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9년 4월18일 오전 9시54분]
흙먼지가 사방으로 흩어져 날리고 고열에 달궈진 지표의 공기가 일렁인다. 맑은 물 속에 떨어뜨린 염색약이 천천히 퍼져나가듯 붉은 흙먼지 구름이 지면을 타고 확산된다.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흙구름 속에 숨어 있던 하얀 머리가 붉은 파도 사이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윽고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하얀 선체가 햇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인다. 매끄러운 하얀 유선형의 몸체를 타고 붉은 구름이 흘러내린다. 마침내 붉게 춤추는 파도 사이로 노란 불꽃이 모습을 드러내자 지표에서 출렁이던 붉은 흙먼지의 바다는 양털마냥 사방으로 뭉텅이가 되어 찢겨져 나간다.
“전원 담당 구역 확인 보고.”
선장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전달된다. 늘 청각으로 직접 전달되는 소리라는 신호만 듣던 차에 오랜만에 느끼는 고막으로 직접 듣는 아날로그식 육성 통신이 낯설다. 분명하지 않고 감이 떨어지는 음질이 제헌의 마음 한켠을 파고든다. 그는 아날로그가 가득한 착륙선이 너무 좋았다. 거친 환경에 노출이 잦은 착륙선은 대부분의 장비가 아날로그를 유지하고 있었고 그의 마음을 쏙 빼앗기에 충분했다.
“출력 정상, 압력 정상, 내부 온도 정상, 엔진 이상무.”
그가 사랑하는 아날로그식 계기반이 표시하는 출력, 압력, 온도를 하나하나 읽으며 선장에게 보고한다.
“섹터 A에서 D까지 문제 없음.”
“컨트롤 이상 없음.”
“통신 이상 없음.”
그를 뒤따라 각부 동료들의 보고가 이어진다. 스피커의 얇디 얇은 판막이 파르르 떨 때마다 들려오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제헌의 마음까지 떨게한다.
“대기권 탈출 각도 이상 없음.”
제헌이 눈 앞의 아날로그 계기반을 건드릴 때마다 홀로그램으로 푸르른 불꽃이 하나씩 터져 올랐다. 제헌이 설정해둔 문제 없음 알람이다. 경쾌하고 빠른 손놀림으로 기기를 한번씩 확인하자 그의 손가락 뒤로 푸른 불꽃이 터져나가며 불꽃놀이 만큼이나 화려한 길이 만들어진다. 제헌은 경쾌하게 마이크를 향해 외쳤다.
“역방향 추진기 이상 없음.”
제헌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마이크를 통해 흡수되어 선내의 통신 라인을 타고 스피커의 얇은 판막을 통해 쏟아져 나온다.
“대기 탈출 속도로 진입. 내 신호에 맞추어 출력 상승.”
제헌의 전방 11시 방향에 앉은 선장이 손을 들었다. 그는 선장의 손 끝이 부드럽게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셋, 둘, 하나.”
선장의 손 움직임에 맞춘 카운트가 끝나는 때에 맞추어 제헌이 자신 앞에 나와 있는 손바닥만큼 작은 레버를 위로 끌어 올렸다. 선체가 부르르 떠는 것이 느껴진다. 관성이 그의 몸을 서서히 덮쳐왔다. 마사지사가 지긋이 그의 어깨를 눌러주는 것마냥 기분이 좋다. 누군가는 정말 싫어했을 이 감각 때문에 제헌은 배를 타왔다. 온몸이 저릿저릿한 감각을 즐기며 그는 자신의 이륙 횟수를 노트에 기록한다. 416번째다.
“탈출 속도까지 앞으로 200, 150, 100…”
그는 눈 앞에 떠오르는 계기반의 바늘이 가리키는 숫자를 또박또박 읽었다. 어깨를 누르는 힘이 더욱 더 강해진다. 제헌은 이틀 전 맹인 지압사에게 받았던 마사지를 떠올렸다. 그보다 더 시원한 느낌이다.
그의 편안한 기분과 달리 계기반의 떨림이 더해가며 불안한 듯 덜덜거리는 요란한 소리를 낸다.
“50, 0. 탈출속도 진입.”
탈출 속도에 진입하자 제헌은 레버를 두 칸 내렸다. 관성이 사라지고 덜덜거리던 선체가 순식간에 안정을 되찾는다. 선장은 제헌을 돌아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선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놓인 기판의 스위치를 올려 지상과 통신 채널을 열었다.
“여기는 나린호 착륙선 101호. 화성 여수에 알린다. 대기 탈출 속도에 진입했다. 나린호까지 진입하기 위한 궤도 배정 바란다.”
선장의 목소리는 가래가 끼인듯 탁했지만 그의 나이와 비교한다면 목소리는 젊은 편이었다.
“여기는 화성 여수 관제센터. 착륙선 101호, 탈출 속도 진입을 확인했다. 진입 궤도은 58번이다. 기체가 안정되어 항해 자동화 시스템 사용이 가능할 때까지 관제센터에서 유도할 테니 따르기 바란다.”
