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없데이트에 슬픈, 2차창작하는 일반인입니다
다들 재밌게 보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꾸준함을 목표로 오늘 4화를 올립니다
매번 말씀드리지만, 제 글은 사심가득하고 제멋대로 없는 설정 만들어오는게 특기입니다
원작 활협전 이야기와는 일절 연관없는 팬픽, 2차창작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재밌게 보셨다면 추천을,
궁금한것이 있으시면 댓글이나 쪽지 주시면 슬쩍 답해드립니다
이 팬픽은 오직 루리웹 활협전 게시판에서만 연재중입니다.
감사합니다.
휘이이잉.
바람이 부는 넓은 공터 안. 그 공터는 한달 전부터 그 누구의 출입도 허락하지 않는 자가 지키고 있었다. 일부러 자른 듯한 투박한 모양의 짧은 머리. 붉은 천으로 가린 두 눈. 각오를 다진 듯 한 두손에 쥐어진 검 두자루. 지금은 지쳐 앉아 있지만 지쳤다는 것이 무색하게 보이는 정갈한 모습이 마치 검의 모든 것을 깨우쳤다는 검성을 보는 듯 하다. 그녀의 바램은 단 하나.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그 사람은 그녀만 알 것 이다.
"아직도 저렇게 앉아있습니다. 그저 다가가기만 해도 멀리서부터 매서운 검기가 휘몰아치는데, 습격한 자들은 모조리 반으로 갈라졌으니, 그 누구도 이제는 가기를 청하지 않습니다."
팔짱을 껴고 나무 위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누군가가 질색의 한 숨을 쉬더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청명했고, 태양은 밝게 비추고 있으니 오늘도 때는 아닌 것 같았다.
"질리겠구만. 왜 저렇게 아무것도 없는 당문을 홀로 지키고 앉았는지 모르겠네. 본인은 당문 사람도 아닐텐데 말이지. 흰 옷에 여성 검사라면 열의 아홉은 금향궁일진데 무슨 이유로 저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지?"
"그... 저도 잘..."
손을 번쩍들어 뒷통수를 후려갈기니 시원하긴 했으나 손바닥만 욱신거릴 뿐이라 손해만 보는 행동이었다.
"버, 법왕께서는 어찌 하시려고..."
손을 절레절레 흔드니 아무래도 본인이 나서기도 버거운 상대라 질색이다.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여간 까다로운 기세가 아니니 만약에 다가갔다간 사생결단을 볼 수준이라 감히 무엇하나 할 수 없었다.
"그냥 화살을 왕창 퍼붓는다면?
"이미 해봤습니다. 무슨 당문 전체에 벽이라도 친듯 팅겨져 나오니 소용이 일절 없었습니다."
"거참... 알 수가 없네. 무슨 이유가 있는 건가?"
부스럭.
촤아악!!
"오오옷!?"
잠깐 발을 다른 곳으로 딛었을 뿐인데 저 멀리서부터 날카로운 검기가 뻗어 올라와서는 자신이 올라 서있는 나무가 단숨에 베였으니, 그 검기는 여간 강고한 것이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스쳤다가 단숨에 황천길이리라.
"오... 무섭네. 그 잠깐의 소리를 들은건가."
그 검기에 머리카락이 슬쩍 잘려나간 각도를 보니, 이는 경고의 의미가 가득한 일섬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진작에 두눈을 가려 모든 신경이 한곳으로 집중된 그녀의 귀에 들렸을 터. 단지 당문 근처로만 가면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일정 선만 안 넘으면 되는 모양새다. 겨우 피하곤 무언가 할일이 생긴건지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를 빠지려는 듯 하다.
"일단 여기서 빠져야겠다. 여기 있는다고 막상 파훼법이 생각나지 않네. 잘 좀 감시해봐. 죽지말고."
"조, 존명."
