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염살. 아홉 번 구워 죽이는 검의 칼날이 그들의 무대 위에서 춤 춘다. 구염살의 첫 번째 칼날은 그들이 서있는 장소를 뜨겁게 달구는, 의식의 시작을 알리는 춤사위. 검과 검이 맞닿아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는 여러번 검이 부딪힌 결과, 구염살의 온도를 상대가 느꼈을 때 부터 시작이다."으아아악! 거, 검이 왜, 왜 이리 뜨거운거냐?!"검의 온도에 놀라 상대가 당황했다면 구염살의 무대는 준비가 끝이 난 것이다. 무대의 주인공은 서로 맞닿은 검을 뒤로 빼고 다시 치켜들어 정자세를 잡으면, 이어서 두 번째 칼날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구염살. 둘째 칼날."검의 열기는 그녀의 몸을 따라 회오리친다. 일반적으로는 완성되지 않은 칼날은 사용자의 몸에 무리가 간다. 구염살을 완벽히 익힌 자만이 검이 뿜어내는 열기를 견딜 수 있다. 용상의 용연칠절은 완벽하게 자기것으로 만든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 구염살은 항상 난제의 영역이었다. 신체에 평소보다 과하게 무리가 가는 초식이었기에 용상은 이를 해결하려고 부단히 뛰어다녔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서 미해결의 난제로 남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뜨거운 검과는 달리 주변으로는 차가운 기운이 몰아치고 있었으니 구염살의 난제는 거의 해결했다고봐도 무방할 정도였다.두 번째 칼날은 내려베기의 연속이다. 뜨거운 열기로 끊임없이 내려치는데 바닥부터 달아오르니 구염살의 영역에 머문 자들은 검을 몇 합씩 나누다보면 어째서 구워죽인다는 지를 서서히 깨닫기 시작한다. 내려치는 것은 마치 고기를 다져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의 하나와도 같았다. 하지만 단순히 내려치는 것만이 아니다. 각도에 변화가 있다. 각도에 따라 노리는 위치도 다를 뿐더러 급소도 달라지니 어디를 막아야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챙! 챙! 챙!마치 대장간에서 망치로 뜨겁게 달궈진 쇳덩이를 내려치는 듯 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사정봐주지 않는 두 번째 칼날이다. 구염살은 칼날이 바뀔 때마다, 출수하는 초식이 변하는데 기존의 칼날의 초식이 합쳐져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변한다. 예를 들어 셋째 칼날이 날을 세울 때 즈음이면."구염살. 셋째 칼날."검을 크게 뒤로 내빼고 자세를 잡으면 열기가 뿜어져나오고 내려치던 칼날을 횡으로 베어내기 시작한다. 오른쪽, 왼쪽, 오른쪽, 회전. 종으로 내려치던 궤적이 횡으로 바뀌니 이를 막던 당사자는 매우 당황한다. 단순한 내려치기에서 궤적이 갑자기 변화하니 그에 맞춰 방어를 바꿔야했다. 하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구염살의 초식은 쌓이는 초식이다.휘익! 휙! 챙! 휘익!종베기와 횡베기가 단순한 궤적을 넘어 변화하기 시작했다. 단순함에 익숙해지면 위험한 초식이다. 변화한다는 의미는 진화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구염살은 이제 막 세 번째 칼날이 선보여진 것에 불과했다. 오룡민은 겨우겨우 대도로 막아가고는 있지만 좀처럼 빠져나갈 틈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다."젠장...! 검을 통해 열기가 그때그때 전해져오는데 그에 더해져서는 변초라니. 이런걸 계속 받아낼 수는...!"명색이 도적단 두령이었다. 수완가의 면모는 있으나, 결코 수완만으로 올라간 두령의 자리가 아니었다. 나름 자존심도 있었고 실력도 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크윽...! 휘두른다!!"커다란 대도를 그녀의 검이 뒤로 빠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 박자 빠르게 횡으로 휘둘렀다. 