선장이 옆에 앉아 있는 조타수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러자 조타수가 선장 대신 대답한다.
“알겠다. 화성 여수, 조향 및 제어 모두 관제로 일임한다.”
“착륙선 101호, 조향 및 제어 위임 확인했다. 이제부터 잠시 낮잠이라도 자두길 바란다.”
관제센터에서 시덥지 않은 농담을 던졌지만 늘 그렇 듯 선내 누구도 웃지 않았다. 멍하니 창문을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기기를 확인하며 냉정함을 유지했다.
3분 남짓의 시간이 지나자 미세하게 남아있던 기체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곧이어 아날로그 계기반의 불빛이 하나둘씩 꺼지기 시작했다. 이미 지상과 많이 멀어진 탓에 기내는 많이 어두웠다. 30초 남짓한 암흑의 순간이 지나는 동안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기체의 가느다란 떨림이 완전히 사라진 후 선장의 앞에 홀로그램 안내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 기체 안정화 완료. 항해 자동화 통제 시스템 부팅
착륙선이 대기권을 벗어나면서 선체가 안정화되자 항해 자동화 통제 시스템이 작동을 시작한 것이다.
착륙선은 행여나 있을지 모르는 고장을 방지하기위해 대기권에서는 순수 아날로그 시스템을 사용한다. 기기 하나의 고장이 치명적인 결과를 낳지 않도록하기 위해서 조치한 사항이다. 구성 시스템마다 독자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는데다가 선체 진동이 강한 환경에서도 고장률이 0에 가까운 아날로그 기계식 시스템이 신뢰도가 더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행성의 중력권을 벗어나게 되면 전체 시스템을 연계통제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사용하지만 여전히 제 1 권한은 각 아날로그 시스템이 갖는다. 보통 우주에서는 아날로그 시스템을 쓸 만큼 극한 환경을 접할 일이 없어 자동화 시스템에 전부 맡기더라도 말이다.
- 부팅 완료.
홀로그램 메시지가 사라지자 선체 안이 한번에 밝아진다. 꺼져버린 아날로그 계기반 대신 홀로그램 계기반이 빛을 내며 떠올랐기 때문이다. 눈부시다. 제헌은 눈을 찌푸렸다. 그가 사랑하는 아날로그 대신 늘 지겹게 보아오던 홀로그램이 떠오르는 것이 영 마뜩찮다.
“화성 여수, 항해 자동화 통제 시스템 정상 작동 확인했다. 조향 및 제어 다시 회복하겠다.”
조타수가 침묵을 깨고 관제센터와 통신을 재개했다.
“착륙선 101호, 조향 및 제어 회수를 허가한다. 배정된 궤도 58번으로 자동화 시스템의 홀로그램 유도기를 사용해 진입하기 바란다.”
“알겠다.”
조타수가 홀로그램 계기반을 이용해 58번 궤도로 착륙선을 매끄럽게 옮겨놓자 선장 앞에 있는 메인 홀로그램이 파랗게 바뀌었다.
- 완전 자동화 시작. 목적지까지 3분 30초.
자동화 시스템 기동으로 할 일이 없어진 제헌은 계기반에서 눈을 떼고 오른쪽에 있는 손바닥만한 창문을 바라보았다. 붉은 대지가 창문으로 꽉 들어차 있다. 그 사이사이로 반짝이는 투명한 반구들이 눈에 띄었다. 지구로부터 풍요를 찾아 떠나온 사람들이 사는 곳, 화성 도시였다.
지구보다 낮은 중력으로 인해 착륙선이 화성으로 끌려들어가지 않는 공전 궤도는 지구보다 가깝다. 덕분에 거대한 도시들은 궤도에서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햇빛에 반사되는 투명한 막이 도시를 감싸고 그 안으로 넓게 펼쳐진 푸른 벌판이 눈에 띈다. 메마르고 갈라져 있던 붉은 행성으로 이주를 성사시킨 화성 땅에서 가장 효과적인 식물, 양치식물이 만들어낸 거대한 평원이다.
모든 화성 도시들은 그들을 해로운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거대한 투명막을 가진다. 투명막 안쪽으로는 산소라곤 존재하지 않는 외부와 달리 지구와 거의 동일한 산소가 존재한다. 이 산소는 도시에서 가꾸는 양치식물의 평원으로부터 얻어진다. 양치식물의 평원 덕분에 인류는 도시 내부를 지구의 아열대 지방과 유사한 환경으로 꾸밀 수 있었다.
양치식물에 의한 환경 개조방법이 발견되자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되었다. 화성 이주 초기, 메말라버린 지구의 자원을 비웃기라도 하듯 화성은 끝이 없는 자원을 인류에게 베풀었다. 바닥난 지구의 자원을 대신할 희망의 청사진이 화성의 땅 위로 그려졌다. 그러나 끝이 없을 것만 같던 화성의 자원도 200억 인류의 탐욕을 모두 채울 수는 없었다.
