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하얀 이불을 덮고 차가운 한기마저 따뜻해보이는 설산 아래, 닭고기, 소고기, 돼지고기를 노릇노릇 잘 굽기로 소문난 작은 마을 객잔주변이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기척이 그리 많지 않지만 나름 복작복작였고 음식과 음료의 냄새가 조화롭게 뒤섞이니 객잔 분위기가 푸근하다. 따사로운 태양빛 아래, 깊은 바다와 같은 파란 색의 의복을 입은 여인이 2층 객잔지붕 머리 밑 의자에 앉아 설산을 바라보며 우산을 펼쳐 쓴 채 만끽하고 있었다. 식탁에는 감미로운 차 한 잔이 고운자태로 향을 풍기고 분위기를 자아내니 그녀의 자태 또한 선녀가 따로 없었다.
"하아... 편안하니 좋구나. 나 혼자만 이렇게 태평한게 얼마만인지... 소언도 데려올 걸 그랬던가..."그리고 그녀의 옆옆 자리에는 새하얀 의복을 입고 이마에는 붉은, 알 수 없는 문양을 그린 여협이 칼을 옆에 뉘어놓고 양손에는 노릇노릇 잘 구워진 닭다리를 들고 만끽하고 있으니 이곳이 바로 그녀의 무릉도원이도다."맛있어! 겉은 껍질이 바삭 노릇하고 안은 촉촉하니 천하일미! 혼자먹기 아깝구나... 그러니 주인장! 여기 닭다리 두개 더 주시오!"세상 행복한 미소가 가득한 미모의 두 여인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자신만의 극락에 빠져있었으니, 그 아무도 이들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저 두 여협들은 기개가 보통이 아니구나.""너무 아름답구나. 한 명은 고귀해 보이며 우아함이 가득하고, 한 명은 호리호리하고 탄탄해보이는 모습의 건강미가 돋보이니 천하쌍미가 아닐 수가 있던가!""저런 미모 여인들을 볼 수가 있다니... 내눈이 감격스럽구나!"주변에서는 그녀들의 미모에 대한 이야기가 칭찬일색이었으며 그것이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그녀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극락 속에 있었다.하지만 갑자기 그런 그녀들을 마치 시험이라도 하는 듯, 평화는 갑자기 깨지고 말았으니.쾅!객잔의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사내 무리들이 있었으니,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객잔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주인장은 그 모습을 보고 좋지않은 느낌과 함께 일단 그들을 맞이 하였다."아, 안녕하십니까. 저희 객잔에는 무슨 볼일로 방문하셨는지...?"왼쪽 눈에 커다란 흉터와 커다란 도를 손에 들고 주인장을 마주한 사내는 씨익 웃으며."여기가 이 근방에서 가장 유명한 객잔이렸다?""유, 유명하다니요. 그냥 근처 사람들이 고기굽는 냄새에 이끌려 방문하는 것이 전부인 객잔일 뿐입지요."사내는 목소리를 깊게 깔더니"그럼 돈도 많이 버셨겠다. 그렇지않소? 주인장나리.""네, 네? 그, 그게 무슨..."사내는 씨익 웃으며 가지고 있던 큰 도를 식탁위에 크게 휘둘러 내리 꽂더니 객잔이 떠나갈 정도로 쩌렁쩌렁 소리치기 시작했다."자! 식객 여러분들! 지금부터 이 곳은 잠시 우리 설산쾌적 오룡표가 접수하였으니 어서들 나가시라!! 못 알아 들었을 수도 있겠으니 한번 더 말하겠다! 이 객잔은 우리 설산쾌적이 접수하였으니 다들 나가!""아이고 나으리. 돈이 필요하시면 그냥 돈만 받으시지 왜 가게까지 접수하시나요?! 안됩니다 안됩니다요!"우지끈! 콰쾅!오룡표는 식탁에 박혀있던 커다란 도를 다시 뽑아 주변 가구를 부수며 한 껏 무용을 뽐내는가 싶더니 주인장은 겁에 질려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웅크리며 주저 앉았고 손님들은 하나둘 밖으로 도망나가기 시작했다."히이익! 사, 살려주십쇼...""하하하! 돈도 수금하고 우리 형님도 뫼셔 잔치를 벌여야겠다. 자! 다들 나가들 가시오! 죽고싶지않다면 말이지!"그때 객잔 위층에서 극락에 잠시 머물렀던 청의의 여협이 그 이야기를 들은 것 인지 자신만이 만끽하고 있던 극락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의 언동이 상당히 거슬렸다는게 눈에 보였다. 과연. 설산에 소문으로만 들었던 잡배들이 존재하는 구나. 하지만 일반적인 잡배라면 그냥저냥 넘어갔을터인데 웬일인지 그녀는 한가지 단어에 기분이 몹시 나빠졌고, 곧바로 위층자리에서 사뿐히 내려와 중얼 거렸다."본녀가 무얼 잘 못 들은 것이더냐."그녀는 잔뜩 언짢은 표정으로 그 무리들에게 다가가 슬쩍 물었다."뭐라고?"