용상은 당황하는 기색 하나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응시하며 그가 휘두른 대도의 날을 자신의 검으로 가볍게 각도를 틀어 밑으로 흘려보내고는 발을 딛어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오룡민은 뛰어오른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놓칠세라 대도의 날을 위로하여 그대로 올려베었다. 용상은 올려베어진 대도를 또 다시 밟아 딛고는 더 위로 뛰어 올랐고 그 모습을 본 오룡민은 그저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제길... 저게 사람인것이냐?"용상은 한참을 올라가서는 검집을 잡은 팔을 크게 들어올렸고."용연칠절. 용퇴격살."곧 바로 검집을 직선으로 찔러 던졌다. 그는 이렇다할 방법도 없이 공중에서 날아오는 검집을 대도를 방패삼아 막으니.콰창!!"끄으으윽!?"온몸이 저릿저릿해질 정도로의 충격에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그 고통도 잠시.쉬익! 콰창!!용상은 대도에 박혀 세워진채로 있는 검집을 향해 검을 쥐고 찔러들어가 검이 검집에 들어가는 모습으로 이차적으로 충격을 그대로 그에게 전달하니 그야말로 치가 떨리고 머리가 울리니 죽을 맛이었다. 가까스로 쓰러지진 않았지만 충격의 여파로 무릎을 꿇어버렸고, 자존심이 여간 상처입은 것이 아니었다. 용상은 검이 검집에 들어간 채로 그대로 공중제비를 돌고는 착지하여 그의 앞에 섰다"헉... 헉... 젠장...! 아직이다!!""......"뜨거운 열기가 또 다시 소용돌이 친다. 가끔씩 싸늘한 한기가 소용돌이 치기도 하고, 서로다른 기운이 뿜어지고 사라지고를 반복하니 주변 공기가 제법 축축해졌다. 먹구름이 하늘에 드리웠다. 비는 오지 않지만 계속해서 시시각각 변하는 공기의 온도차이때문에 왠지 날씨가 변하는 것 처럼 보인다.챙! 챙! 촤악! 챙!쇠와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퍼진다. 그곳만 유난히 먹구름이 가득했다. 저 구름은 몇 겹이나 겹쳐져서 쌓아올라간 것일까. 열기와 한기가 반복하며 그 기세를 뿜어내니 정신없는 변화에 천지가 뒤집어질 모양이었다."구염살. 다섯째 칼날."어느덧 그녀가 휘두르는 칼날은 다섯번째. 크게 휘두르는 칼날은 열기로 가득했다. 휘두를 때 마다 검에 스며든 열기가 아지랑이를 피우며 몰아치고 그녀를 중심으로는 한기가 뿜어져나오니 정신없는 기운이 사방에 퍼져 장관이 펼쳐졌다. 모래바람이 주변에서 일어나고 소용돌이가 용오름쳐 구름을 꿰뚫고 사라지는 모습도 과연 볼만한 광경이었다."큭. 투기가 이리도 뜨겁다니... 그 열기가 검을 타고 들어와서는 내 속도 같이 타들어갈 것 같이 뜨겁구나. 과연 무서울 정도다. 하지만...!"오룡민이 커다란 대도를 크게 휘두르려 자세를 잡고는 기세를 뿜어내는데 주변공기가 무거워지고 중압감이 주변을 감싸돌았지만 그것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표정하나 바뀌지않고 다음 일격을 준비하는 용상이었다. 그는 그간의 싸움으로 익숙해진 듯, 썩은 미소를 보이며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과 함께 몇 합을 내질렀다.챙! 꽈창! 쉬익! 챙!몇 합을 주고받았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용상의 검의 궤적이 시시각각 달라짐이 눈에 띄게 보였다. 눈으로 보고도 겨우 대도를 맞부딪히는 그였지만 그녀가 펼치는 구염살은 어느덧 일곱째 칼날을 보일 무렵부터 속도를 따라잡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크윽! 무, 무슨 변초가 저리 심하단 말이냐?! 아직 제자리에서만 부리는 초식이 저리 번잡한데 만에 하나 사방에서 몰려든다면...!?""여덟째 칼날."순간 또 다시 용상의 초식이 변하는 것을 감지한 오룡민은 머리속을 강타하는 좋지않은 예감에 자신의 대도를 바닥에 꽂아넣고 소리질렀다."갈!!!"용상도 용상이었지만 오룡민 역시 무식하게나 짝이없는 사자후를 뿜어내며 주변을 싸그리 밀어냈고, 그녀도 그 기운의 여파를 이겨내지 못 하고 찌르려한 검을 그만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틈을 놓치지 않으려 대도를 다시 들고 그녀에게 파고들어가려고 했지만."윽!!"그녀의 예사롭지 않은 눈빛에 압도되어 그만 뒷방향으로 뛰어올라 거리를 벌렸다. 검을 놓쳐버린 그녀를 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알 수 없는 압박감에 그만 불안함에 나온 본능이 튀어나온 것이었다."