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은 환호성과 중계석 소리가 뒤섞여 그대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소년은 벅찬 가슴을 안고 화성 태백팀 전략실로 뛰어들었다.
--------------------------------------------
[2069년 4월17일 오후 7시54분]
간접 조명이 켜진 거실 탁자 옆으로 4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여인이 서 있다. 어두워서인지 그녀의 몸은 은은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조명이 아예 들지 않는 어두침침한 거실 구석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짙은 갈색의 1인용 쇼파가 있었다. 어둠 사이로 낮고 굵은 목소리가 울렸다.
“응, 그래…… 내일 승선해야 해.”
여인의 얼굴 위로 아쉬움이 스쳐지나간다.
“나린호 승무원만 하루 먼저 준비하는 거에요?”
여인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확인하듯 질문을 꺼냈다.
“그래. 원칙은 사흘 전부터 소집이지만, 그나마 특별히 하루 전으로 바뀌었어.”
쇼파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일어선다. 은은하게 빛나는 여인과 달리 그림자의 주인은 어둠 속에 묻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하루만 더 빨리 왔어도, 당신을 만날 시간이 있었을 텐데……”
여인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담겼다.
“하루만 지나면 만날 수 있는데 너무 조바심 내지는 마.”
굵은 목소리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4년만의 재회를 앞두고 하루 빨리 만나고 싶은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미안해요. 아이가 우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어요.”
여인이 고개를 푹 숙였다.
“녀석 마음도 이해해. 한창 때 4년을 떨어져 있던 아비보다 늘 볼 수 있었던 삼촌이 더 좋을 거야. 게다가 이번에 삼촌과 이별하면 언제 볼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으니 더 그럴 테지.”
그림자 속 인물이 여인을 향해 다가서며 말했다.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얼굴이 여인의 몸이 발하는 은은한 빛에 언뜻 비친다. 여인과 비슷한 연령 대로 보이는 중년 남자다.
“그나저나 짐은 잘 챙겼어?”
그의 질문에 여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포도선에 배정된 주소도 잘 확인했지?”
그는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재차 질문을 던졌다.
“확인 했어요. 6번 블록이에요. 6번 블록 4번길 21번지 404호.”
여인은 모으고 있던 손에서 카드를 꺼내 쥐어 또박 또박 소리내어 읽었다. 그녀의 대답이 그의 고개를 점점 무겁게 하는 듯 했다.
“미안해. 나린호 내부 배정을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는 바람에 5번 블록에서도 밀렸어.”
그는 고개를 푹 숙이고 면목없는 듯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에요. 5번 블록은 상점이나 쇼핑몰이 많아서 시끄럽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상점가보다 한적한 주택가를 좋아하는 거 알잖아요. 미안해 할 필요 없어요.”
그녀가 그를 달래며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고마워.”
그는 그녀의 대답이 너무 고마웠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낼 터전을 누추한 곳에 마련한 그의 무능력에도 그녀는 한 마디 불만이나 질책이 없었다.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자. 그럼 얼른 짐 싸야죠. 내일 가려면.”
기운을 붇돋아주고 싶었던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로 그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은 그저 허공을 통과해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알겠어. 그럼 내일 모레 만나.”
그가 애써 웃음 짓는다. 그녀가 짧게 “네”라고 답하며 손을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손짓이 좌우로 오갈 때마다 그녀의 몸이 점점 옅어진다. 이내 빛의 조각을 사방에 흩뿌리며 사라진다. 그녀가 있던 자리에 홀로그램으로 “실체화 영상 통화종료”라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그는 잠시동안 먹먹한 기분으로 그녀가 사라진 허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곧 그는 4년동안 익숙해진 거실의 적막을 깨달았다. 이제 하루만 더 버티면 되는데도 거실을 가득채운 침묵이 소름끼치도록 싫었다.
“정규방송 켜.”
그가 읊조리듯 나지막히 중얼거리자 거실 벽에 홀로그램 화면이 들어온다. 화면에 쓰인 “준비중”이라는 글씨가 거실 가운데로 둥실 날아올랐다.
그는 다시 거실 구석에 위치한 쇼파에 몸을 파묻었다. “준비중”이라는 글씨가 사라지고 반듯한 복장을 갖춘 남자가 나타난다. 뉴스 앵커다. 거실 가운데에 선 그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입을 떼었다.
