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빨리와여 홀로그램 행사 늦는다구여!!"
"알았다. 재촉한다고 호버체어가 빨리 움직이냐 쯧쯔..."
"그러니까 모노레일택시로 가자고 했잖아요! 그거 타면 여기까지 오분이면 오는데!"
"할아부지는 그거 못타. 너무 빨라서 할아부지 멀미나."
"에이..."
"얘끼... 욘석아! 뻐스가 얼마나 좋으냐! 요즘 뻐스는 호버뻐스라 흔들리지도 않지 엔진도 핵융합 엔진이지..."
"그럼 뭐해요! 느리잖아요! 서울역에서 학여울까지 십분이나 걸리잖아요오!"
"이녀석이... 야 할아부지가 너만했을때 서코다닐때는 말이여, 어? 서울역에서 학여울까지 사람 많은 지하철에 치여가매 흔들려가매 삼십분 사십분은 족히 걸렸어 이눔아"
"말도 안되! 그렇게 느린게 뭐가 대중교통이에요ㅋㅋㅋ"
"진짜래두..."
행사장엔 불이 번쩍번쩍하다. 30미터 되는 경비로봇 대군주가 유유히 떠다니며 10초 간격으로 광고를 쏘아대고 세텍이 철거되고 그 위에 세워진 (주)피넛의 컨벤션 센터는 정 12각형 유리기둥모양의 자태를 뽐내며 분당 회전속도 30으로 돌아가며 반사된 빛줄기를 사방에 뿌리고 있다. 박영감에겐 마냥 신기한 풍경이다. 박영감이 태어났을때만 하더라도 삐삐를 들고 다녔는데 이젠 골전도 칩으로 목소리로 된 메시지가 아니라 의미 자체를 전송하는 기계뇌의 시대가 되었다. 박영감은 아직도 수화기가 그리웠다. 스마트폰을 터치할때 액정위로 미끄러지는 감촉이 그리웠고 귓바퀴를 타고 들어왔던 발신음이 그리웠다. 생각 자체가 뇌를 비집고 들어온다는 것은 박영감에겐 아직도 불쾌한 감각이었다. 에초에 그놈의 골전도칩은 심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던 박영감이었다. 골전도칩의 네트워크를 담당하는 통신사의 직원인 박영감의 아들은 박영감이 행여나 실종되었거나 갑작스러운 문제가 생겼을때 골전도 칩이 없으면 불편하고 난처하다고 부득부득 박영감을 설득해서 골전도칩 이식기를 뒤통수에 붙이게 만들었다.
"지 애비가 어디 돌아다는거 자체가 성가시다는 거지 옌장할 애새끼들..."
박영감은 자기가 아들의 소유물 취급 당하는 것 같아 몹시 불쾌했다. 박영감이 늙어서 달라진거라곤 밤잠이 없어졌다는 것과 사고로 하반신을 못쓴다는 것밖에 없는데 아들은 자신을 갓난쟁이같이 대하지 않는가.
"아버지 사라지시면 저 정말 곤란해요. 그러니까 이식 합시다!"
"게을러 빠진 새끼 같으니라구..."
내가 사라지면 어디로 사라지겠는가? 거동 불편한 노인이 다니는 곳이라곤 동네의 물리치료실과 홀로그램 게이트볼 경기장 뿐인데 어련히 그런데 가만히 않있을까, 몇십미터 걸어서 슬쩍 들어다 보기만 해도 아버지를 쉬 찾는데 그 시간마저 아까운 게으름뱅이가 아들이다. 이것이 박영감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박영감은 골전도칩을 조절할 줄 몰라서 추억의 쩡을 모아둔 USB를 며느리 몰래 열어보다가 수시로 쩡나눔을 해버리곤 했던것이다.
"아아아앙 주인님 왜 이제 오셨어요!"
박영감의 투덜거림은 교태넘치는 목소리 때문에 멈추었다. 고개를 돌리자 늘씬한 금발 미녀가 살갑게 박영감의 손자에게 인사를 건내고 있었다. 가슴을 과도하게 들이밀고 흔들어 대는 꼴이 박영감의 눈에 거슬렸다. 게다가
"아가씨는 안추워요? 뭘좀 걸치지 그랴?"