휘익하고 사라진 법왕이라는 청년. 어느 곳의 법왕이라는 것인지는 알 수없으나, 여간 꺼림칙한 기운을 흘리는 자가 아니었기에 그녀도 신경이 곤두서는 경험을 했다. 비록 두 눈을 가렸다지만 두 귀는 매우 섬세하고 민감하니, 자그마한 소리에도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었다. 그가 떠나자 살며시 숨을 고르고는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그녀가 한달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극단적인 식사가 필수였으니, 당문 안에서 만들어진 말린 포의 형태의 음식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보존식에도 일단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가 걱정거리였다.
"이제... 식량도 얼마 안 남았구나..."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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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만, 그만하거라! 겨우 살아왔는데 거길 또 가겠다고? '
' 기절한 저를 구해주신 은혜는 반드시 갚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
' 내가 안된다고 하지 않았더냐! '
' 그곳에는 저를 받아준 식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뜻을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 이미 다 죽었다고 하지 않았느나! 이젠 주인없는 곳이다! 당문은... 멸문되었어!! '
빠득...!
' ...어찌되었든 상관 없습니다. 당문이 문파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면, 저는 당문이라는 존재의 의미를 지킬것입니다. 당신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내버려두십시오. 저는 가야 합니다... '
' 가야하는 이유가... 고작 식구들 때문인 것이냐. '
' 고작이 아닙니다! 당문은... 고작 따위가 아닙니다! 제가 의협의 길을 가야하는 진정한 이유를 가르쳐준 곳 입니다! 함부로 입을 놀리지 마십시오! 아무리 제 목숨을 구제 해주신 은인이라도 그 이상 입을 여신다면 당신의 남은 그 팔도 제가 베어버리겠습니다! '
' ......젠장... '
챙그랑!
' 이... 이 검은... '
그녀는 자신의 은인이 버려놓고간 검을 어루만졌다. 손으로 만져보고, 눈으로 자세히 보건데 그것은 자신이 아주 잘아는 검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잊을 수가 없는 외형. 어릴때부터 아버지의 손에 들려 있던 것. 그것은 그녀의 기억 속에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었다. 집안의 가보. 한번 휘두르면 하늘이 천둥소리를 내지르며 갈라지고, 땅이 구슬피 울며, 물은 이무기가 떠올라 용오름을 일으키니, 아버지가 살아생전 휘두르고 다녔던 명검.
' 천상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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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째서 그분이 가지고 있던 걸까... '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그녀의 머리로는 딱히 떠오르는 인물도 없었고, 그저 알고 있는 사실에 입각해 아버지는 돌아가셨을 것이라 굳게 믿던 그녀였다. 분명 아버지의 친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인식의 그녀였다.
그녀는 그곳을 나와 들판을 넘고, 나무 숲을 벗어나 하늘을 뛰어넘어 한참을 달리고 숨이 가빠질 즈음 겨우 당문에 도착했다.
' 헉... 헉... 헉... 윽...! 이, 이 참상은... '
당문은 조용했다. 주변에는 그 누구하나 유혈자국을 지우지 않았는지 그날의 처참함을 그대로 유지한채로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보여주니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자신이 기절해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다. 정심당과 강경당은 불을 질렀는지 군데 군데 까맣게 탄곳이 즐비했고, 그 감미로운 향을 새하얗게 내던 향로들도 멀쩡한 것이 없었다. 책들은 모아서 불태웠는지 일부 책장이 바람에 휘날려 정처없이 돌아다녔고, 연단방이니, 식당이니, 대장간이니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으니 그녀는 뜬눈으로 당문을 바라보고는 망연자실했다. 눈앞은 흐려졌고, 뜨거운 것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니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이 그녀를 감싸고 돌았다. 당문과 목숨을 다하리라 했던 맹세가 뒤틀리고 무너져서 혼자 기절해 목숨을 정체불명의 은인에 의해 부지했으니 차마 두눈을 뜨고 당문을 바라보는 것이 수치스러웠고, 부끄러울 뿐이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이 고작이었으니 그야말로 피눈물을 억지로 집어삼키는 기분만이 그녀를 감쌌다.
