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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군의 발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네. 사실 강철인에 대한 오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한 논쟁 중 하나이지. 먼저 결론을 말하자면, 그들의 외피는 단순한 강철이 아닐세. 물론 이렇게 단언하기에는 지구인에게 익숙한 금속 분류상의 강철과 유사한 점을 근거로 반박을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인장강도의 차이와 부식의 유무라고 할 수 있다네. 외피의 강도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진 사실이니 넘어가고. 중요한건 부식의 유무라고 할 수 있네. 물론 강철인의 외피가 절대로 부식하지 않는 영원의 금속까지는 아니네. 하지만 부식하여 녹이 생긴다는 사례들은 현상금 사냥꾼이나 용병업계 같은 쪽에서만 드물게 보고되고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길 바라네. 그럼 다음은 서리거인에 대한 오개념을...
-지구:국제우주정거장 부설 대학의 ‘우주 지성 종족학 개론 강의’中
쇳빛 공기가 무겁게 짓눌리듯 가라앉아 있는 어두운 선내. 온통 고약한 악취로 뒤덮여서, 지독한 정적만이 가득했다. 영원할 것만 같은 고요뿐이었지만, 우주에는 영원의 금속이 존재하지 않듯이, 그것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저 멀리 어둠속에서 울리는 불규칙한 고동에 의해서.
느리고 둔중한 울림의 정체는 발소리였다. 비록 멀기는 하지만, 당연하게도 소리의 원흉을 충분히 가늠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최근 두 달간의 메모리에서 가장 지우고 싶은 부분을 꼽는다면 망설임 없이 선택할 것임에.
괴물.
나는 갈림길에서 몸을 숨긴 채로 멀찍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상과 다를 바 없이 가히 괴생물체라 부를 만한 모습이었다. 괴물은 피부가 온통 부르트고, 사지가 불규칙하게 뒤틀려 숙주의 원형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전장에서 오랫동안 핏덩이와 녹슨 고철들이 뒤엉키는 꼴을 봐왔던 경험이 있던 나였지만, 온 몸에서 물집이 터져 오르고 진녹색의 진물이 뭉개져 나오는 괴물의 형체를 마주할 때는, 차마 꺼려지는 기분을 피할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 괴물은 저 멀리서 멍하니 배회하더니. 서서히 또 다른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아빠……. 지나갔어요?"
내 뒤에서 작은 딸아이가 나를 올려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어온다. 겁에 질려 창백하기만 한 얼굴이지만 생기를 잃지 않은 눈망울로 나를 올려볼 때면, 나는 불안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느끼곤 했다. 절대로 이 작은 아이를 위해서라도 약해지면 안 된다.
"응, 이젠 괜찮아."
나는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항상 그래왔듯이 웃어주었다.
"모두 괜찮을꺼야."
또한 딸아이 뿐 아니라 나 자신도 추스르기 위해, 굳이 혼잣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두 달 전이었다.
그날 난 내 딸 막시와 먼 행성으로 휴가를 가기 위해 성간 우주선에 탔다. 우주선을 처음 탄 딸아이는 잔뜩 흥분해 내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떠들어댔고. 나는 우리가 갈 행성에 대해서 이것저것을 설명해주었다. 그러자 신기해하며 더 많은 얘기를 졸라대던 딸아이의 표정을 보며 난 소소한 즐거움에 취해있었다.
그러나 그 평화로운 휴가는 시작의 서막을 알리기도 전에, 순식간에 종막을 맞이하였다. 성간 우주선이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커다란 폭발소리와 함께 거대한 진동이 온 사방을 휩쓸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파악하기도 전에, 찰나의 순간동안 선내는 온통 생화학 경고문구로 도배되었고, 붉은색의 경고등과, 위급한 목소리의 경고안내방송이 곳곳에서 울리고 있었다. 나는 딸아이가 다친데 없는지 확인하는데 급급하여 감히 방을 나갈 생각을 못하고 있었지만, 몇몇 인간무리들의 목소리가 복도에서 아우성치는 것은 들을 수 있었다.
"꺄악! 이게 뭐야!!!"
"탈출포트는 어디 있는 거야!!"
"저리 비켜 이 잡것들아!"
그렇다. 우리가 탄 우주선이 한 테러범에 의해서 바이러스 테러를 당한 것이다.
그 이후는 끔찍했다. 테러로 인해 엔진은 고장 나고,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승객들은 괴물로 변해, 우주선은 순식간에 지옥으로 변했다. 물론 괴물 문제도 있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인간끼리의 싸움이었다. 나도 몇 번의 위기를 겪었지만, 그 때마다 강철인이라는 나의 종족적 특성과, 과거 용병으로서의 경험들이, 나와 내 딸 막시를 구해줬다. 하지만 만약 이 아이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있던 나는 딸아이가 뒷목을 긁적이는 것을 보고서 잠시 멈칫했다. ‘설마 아닐 거다.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마음을 감추고서 나는 애써 더욱 대수롭지 않게 말을 꺼냈다.