도, 도대체 뭐냐 네년은!? 갑자기 탈백소저에게 내력을 받아내더니 순식간에 육체와 본능만이 예리해져 돌아오고는 이리도 강고하단 말이더냐?!""......"용상은 말이 없이 굳어있었다. 오룡민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그녀의 눈을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했다."응? 뭐, 뭐야??"그녀는 전혀 그를 응시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그녀의 주위에는 열기와 한기가 동시에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녀의 투기는 여전히 태양빛처럼 강렬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룡민이 보기에 그녀의 눈길은 초점이 없는 상태였다. 그때 무엇인가 깨달은 듯, 자신의 바닥에 있던 돌을 그녀에게 던져보았다. 그러자.촤아악!용상은 아무런 초점도 없이 자신에게 날아오는 돌을 순식간에 베어내 가루로 만드는 모습을 보고는 오룡민은 깨달았다."아하하하!! 이제야 알겠다. 네년 정신이 날아간채로 본능적으로만 움직이는 꼭두각시 신세였구나! 그 탈백유란이 넘겨준 내력이 맞질않아 주화입마 한 것이라니. 이제야 알아내다니. 나도 참 안쓰럽군. 하하!"그렇다. 용상은 하후란의 내력을 받아내고 깨어난 직후부터 계속 의식이 사라진 상태였다. 하후란의 내력이 맞지않은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으나, 결국 주화입마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뿜어져나오는 열기와 한기가 하나로 합쳐지지않고 서로 뿜어지기를 제각각이었으니 그녀의 몸 속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그렇지만 주화입마 상태에서도 저리 본능만으로 움직이니 상대하기 벅차기는 마찬가지군. 응?"그때 용상은 뒤돌아 떨어져있는 검과 검집을 잡아들고 일어섰다. 마치 쌍검술을 사용하려는 듯 했다. 여전히 그녀의 눈빛은 초점을 잃은 상태였지만 본능적으로 무언가를 찾는 모습이었다. 공격대상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서 였을까?"정말 무섭군. 아무리그래도 본능이 저리도 정교하게 발휘될 줄이야... 이건 듣도보도 못 한 귀한 광경이구만. 그럼 어디한번... 응?"자신의 앞에 있는 돌을 주워들고 또 다시 던지려고 하니 어느샌가 용상이 사라져있었다. 오룡민은 너무 놀라서 주변을 살펴보니 어디에도 그녀가 보이지 않았다."뭐, 뭐야?! 또 어디로 사라졌어??"......"용연칠절. 굉풍월.""윽!"바로 위에서 열기와 한기가 뒤섞인 투기가 뿜어져나오고 있었고, 고개를 들어 보니 용상은 양손에 검집, 검을 쥐고 원을 그리며 회오리치듯 돌면서 오룡민에게 빠르게 다가왔다. 그는 가까스로 대도를 이용하여 검, 검집, 검 순으로 빙글돌아 다가오는 것을 방어에는 성공했지만 그저 튕기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고 거리가 서로 벌려져 간격이 생겼으나 바로 뒤이어 후속타가 있었으니."용연칠절. 용퇴격살. 일격."그녀가 왼손에 들고 있던 검집을 바람을 실어 직선궤도로 꿰뚫듯 벽력처럼 재빠르게 집어던졌고 정확히 그의 배에 꽂혔다."커학...!"이어서."격살."그녀의 검이 그의 배에 꽂힌 검집에 직선의 궤도로 바람을 찢어내는 소리를 내며 정확히 들어가 이중충격을 주더니 그 여파로 바람이 폭탄처럼 터져서는 주변의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크헉...!"오룡민은 그 충격으로 그대로 나가떨어졌고, 충격을 준 검은 바닥에 떨어질 때 즈음 용상이 재빠르게 달려가 오른손으로 낚아챘고 조금도 쉬는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검을 뽑아들고 달려들었다."용연칠절. 용섬뢰. 일충."쐐애애액! 퍽!"으아아아악!!"오룡민이 겨우 정신을 차려 일어서니 그녀의 검이 그의 어깨를 꿰뚫고 곧바로 이끌려 뒤의 나무에 꽂히자 그 뜨거운 고통에 오룡민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기억이났다. 이 순서라면, 그가 기억하기론 일충 다음 출수가 있었으니 도무지 이 상황을 벗어날 계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용섬뢰. 