' 이 추태가... 정도를 외친다는 무림맹의 것 이란 말인가... 이것이... 그것들의 정도라고...? 이것이... 무와 협이라는 것이냐...? '
힘없이 한참을 주저 앉아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주변의 이상한 무리들이 당문을 감싸고 있다는 낌새를 느낀 그녀는 더 이상 주저하지 않았다. 그녀는 긴 머리칼을 한 손으로 붙잡고 다른 손으로는 들고 있던 자신의 검으로 어색하게 투박한 모양새로 잘라냈고, 당문을 저버렸다는 죄책감에 주변에 놓여있던 피로 물든 천으로 두 눈을 묶어 가렸다. 그리고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저벅저벅, 조용히 당문 정중앙으로 걸어가 둘러싼 집단들을 향해 소리쳤다.
' 당문을 노리는 자. 나, 이름을 버린 아무개로서 당신들을 목숨바쳐 참 할 것이니, 자신 있는 자. 나를 죽이고 당문을 취하시오. 그것이 이곳에서 내가 할 일이니, 부디 나를 노여워 하지 마시오. '
그 말을 끝으로 당문을 취하기 위해 당문으로 달려드는 아귀도라 칭하는 무리들을 당문 근처에 오기만해도 그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모조리 죽였으니 그야말로 부동명왕이라 할법했다. 그 이후로 그녀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무뢰배들, 이름을 날리고픈 자들, 니교들은 당문으로 쳐들어갔지만 그 누구도 살아돌아오지 못 하였으니, 이는 경양독서재의 강호쾌보에도 실릴 정도가 되었다. 당문은 일종의 성지가 되어 있었고, 도전자들의 행렬로 줄지었으니, 나날이 그녀의 체력을 깎아먹게 되어버렸다. 처음에는 그저 당문을 취하고자 하던 목적이, 도전의 장으로 변질 되어버린 이후로 그녀는 그저 영문모를 살인마가 되어버렸고, 아귀도는 그것을 이용하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체력전이 되어버렸으니 그녀는 당문을 자신이 죽을 곳이라 생각했다.
꿀꺽.
"식량은 이제... 됐어. 이젠 내 목숨 다하는 날까지... 사력을 다해 이곳을 지키겠다... 그것이... 동생들과 내가 한 약속이었으니. 그때의 약속의 연장이다. 아버지의 천상검을 걸고... 무와 협을 지킬 것이다..."
그녀는 두 손에 잡은 두 자루의 칼을 굳게 잡고 크게 호흡하며 다가오는 이들을 맞이했다. 결의와 함께.
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묵령. 짐은 어때? 들고 갈만 해?"
작은 시골 산속 객잔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지만 그것을 보상으로 푸짐한 점심식사와 이틀치 식량을 업어들고 당문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당시의 소동은 금방 끝을 맺었다. 당묵령의 당문절기는 천지무성세와 엮여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암살자의 면모를 보였으니, 단 오초만에 그들을 제압했고 움직이지 못 하도록 점혈을 하고는 소매에 의해 숲에 버려졌으니, 그 무뢰한들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입에 말린 육포를 질근 씹은 묵령의 입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열렸다.
"짐은 괜찮아요. 매 언니는 무리 마시고."
우소매가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지!"
간만에 배도 든든히 채웠으니, 경공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단지 저주가 꿈틀대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 문제였으니 그녀의 속도에 최대한 맞추는 묵령이었다.
"그나저나 많이도 챙겨주셨네. 육포는 그렇다 치고, 죽통에 물, 죽엽청, 고기만두라니. 여럿 준비를 다해주셨는데 오히려 우리들이 도적 잡배들 같단 말이지?"
"......그, 그래보였을까요."
단호히.
"아니? 목숨과 가게를 지켜줬으니 구세주지 뭐. 히히. 단지 돈만 안 빼앗았을 뿐이야."
"아... 하하... 하..."