"왜 그래? 어디 간지러워?"
"목에 뭐가 난 것 같아요."
"그래? 어디 한 번 보자."
나는 딸아이의 등 뒤에 서서 떨리는 손을 최대한 조심하며 서서히 머리칼을 헤집었다. 그리고 발견했다. 평소처럼의 뽀얀 살결이 아닌, 전번의 괴물을 떠올리는 진녹색의 물집이 딸아이의 목덜미를 헤집고 올라온 것을. 형언할 수 없는 절망으로 난장판이 된 나를 뒤로 한 채, 무의식적으로 말을 이었다.
"…….별 거 아냐. 모기한테 물린 거야"
뭐가 문제였던 거지.
"으~ 어쩐지 가렵더만."
식수? 음식? 위생?
"막시?"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인이 떠오르지 않는다.
"왜여?"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오늘은 병실 침대에서 자자."
하지만 빨리 '치료제'를 구해야 한다.
"예이!!"
휑한 병실에 도착하고, 그나마 깨끗한 침대위에 막시를 눕혔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우주선내에 몇몇 생존자가 있기는 하니까. 헐거운 담요를 살짝 덮어주고는 옆에 앉아 내 손가락을 잡게 해주었다. 딸아이의 자그마한 손에서 전해져오는 따스한 맥박에 손가락이 살짝이나마 달궈지는 것이 느껴졌다. 예전부터 잠들 때, 내 차가운 손가락의 느낌이 좋다고 종종 잡고서 잠들기는 했지만, 우주선에서의 일이 있은 후 부터는 항상 그래왔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절대로 내 딸아이를 잃을 수는 없다.
그간 피로가 쌓였는지 막시가 몇 번의 뒤척임 후에 곧바로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는 본 목적인 주변수색을 시작했다. 하지만 텅 빈 약품용기나 다 쓴 거즈들이 난잡하게 펼쳐진 창고들 외에는 찾을 수가 없었다.
"난 도대체 뭘 기대한 거지? 약 같은 건 진작 털어갔을 게 뻔하잖아……."
막막한 어둠뿐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벽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 순간. 내 손에 걸려서 버튼 하나가 달칵이고, 위잉 거리는 부팅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놀란 눈으로 소리를 뒤쫓았고, 흉하게 금이 간 모니터에서 희미한 빛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AI 시스템 재부팅 완료. 승객 정보 스캔중.//
의료용AI인 것 같았지만, 저 상태로 용케 작동이 된다고 생각할 정도의 손상이 느껴졌다.
//안녕하십니까, '매그너스'고객님.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딸아이가 바이러스에 감염됐는데, 치료할 수 있나?"
나는 녹이 슨 사슬이라도 잡는 심정으로 재빨리 물었다.
//현재 병원의 백신 잔량은 0개, 치료를 원하시면 다른 병원을 찾아주시길 바랍니다.//
"역시……. 살리는 건 무리인가."
AI의 냉정한 선고에, 나는 무거운 고개를 떨어뜨리고는 참담한 심정을 내뱉었다.
그러나 내가 모든 회로가 정지된 듯한 혼란 속에서 절망하고 있는 동안, AI의 답변 매크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였고, 하나의 희망을 답신화면에 띄웠다.
//아닙니다, 살리는 것은 가능합니다.//
"백신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치료가 아닌 살리는 게 목적이라면 방법이 없진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그건…….//
-2-
"막시! 막시! 막시, 일어나."
아빠가 흔들며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아니 깰 수밖에 없었다. 아빠는 항상 나를 흔들 때 힘조절을 못하니까, 항상 생각하지만 영원히 고치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도 지금은 불평할 때가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아직 이 우주선 안이니까.
"아함~ 아빠 뭐에요?"
아빠는 내가 깬 것을 확인하고는 곧바로 몇몇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며칠 밖에서 생필품이랑 먹을 걸 좀 구해올테니 여기서 기다려."
"아빠 나도 같이……."
"안돼! 여기서 기다려!!"
깜짝 놀랐다.
졸린 눈을 비비며 습관처럼 꺼내던 말을, 아빠가 끊어버렸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단호하게.
나는 놀란 목소리로 다시 한 번 아빠를 불러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금방 다녀오마라는 평소와 같은 담담한 목소리와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금방 다녀오신다던 아버지는…….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3일이 지나.
9일 째가 되는 날 돌아오셨다.
턱은 심하게 망가지고, 온 몸에 피칠갑을 한 채로.
그 날 아버지는 상당량의 음식과 기계부품들을 들고 오셨고, 오자마자 대충 정리를 끝내시고는 나에게 밥은 먹었냐고 물어보셨다. 내가 아까 한 시간 즈음 전에 먹었다고 대답하자마자, 내가 무얼 묻기도 전에 잠시 눈을 붙인다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는 곧바로 곯아 떨어지셨다. 그리고 저녁때쯤 아버지가 깨어나셨고. 나는 배고프시다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는, 식사준비를 하며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물어봤다.