이 아가씨는 가슴의 반만 가리는 짧은 세일러 복에 치마 없이 끈팬티만 입고 있었다. 대체 어느 정신나간 처자가 한겨울에 빌딩풍이 매섭게 부는 서울 한복판에서 나노로봇 다운 자켓 한 벌 없이 저러고 있느냔 말이냐! 박영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가씨는 과도한 동작으로 고맙다고 하며 큰 가슴과 엉덩이를 흔들어 댔다. 박영감은 뮤직뱅크 뉴센츄리를 보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였다. 박영감의 손주가 아가씨의 가슴을 움켜잡고 마구 주물러대는것이 아닌가?
"이놈새끼 너... 너 지금 뭐하는거야!"
손자는 박영감의 호통이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아가씨의 여기저기를 주무르고 매만지기 시작했다. 손주의 손놀림은 집요하기 짝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아가씨는 생글생글 웃으며 더 잘 만질수 있게 여기저기 자세를 바꿔주기까지 하였고 주변사람들은 그걸 구경만 하고 있었다. 상식밖의 일에 박영감은 눈이 튀어나올것만 같았다. 박영감은 화장실갈때 쓰는 로봇팔로 손주의 등짝을 후려쳤다.
"아! 할아부지 뭐에요!"
"야 이눔새끼야! 내가 너럴 그렇게 가르쳤냐! 니 애비가 널 그렇게 가르쳤냐! 아무리 세상이 말세여도 그렇지 상도덕 자체를 까먹은거냐! 어델 남의 집 처자 몸뚱이를 떡주무르듯이 하고도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손주의 황당하다는 표정을 무시하며 박영감은 호버체어의 머리를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 너들도 그렇지, 아가씨가 이렇게 당하고 앉았는데 실실 쪼개면서 구경만 하고 있어? 어!"
"아 할아버지!"
"놔라 이눔아 너 무릎꿇고 저 아가씨한테 싹싹 빌 때꺼정은 너 내 손주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오랫만에 소리를 질러 얼굴이 붉어진 박영감은 어떤 정신나간놈이 쳐웃냐고. 쳐웃지말라고 쏘아붙이기 위해 숨을 가다듬고 있는데 손주가 박영감의 호버 체어를 우악스럽게 밀고 사람들 무리를 지나쳐 멀리 가버렸다.
"할아버지 바보야?"
"뭔소리야 이눔아! 니눔이 지금 무슨"
"저거 리얼돌이야 리얼돌!"
"리얼 뭐?"
박영감이 리얼돌을 모를리가 없었다. 젊은시절 유게를 할때 침흘리며 바라보던 리얼돌 아닌가.
"리얼돌이라고 리얼돌! 피규어라고오오! 할아버지 괜히 대려왔어! 지인들 앞에서 망신시키고 진짜!
박영감은 그제서야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저 아가씨가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구나. 너무나 사실적으로 생겨서 내가 사람이라고 생각한거였구나. 손주놈은 그냥 인형을 살펴보고 있었던것 뿐이고. 박영감이 젊었을때 본 리얼 돌은 사람같이 생겼지만 움직이지도 않았고 그리고 정말로 인형처럼 보였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사람이랑 구분이 안갈정도로 발전을 했다는 것이 박영감의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평소에 지 어미가 몸에 안좋다고 못먹게 한 고코카인음료를 손주에게 쥐여주고 나서야 박영감은 손주의 이끌림에 따라 행사장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회전하는 12각 유리기둥 모양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상상을 초월할정도로 넓은 공간이 나왔다. 건물 벽과 바닥을 전부 신소재 유리로 만든 건물이었다. 신소재 유리는 어느 한면으로 바라보면 유리가 있다는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투명한 동시에 반대편의 사물을 보지 못하게 하는 혁신적인 물건이었다. 위층에 사무용 철체 캐비넷이 꽉꽉 들어차 있어도 아래층에서 캐비넷의 존재를 전혀 모른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굴절을 하는 대단한 유리다. 최상층엔 커다란 생체발광다이오드가 인공태양의 역할을 하고 있었고 12각 기둥 내에서 난반사된 빛줄기 때문에 마치 빛의 안개로 가득찬 공간에 서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공중에는 여러 난초들이 노란 뿌리를 수염처럼 늘어뜨리고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이 박영감에겐 경이로운 것이었다. 자신의 삶 속에서 기술의 발전을 체험해온 박영감이었지만 요즘들어선 과거에 있다가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온듯한 느낌을 자주 받았다. 하지만 행사장에 있는 누구도 이 아름다운 풍경을 구경하지 않았다.