그렇게 얼만큼 길을 나섰을까. 그녀들이 받은 이틀치 식량이 바닥나고 슬슬 다음 객잔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고, 슬슬 묵령에게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이 부근은 당문의 영역이라는 말이 되니, 슬슬 속도를 늦추기 시작했다. 당문의 영역이라는 이야기는 무림맹의 영역이라는 말과 같았으니 몸가짐을 낮게하여 다녀야 했다. 소매도 그 풍경을 어렴풋이 느꼈기에 묵령의 속도에 맞춰 늦추기 시작했고, 주변을 둘러보곤 연기가 나는 장소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슬슬 비가 오려는 듯,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고 바람마저 슬슬 쌀쌀해지니 서둘러 객잔을 찾았다. 저 멀리서 연기가 나는 장소를 발견했고 서둘러 가니 객잔은 없고 웬 버려진 사찰이 있었다. 무언가 있을지 모르니 천천히 다가갔고, 그곳에서는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개방? 무림맹? 니교? 알 수는 없었지만 일행이 없는 혼자임을 알 수 있었다. 묵령을 뒤로하고 우소매가 먼저 다가가 앉아있는 그 모습을 보고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푸른 의복. 우산. 이는 마치 자신이 알 고 있는 사람의 모양새와 매우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소매는 천천히 다가가려는 찰나, 묵령이 그녀의 손을 잡고 다가가려는 것을 막으니 비로소 눈을 제대로 떴다. 묵령은 안에 앉아있는 사람의 용모를 볼 수는 없었지만, 소매의 행동에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매 언니? 아시는 분인가요?"
우소매는 아직 혼란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였지만, 묵령의 물음에 겨우 생각을 정리하곤 답했다.
"어... 아는 사람... 은 아닌 것 같아. 체형이 좀 더 작으니 다른 사람... 같은데, 왜 저리... 뒷모습이 닮은..."
그때 그녀들의 움직임과 목소리를 알아챈 것인지, 펼쳐진 우산을 어깨에 기대어 들고 일어서 천천히 그녀들의 장소로 걸어왔다. 우소매와 묵령은 그자리에 가만히 있었다. 다가오는 그녀에게는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오는 것일까? 무슨 이유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무슨 이유로...
우소매는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보니 역시 자신이 알고 있는 그녀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 그녀의 차림을 똑같이 하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안녕하세요? 이곳에는 어쩐 일이신지...?"
그녀가 물었다. 그녀의 물음에 우소매는 그만 경계를 하곤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다, 당신은... 누구시죠? 누, 누구신데 탈백유란의 옷가짐을... 하신 것이죠?"
"아..."
그녀는 짧막하게 반응하더니 이내 미소를 짓고는 대답했다.
"탈백유란께서는... 제 스승님이 되십니다."
우소매가 깜짝 놀랐다.
"라, 란 언니의 제자라구요??"
순간 청의의 여자도 같이 놀라더니
"어... 스승님을 아시나요?"
그 이야기를 들은 묵령이 다급히 우소매의 앞에 나서서 그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아는 얼굴이 보였다. 그런데 이전에 보던 얼굴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바로 알 수는 없었다. 혹시나 하곤 묵령이 입을 열었다.
"......소, 소천...?"
청의의 여성이 묵령의 목소리를 듣고는 또 놀라서 다급하게 그녀에게 다가갔고, 마치 죽은 사람을 다시 만난 듯한 얼굴로 자신의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지니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깨닫고는 이윽고 아는 사람의 얼굴임을 다시금 확인하고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무... 묵령... 언니?"
"처, 천아? 천아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당문에는 바로 동쪽으로 자그마한 문파가 있었다. 본래는 공동파의 서쪽에 위치한 설산이라는 곳의 설산파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설산에 위치한 설산파 본문은 이미 멸문당한지 오래였고, 유일한 핏줄인 구 무림의 여마두. 탈백유란 하후란이 당문의 외성제자인 조활을 제자 삼고는 당문 근처로 거처를 옮겨 당문지부를 설립했다. 당시 제자는 조활 말고는 또 한명이 있었는데, 그 제자의 이름은 번소천. 개방의 구타견권을 사용하는 개방광인으로 유명했는데 어디서 데려왔는지 억지로 데려와서는 제자를 삼은 것이 계기가 되어 설산파 제이제자가 되었다. 그 인연으로 당묵령과 얼떨결에 친해지게 되었고, 어느 날 탈백유란은 그녀를 데리고 설산에 가겠다는 이야기를 남긴채 사라져 조활과 묵령이 매우 슬퍼한 때가 있었다. 물론 당연히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었으나, 돌아오지 않았으니 무슨 일이 있는 것 일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천아..."
