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지마 히데오, '데스 스트랜딩'으로 전하는 연결의 메시지
올 하반기 최고 화제작 ‘데스 스트랜딩’과 함께 코지마 히데오가 한국을 찾았다. SIEK는 11월 30일(토), 서울 강남구 JBK 컨벤션홀에서 ‘데스 스트랜딩 월드 스트랜드 투어(Death Stranding World Strand Tour 2019 in Seoul)’를 개최하고, 코지마 히데오 대표 겸 프로듀서와 뭇 국내 게이머의 만남을 주선했다.
사전 추첨을 통해 선정된 200여 명의 게이머와 본격적인 행사에 앞서, 코지마 히데오 프로듀서와 국내 미디어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출시 후 다종다양한 논의와 해석을 불러온 ‘데스 스트랜딩’인 만큼 여전히 많은 의문점이 남아있는 상태. 이에 9년 만에 한국을 찾은 코지마 히데오 프로듀서와의 질의응답을 정리하였다.
● 플레이어마다 각기 다른 감상이 나오는 작품이다. 프로듀서 본인은 무엇을 전하고 싶었나
: 우리 시대는 인터넷 덕분에 편리한 점도 많지만, 그만큼 서로 비방하는 등 부작용도 많아 ‘연결’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선이 커져가고 있다. 그래서 ‘데스 스트랜딩’으로 간접적으로나마, 이 세상을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주었으면 했다. 사회 생활을 하며 고독을 느끼는 분들이 이 게임을 통해 세계 어딘가에 나와 같은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 게임 출시 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아무래도 완전히 새로운 형식의 게임이기 때문에 도입부만 즐겼을 때는 위화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3장쯤 지나며 전반적인 플레이와 스토리에 몰입하면서 서로가 연결됨을 체험함에 따라 평가가 좋아졌다. 솔직히 스스로도 걱정이 컸는데 계획대로의 반응을 얻어 안심이다. ‘데스 스트랜딩’은 연결에 대한 작품으로서 게임과 영화 또한 연결했다고 할 수 있는데, 영화 팬들이 ‘데스 스트랜딩’을 하며 게임의 매력을 느꼈다고 해주어 기쁘기도 헸다.
● 게임 상에서 ‘좋아요’만 보낼 수 있고 ‘싫어요’는 없다. 그렇게 설정한 이유가 궁금하다
: 실제 인터넷에는 ‘좋아요’뿐 아니라 ‘싫어요’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싫어요’를 없애고 싶었다. 서로 좋은 점에 대해서 좋다고 해주는 그런 세상의 따스함을 느꼈으며 했다. 상당히 모험적인 시도였는데 지금까지 반응을 보면 다행히 성공한 듯하다.
● 본작의 온라인 요소는 매우 심오하다. 실제로 다른 플레이어의 상황이 어느정도 반영되는 건가
: 실시간 멀티플레이가 아닌지라 간접적으로 누군가가 지은 건축물이나 남긴 발자국만 데이터로 수집한다. 이러한 데이터를 각 플레이어의 진척도에 따라, 갑자기 뭔가 너무 많이 늘어나지 않도록 최적의 것들만 불러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시스템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게임을 즐겨주었으면 한다.
● 콘텐츠란 시대에 맞는 전달 방식이 요구되는데, 게임에서도 세대 차이에 따른 차이를 고려하는가
: 우리 게임을 플레이하는 분들 중에는 젊은이도 있고 나의 동년배도 있다. 그래서 세대를 넘은 공통된 화제를 다뤄야 한다고는 늘 생각한다. 작은 예를 하나 들자면 주인공 샘을 연기한 노먼 리더스는 ‘워킹 데드’를 즐겨보는 10대 팬이 많다. 매즈 미켈슨은 30, 40대 팬이 많은 편이고 린지 와그너는 나와 같은 중장년층이 좋아한다. 이러한 배우들을 통해서도 부모와 자식이 함께 소통하며 게임을 즐길 수 있다고 본다.
● ‘데스 스트랜딩 월드 스트랜드 투어’ 마지막 장소로 대한민국 서울을 선정했다
: 당초 유럽과 미국을 돌고 일본으로 돌아왔다가 아시아에서 마무라하자는 계획이었는데, 서울이 워낙 열정적인 도시라 대단원에 어울렸다. 나는 영화를 정말 좋아해서 거의 매일 한 편씩 보는데 특히 한국 작품을 애호하는 편이다. 게임을 만들 때 한국 영화에서 영감을 많이 받기도 해서 무언가 보답하고 싶었다. 올해만 300편 가까운 영화를 봤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을 꼽겠다.