"얘 손목 도장은 안찍어주냐?"
"뭔 도장이요?"
"나 젋어서 왔을땐 입장하는 사람들 손등이나 손목에 도장을 찍어줬어요. 입장권을 샀나 안샀나 구분하려고!"
"에이 할아버지도 참! 지금이 어느땐데 피부 상하게 그런걸해요! 완전 고대 이집트인줄 알았네!"
"그럼 그냥 들어가도 되는거야?"
"아니에요 할아버지. 입장권을 안사면 골전도칩이 시각을 차단해요"
소름끼치는 이야기였다.
행사장 내부는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손주는 기특하게도 박영감의 호버체어를 잘 몰고다니며 박영감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설명해주었다. 박영감은 그런 손주가 기특했지만 설명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링크를 골전도칩으로 전송해대는 바람에 박영감의 작은 골이 깨질 지경이었다. 손주가 동인지를 들여다보느라 한참 조용해졌을때야 박영감은 링크를 전부 지워버릴 수 있었다. 박영감은 그제서야 숨을 돌리고 행사장 부스들을 천천히 구경했다. 부스 배치는 박영감이 현역 오타쿠였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스 위에 떠있는 부스가 몇개 더 있었다는것 빼곤. 부스마다 형형색색의 홀로그램이 튀어나와 손님을 유혹하고 골전도칩을 통해 쉴새없이 광고트윗을 날려대고 있었다. 공중에 떠있는 부스엔 반라의 여자가 밧줄에 묶인 홀로그램이 있는걸로 보아 성인지를 판매하는 곳인듯 했다.
"할아버지 이거 봐!"
"뭔데 할아부지를 불러"
손주가 내민건 손가락 두마디 길이의 쇠막대기였다. 박영감은 어리둥절했다.
"읽어봐!"
"뭘 읽어?"
"아유 할아버지 스캐너좀 켜요!"
"아 그러니까 이게 뭔데!"
"할아버지 좋아하는거야. 아마기 브릴리언트 파크 동인지라고!"
추억속의 이름에 박영감은 웃음이 안터질수가 없었다. 벌써 몇년전인지 까마득하다. 안타깝게도 박영감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거라곤 작품의 제목과 가슴이 큰 여자가 나왔다는것 밖엔 없었다. 비실비실 웃고만 있는 박영감이 답답했는지 손자는 다짜고짜 쇠막대를 박영감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살에 차가운 금속이 붙는 느낌이 나는 순간,
박영감은 놀이공원 한복판에 있었다.
박영감은 어안이 벙벙했다. 정말 놀이공원, 박영감이 어린시절 다녔던 놀이공원의 모습 그대로였다. 어린아이들이 엄마 손을 잡아끌고 어디론가 가는 모습이 보였고 롤러코스터 옆에서 다리가 풀린 남자친구의 등을 두들겨주는 여자의 모습도 보였다. 포장마차의 츄러스. 퍼레이드를 알리는 안내음. 자이로드롭이 떨어지면서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소리. 박영감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금방이고 눈물이 날것같이 콧등이 시큰거렸고 온몸이 덜덜 떨렸다.
"여기 가만히 서서 뭐해!"
