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독님. 당신……”
안 돼. 참아야해. 침착해야해. 욕설은 하지 말자. 품의 없으니까. 상대방의 기분도 나빠지잖아. 더군다나 이건 공식회선야. 기록에 남는다고. 그리고 상대도 지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고 있잖아. 이미 최고속도로 달리는 우주선의 출력을 높여봤자 속도가 빨라지기는커녕 우주선이 터진다고. 마지막으로 기억해. 지금 내 앞에 선 남자는 우리 업계에서 제일 뛰어나고 제일 흉흉한 남자다.
무패의 제독, 전함 사냥꾼, 알클리아드 전역의 영웅, 함대전의 황제. 인본주의자의 탈을 쓴 학살자.
‘야누스’ 레마로 리스티 제독.
“쳐 돌으셨습니까!”
아아. 결국 터트리고 말았다. 나에겐 불가항력이었다.
“제독님! 제독님! 제독님!”
나는 연거푸 제독님을 외친다음에 심호흡을 했다. 심호흡을 하니 흥분이 가라앉았다. 욕설대신 비꼬기를 할 정도로는.
“어떤 미친놈이 웜홀 안정기에다가 전함을 꼬라박아서 벌금을 물게 되었다는 뉴스가 떴을 때,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고의적이지 않는 한 그 커다란 전함을 안정기에다가 꼬라박을 수 없거든. 그런데 나는 고의로 전함을 안정기에다가 꼬라박을 만한 사람을 하나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사람이 그 웜홀 안정기 근처에서 작전을 수행 중이었거든요.”
레마로 제독도 알고 있었다. 레마로 제독은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용병업계의 전설을 세치 혀로 주눅이 들게 만들었으니 뿌듯한 감정이 생겨야하겠지만 나는 긍정적인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번 사태는 제독과 나 둘 다 패배자였으니까. 확실하게 말하자면 제독과 내가 공통적으로 소속된 집단 전체의 패배였으니까.
“그런데 뉴스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벌금 고지서가 날아와서 저의 걱정이 사실이라고 알려주더군요. 벌금이 얼만 줄 아십니까?”
몰라서 묻는 질문은 아니다. 우리 둘 다 그 벌금이 얼만 줄 알고 있었다.
“씨발! 94억 클랑! 씨발!”
나는 컴퓨터를 조작해서 카탈로그를 하나 띄었다. 전함성애자들이 본다면 침을 질질 흘리면서 쳐다볼 잘 빠진 전함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보이시죠? 엘씨 사에서 나온 최신형 전함. 승무원 총원 30명, 고중력생성포에 무인기 조종모듈, 중력장 탐지기, 중력장 교란기, 반질량 발생기, 반사판 엔진, 동시성 통신기 etc! etc! etc! 이렇게 빵빵한 장비를 갖춘 전함이 얼만 줄 알아? 20억! 씨발! 제독님이 날린 돈으로 그걸 4대나 사고 거기에 맞춰서 부가장비랑 인원을 고용할 수 있는 돈이라고! 중고품으로 산다고 치면 함대 하나 꾸릴 수 있는 돈! 조금만 더 와닿게 말해줘? 모든 수당을 합친 아저씨 평균 연봉이 2800만 클랑입니다! 아저씨가 씨발! 최상위 영점영영영영영영영영! 여섯 번만 더할게요. 영영영영영영!(1경 분의 1) 퍼센트 소득자인 제독님이 400년 동안 일만 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라고! 덤으로 내 연봉도 말해줘? 2만 클랑! 푸하하하하! 94억 클랑? 제가 4만7천 년을 일해야 모을 수 있는 돈이네? 아. 계산 실수. 47만 년. 뭐 이 정도의 계산실수는 용납되겠네. 내가 죽을 때까지 일해도 못 모을 돈이라는 의미로 본다면!”
너무 흥분한 나머지 반말과 존대를 섞어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반쯤은 의식하면서 하는 말투였다. 나는 지금 내 앞에 있는,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남자의 자존심을 엉망진창으로 난도질하고 싶었으니까.