"...묵령언니."
묵령이 느끼기엔 번소천의 모습은 정말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마치 죽은 사형의 설산파 스승. 하후란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게 변해있었으니, 당췌 무슨 일이 그녀에게 있었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의 유명했던 개방광인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몸가짐은 깊은 글귀에 심취한 선비와 같이 정갈해졌고, 어느 귀한 집 규수와 같은 맑고 단아함. 뭉치거나 이리저리 풀어져있는 정신없는 머리결은 또 어떻게 정돈한 것인지 말끔하고 매끄럽고 윤기가 흘러 검은 흑요석과 같은 빛이 절로나, 마치 절세가인을 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나이만 적었지 또 다른 탈백유란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탈백유란의 재림과도 같았다. 묵령이 물었다.
"천아. 당문을 떠나서 무슨 일이 있던거야?"
"......"
말이 없자. 우소매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째서 란 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거죠? 란 언니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에요??"
"......"
번소천은 차마 입을 열수가 없었던 것 같아서 묵령이 우소매의 어깨를 잡고는 진정시켰다. 번소천은 그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할지를 몰라서 복잡해진 머리를 정리하느라 차마 먼저 말을 꺼내기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우소매와 묵령은 그저 기다리기로 했고, 어느정도 정리가 된 것인지 눈을 뜨고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
"하후란 스승님께서는 설산에 계십니다. 저는 설산에서 하산했습니다."
"하지만, 당신. 본래 개방의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찌된 일이죠?"
우소매가 날카롭게 찔러들어왔고, 번소천의 표정은 괴로워보였다. 얼굴을 옆으로 떨구고는 말이 없었다. 순간 우소매가 무언가 생각이 난 것인지 입을 열고자 했지만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보던 번소천은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스승님께서는 당시 6년 전의 일로 스승님의 설산파 사형과 연을 끊고자 결투했고, 결국 그의 목숨을 거두셨지요."
"......제삼향."
번소천은 우소매의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스승님께서 그분의 목숨을 거두시는 것을 보았고, 그 이후로 모든 짐을 덜은 듯한 해탈한 표정을 보았습니다. 해방감에 가득찬 표정을요. 당시에 저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스승께 물었습니다. 설산파의 멸문과 공동파에서의 일들. 그리고 제삼향과의 일들의 전말을 모두 들을 수 있었고, 목표를 이룬 그분의 얼굴표정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해방감에 가득차 편안했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스승님의 해방감 속에는 허탈함이 가득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분에게 살아갈 목표가 사라졌다는 것을..."
"그, 그래서... 란 언니는...?
번소천은 뚫려있는 사찰의 천장밖 하늘을 쳐다보았다. 별이 반짝였고,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던 구름은 어느새 사라져 맑게 개인 하늘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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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은 처음에는 자살하려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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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삶의 목표를 잃은 스승의 허탈한 눈빛에 허무함을 처음으로 느꼈고, 모든 것을 잃은 듯한 스승님의 눈빛은...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야기가 다 끝날때 즈음 저를 점혈하여 모든 내력을 넘겨주어 더는 살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겨우겨우 스승님을 뿌리쳤고, 그녀가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게 내력을 남겨드려 살렸습니다. 그리고는 스승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삶의 목표를 잃으신 것이라면 저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달라고. 스승님이 알고있는 모든 것을 알려달라고 부탁드려 삶의 목표를 드렸죠. 그렇게 부탁드리고는 다시 눈빛에 생기가 돌아온 스승님께 모든 것을 배우고, 익히고, 습득했습니다. 저는 그녀의 바램대로 몸가짐을 가지런히 했고, 씻고, 말투를 바꿨습니다. 글을 읽어 지식을 쌓았고, 모자라지만 자그마한 보금자리도 만들어 드렸습니다. 스승님에게 설산의 무공을 사사했고, 그녀의 옷가지와 강골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저는 개방을 버리고 설산파 제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천이라는 이름도 버렸고 본래 이름으로 돌아왔습니다."
