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S]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 어디쯤, 드래곤 퀘스트 3 HD-2D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명작의 가치는 퇴색되지 않는 법이다. 1988년작 ‘드래곤 퀘스트 3’는 ‘그리고 전설로(そして伝説へ)…’란 부제처럼 벌써 수십 년째 이 기기서 저 기기로 전승되어왔다. 당초 패미컴 출시 후 SFC, GBC에 이식됐고 모바일 버전 기반으로 3DS, PS4, 스위치까지. 그 와중에 신규 요소가 들어가기도 빠지기도 했으나 어쨌든 게임 자체가 뿌리부터 달라지진 않았다. 역대 ‘드래곤 퀘스트’ 인기 투표서 1위를 거의 놓친 적 없을 만큼 훌륭한 작품이라 구태여 손댈 여지가 적긴 하다.
워낙 고전이라 구성이나 분량상 전면 리메이크가 어렵고 괜히 손댔다 욕먹기 딱 좋은 일인 셈인데, 다행히 스퀘어에닉스 내부서 적임자가 나타났다. ‘옥토패스 트래블러’부터 특유의 HD-2D 스타일을 확립한 팀 아사노가 바로 그들. 실제로 몇 해 전 또다른 명작 ‘라이브 어 라이브’를 HD-2D화하여 호평 발매한 바 있다-발표는 이쪽이 먼저였지만-. 픽셀 감성을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낡은 느낌이 들지 않는 HD-2D야말로 ‘드래곤 퀘스트 3’와 찰떡궁합일 터. 금번 리메이크는 오는 11월 14일 출시된다.
역대 최고의 JRPG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드래곤 퀘스트 3'
그 명작이 스퀘어에닉스가 자랑하는 HD-2D 스타일로 리메이크
과연 HD-2D, 옛 감성 그대로 세련되게
흔히 HD-2D를 설명할 때 픽셀 텍스처의 3D 맵 + 2D 캐릭터 정도로 줄이지만, 보다 자세히 살피면 피사계심도 조절 같은 후처리가 더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블룸, 비네트 등 갖은 효과를 얹어 마치 디오라마처럼 아기자기한 화면을 연출한다. 그래서 팀 아사노의 여느 작품이 그렇듯 살짝 빛바랜 색감이 잘 어울리나 이번에는 원작이 원작인지라 전체적으로 알록달록한 편. 덕분에 디오라마 느낌은 덜해도 초록이 우거진 숲속부터 황량한 사막까지 다채로운 풍광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커졌다.
상술했듯 ‘드래곤 퀘스트 3’ 전면 리메이크는 쉬이 상상하기 힘든 과업이다. 당장 ‘FF7’도 리메이크서 꾸역꾸역 채워 넣은 여백이 한가득인데, 그보다 약 10년 전 작품이야 더 말해 뭣하겠나. 따라서 ‘드래곤 퀘스트 3 HD-2D’ 역시 기본적으로 1988년 원작의 형태를 충실히 계승하는 쪽이며 그에 HD-2D 스타일이 좋은 절충안이 되어준다. 월드맵부터 도시, 마을, 던전에 르기까지 기존 구조를 거의 그대로 재현하여 원작을 즐겼다면 여전히 같은 장소서 같은 상점, 같은 NPC, 같은 보물 상자를 찾아낼 수 있다.
금번 리메이크의 가치는 두말할 필요 없이 HD-2D 스타일에 있다
축척이 늘어났을 뿐 전체적인 필드, 던전 구조는 원작과 대동소이
요컨대 TGS 2024 미디어 프리뷰 이벤트서 함께 시연한 ‘로맨싱 사가 2 리벤지 오브 더 세븐’과는 리메이크의 방향성 자체가 다르다. 그래도 원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추가된 요소도 적잖아서 동료들 외형을 꾸미고 음성도 골라줄 수 있다. 특이하게 동일 계정에 한하여 다른 모험의 서-세이브 데이터-와 동료를 공유 가능한데, 아무래도 가족 단위 팬을 위한 배려이지 싶다. 현역 시절 원작을 즐긴 게이머라면 지금쯤 귀여운 아들딸이 있을 테니 잘 키운 동료를 보내 험난한 여정에 길라잡이가 되어주면 어떨까.
그리고 금번 시연서 직접 확인하진 못했으나 ‘오르테가의 여정’이란 신규 에피소드도 들어간다고. 주인공의 아버지 오르테가는 작중 시점에 앞서 마왕과 싸우다 실종된 상태인데, 사실 후반쯤 직접 등장하여 아들과 감동적인 재회를 이룬다. 문제는 당시만해도 요즘처럼 스토리 컷신 등이 풍성치 않아 거기까지 과정을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는 것. 이에 오르테가의 행적 가운데 원작서 생략하거나 대충 넘긴 부분을 좀 더 소상히, 주인공의 모험과 겹쳐가며 전달하는 콘텐츠가 ‘오르테가의 여정’이다.