누군가 박영감의 어깨를 건드렸다. 박영감은 목을 돌려 뒤를 보려고 했는데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공간 전체가 회전하며 뒤편의 모습이 보였다. 박영감은 적잖이 당황했다. 눈앞에 나타난건 가슴이 큰 여자였다. 박영감은 애써 여자의 이름이 센토 뭐였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센토는 무엇인가를 계속 말했다. 박영감이 대답을 하려 했지만 박영감의 목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고 박영감의 몸속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센토는 그 목소리와 대활를 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박영감은 이것이 동인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쇠막대가 살에 닿는 순간 무슨 전기신호를 흘리고 그걸 골전도 칩이 받아서 뇌속에 영상을 보내는 모양이라고 박영감은 추측했다. 박영감의 향수는 성냥불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나서 바라본 놀이공원은 어딘가 어색했고 여기저기 폴리곤이 튀어나온부분이 모였다.
"요즘 동인지는 이런식으로 만드는 모양이지? 넘겨보는 재미는 없겠군..."
갑자기 미사일이 날아오더니 푸드코트 건물을 순식간에 불덩이로 만들어버렸고 뒤이에 포격이 쏟아졌다. 분수대가 터져 물이 사방으로 튀고 나무가 불타 불이 붙은 나뭇잎을 마구 뿌려댔다. 놀이공원에 있던 사람의 반수가 건물의 잔해에 깔렸다. 여기저기 다친사람들이 신음하고 있었고 그중 몇은 몸에 불이 붙어 사방으로 뛰어다니는데 지옥이 따로 없었다. 공격은 거세지고 로봇까지 어디선가 튀어나왔는데 눈앞의 센토는 걱정하는 표정을 짓는것 말고 다른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아마츄어라 그런이 이런부분이 좀 어설프군"
그러더니 땅이 갈라지며 로봇이 튀어나오고 우주로 가고 지구가 불타고 레이져를 마구 뿜어대는 정신없는 장면이 계속됬다. 박영감은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목성이 쪼개지기 직전에 눈앞엔 샘플은 여기까지라는 글자가 우주를 가르며 나타났고 그제서야 양 다리를 기계로 바꾸고 센토와 함께 우주를 호령하는 해적이 된 박영감이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박영감은 호버체어의 목받이에 머리를 늘어뜨리고 졸고 있었다. 손주는 그 옆에서 피규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크기는 사람 손바닥 만한게 눈 코 입 손가락이 다 있고 숨쉬고 걸어다니고 말도 했다. 손주의 손이 살을 더듬을때마다 피규어는 격한 고통을 호소했다. 손주는 주로 치마를 들춰보며 그런 반응을 재밌어하고 있었다.
"할아버지 오늘 어땠어?"
"정신 하나도 없더라"
"그래도 재밌었지?"
"그래 재밌네"
아니다 거짓말이다. 재미를 느낄 정신적 여유조차가 없었다. 홀로그램은 각막을 째는듯이 번쩍거렸고 음악은 과도하게 컸으며 뭐하나 얌전한게 없었다. 어딘가 가학적이고 과장되있었다. 심지어 피규어의 가슴조차 피규어 머리의 세 배였다.
"할아부지"
"왜"
"고 코카인음료 먹은거 엄마한테 말하지마"
"뭔데 그게"
"아까 샀던 레드식스 있잖아."
"아 그거. 알겠다. 말 안할게"
차창밖으론 석양이 보이는듯 했다. 해가 홍수방지를 위해 넣은 반고체 수분 볼로 가득차서 풀장처럼 보이는 한강에 주홍빛을 뿌렸다. 개구리알같은 수분 볼이 주홍빛을 받아 반짝였다. 손주는 촌놈처럼 예쁘단말을 연신 반복했지만 박영감은 흐르는 강물위에 비치는 잔영을 보지 못한다는게 아쉬웠다. 이내 한강의 가로등이 켜지고 다시 낮처럼 밝아졌다. 가로등 빛이 너무 밝아 수분 볼 위의 주홍빛은 사라져버렸다. 박영감은 집으로 돌가가기까지 20초도 남지 않아 눈 붙일 시간도 마련해주지 않는 마하택시에 대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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