 그래도 거기서 얻은 경험이 아주 클 텐데
: 블루 캔버스란 아트 커뮤니티 웹사이트와 파트너가 되어 섹션 스튜디오를 차렸다. 우리야 당연히 아트에 강점이 컸던 반면 퍼블리싱이나 라이브 서비스에 대해 다소 무지했다. 무엇보다 게임을 만들 때 어떤 철학이 없으면 결과가 좋지 못했을 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다 잘 풀렸고 지금도 가깝게 지낸다.
● 소싯적 메탈 키드이자 ‘갓 오브 워’로 유명한 아티스트가 댓게임컴퍼니서 ‘스카이’를 만들게 된 건 그 철학 때문인가
: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제노바 첸과 원래 아는 사이였다. 대략 10년 전에 소니가 인디 게임 인큐베이션 프로그램을 운영할 때 거기 댓게임컴퍼니가 있었다. 그 친구들은 아직 대학생이었고 ‘갓 오브 워’ 참여한 세실 킴이라니까 오~ 한거지. 그러다 내가 섹션 스튜디오를 접으면서 자연스레 합류 논의가 오가게 됐다. 사실 차기작을 위한 포석이었는데 ‘스카이’가 너무 잘되는 바람에…(웃음).
● ‘갓 오브 워’는 여전히 적수가 없는 폭력성·남성성의 대명사다. 그러다 ‘스카이’에 참여하기 힘들었을 법한데
: ‘갓 오브 워’을 만들 적에 데이비드 재프가 모두를 모아놓고 말하더라. 먼 옛날에는 가족을 먹여 살리고 지키기 위해 도끼를 들고 싸워야 했다고. 그 본능을 안전한 자기 방에서 해소할 수 있는 게 바로 축복이라고. 맞는 말이다. 이제와 도시인이 달리 어떻게 그런 경험을 하겠나. 거기다 크레토스의 동기는 명예나 영달이 아니라 복수니까. 다만 갈수록 적을 찢고 뭉개는 데 너무 공들이긴 했다. 나야 모델링은 안 했으니 괜찮은데 담당자가 힘들었을 터다.
액션 게임의 존재 의의는 안전한 대리 만족에 있지 않겠냐는 세실 킴
● 단발성 특강도 아니고 십수 년간 겸임교수로 교편을 잡아왔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닌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 오늘날 내가 있게 한 교수님이 두 분 계시다. 언제나 나에게 “넌 할 수 있다, 잠재력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도 제자들에게 늘 말한다. 너희가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먼저 나한테 인정받는 거라고. 왜냐하면 난 벌써 30년간 이 일을 해왔고 수 백 명의 학생을 가르쳤으니까. 그런 내가 너희에게 할 수 있다면, 그건 정말로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빈말이 아니라고. 이제는 업계 후배로서 일하는 제자들이 굉장히 많다.
● 학생들을 지도할 때 제출한 과제가 좋고 나쁘고를 어떻게 판단하나. 그림은 칼 같은 기준 적용이 어려울 텐데
: 느낌이지. 봤을 때 촌스럽고 어색하고. 그림의 색감, 구도가 나쁘면 그렇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캐릭터 디자인의 경우 의상을 입혔더라도 그 안에 인체 구조가 제대로 잡혀야 한다. 그래서 많이 공부하는 게 중요하다.
● 요즘 AI 아트가 화제다. 더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란 분석도 있고. 아트 디렉터이자 교수로서 어떻게 보나
: 내가 보기에 AI 아트는 너무 깔끔하달까. 스케치서 인간적인 터치가 묻어나지 않는다. 만약 너도나도 AI를 쓴다면 결과물이 다 비슷해질 수밖에 없다. 수백 억을 들여 만드는 게임이라면 차별화를 위해 그만한 인재를 기용할 터다. 다만 회사 재정이 넉넉지 않다면 AI에 의지할 수도 있겠지.
AI 아트는 너무 깔끔해서, 스케치에 인간적인 터치가 묻어나지 않는다
● 댓게임컴퍼니서 차기작을 준비 중으로 안다. 공개 가능한 선에서 대략적인 방향이나 목표를 들려준다면
: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좀 더 웅장하고 서사적인 컨셉이다.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작품이고. 멀티 플레이를 지원할 거다. 엔진부터 새롭게 구축하는 중이니 기대해도 좋다.
● 끝으로 한 명의 게임 아티스트로서 세실 킴의 작품을 통해 뭇 유저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를 듣고 싶다
: 우리가 살아가며 놓치기 쉬운, 그러나 삶에서 중요한 것들을 깨닫도록 돕고 싶다. 그러자면 게임이 액션 외에 다른 요소도 다룰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학생들을 지도하며 우울증 문제를 자주 목도했고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듯하다. 모쪼록 사람들에게 싸움이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는 게임이 더 많아지길 바랄 뿐이다.
세실 킴이 꼭 만들고 싶었다던, 앞으로 선보일 신작이 퍽 기대된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