● 캐릭터를 구상할 때 배우를 먼저 결정하나, 아니면 캐릭터에 맞춰 배우를 섭외하나
: 두 가지 과정이 함께 이루어진다. 우선 캐릭터에 대한 대략적인 설정이 나오면 배우를 섭외한다. 그 후에는 개발 과정에서 각 배우의 성향과 습관 등을 참고하며 캐릭터를 구체화시킨다. 일반적으로 영화 감독들이 많이 하는 작업과 비슷하다.
● 여러 명배우가 참여했는데, 함께 작업하는 와중에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 내가 디렉팅을 맡긴 했지만 워낙 재능 넘치는 배우들이다 보니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주었다. 말하자면 나 혼자가 아닌 배우들과 함께 만든 게임인 셈이다. 아무래도 게임이다 보니 전신에 캡처 장비를 착용하고 연기를 하는데 처음에는 많이들 부자연스러워 했다. 그런데 촬영 도중 담배를 피러 나간 노먼 리더스와 매즈 미켈슨이 서로를 보고 웃으며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만’하고 그제야 안심하더라(웃음).
● 처음 이 기획을 공유했을 때 내부에서 곧장 이해하던가. 당시 팀원들의 반응이 어땠는지
: 사실 처음에는 세계관조차 이해해주지 않았다. 샘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그려서 보여줬더니 ‘이게 뭐야?’라는 반응이었다. 게임 플레이면에서도 ‘물건을 배달한다’는 컨셉이 전례가 없다 보니 적잖은 기간 동안 우려가 이어졌다. 되돌아보면 ‘메탈기어’ 시리즈를 처음 만들 때도 잠입 액션 장르에 대해 내부 반응이 비슷했다.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고 부탁하여 1년 정도 지나자, 그때부터 주요 시스템이 어느정도 구축되며 모두가 즐겁게 개발할 수 있었다.
● 단순한 배달 게임이 아니라 잡임, 공포 요소 등도 섞여 있다. 이걸 무슨 장르라 해야 할까
: 일부러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자는 의지는 없었다. 그저 우리가 전하고픈 메시지와 게임 플레이를 위해 ‘데스 스트랜딩’을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공포물을 좋아하는데 겁이 많은 터라 조금이라도 덜 무섭게 하려고 SF 요소를 섞었나 싶기도 하다(웃음). 스스로 ‘소셜 스트랜딩 시스템’이라 가칭하고는 있지만, 만약 제대로 장르를 정해야 한다면 그건 내가 아니라 게임을 즐겨준 여러분의 몫이라 본다.
● 게릴라 게임즈의 데시마 엔진을 받아 게임을 개발하며 뭔가 어려운 점은 없었나
: 원래는 직접 엔진부터 마련하고 게임을 개발해야 여러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어 편하긴 하다. 다만 데시마 엔진이 워낙 훌륭하게 만들어졌고, 게릴라 게임즈 역시 매일 함께 회의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기에 아무 문제도 없었다. ‘호라이즌 제로 던’에는 없는 ‘데스 스트랜딩’만의 색감을 구현해야 할 때는 게릴라 게임즈에 직접 요청하기도 했다.
● 코지마 프로덕션은 독립 스튜디오로선 이례적으로 브랜드 관련 굿즈를 많이 내는 편이다
: ‘데스 스트랜딩’이 첫 작품이다 보니 3년간 개발 동안은 게임에 대한 굿즈를 낼 수가 없지 않나. 그래서 대신 코지마 프로덕션에 대한 굿즈를 통해 팬 여러분과 소통하고자 했다. 이제 ‘데스 스트랜딩’이 완성된 만큼 게임에 대한 굿즈도 하나하나 직접 검수하며 준비하고 있으니 많은 기대 부탁한다.