그녀는 그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지른 사내를 손가락질까지하며 가리키고는 다시 한번 되묻기를."네놈. 지금 뭐라고 떠들었느냐?"그 소리를 들은 사내는 어이를 상실했는지 청의의 가녀린 그녀에게 투벅투벅 걸어가더니 그녀의 겉을 주욱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곧바로 그녀의 미모에 매우 감탄하며 감상을 읊었다."오오... 이 여성은 푸른 의복과 차가운 외모로 보아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워 보이는 아름다운 설녀와도 같으니, 이는 과연 절세가인이 따로 없구나. 하하하! 네년의 이름이 무어더냐?"사내의 희롱에 기분이 더욱 더 상한 나머지 그녀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다시 한번 물었다."...본녀가 들은, 방금 네놈이 들어오면서 그 더러운 입으로 내뱉은 내용을 다시 읊어보거라. 촌것.""...뭐, 뭐?"그녀의 인내심은 생각 이상으로 좋았지만 이 이상 성가신 이야기를 듣는다면 인내심이고 뭐고 없을 정도였으니, 그의 입방정에 목숨줄이 걸려 있었음이다. 아니다 다를까 천하의 오룡표가 그 소리를 들어버렸으니 이는 미모의 여인이던, 늙은 노파이던 상당히 떨떠름했고 입가는 노여움이 가득차 그녀를 향해 객잔이 떠나가듯 소리쳤다."어이, 이봐 누님. 지금 귀가 먹으셨나? 여긴 지금 우리 '설산'쾌적이 접수했다고? 어서 나가란 소리 안 들려?! 죽고싶어 환장한 것이냐?!"그녀의 인내심은 이미 표정으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한계까지 와 있었다. 더 이상 건들게 된다면 그의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어려워보이니 사내는 그 상황을 아직 인지하지 못 하였다. 그녀는 다시한번 더 오룡표에게 묻는다. 나지막하게. 마지막을 고하듯."다시 한번 이야기 해줄 수 없겠느냐? 내가 나이는 그리 많지 않지만 헛 소리는 이상하게 잘 들리지가 않아서 말이지."같은 대답을 계속하게 만든 것 때문인 것인지, 다짜고짜 자신의 앞으로와서 반말을 뱉는 것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 것인지 눈까지 뒤집어 까고 매몰차게 쏘아붙이려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이 객잔은 이 '설산'쾌적 오룡표님이 접! 수! 했! 읍!... 커헉!??"오룡표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인내심의 한계가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가구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들려 섞였다. 더 이상 이성이 그녀를 막지 못 했고, 아주 날카롭게 잘 정리된 손톱을 가진 그녀의 손이 벽력과도 같은 속도로 오룡표의 목을 향해 송곳과도 같은 장을 내뿜으며 밀쳐낸 것이었다. 오룡표는 그녀의 날카로운 장에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이 저 멀리로 날아가 객잔의 식탁과 의자, 분재들을 부수며 구석으로 쳐박혔다.우지끈! 콰쾅!!그 광경을 마주친 주인장이 겁에 질려 떨면서 바라보니, 청의의 여인은 그 모습을 보고 미안했는지 가지고 있던 우산을 접어 내리고 정중히 예를 표하며 사과를 하였다."주인장. 미안하게 됐소. 이는 나중에 따로 보상토록 하지. 오늘은 내 기분이 좋지 못하니, 미리 양해를 구하겠소."그를 날려버린 고운 손을 그녀는 애지중지 다듬으며 접었던 우산을 다시 펼쳤고, 객잔에 쳐들어온 무리들을 향해 경고를 하듯 한없이 차갑게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본녀는 말이오. 다른 것은 다 참을 수 있다네. 허나 네놈들이 감히 '설산'을 입에 담고 먹칠 하는 꼬라지 만큼은 볼 수가 없구나. 덧 붙여서 이렇게 평화롭고도 평안한 곳에서 행패라니... 민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네놈들이 그러고도 사내놈들이더냐? 낭심이라고 달린 것들이 추하기 짝이 없구나. 당장 떼어버리거라 더러운 흉물들."자기네들 우두머리 저 멀리로 나가떨어지자 그것이 달린 놈들은 허리춤의 칼을 부랴부랴 꺼내들고는 청의의 여협에게로 겨누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소매를 털어내며 자신의 손톱을 다듬는 그녀였다. 