번소천은 조용히 묵령의 손을 잡았다.
"저는 천이 아닙니다. 번소언. 언이라고 합니다. 천이라는 이름은 개방에서 살아남기위한 가명이었죠."
"천아..."
번소천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저는 령 언니를 위해서 기꺼이 천아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저를 아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언아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려 하는지 미소를 잠시 거두고, 눈을 감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하지만... 지금은 심각한 상황입니다. 당문이 새로이 결성된 무림맹에 의해 멸문당했고, 대사형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설산에서 강호쾌보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무림맹이 쳐들어와서 당문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고 알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보름 전이었습니다. 스승님과 저는 그 소식을 듣고는 원통하고, 비통했습니다. 대사형에게는 설산행을 같이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여, 혼자 남겨놓고 우리들끼리 설산에 와서는 당문지부를 다시 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대사형은 홀몸이 아니었기에..."
번소천은 묵령의 얼굴을 잠시 보았지만, 그녀는 그저 괜찮다며 미소짓고는 소천의 걱정을 뒤로 미루게 만들었다.
"스승님과 저는 설산에 있을 당시 오로지 저에게만 집중하였기에, 바깥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지요. 뒤늦게 상황파악을 한 스승님은 저를 일단 하산시켜 상황을 살펴보라 하셨습니다. 내력회복이 되지않은 스승님은 나올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으셨으니, 지금으로부터 칠일 전에 저만 설산에서 내려온 상황입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지금까지의 이야기입니다."
묵령과 우소매는 그저 말없이 생각 할 뿐이었다.
"그나저나 령 언니는 어떻게..."
"......"
이부분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묵령을 대신해 우소매가 답했고, 그 이야기를 들은 소천은 그저 묵령의 손을 잡고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가 알고지낸지는 그리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문에서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신 은혜는 지금껏 잊은 적이 없습니다. 령 언니도 단순히 개방거지였던 저에게 처음만나 주셨던 소병과 종이학은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 종이학은 아직도 제 손에 있을 정도지요."
그녀는 손을 펼쳐 납작해졌지만 분명히 묵령이 준 종이학을 소매에서 꺼내어 보이니 묵령도 이를 기억하는 듯 미소지었다.
"비록 납작해지고 헤졌지만 그날을 기억하며 아직도 품에 지니고 있으니 우리들의 인연은 이리도 끈끈하여 항상 새로 꼬아놓은 단단한 동앗줄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계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살아계셔서... 고마워요 언니..."
우소매가 물었다.
"번 소저께서 설산파 당문지부에 오신지는 언제쯤... 일까요?"
소천이 곰곰히 생각하고는 당시의 상황을 생각했으니, 마침 그런 날이었다.
"당문 대사형께서 돌아가신 날... 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스승님과 당문지부로 온 날은 초상집분위기였으니, 스승님이 당시 꽤나 충격받으셨던 표정이 아직 기억나는 군요."
"아... 그렇...군요."
우소매가 당문에 있을 적이라면, 그녀를 모를리가 없었다. 소천보다 일찍 당문에 있었으니. 하지만 자신들이 저지른 그 사건날 당시 들어왔었으니, 그녀는 금오상인에 의해 들려 갔을 시기였다. 다시한번 아찔했던 상황이 기억나니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제 그날은 없다. 잊고 살아가리라 마음 먹었다.
묵령이 소천에게 물었다.
"그러면 천아도 같이 당문으로 가는거지?"