소소한듯 퍽 반가운 추가 요소로 동료 커스터마이즈가 가능해졌다
오르테카의 여정이 묘사되는 등 서사 측면에도 좀 더 신경을 썼다
리메이크로 달라진 것, 달라지지 않은 것
전투는 원작처럼 4인 파티로 커맨드 배틀을 치르되 전체적인 시스템은 시리즈 최신 사양과 유사하다. 주문을 배울 수 없는 직업도 특기를 통해 다방면서 활약한다든지, 동료마다 개별로 작전 지시가 가능하다든지 등등. 일례로 시연 빌드의 경우, Lv13 주인공이 ‘드래곤 퀘스트 7’ 키파의 기술로 유명한 화염 베기를 특기로 보유했다. 덕분에 현자 전직이 수월하다는 점 외에 구제불능이던 놀이꾼 역시 최소한의 자기 앞가림을 한다. 새롭게 합류한 마물 조련사는 아예 특기가 주된 운용 방법일 정도다.
‘드래곤 퀘스트’ 팬에게 마물 조련사는 곧 5편 주인공으로 통하는데, 그에 비하면 본작은 몬스터 동료가 빠져 아쉬움이 남는다. 엄밀히 말해 몬스터 동료는 있으나 파티에 합류하지 않고 또다른 신규 요소인 배틀 로드로 차출되기 때문. 원작의 투기장 대신 들어간 콘텐츠로 최대 세 마리 몬스터를 편성하여 반자동 전투를 벌인다. 물론 몬스터 동료가 아니라도 핥기, 울부짖음 등 개성적인 특기가 많은 직업이지만 이름값이 다소 떨어지긴 했다. 마물 조련사가 없다고 배틀 로드를 즐기지 못하는 것도 아닌지라.
특기와 개별 작전 지시가 도입되는 등 속편의 발전상을 가져온 전투
공방이 시각 효과만으로 진행되는 건 매끄러운 흐름을 우선한 결과
몬스터 동료 영입은 어디처럼 싸우다 말고 구형 물체를 던지거나(…) 하는 과정 없이 그저 던전에 가만히 선 녀석을 찾으면 된다. 마물 조련사가 동료일 때 도움되는 건 현재 근방에 착한 몬스터가 있나 알려주는 정도다. 간혹 던전뿐 아니라 마을 분수 같은 평범한 장소서 출몰하니 잘 살펴보자. 낮 혹은 밤에만 나오는 몬스터도 존재한다. 참고로 배틀 로드서 지시할 수 있는 작전은 전력을 다하자, 요령껏 싸우자, 회복에 힘쓰자, MP 사용 금지까지 4종. 결국 더 크고 강한 몬스터를 모으는 게 승리의 지름길이다.
여러모로 우려가 쏟아진 전투 연출의 경우, 직접 시연하는 와중에 어느 정도 납득된 측면이 있다. 본작은 자못 고전적인 JRPG라 아군이 먼저 쭉 행동하고 적에게 차례를 넘기는 식이다. 따라서 양측 다 몰아치듯 공격을 퍼붓게 되는데, 그때마다 동료의 뒷모습이 나타나 어떤 동작이든 취하면 흐름이 끊길 수밖에 없다. 하물며 전투가 너무 잦아 배속 기능을 넣어준 리메이크 방향성과도 어긋난다. 다름 아닌 ‘드래곤 퀘스트 3’를 리메이크하는데 비용 절감 차원에서 연출을 뺐다는 가정이 더 이상하지 않나.
몬스터 동료 영입은 그냥 다가가기만 하면 된다, 찾기가 어려울 뿐
배틀 로드는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 축소판 같은 인상을 준다
고전 명작을 오롯이 보존하는 방향으로
동사의 ‘FF7 리메이크’, ‘성검전설 ToM’, ‘로맨싱 사가 2 RotS’ 등이 명확히 최신작다운 게임성을 추구한다면 ‘드래곤 퀘스트 3 HD-2D’는 좀 더 특수한 위치를 점한다. 팀 아사노의 솜씨야 흠잡을 데 없으나 원작 자체가 출시된 지 30년도 넘은 고전이니 당연한 노릇이다. 기술적으론 리메이크가 맞지만 원작의 보존을 오롯이 추구하는 점에서 리마스터스럽기도 하다. 리마스터와 리메이크 사이 어디쯤 위치한 작품이랄까. 그 판단은 게임을 플레이할 본인이 HD-2D 스타일에 얼마나 가치를 두느냐로 달라질 터다.
스퀘어에닉스와 팀 아사노는 이미 ‘로토’ 삼부작 완결을 목표로 내년 중 ‘드래곤 퀘스트 1 & 2 HD-2D’ 출시를 선언했다. 본작과 마찬가지로 기존 형태를 크게 건들지 않는 방식이 될 텐데, 2편까진 몰라도 불친절하기 짝이 없는 1편을 어떻게 다룰지 궁금하다. 그만큼 한 해 앞서 선보이는 ‘드래곤 퀘스트 3 HD-2D’의 흥행 여부가 무척 중요한 대목이다. 아재 게이머인 필자로선 옛 명작의 HD-2D 리메이크가 지속되길 바라 마지않으나, 과연 다음 세대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느냐는 지켜볼 일이다.
기술적으로는 리메이크지만 방향성은 리마스터 같은 작품이랄까
내년에 등장할 두 용사를 위해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기 바란다
※ TGS 2024 미디어 프리뷰 빌드에 기반한 내용으로 일부 사양이 제품판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