“오늘의 주요 뉴스입니다. 오는 19일 화성에서 출발하는 가니메데행 이주선 포도선이 연일 화제입니다. 우주정거장 뭉게구름에 정박한 포도선 소식, 이주인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앵커가 사라지고 여성 기자가 나타났다. 그녀의 뒤로 우주 정거장 뭉게구름의 모습이 언뜻 비친다.
“포도선이 우주 정거장 뭉게구름에 도착했습니다. 뭉게구름은 지난 10일부터 화성 최외곽 궤도인 임시 궤도 89번을 부여받아 화성 외곽에 정박한 상태인데요. 보시는 것처럼 조금 전 오후 7시경에 도착한 포도선과 도킹을 한 상태입니다.”
기자의 손끝이 그녀의 뒤쪽 배경을 가리키자 배경이 순식간에 커진다. 기다란 원통형 우주정거장 옆으로 두 배는 더 큰 배가 붙어 있다. 6개의 원통형 블록을 붙이고 있는 모습이 마치 포도송이를 닮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 포도선이다.
“많은 분들이 포도선하면 4개의 블록이 붙어 있는 모습을 떠올리셨을 겁니다. 하지만 제작년인 2067년 10월, 가니메데 수송을 마친 포도선은 새롭게 확장공사에 돌입했는데요. 약 17개월 동안 대규모 개조를 통해 2개의 블록을 새로 추가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홀로그램 화면 속으로 포도선이 클로즈업되어 잡힌다. 6개의 원통형 블록 사이로 나린호가 눈에 띈다. 쇼파에서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앞으로도 지겹게 봐야할 녀석을 미리 보게 된 것이 몹시 언짢았다.
“겉모습 외에도 바뀐 것이 있는데요. 바로 포도선의 심장 역할을 하는 모선의 교체입니다. 그 동안 포도선의 줄기였던 세종호가 퇴역하고, 새롭게 나린호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포도선의 모함이 된 나린호는 미국에서 퇴역한 아메리칸 익스프레스호를 수입해 보수 개선한 배로 XD500급 함선으로 XD300급 세종호보다 출력이나 속도가 한층 개선된 모델입니다. 화성 이민국은 브리핑을 통해 이와 같은 변화가 가니메데 이주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것이라고 자신했습니다.”
‘그래봤자 남의 나라에서 퇴역한 오래된 배를 수입했을 뿐이고, 2개 블록을 더 달은 것도 기껏해봐야 불법 개조나 다름없는 짓이지.’
그는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포도선을 홍보하는 여기자를 외면했다. 블록을 두 개 추가할 필요가 있었을까? 사람을 더 태워서 이주시키겠다? 단지 화성 이민국의 숫자 놀음과 국제 사회를 향해 내세우는 허세일 뿐이다.
그는 포도선이 여섯개의 블록이 되면서 출력이 모자란 세종호를 버리고 나린호로 모함을 교체한 것이 마음에 썩 들지 않았다.
출력을 제외하고선 무엇하나 나을 것이 없었다. 선령으로도 세종호가 19년, 나린호가 38년으로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19년도 충분히 노후화된 배인데 낡아빠진 38살 배로 변경하면서 개선이라고 발표를 하다니. 거기다 여섯개 블록의 포도선은 나린호를 한계출력까지 올려야 겨우 운행이 가능한 것으로 우주 이주법상 명백한 불법이다. 관련법이 국회에서 개정에 들어갔다고 전해 들었지만, 그건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한 것이다.
그는 본인이 나린호의 기관장만 아니었다면 모두 대중에게 까발렸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홀로그램 화면에 다시 나타난 여기자를 바라보았다.
“포도선은 오는 19일 3만 5천 명의 이주민을 싣고 1년 동안 가니메데로 항해를 시작할 예정입니다. 우주 이주사에 새로운 역사를 쓸 포도선 앞에서 화성 뉴스 이주인이었습니다.”
여기자가 사라지고 그 자리로 앵커가 다시 나선다.