소천은 슬쩍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저는 단순히 당문 주위의 상황을 살피려는 것입니다. 당문까지는 가지 않고, 설산파 당문지부로 갈것이니 그곳에서는 아마 갈라질 듯 싶습니다. 스승님께서도 부탁하신 일도 있고, 령 언니분들께서 당문으로 직접가실 것이니, 제가 직접 갈 필요는 없어보이는 군요."
"...응."
소천은 아쉬워하는 묵령을 바라보고는 그저 안아줄 뿐이었으니, 그녀가 살아있어 감사함을 느꼈다. 당문이 멸문되었다고 접했을 때 스승도 그랬지만, 소천도 잠시나마 함께 살았던 당문 식구들, 대사형, 당묵령의 생사가 너무나도 걱정되었기에 이리저리 발을 동동 굴렀다. 그 사실을 안지는 이미 보름이 지나버린 시간이었고 당장 움직이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스승의 몸은 성치 않았고, 무림맹의 움직임은 불손했기에 소천은 더욱 부단히 수련을 해야했다. 그러고 나서 겨우 설산을 나왔으니 그녀의 마음은 다급했었으나 묵령의 상황을 알고나서는 마음이 한결 놓였다.
"이를 스승님께서도 알고계신다면 기뻐하실텐데 같이 계시지 못하여 아쉽습니다. 이 이야기는 스승님께도 전해드릴테니 설산파는 걱정안하셔도 됩니다. 대사형의 일은 안타깝지만 무언가 정보가 모인다면 공유토록 하겠습니다."
소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강골산을 펴고 자리를 뜨려하니 묵령이 놀라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잡은 손을 보고는 잠시 놀랐지만 미소지으며 묵령의 손을 떼어냈다.
"괜찮습니다, 령 언니. 저는 상시 다니지 않고 어두운 밤과 새벽에만 움직입니다. 무림맹이 활개치고 다닐무렵부터 움직였으니 문제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설산파 제자입니다. 제가 설산에서 내려왔다는 것은 스승님의 보증이 있어 가능한 것이니 혼자다녀도 이제는 문제가 없습니다. 더이상 개방광인은 없으니 스승님의 이름에 먹칠하지 않을 만큼 강해졌습니다. 스스로가 자부 할 수 있을 정도이니 걱정마세요."
묵령은 소천을 바라만 보니, 소천은 건강해보이는 그녀를 다시한번 안아줄 뿐이었다. 살아줘서 고맙고, 고마웠다. 이제는 정말 가야할 시간이니 묵령을 떼어내고 이만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으니 잠시 이야기하는 것을 머뭇거렸으나 역시 해야할 말이라고 생각했기에 입술을 질근 물고는 묵령에게 말했다.
"묵령 언니는 실전이 부족할 것입니다. 제 아무리 천지무성세를 익히셨다 한들 실전이 부족하면 무용지물일 것이니, 혹여나 그러한 상황에 처하신다면 부디 무림인으로서 행동키를 당부드립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개방에서 살아와서 누구의 목숨을 취하는데 거리낌이 없죠.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앞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령 언니께서는 부디 판단함에 있어서 우유부단하면 안됩니다. 이전 당신을 지켜보았던 제가 감히 판단한 것이지만, 언니. 부디 이제는 무림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무림은... 령 언니에게는 위험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순간 소천의 이야기를 들은 묵령의 얼굴색이 변했다. 당황했는가? 자신의 본질을 꿰뚫린 것일까? 그녀는 당문에 있었지만 실제로 실전을 겪어본 것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소천의 말대로 평화의 시대에 살아온 것일까? 문파간의 쟁과 무림인들 간의 대립은 언제든 있었다. 하찮은 이유와 시덥잖은 이유로 서로가 목숨줄을 쥐고 싸우고 목숨을 취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녀는 당문에 있었고, 당문은 그녀의 든든한 방패벽이었으니, 그녀가 과연 실전을 겪던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는 우소매도 동일하게 느끼던 문제 중 하나였다. 광주당문 습격시에도 묵령은 무엇을 했던가? 아버지를 지키려 몸을 던졌지만 어처구니없이 붙들려 당문밖으로 떨어져나가 그 무엇도 하지 못했던 무력한 모습이 있었다. 천지무성세의 달인이라 칭해도 오로지 수련에만 의존했던 그녀는 아직 무림인으로서의 살인은 해본 적이 없으니, 이는 우소매도 가히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덧붙여 묵령의 주변에는 언제나. 조활과 그녀를 지켜주는 많은 사형, 사매들이 있었으니... 묵령은 그저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심지어 당문 멸문 당시에도 조활의 외침에 도망치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묵령은 소천의 따끔한 충고에 할말을 잃은 채 고개를 떨궜다.