“레마로 제독님! 씨발! 제독님! 제독님은 자주 까먹는 거 같은데 아저씨랑 저는 용병이에요! 용병! 씨발! 민간군사! 기업!에 소속된 회사원이라고! 94억 클랑을 당신이 혼자서 다 낼 수 있어? 아니잖아, 씨발!”
아직 서른도 안 된 애송이가 예순은 거뜬하게 넘긴 용병업계의 전설에게 욕설과 반말을 퍼붓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대령이고 레마로 제독은 제독이다! 하지만 레마로 제독은 잘못을 저질러서 혼이 나는 아이처럼 고개를 숙인 채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제독님이 작전을 수행하던 중에 실패해서 함대를 전부 잃고 전사했다면 슬퍼하고 안타까워할 망정 화는 안 났을 겁니다! 그리고 그게 더 싸! 아아아아아악!!”
나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악을 썼다. 위가 욱신욱신한 건 기분탓이 아닐 것이다. 아, 아니 심인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탓이 맞겠다.
“씨이바알! 고작 미인간(未人間 : 인간이 아닌 인간) 천 명 살리겠다고 94억 클랑을 날려!?”
“고작?”
처음으로 레마로 제독이 반응했다. 레마로 제독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맙소사. 차가운 분노가 제독의 갈색 눈동자 안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고작 천 명이라고 했나?”
분노를 억누른 차가운 목소리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는 공포감 외에도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그래. 내가 아는 야누스 레마로 리스티 제독의 모습이다. 자신에 대한 모욕은 참아도 미인간 1000명의 생명을 경시하는 발언에 차갑게 화를 내는. 내가 이 모습을 보고 용병업계에 뛰어들었지.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 감격할 수 없다고, 이 아저씨야!
“씨발! 고작 천 명이죠! 그 치들 전원이 평생 동안 숨만 쉬고 돈만 모아도 1억을 못 모아요, 아저씨! 아저씨의 취미 때문에 우리 용병대는! 씨발! 파산이라고!”
파산이라는 말이 내 혓바닥에 오르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견실했던 나의 직장은 순식간에 부실기업이 되어버렸다. 94억 클랑이라는 벌금은 그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생명을 뭐라……”
나는 레마로 제독의 말을 끊었다. 다른 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난 몰라! 씨발! 우리 조상님들이 지구에서만 기어다닐 때도 1000명 죽는 건 일상다반사인데! 지금 시대야 말할 것도 없지! 그리고 까놓고 말해서 그것들이 인간이에요? 미인간입니다! 미인간! 인간이 아닌 인간! 지금 뉴스 몇 개 보여드려요? 오! 제독님께는 익숙한 곳이네요. 알클리아드 행성계 파레프 행성에서 대량 학살이 일어났다는 뉴스가 나오네요. 우주 표준시로 82시간 전에 일어난 일이군요. 희생자의 수는 어림잡아 98만명. 안 가세요? 구해야죠. 알클리아드의 영웅이 이번엔 알클리아드의 구원자가 되겠네요. 또 볼까요? 사라만드라 행성계의 구할라 사의 우주선 공장에서 테러가 일어나서 6만 명이 죽었네요? 안 가세요? 그리고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후사드 행성계의 스베리 행성에서 침략이 일어났네요. 우리들한테도 의뢰가 들어왔네요. 지금이라도 수임할까요?”
“대령!”