“이어서 방금 들어온 신나는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포뮬러 R-5615 화성 태백팀의 선현 선수가 14 라운드 경기에서 우승을 차지했다고 합니다. 우주정거장 푸른하늘에서 김상훈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쇼파에 파묻혀 있던 그가 용수철처럼 거실 가운데로 튀어나왔다. 그의 바로 앞에서 앵커가 사라지고 이번엔 남기자가 나타났다. 배경으로 현의 포뮬러 기체가 하얀 날개를 번쩍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말도 안돼…… 이 녀석 해냈구나.”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기체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오늘 이곳 푸른하늘에서 화성 태백팀이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 동안 지나치게 과감한 레이스로 빈축을 샀던 화성 태백팀의 선현 선수가 마지막 코너를 앞두고 드라마 같은 역전극을 일구어내며 그간의 오명을 씻어냈습니다.”
홀로그램 화면으로 현의 마지막 추월장면이 재현된다. 남자는 우두커니 서서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평상 시에 포뮬러 R-5615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도통 뭐가 굉장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우승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수상대에는 특이하게도 한 소년이 함께 섰는데요. 늘 기행을 많이 일삼던 선현 선수이기 때문에 그 답다는 평과 다른 선수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라는 평이 모두 나와 작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홀로그램 화면이 수상대에 올라선 현과 소년을 비추는 순간, 남자의 양쪽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다. 그가 4년간 그토록 보고 싶었던 한 소년이, 격무에 시달리며 홀로그램 통화도 제대로 못했던 그 소년이, 가상 홀로그램으로 그의 앞에 서 있다. 남자는 홀로그램 속으로 걸어들어가 환희로 가득찬 소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붉게 상기된 뺨을 한번 쓰다듬는다. 소년이 나오는 장면은 금새 끝나버리고 기자회견장에서 인터뷰를 진행 중인 현의 모습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남자의 손길은 아쉬움이 남았는지 허공에서 갈 곳을 못찾고 머뭇거렸다.
“마지막으로 선현 선수의 수상 소감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우주정거장 푸른 하늘에서 화성 뉴스 김상훈이었습니다.”
기자가 화면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자 현의 모습이 클로즈 업되며 거실을 가득 채운다.
“아… 우선 저를 도와준 스태프들 그리고 감독님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미건조한 표정의 현이 감정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말투로 공치사를 한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 주먹만한 큐빅이 박힌 트로피를 들어올리며 세리모니를 하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파란 큐빅을 트로피에서 떼어냈다.
“오늘의 승리를 안겨준 제 승리의 아이콘에게 이것을 선물하겠습니다.”
현이 손을 뻗어 소년이 있는 방향으로 큐빅을 내밀었다.
“로아야. 받으렴.”
남자는 아들이 기자들 앞을 가로질러 현에게 다가가 큐빅을 받아드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큐빅을 받아들은 로아의 모습이 순식간에 지나고 앵커가 다시 화면에 나타난다.
“정규방송 꺼.”
남자는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쇼파에 다시금 몸을 던졌다.
거실을 어둠이 채운다. 그것도 잠시 홀로그램 메시지가 거실에 떠올랐다.
- 착신 전화 1통이 있습니다. “기관실 꼬꼬마”
“연결. 음성 통화로.”
남자는 귀찮은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 음성 통화 연결되었습니다.
“제헌 아찌!”
통화 연결 메시지가 떠오르자마자 발랄한 목소리가 요란하게 방 안에 울린다.
“후이잉? 뭐야. 나 분명히 홀로그램 통화 연결했는데?”
실망 가득한 목소리에 남자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뜩이나 심란한데 피곤하다.
“아까운 내 통화료, 힝. 음성통화로 받아도 나는 홀로그램 통화료로 나간단 말이에요. 여보세요? 아아? 여보세요? 제헌 아저씨 듣고 있어요?”
끈임없이 떠드는 목소리에 골이 띵하다고 느낀 남자가 참다 못해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쏘아붙인다.
“시끄러워. 골 아프니까 조용히 말해.”
“아! 있다 있다! 전화 받아놓고 없는 척하다니!”
남자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끄럽고 왜 전화했어? 내일 배에서 볼 거 아냐?”
“아! 냉정하다! 제헌 아저씨 완전 나쁘다!”
남자는 더 이상 말을 받아주고 싶지 않았다.
“딴소리 말고 특별히 할 말 없으면 끊는다. 그리고 내일부턴 기관장이라고 꼬박 꼬박 불러라. 나 네 친구 아니다.”
차가운 남자의 말에 상대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끊는다.”
“네.”
시무룩해진 목소리가 살짝 마음에 걸렸지만 남자는 미련 없이 전화를 끊었다.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