번소천은 우소매에게 말했다.
"주변에 개울가가 있으니 식사는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버려진 사찰은 아무도 당도하지 않는 제가 잘 아는 장소이니 마음 놓고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소천은 고개를 떨군 묵령을 바라보며 우소매에게 부탁했다.
"령 언니를 부탁드립니다."
"아... 알겠습니다. 부디 몸 조심 하시길."
그말을 끝으로 뒤를 돌아 자신의 길을 가는 번소천의 뒷모습을 본 우소매는 과거 하후란의 뒷모습과 너무나 흡사하여 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후란에게 그녀를 닮은 여식이 있다면, 바로 저 모습이었으리라 생각한 우소매였다. 그나저나... 일이 복잡해진 상황이 되어버린 듯 했다. 우소매도 한참을 꺼내야하나 말아야하나 싶던 주제 중 하나를 번소천이 꺼내든 것이었으니, 이는 묵령에게 강한 충격으로 올 것이 뻔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 했다. 묵령은 심히 피폐한 상황속에서 겨우 빠져나온 상황이었으니 더는 충격을 줄 수는 없다고 판단했었고, 그런 상황이 만약 오게 된다면 천천히 일러두려 했었다. 이는 위국의 당부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염려에도 결국 벽은 깨져버렸다. 그것도 묵령 자신보다 어린 무림인 소녀에 의해... 이제는 묵령 스스로의 결정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우소매는 말없이 묵령을 안고는 등을 토닥였다.
"괜찮을거야. 지금 당장 그럴 필요는 없어. 아직은 그럴 상황이 오지 않았잖아. 정말... 정말 그런 결정을 해야하는 때가 오면. 그때 결정해도 늦지않아. 당 장문인은 천하를 가히 호령할 수 있는 위치의 인물이었으니, 그 피를 물려받은 너라면 해낼 수 있을거야. 그렇다고 천하를 호령하라는 뜻은 아니니 너무 가진 말고... 크흠. 여튼 오늘은 날이 저물었으니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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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령은 그날 꿈을 꾸었다. 모든 것이 불타는, 늘 꾸던 꿈이 아니었으니, 그리운 꿈을 꾸었다. 종이학을 주던 어떤 사람이 미소를 지으며 한 없이 떨어지는 꿈을. 그것은 악몽인지, 길몽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떨어지는 그녀의 모습은 어디선가 본적 있는 듯 했다.
그녀의 얼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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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령과도 같았다.
"......!!?"
꼭두새벽. 식은 땀을 흘리고는 꿈에서 깨니, 한없이 깊은 한숨만 쉬어버렸다. 눈앞이 흐려지고 몸은 부들부들 떨렀고, 두 팔로 자신의 몸을 부둥켜안아 떨림을 멈추고자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평화의 세상은 깨져버렸다.
이제는 그녀가 다니는 길은
더 이상 당문 근처의 길이 아니었고,
그녀가 거닐던 땅은
더 이상 당문 근처의 땅이 아니었으며,
그녀가 사형과 놀던 물가는
더 이상 당문 근처의 물가가 아니었으니.
그렇게
그녀는
무림 속의 무림인으로서의 한걸음을
내딛었다.
월영전(月鍈傳) (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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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많이 했습니다...ㅜㅜ | 25.03.10 16:18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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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부평초연가와 용란무쌍전은 공유하고 나머지는 별개입니다 | 25.03.12 13:5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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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해봤자 남는게 얼음꽃 월영전이네요 | 25.03.12 13:54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