이......겨...얼..."갑자기 용상의 목소리가 점점 멈추면서 그녀의 움직임도 멈춰버렸다. 그리고는 그의 어깨에 꽂은 검과 왼손의 검집을 힘없이 놓치고는 그대로 그의 앞에 쓰러졌다.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녀가 멈춰서고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니 잠시 상황을 머리 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어깨에 꽂힌 그녀의 검을 뽑아 저 멀리로 던졌고, 그녀의 상태를 조심히 살폈다. 숨 소리가 조그맣게 들렸고 그녀가 내뿜던 열기와 한기가 사라진 것을 확인했다. 주화입마의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움직이다가 결국 멈추질 못하여 과부하가 왔고, 결국 그 이유로 그녀의 움직임이 멎은 것이라 판단되었다. 다 죽어가는 순간에 겨우 살아나서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니 그제서야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했다."크... 조금만 늦었다면 정말 하직할 뻔했구나. 후우... 탈백유란은 기절했고, 계퇴마는 결국 주화입마에 깊게 빠져 움직임이 멎었으니 이제 날 공격할 것들은 없는 것인가."그가 주변을 돌아보니 이미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그들의 싸움을 목격하고는 전의를 상실해 도주한 뒤였다."쳇... 이대로라면 서하나 관아행인건가. 무오송 있는가?"멀리서 무오송이 천천히 다가오고는 입을 열었다."이제 어쩌실 생각이오. 도적단은 완전 와해되었는데 더 할 것 있소?"오룡민이 쓰러진 용상을 보고는 코웃음 쳤다."흥. 어차피 서하 놈들 에게는 더 뭘 못하는 상황이지. 관아에 끌려가느니 일단 이 두 년부터 데리고 숨어야겠다. 뭐라도 되겠지.""그러시죠. 결국 죽이지는 않으실거요?"그는 겉부터 속까지 새까만 사내였다."이 두 년을 찢어 죽여야 속이 풀리겠지만... 후후후. 탈백유란의 맛도 보고 싶고, 이 계퇴마도 맛 봐야지 않겠나. 하하하!"그렇게 이야기하고는 무오송과 둘을 데리고 갈 채비를 했다. 주변이 둘 뿐이니 조용하고 고요했다. 정신을 잃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결국 살아남은 자들의 승리이니, 앞으로 다가올 일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전리품을 가지고 서둘러 앞으로 자신들을 쫓을 서하와 관군을 피해 떠나야 했다............."용문살.""...?"푸악!!갑자기 나타난 거적대기를 입은 자가 한 가지 초식을 읊고 손에 쥔 검을 아래위로 휘두르니 오룡민은 정확히 깔끔하게 세로로 갈라져 그자리에서 죽어버렸고 그가 들고 있던 용상을 잡아 어깨로 업었다. 갑작스러운 등장과 습격에 놀란 무오송이 소리쳤다."으으윽! 누, 누, 누구시오???"..."간만에 무림에 나온 손님이라 생각하시오. 그러나 나를 봤으니 살려줘야하나 고민인데 당신 생각은 어떻소?""그... 그... 그..."거적대기의 남자는 한 숨 쉬었다."뭐, 한 통속이었으니... 날 원망마시오.""으윽!"무오송 역시 순식간에 세로로 갈라져 운명을 다 했다. 거적대기의 남자는 용상과 쓰러져있는 하후란을 하나하나 마른바닥으로 옮겨 상태를 보기 시작했다. 하후란은 편안히 잠든 것을 확인했지만 용상은 그렇지 못했다. 주화입마의 상태에서 자신이 기절한지도 모른채 움직였으니 한 시가 급해보였다. 그는 용상의 가슴 위로 손을 얹어 내력의 상태를 확인했다. 좋지 않은 간격으로 느껴지는 내력 울림을 감지했다."설산내력은 용염심결과 융화되긴 했는데 너무 급히 움직여서 불안정하구나. 뭐, 이정도면 불행 중 다행이군. 일단 안정부터 시키고..."부우우우웅.그녀의 가슴으로 내력을 불어넣자 점차 혈색이 돌아오고 용상의 가빴던 숨도 어느정도 안정되어 쉬게 되었으니 그제서야 잠이 들어 자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는 하후란의 상태를 보았다. 오른손목의 맥을 짚으니 그리 걱정될 정도는 아니었음을 확인하고는 다시 용상에게 눈길을 바꿨다."주화입마의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그녀에게 설산내력을 나눠줘 살려준게냐. 기특하구나. 