평소 큰 소리를 낸 적이 없던 레마로 제독이 고함을 질렀다. 내가 그의 자존심을 벅벅 긁어 결국 화를 내게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뿌듯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울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울었다.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눈앞이 흐릿하다. 나는 얼굴을 가렸다. 손사이로 눈물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제독님! 오! 나의 제독님! 댁은 애가 아니에요. 사람의 목숨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다는 인본주의적인 이상론은 댁의 취미로 끝내줘요, 제발.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들 같은 온전한 인간이 아니에요! 우리가 작전 중에 미인간을 살해하게 될 때에 배상금으로 지급하는 돈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천 클랑 밖에 안 됩니다. 똑똑한 사람들이 온갖 수학적인 잣대를 가지고 미인간의 생명에 매긴 가치에요. 당신이 살려준 평범한 미인간은 그 정도 밖에 안 됩니다. 94억이 얼마나 큰돈인지 계산이 안 되십니까? 보험회사 식으로 좆나 단순하게 계산하면 940만 명분의 돈입니다! 알클리아드 행성계 파레프 행성에서 학살이 일어난다고 했을 때 1억만 뇌물로 줘도 10만명은 살릴 수 있습니다. 협상만 잘하면 98만 명 전원도요. 물론 그 병신들은 협상으로 얻은 1억 클랑을 써서 더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겠죠. 94억을 쓰는 다른 방법은 어떻습니까? 94억 클랑으로 게릴라 함대를 꾸려서 댁이 저 학살자들의 속을 벅벅 긁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학살이 끝나기 전에는 우리도 멈추지 않겠다.’라는 말도 함께하면서요. 94억 클랑이면 천 명 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당신의 2800만 클랑에 달하는 수입 대부분도 그쪽으로 쓰고 있으니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웜홀 안정기에 전함을 들이박을 때 그 계산은 못하셨습니까?”
“그건 단순 계산……”
나는 또 다시 레마로 제독의 말을 끊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비아냥으로.
“당신은 그 단순 계산도 못하고요.”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나는 30만 파섹에 달하는 거리만큼 떨어져있지만 그 소리는 생생하게 들렸다.
94억이란 숫자가 머릿속을 떠다녔다. 94억. 94억. 94억. 94억. 94억. 그 돈이면 새로운 장비, 새로운 배, 새로운 프로그램들을 달라고 나를 달달 볶아대는 제독과 함장들의 아우성을 잠재우고도 반 이상이 남는 돈이다. 그 요청 중에 내가 방금 거론한 엘씨 사의 최신형 전함이 끼어있다면 반 조금 못 미치게 남겠지. 그래도 40억이 넘게 남을 것이다. 그 돈이면……씨발!
나는 내 눈을 가리고 있는 손을 치웠다. 레마로 제독은 어느새 다시 혼이 나는 꼬마 모드로 변해있었다. 뭐라고 변명 해줘요. 아니면 계급과 직책으로 윽박지르기라도 하던가. 야누스 레마로 리스티 제독. 내가 당신 때문에 이 업계에 뛰어들었는데. 고작 행정보급장교 나부랭이한테 죄지은 어린아이처럼 굴지 말아줘요.
하지만 레마로 제독은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그는 그 정도의 잘못을 저지른 거다.
나는 눈물을 삼키고 코를 풀었다. 감정을 쏟아낸 덕분에 그 자리에 이성이 슬그머니 자리잡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제독님. 아마 빠른 시일 내에 제독 회의가 열릴 겁니다. 준비해주십시오.”
“……알겠다, 대령.”
‘저의 무례는 용서해주십시오.’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이 무례는 오늘이 마지막이 아닐 것 같았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분명히 그럴 것이다.
레마로 제독은 가루가 되어서 흩어지더니 그 가루들은 그대로 허공에 녹아 사라졌다. 나와의 통신이 끝나고 그는 함대의 기함에서 멋드러진 제독모를 벗고 자신의 잘못을 곱씹으면서 한숨을 내쉬겠지.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손해를 최소화할 방법은 없었는지. 하지만 자신이 1000명의 미인간을 살렸다는 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야누스’ 레마로 리스티라는 남자는 그런 남자였다.
그리고 나는……
“끝났어, 주인?”
의자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고 미쳐 흘리지 못한 나머지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나의 애완고양이가 나에게 다가와 무릎에 엎드렸다.
“……응.”
“울지마, 주인.”