그 모습은 마치, 먹잇감을 잡아채고는 사냥의 즐거움에 취하여 다음 사냥을 준비하는 매의 모습과 흡사하였고, 자신들이 그 다음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한 듯, 사냥 당할 것을 인지한 긴장감에 떠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이, 이년이 가, 감히 우리 부두령을!"청의의 여인은 그 소리를 입으로 벌린 사내에게 번뜩 손가락질을 하며 나지막히 경고 하였다."네놈! 조용하거라!"그 소리를 들은 도적놈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분위기는 다시 감쪽같이 조용해져 여협은 만족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는 검지를 펴 자신 앞에 가져다 놓으니."자, 지금부터 열을 세겠노라. 그때까지 조용히 나가지 않으면 네놈들은 제 명에 살지 못 할 것이다."꼴에 도적 잡배라고 자존심은 있었나 본지 소리치며 그녀의 도발에 넘어가 버렸다."이, 이 여자가 미쳤나? 열까지 셀 필요 없다 지금 이자리에서 도륙을...! 으악!"팅!그때 윗층에서 젓가락 하나가 날카로운 파공음을 내며 날아왔고 칼을 들던 도적놈의 손에 내리 꽂히더니 순간 그 화끈거리는 아픔에 칼을 놓쳐버렸고 어안이 벙벙해 너무 놀라 위층을 살펴보았다."누, 누구냐! 누가 감히 우리들에게 이런 짓을... 헉!? 뭐, 뭐야?"하늘에서 하얀 의복을 입은 여협이 머리를 휘날리며 내려오더니 마치 선녀가 강림한 것과도 같은 자태를 보이며 그의 앞에 섰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하고 괴리감이 크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아리땁다고 전해지는 선녀 치고는 키가 그 사내보다도 컸으니, 정녕 선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압도적인 용모를 풍겼다. 한 손에는 잘 익은 닭다리를 쥐고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아직 검집에서 빼들지 않은 검 한 자루를 쥐고 있었다. 그렇게 내려와서 양껏 고기를 씹고 있던 입술을 오물오물거리다가 이내 삼키고는 입을 닦고 어리석은 도적놈에게 충고하기 시작했다."저기 여협께서 열을 센다고 하시지 않았소? 그대는 너무 급하구려.자기 명을 제촉하는 데에는 눈치만한 것이 없는데 그대는 안목이 없는가 보오. 얼른 그대들의 두령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 좋겠소만. 뭐, 선택은 자유이니 본녀는 일단 닭다리를 씹고 있겠소. 아,아... 본녀는 신경쓰지마시구려. 본 무대는 저 여협의 무대이니 간섭은 덜 하겠지만 이 객잔에서 무기를 사용하여 피를 보고자 한다면 나역시 의협을 행할테니. 일단 저 여협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반영하시는 것이 현명할 것 이오."그녀는 한 손에 있던 닭다리를 질근 씹고, 다른 한 손은 뒷짐을 지며 가져온 검을 보이지 않게 숨겼으니, 고수의 풍채가 역광과 함께 스멀스멀 풍겨왔다. 과연 단순한 잡배였는지, 이를 못 알아 본 것인지 감히 대꾸했다."뭐, 뭐라고? 가, 감히 우리 설산쾌적에게 못하는 말이 없구나 이곳 여손님들은!"..."하나."그때 나지막히 옆에서 청의의 여협이 숫자를 세기 시작하니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아니하였다. 상황은 급박해졌고 긴장과 고요함이 객잔내를 집어 삼켰으니,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때 저 멀리 나가 떨어졌던 그들의 부두령 오룡표가 자신의 도를 움켜잡고는 부리나케 뛰쳐나와 그녀들 앞에 달려와 섰다."이, 이년들이 지금 누구 앞에서 이래라 저래라냐! 감히 이 오룡표 앞에서 겁대가리를 상실했구나!"..."둘."흰 옷의 여협이 그가 다가오는 것을 가로되."둘이라고 하는 군요."그 이야기를 들은 오룡표는 어이가 없었는지 이제는 못 참겠다 라는 식으로 눈을 크게 치켜뜨고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명령하였다."이, 이년들이! 오룡표를 상대로 장난을 쳐도 유분수지! 모두들! 저년들을 쳐라!""으아아!!! 죽어라!!!"도적떼들은 두 여협 쪽으로 무기를 빼들어 달려들기 시작했고, 이를 보고 한숨을 쉬던 청의의 여협은 눈을 감으며 나지막하게 입술을 열었고, 백의의 여협은 참으로 안타까워하니."셋.""아직 다 못 먹었는데..."(1) 끝.
(IP보기클릭)119.206.***.***
(IP보기클릭)118.235.***.***
같이 있는 이유는 다음편에 나옵니다. 객잔 클리셰는 무협 전통이지요 | 24.12.11 11:57 | | |
(IP보기클릭)220.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