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눈덩이를 굴리다, ‘스노우 브라더스 스페셜’ 체험기
소싯적 책가방 메고 오락실을 전전하던 이들에게는 여전히 잊지 못하는 명작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필자가 자란 동네는 큰 오락실이 멀어 학교 앞 문방구 게임기가 호황이었는데, 당시 우리의 최대 화제작은 ‘스노우 브라더스’였다. 화면 가득 펼쳐진 스테이지서 플랫폼을 오르내리며 적들에게 눈뭉치를 던지고, 커다란 눈덩이로 만들어 굴리는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운 구성은 아이들 취향에 제격이었다. 특히 스테이지 꼭대기서 눈덩이를 여럿 굴려 일거에 적들을 소탕하는 호쾌함은 그 어떤 게임도 범접하기 힘들 정도. 적들이 내놓는 요리도 참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
레트로 전문 CRT 게임즈가 개발하고 대원미디어 게임랩이 지난 19일 정식 발매한 ‘스노우 브라더스 스페셜(Snowbros Nick & Tom Special)’은 바로 그 토아플랜의 1990년 원작을 현세대기로 부활시킨 작품이다. 아케이드 특유의 감성을 최대한 고스란히 재현하면서도 아트워크를 일신하여 현세대기에 걸맞은 세련된 느낌을 주고, 원작 엔딩서 이어지는 30개 오리지널 스테이지와 함께 여러 신규 적 및 보스가 등장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직접 몬스터를 조종하여 색다른 플레이를 즐길 수 있는 몬스터 챌린지, 타임어택, 서바이벌처럼 왕년 고수를 위한 모드도 탑재했다.
문방구 게임기의 추억으로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는 '스노우 브라더스'
다름아닌 국내! 개발사 CRT 게임즈를 통해 30여년만에 현세대기로 부활했다.
다소 허무했던 엔딩, 뒷이야기를 채우다
원작 ‘스노우 브라더스’는 전체 50층 스테이지로 10층마다 하나씩, 총 다섯 보스가 존재한다. 후반으로 갈수록 장판을 깔거나 투사체를 아래로 던지거나 하는 적들이 추가되어 까다로운데, 묘하게도 41~49층은 오히려 쉬운 편이다. 이 구간만 하단 구멍으로 들어가면 위에서 나오는 기믹이 추가되어 난이도를 많이 낮춰준다. 때문에 1편은 쉽다가 어렵다가 다시 쉽다가 최종보스가 어려운, 당시 아케이드 게임치고 상당히 독특한 레벨 디자인으로 기억된다. 반면 ‘스노우 브라더스 스페셜’서 새롭게 추가된 51~80층은 아주 정석적으로 갈수록 어려워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편이다.
추가 스테이지의 배경 설정은 이러하다. 닉과 톰 형제는 50층 보스인 록 버블즈를 처치하고 공주들을 구출하지만 어째선지 눈사람이 되는 저주가 풀리지 않는다. 이에 침략자 아팃치 왕과 결판을 짓고자 홋트다 왕국 더 깊숙이 들어간다는 것. 사실 원작 엔딩이 워낙 심심한 편이라(그냥 공주들 구하고 끝), 이미 메가 드라이버 버전에서 70층까지 확장된 바 있다. 그때는 역으로 공주들이 닉과 톰을 구하러 간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토아플랜이 직접 이식한 게 아니라 정사로 보기 애매한 만큼, CRT 게임즈 역시 그 나름대로 1편 뒷이야기를 상상하여 덧붙였다고 보면 되겠다.
와이드 해상도에 맞춰 약간 조정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충실한 이식작이다.
50층 공략 후 원작 엔딩서 이어지는 30층에 달하는 추가 스테이지가 존재.
1편부터가 무척 어려운 게임이지만 이 추가 스테이지 30층은 정말이지 힘겹다. CRT 게임즈 임성길 대표가 원작의 오랜 팬이라던데, 그래서인지 다분히 숙련자를 전제로 한 레벨 디자인이다. 다행히 무한 코인이긴 하나 스테이지 재시작이 무한이지 부활이 무한은 아니므로 결국 어느정도 실력이 따라줘야 진엔딩까지 볼 수 있다. 스테이지 구성은 과연 ‘스노우 브라더스’ 복각에 앞장선 ‘찐’팬답게 흠잡을 데 없으나 그 테마와 보스 컨셉은 약간 의아하다. 모처럼 국내 개발사가 이식까지 했는데 뜬금없이 늑대 닌자…? 싶기도 하고 여타 보스와도 영 겉도는 디자인이지 싶다.