● 코지마 프로듀서는 컷신을 많이 쓰기로 유명하다. 이번에야말로 아주 마음껏 사용했나
: 확실히 부족하진 않았다(웃음). 스토리를 전달할 만큼은 충분히 넣었다고 본다. ‘데스 스트랜딩’에서 어떤 지점과 지점을 연결하는 과정은 오픈월드로 풀어냈지만 그 연결에서 발현되는 스토리는 보다 정확히 전달할 필요가 있어 컷신을 사용했다. 또한 모처럼 여러 훌륭한 배우가 참여한 만큼 컷신에 최대한 힘을 준 것도 있다. 노먼 리더스의 팬이 샘 뒷모습만 보고 싶진 않을 테니까. 그렇지만 나 스스로는 컷신이 아예 없는 게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 사운드 트랙을 듣고 있으면 참 많은 생각이 든다. 선곡에 깔린 의도를 듣고 싶다
: 일단 컷신에 있어선 영화나 드라마와 똑같은 감각으로 접근했다. 실제 게임 플레이 와중에는 그냥 이동할 때는 효과음만 들리지만 어떠한 조건에 처했을 때 특정 음악이 페인드인하여 영화적인 느낌을 주고자 했고.
● 살상과 비살상 플레이가 모두 가능하다. 이 또한 게임을 만드는 나름의 철학인가
: 게임 플레이는 자유로워야 하니까. 상대를 죽일지 말지는 여러분이 자유롭게 결정했으면 한다. 다만 시스템적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좋아요’를 받거나 하도록 만들지는 않았다.
● 대단한 영화광인데, ‘데스 스트랜딩’을 만들며 영향을 받은 영화 세 편을 꼽는다면
: 세 편으로 좁히기 힘들 정도로 수많은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소설을 읽었다. 내부 인원에게 이 영화를 꼭 보라고 지시한 바도 없다. 다만 전체적인 분위기를 공유하기 위해 ‘어나힐레이션(Annihilation, 서던 리치: 소멸의 땅)’을 함께 봤던 기억이 난다.
● 이 정도 규모의 오픈월드 게임을 불과 3년 만에 만들었다. 그 비결이 궁금하다
: 이전에 몸담은 회사에서도 신작 개발에 3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우리는 외주를 주지 않고 스튜디오 내에서 기획부터 그래픽, 사운드까지 직접 제작한다. 그래서 뭔가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 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어 개발 효율이 높다. 가령 컷신의 경우 남들은 보통 외주를 주는데 우리는 스토리나 컨셉이 바뀌더라도 곧바로 수정이 가능하다. 그나마 오픈월드 게임치고 사람이 많이 나오진 않아서(웃음)… 80여 명의 인원으로 기간에 맞출 수 있었다.
● 종합적으로 ‘데스 스트랜딩’이 품고 있는 메시지를 정리하여 소개해주기 바란다
: 앞서 말했듯 이 세상 어딘가에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존재하며 그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전하고 싶다. 나아가 게임에서 느낀 유대감을 통해 여러분이 살아가는 실생활에서도 가족이나 친구, 연인 관계를 한번쯤 되돌아봤으면 좋겠다. 길을 가다 도로 공사하는 분들을 봤을 때 ‘저분들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다닐 수 있구나’하는, 그처럼 우리 게임이 실제 삶에 영향을 끼치길 바란다.
본 행사 추가 질의응답
● 이번에 헐리우드 배우들을 섭외했는데, 혹시 한국에도 함께 작업하고픈 배우가 있다면 알려달라
: 오랫동안 배우 송강호의 팬이었다. 한 10년 전부터 함께 작업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닿지 않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 게임에 섭외하고 싶은 배우다.
● 게임뿐 아니라 영화 감독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 앞으로 코지마 프로듀서의 영상을 볼 수 있을까
: 실제로 영화 연출에 대한 제안도 많이 들어오는 편이다. 당장은 게임 개발로 바빠 고사했지만 앞으로 짧은 영상물을 제작해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여담이지만 니콜라스 빈딩 레픈('데스 스트랜딩' 하트맨) 감독의 단편에서 야쿠자를 연기했었는데, 그래서인지 간혹 배우로서 출연해달라는 연락도 오더라(웃음).
● '데스 스트랜딩'을 마무리했으니 이제 어떤 차기작을 구상 중인지 힌트를 주면 좋겠다
: 정말 맹렬하게 무서운 공포물을 만들고 싶다. 다만 게임으로 한정을 짓는 것이 아니라 영상물이 될 수도 있겠다. 이외에도 여러가지 생각을 하는 중이다.
(편집자 주: 다행히 코지마 안마 의자에 대한 질문은 없었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