아버지는 내 질문에 그저 조용히 눈웃음만 지으셨다.
"음...? 으- 몸이……."
나는 갑작스럽게 눈이 감기며 바닥에 철퍼덕하고 엎어지는 내 몸을 느꼈다.
마치 물먹은 솜처럼.
내 몸이 아니라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눈앞의 아버지의 모습이 흐려지는 것이,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음식에 수면 약을 탔어. 깨어났을 땐 모든 문제가 해결돼 있을꺼야……."
-3-
내가 눈을 떴을 땐, 난 구조선에 누워있었다.
"저희가 우주선을 발견했을 땐, 선생님을 제외한 모두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다행히 선생님은 외피가 조금 망가진 걸 제외하곤 큰 문제는 없으시군요."
망가져? 뭐가?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에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따라가기가 벅찼다. 그런 사실에 신경 쓰는 낌새도 없는 듯한 눈앞의 갸름한 곤충 두피를 가진 의사는 말을 이었다.
"뭐, 일단 임시로 수리하긴 했지만 시스템 초기화로 목소리가 나오려면 좀 기다려야 할 겁니다. 그럼 한 번 잘 고쳐졌는지 보시죠."
거울을 들어 올린 의사한테 눈의 초점을 맞추려 노력하면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아빠를 찾던 나는 두 번 다시없을 충격에 휩싸였다.
턱의 형태가 달려졌긴 했지만 거울에 비친 건 분명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나는 무거운 아버지의 두 손을 들어, 아버지의 머리를 감싸 쥐고, 아버지의 몸이 떨리는걸 느꼈다.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나는 정신을 닫고는 이게 꿈이기를 빌었다. 언제나와 같이 아빠가 '이젠 괜찮아.'라는 말을 해주면,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러나.
도피할 수 없는 현실에서 목소리가 울려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저 멀리에서 말하는 듯, 웅얼거리는 외침처럼 공허했던 목소리는. 닫혔던 정신이 서서히 열리며, 의사에게서 나오는 소리가 제 의미를 띄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났는데요. 선생님이 구조됐을 때, 이걸 손에 쥐고 계시더군요. 중요한 물건 같이 보이니 잘 간수하십쇼. 그럼 전 가볼 테니 편히 쉬고 계십쇼."
의사는 내 손에 무언갈 쥐어주고는 무심하게 떠나갔다.
영상기록장치.
'아버지가 남긴 것일까? 아버지가 남긴 거라면, 왜 이걸 남긴 걸까?'
수많은 해결되지 않는 의문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장치 안의 영상을 보는 것뿐이었다.
영상을 켜자 몇 번 깜빡이더니 화면에서 아버지가 나타났다.
잠깐의 침묵 후, 수술용 기계들로 가득한 방에 홀로 앉아 아버지는 담담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막시야, 아빠다. 이제 곧 있으면 내 몸에 내 뇌를 이식할 거다. 나의 부주의로 널 감염시킨 주제에 너의 의사도 묻지 않고 이런 짓을 해서 미안하다... 더 좋은 방법을 찾고 싶었지만... 이 방법 밖에 없었어……. 곧 있으면 나의 모든 메모리가 지워질 거야. 유에서 무로 돌아가는 게 우리 강철인의 방식이지만. 역시 널 잊는 건 두렵구나……. 하지만 이 선택을 후회하진 않아. 또 이런 일이 생긴다 해도. 몇 번이고 이 선택을 할 거야."
아버지는 고통 때문인지 잠시 찡그리셨다가, 카메라를 보고는 언제나처럼 눈웃음을 짓고는 말을 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해체도 거의 끝나가니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마. 막시야 너의 '막시'란 이름의 뜻은 강철인들의 말로... [톱니바퀴]란다. 과거 헛돌던 나의 톱니바퀴는 너를 만난 날 다시 맞물려 돌기 시작했단다.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기계이며 생명들은 그 기계의 톱니바퀴들이지. 막시야 너 역시 언젠간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날이 오게 될 거란다."
아버지는 눈빛이 꺼져가기 시작하는 와중에도 담담한 어투로 마지막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잘 있으렴."
-치지지직-
"나의 사랑하는...작은 톱니바퀴야……."
영상이 끝나기도 전부터 아빠를 부르며 소리없는 오열을 하던 나를 뒤로하고, 영상기록장치는 마지막 데이터를 화면에 띄우고 있었다.
얼굴에 웃음을 환하게 띄우고는 용병아저씨들한테 둘러싸여 어린 나를 안고 있는 사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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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 [나의 작은 톱니바퀴를 위하여]
원작자 : 나사실카레가아니다
원작주소 : http://blog.naver.com/rhfnfn/220293476737
사실 제 글솜씨가 비루하여.. 스토리를 아직 끝까지 짜지못하고 이것저것 썼다 지웠다 연습만 하고 있는데요...
그러다가 이미 스토리가 있는 만화를 토대로 습작이라도 해보자라는 것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참고로 원작자이신 카레님한테 허락 받았어요! (응원도 해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