있는 자와 없는자로 갈린 끝없는 갈등은 도시에 대한 직접적인 테러나 국가간 전쟁으로 이어졌다. 결국 모든 것이 인류가 지구에 갖혀 있던 시절과 같아져 버렸다.
대책은 하나 뿐이었다. 또 다른 식민행성의 건설. 화성으로 이주가 시작되던 그 때처럼, 국가가 만든 법의 범주 안에서 절차에 따라 굶주린 자들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 화성에서 멀고 차디찬 목성의 갈릴레오 위성 중 하나, 가니메데로 말이다.
‘갈릴레오는 자신이 발견한 목성의 위성에서 사람이 살게 될 날이 오리란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제헌은 덧없는 망상에 빠져들었다. 그가 바라보는 창문 밖으로 햇빛을 받아 붉게 타오르던 표면이 이내 사라지고 어둡고 검은 이면이 나타난다. 그는 차가운 화성의 밤이 블랙홀마냥 그의 혼을 빨아들이는 느낌을 받았다.
“기관장!”
선장의 부름이 중력처럼 그를 현실로 끌어당긴다.
“착륙속도로 변경 시작!”
제헌이 홀로그램 패드를 통해 목표 속도와 가속도 수치를 조정한다.
“주 홀로그램 투사, 착륙 예상 지점 시각화”
제헌의 왼쪽에 앉아 있던 항해사가 패드를 두어번 두드리자 선장 앞에 거대한 홀로그램 화면이 떠올랐다. 홀로그램 화면 속으로 실제와 동일한 모습의 포도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검푸른 색의 거대한 6개의 원통이 2열 횡대로 붙어서 있다. 이윽고 가운데에서 그들을 모두 연결하고 있는 하얀색 선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좌우로 펼쳐진 포도송이 세개를 양팔로 꽉 움켜쥐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제일 앞에 있는 포도송이 사이로 황금빛 선두가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있다. 수줍어 하는듯한 금빛 머리의 꼭대기에는 검은색으로 쓰여진 글씨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XD500, 나린호.”
제헌은 자신도 모르게 글씨를 나지막히 읽었다. 그 역시 나린호와 실제로 대면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출력만 높은 구닥다리 배라고 생각했던 나린호의 위용에 압도당한 것 마냥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포도선 블록이 넷만 붙어 있어도 왜소해 보이던 세종호와 달리 포도선 블록 여섯개 사이에서도 나린호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적어도 세종호보다 두 배 이상 큰 배였다.
“선장님 나린호로 착륙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뭉게구름으로 잠시 정박하시겠습니까?”
항해사가 선장에게 질문한다.
“다들 이틀 동안 충분히 쉬지 않았나. 이제 밥값은 해야지. 나린호로 가지.”
선장의 대꾸에 항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성 관제센터와 채널 연결합니다.”
오퍼레이터가 통신을 연결한다. 선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퉁퉁한 몸이 공중으로 슬쩍 떠오른다.
“화성 여수, 본 선 나린호와 통신 시작한다. 안내해줘서 고마웠다.”
“착륙선 101호, 천만에 말씀을. 가니메데에서도 건승하길 바란다.”
화성 관제센터와 마지막 통신이 종료되었다. 이제부터 한동안 착륙선 101은 지상과 연결 고리를 모두 끊고 오롯이 우주에 홀로 남은 상태가 된 것이다.
“나린호와 채널 연결.”
선장의 지시에 오퍼레이터가 계기반의 버튼을 눌러가며 유효한 채널을 직접 찾았다.
“연결 완료되었습니다.”
대답을 들은 선장이 헛기침을 두어차례하더니 입을 뗀다.
“나린호, 여기는 착륙선 101호.”
“착륙선 101호, 여기는 나린호.”
기다렸다는 듯이 나린호로부터 대답이 날아든다.
“나린호, 이제부터 너희들의 선장이 될 박수원이다. 환영 파티를 위해 착륙 허가 바란다. 근사하게 준비 해놓았나?”
“착륙선 101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승선을 환영합니다. 선장님.”
나린호의 통신이 끝나기 무섭게 나린호 주변에 머물러 있던 다른 착륙선 40여 대가 일제히 사방으로 퍼져나가며 연기를 내뿜는다. 나린호에서 빛이 나는 듯한 모양으로 구름모양을 만들어낸 착륙선들이 일제히 착륙선 101호를 향해 날아오더니 일렬로 서서 나린호까지 길을 만들어내었다.
“착륙선 101호, 1번 데크 입항을 허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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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프롤로그가 좀 긴 편이긴 하죠 ㅠㅠ 이제 더이상 시간이 오락가락하지 않고 포도선 일정에 맞추어 진행될 예정입니다. 포도선을 따라 가니메데 이주과정을 함께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 | 15.01.11 14:5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