그래도 라이트 게이머를 배려하여 난이도 조절을 도입했으니 너무 걱정하진 마시라. 아울러 몬스터 챌린지 모드를 통해 게임 속 적들로 플레이가 가능한데, 몇몇은 난이도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로 강력하므로 정 힘겹다면 이쪽으로 풀어보자. 타임어택과 서바이벌이 ‘고인물’들 스코어링을 위한 콘텐츠라면 몬스터 챌린지는 초보와 고수를 가리지 않고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멋진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다만 난이도가 높고 낮고를 떠나서 80층 자체가 단숨에 돌파하기 어려운 분량인데, 최근 복각은 거의 다 지원하는 빠른 저장 기능이 빠진 건 적잖이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을 재는 타임어택과 목숨 하나로 도전하는 서바이벌이 '고인물'용이라면,
몬스터 챌린지는 예능감이 넘친다.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자동으로 공격한다거나.
‘찐’팬의 고집, 장점도 단점도 가감없이
워낙 충실한 재현이라 착각하기 쉽지만 ‘스노우 브라더스 스페셜’은 단순히 원작 해상도를 끌어올린 게 아닌, 밑바닥부터 하나하나 다시 쌓아올린 결과물이다. 이는 레트로 엔진으로 리메이크되는 클래식 ‘소닉’ 시리즈와 비슷한 방향성으로, 에뮬레이터보다 훨씬 안정적인 플레이와 추가 콘텐츠 제작이 용이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따라서 필요하다면 레벨 디자인을 뜯어고치는 것도 가능하나 그러다 자칫 원작의 게임성을 훼손할 위험도 커진다. ‘스노우 브라더스 스페셜’의 경우 CRT 게임즈 임성길 대표가 추구하는 개발 철학에 의해 원작의 불편한 부분까지도 그대로 옮겨왔다.
즉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스노우 브라더스 스페셜’은 소싯적 ‘스노우 브라더스’ 그 자체다. 대표적으로 많은 이들이 원했던 아래 점프가 끝내 들어가지 않았다. 심지어 북미 유통사에서 강하게 요청했음에도 임 대표가 거절했다는 모양. 1990년 당시 토아플랜은 어디까지나 아래 점프가 없는 사양으로 레벨 디자인을 짰을 테니, 이제와 스테이지는 그대로 두면서 아래 점프만 추가하는 게 원작 훼손이 될 여지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게임이라 별다른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어쨌든 난이도가 크게 하락하긴 할 테니까. 1편은 어디까지나 1편이라는 입장.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1편 그 자체라, 이렇게 불편했나? 싶을 때도.
빠른 저장이 없어 아쉽지만, 스캔 라인이나 어레인지 BGM 옵션은 좋다.
필자 역시 2편이 더 익숙한 터라(해괴한 일러스트로 유명한 북미판) 아쉽지만 1편에 내제된 불편함을 가지고 이식작을 탓할 순 없다. 그럼에도 ‘플레이 감각의 완벽한 재현’이란 무리한 수식은 자중하려 하는데, 솔직히 오랫동안 원작을 다시금 즐기지 않았을뿐더러 스위치 조이콘의 조악한 조작감이 아케이드 스틱을 대체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게임 자체의 흠결이란 건 아니다. 한편으로 원작보다 부쩍 매끄러워진 그래픽과 향상된 프레임레이트가 기억 속 감각과 달라져 혼란스러울 수 있다. 이 역시 기존보다 쾌적해진 걸 문제 삼아서야 이상하니 넘어가도록 하자.
‘스노우 브라더스’는 출시 당시 일본 현지보다 해외서 비상한 인기를 모았다. 거기다 2편 완성 후 얼마 못가 토아플랜이 도산하여(그래서 2편 저작권 표기는 하나프람으로), 최근 몇 년간 복각이 유행하는 와중에도 부활을 기대키 어려운 작품이었다. 2013년 모바일 이식조차 국내 개발사가 진행했을 정도니까. 임 대표의 집념이 아니었다면 미래에도 ‘스노우 브라더스’를 다시금 즐길 방법은 에뮬레이터뿐이었을지 모른다. 비록 1편이 2편보다 완성도가 낮고 난이도 역시 만만찮지만, 그럼에도 현재로선 ‘스노우 브라더스 스페셜’야말로 추억을 되살릴 훌륭한 선택이 될 것이다.
두말할 나위없이 현재로선 '스노우 브라더스'를 다시 즐기기 위한 최고의 선택.
닌텐도 스위치의 장점을 살린 2인 플레이, 간단한 접대용 게임으로도 딱이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