차가운 손이 내 턱에 맺힌 눈물을 닦아낸다. 나는 울음을 멈추려고 했으나 쉽지 않았다. 한 번 터진 울음보는 쉽게 수습되지 않았다. 고양이가 내 무릎위에 앉았다. 할짝하고 축축하고 꺼끌꺼끌한 혀가 내 턱에 고인 눈물을 핥았다.
“울지마.”
하지만 나는 내 고양이의 말처럼 할 수 없었다. 나는 고양이를 끌어안고는 고양이의 커다란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고양이는 내가 우는 동안 내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고양이의 옷이 전부 젖어버리고, 내 눈에선 더 이상 눈물이 안 나오고, 목이 완전히 쉬어버릴 즘에야 나는 울음을 그칠 수 있었다. 고양이는 내가 울음을 그치자 물이 든 팩의 주둥이를 내 입가에 대었다. 내가 팩의 주둥이를 물자 고양이는 천천히 팩을 눌러 내가 물을 마실 수 있게 했다.
물을 마신 나는 다시 고양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비볐다. 다시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너무 오랫동안 울어서 다시 울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진이 빠졌기 때문이다.
“울지마.”
“안 울어.”
“울지마.”
계속 이러고 있다간 정말로 다시 울어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정말로 안 울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거의 검은색으로 보일정도로 짙은 갈색피부와 세로로 길쭉한 동공의 노란 눈동자, 4족 보행하는 작은 맹수의 귀가 달린 미녀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인간처럼 생겼지만 인간은 아니다. 진짜 인간이라면 이런 모습을 할 수가 없다. 자연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닌 유전자를 조합해서 세포 단계에서부터 만들어진 미인간이다.
“안 운다니까.”
고양이는 잠시 나와 눈을 마주치다가 내 눈가에 남은 눈물을 핥았다. 그리고 고양이는 말했다.
“내가 주인 울린 그 아저씨 없애줄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진짜로 뭐라고 말하는지 못 알아들었다. 잠시 후에 나는 고양이가 한 말을 이해하고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왜 안 돼?”
생명의 존귀함, 법의 엄중함, 복수의 무서움, 제독의 평소인품, 제독 살해의 난해함 같은 것들이 머릿속을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나 그 아저씨 좋아해.”
그렇다. 난 레마로 리스티 제독을 좋아한다. 동종업계에 일가를 이룬 사람에 대한 존경심 외에도 사적으로도 나는 여자로서 남자인 그에게 호감을 품고 있었다. 애정이라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서 난 레마로 제독을 온전히 좋아할 수도, 온전히 미워할 수도 없었다. 나는 제독이 저지른 짓 때문에 제독을 상처 입히기 위해서 폭언을 퍼붓고, 제독이 나의 폭언에 기가 죽는 모습에 슬퍼하는 그런 인간이다. 이번사태를 초래한 원수에게 퍼부었어야 할 분노는 미처 전부 쏟아내지 못하고 내 안에 남아 슬픔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레마로 제독은 이번 일로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이다. 용병대 내에서 입지는 엄청나게 줄어들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자신이 회사에 끼친 손해를 보상하기 위해서 무리한 짓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회사에 소속된 인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이직을 할 것이다. 침몰할 위험이 있는 배에 타고 있는 건 멍청한 행동일 테니까. 94억 클랑에 달하는 어뢰는 견실한 기업이라는 배를 침몰시킬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
나도 이직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견실한 민간군사기업에서 행정보급장교로 있던 인간이라면 어느 민간군사기업에서도 환영을 해줄 것이다. 실제로 뉴스가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벌금 고지서가 날아오기 전에 헤드헌터들이 나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하지만 난 이직을 하지 않을 것이다. 레마로 제독이 엄청난 짓을 저질렀지만 난 여전히 그를 좋아하니까. 앞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될 그를 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레마로 제독을 원망하면서 울음을 터트릴 것이다. 앞으로 그를 원망하지 않고 지탱해주기 위해서 지금 이 순간에 내 안에 남은 앙금을 전부 털어버릴 것이다.
나는 다시 고양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난 울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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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뭔 글을 써도 마음에 드는 글이 안나오네요.
다 때려치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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