그리 쉬운 것도 아닌데."그는 용상의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넘기고, 쓰다듬으니 잠이든 용상이 잠꼬대를 했다."으...응... 아버지...""......미안하구나."꿈에서 아버지라도 만난 모양이다. 용상이 꿈 속에서 그리운 표정을 지으니 그 모습을 본 거적대기의 남자는 코끝이 찡해졌다."간만이군요.""아. 간만이오. 영향."어느 샌가 자기 뒤의 여성이 온 것을 확인하고는 용상을 잘 눕히고 일어서 오래간만에 만나는 그녀를 맞이했다."잘 지내셨소? 정원랑 소식은 들었소만... 미안하오.""흥. 상아를 맡긴 뒤로는 소식이 뜸해서 객사라도 한 줄 알았는데, 살아계셔서 떠돌고 있었다니... 그러고도 상아의 아비되는 자입니까?"남자는 말을 잇지 못 했다."정원랑이 말 안하던가?""그럴리가요. 정말 놀랐어요. 공동부근서 난리법석이라고 잠깐 와봤더니... 당신이 와있었고... 그리고..."주변을 둘러보니 정말이지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하후란과 용상이 있던 자리 주변에는 사방팔방으로 피가 낭자하고 시체가 이리저리 널부러져 있고 피냄새를 맡고 들어온 짐승들이 여기저기서 식사를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이 아이들이 이정도로 해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정말 강한 후배들이군요.""음... 대충 헤아리니 총 합해서 팔백구는 되어보이는데 어떻게 이리 버틴건지 용하오. 마치 이 둘은... 무쌍과도 같군.""지금 그런 말이 나오다니... 역시 은퇴했어도 뼛속까지 무림인이군요?""그러는 당신도 궁주 아니오?""맞습니다. 하지만 전, 다떠나서 상아의 보호자이기도 합니다만."그저 고개를 숙여 땅만 바라보았다."......아비로서 부끄럽군.""알면 아비노릇 좀 하세요.""거참... 상아 엄마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그는 용상과 하후란을 잘 눕혀놓고는 손을 털고는 일어섰다."그냥 가시게요?""살아있으니 됐소. 상아와 이세상에 있어서, 나는 어차피 죽은 존재니까 굳이 혼란스럽게 하고 싶지는 않군. 당신이 데려가겠소?""아니오. 저는 이 주변을 좀 더 살피려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데려갈 사람은 따로 있어보이니..."그가 이자리에 도착하기 전에 숨 가쁘게 오던 두 인물이 떠올랐다."아... 그들이 거의 다 도착 한 것인가?""바로 앞이에요. 저는 빠지겠으니 나중에 볼 수 있으면 보시는 걸로..."거적대기의 남자는 말 끝을 흐렸다."그... 인간도는 꼭 해야겠소?"그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는 잠시 생각에 빠진듯 멈춰섰다."......제 입장은 정원랑과도 같습니다. 단지 제가 나설 차례가 오지는 않았으면 합니다만... 조만간 단판지으려고 합니다."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머뭇거렸다."영향... 난가자는..."듣기 안 좋은 이야기..."그만!! 그 사람 이야기는 하지맙시다. 이미 때는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나 죽은 사람이 관여할 일은 아닙니다. 입방정 그만 부리시지요."어쩔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역시 사건은 흘러가도록 놔두어야 하는 것이 죽은 자가 할 일이라는 것을 떠올렸다."후우... 알겠소. 그럼 이만 가리다. 뒷일은... 부탁하오."그녀는 그렇게 가버린 용상의 아비를 뒤로 하고는 용상에게 다가가 이마를 쓰다듬어 올렸다. 상처가 이리저리 있었고, 그 고운 얼굴이 헤진 모습을 보고는 눈앞이 뿌옇게 번졌다. 손에 난 상처도 가슴이 미어져 왔으니, 과연 그녀가 스스로 용상의 어미라 자신할 만 했다."궁주. 상 사매와 탈백유란은 저분들께 맡기시렵니까?"용상의 얼굴을 어루만지고는 옷가지를 정돈하고 일어섰다."설아야. 서하 쪽으로 가자꾸나. 이 둘은 그분들에게 맡기고.""그쪽의 동향을 살피려는 겁니까?""내 생각에 행화림과는 별 인연이 없을거라 보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다.""네, 궁주."돌아가려던 찰나 하후란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탈백유란이라... 무슨 인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아에게 든든한 후원자가 생겼구나.""그 여마두라고 불리는 자가 상 사매를 위해 희생하다니... 여마두의 이명은 그냥 겉으로만 보이는 걸까요?"그녀는 하후란의 용모를 이리저리 살펴보았고,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빠졌다."뭐,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 그녀의 과거는 깊어보이는 구나. 상시 우산이며, 어두운 눈매하며... 부디 스스로가 좋지않은 선택은 저지르지 않았으면 하지만..."그녀들은 신호탄 한 개를 터뜨리고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응? 대사형! 저기 신호가 올라왔습니다!""크윽... 저쪽인가? 그나저나 이곳은 대체..."조활이 도착한 장소는 역시나 피와 시체가 낭자한 곳이었다. 주인잃은 팔이 여기저기, 다리가 여기저기, 몸을 잃은 머리가 나뭇가지에 전시되어있기도 한 참혹한 현장에 도착하니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활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키고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일단 신호탄이 올려진 방향으로 달려갔다."어? 사부님!!""사, 사부님?! 사, 상 누님!?"둘은 아비규환의 참상 속 마른 바닥위의 한 자리에 곱게 누워 있었고 그간의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던 모습이 얼굴과 복장에 처절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조활은 서둘러 둘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호흡과 맥이 정상적으로 순환하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후우... 정말이지... 다행이야...""끄으으흡! 사부님... 흑흑."번소천은 하후란의 얼굴에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울어재꼈다. 그녀의 눈물을 느낀 것일까."후우... 누가 이리 우느냐... 시끄럽구나..."하후란이 깨어났다."사부님!!""스, 스승님!!"둘은 그저 하후란을 끌어안았고 서로 울기에 바빴다."아, 아야야. 아프구나. 뭐냐, 소언, 조활. 어떻게 온게야?"조활은 그녀를 안고는 아이처럼 울었다. 하후란은 그런 그의 모습에 잠시 놀랐지만, 이 모습을 보고 과연 누가 걱정하지 않을까 싶으니 그저 둘의 머리를 쓰다듬을 뿐."제길... 제길... 제발 저를 두고 떠나가지 마세요... 이제는... 이제는 더 이상 혼자는 싫습니다... 나를 남겨두고 가지마세요..."태어났을 때 부터 혼자였던 조활의 한이 맺힌 이야기였다. 그것을 어렴풋이 느꼈던 하후란은 많은 생각이 오갔다."윽...!""스승님 왜 그러세요?!""거참... 새삼스럽게 굴지마라. 아무래도 왼팔이 부러진것 같다. 감각이 없구나.""어, 어서 근처 객잔으로 가시지요. 제가 의술을 익혀 어느정도 알고있으니 서둘러 응급처치라도 해야겠습니다.""후후... 녀석. 의술까지 터득했더냐. 괘씸하구나. 나는 걸을 수 있으니 소언이가 날 부축하고, 조활이 상아를 업고 가자꾸나.""그러고보니... 상 누님을 아십니까? 같이 계신 것도 그렇고..."하후란은 번소천의 부축을 받고 살며시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후후후... 말하자면 길다."용란무쌍전 (9) 끝.
안녕하세요
드디어 완결입니다.
다음은 뒷이야기(에필로그)로 뵙겠습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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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면서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이었습니다. 얼음꽃도 그랬고. 아직 뒷이야기 남았으니까 전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 25.02.07 19:00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