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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괜찮은 거냐?」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까 난 그 액귀와 접촉해서 그와 계약을 한 것 까진 기억나는데 그 이후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정신을 잃은 시간은 아주 짧을 것이다. 머리를 깨는 듯한 두통이 일었지만, 머리를 내젖고는 엎드려진 몸 부터 일으켜 세웠다. 항문의 통증은 더 이상 없었다. 신기하게도 마치 깨끗하게 나아버린 것 같았다. 내 뒷구멍을 유린하던 염소 자식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는 후지카와 시로가 있을 뿐이었다. 그는 나의 용태를 살피더니 터프한 음성을 들려주었다. 「저 이상한 놈들의 등장 지점을 찾아보려 했지만, 보이지 않았어. 아무래도 규칙성이 없는 출현을 하는 모양이야.」 그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재액의 피조물들이 어디서 생겨나는 건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나 보다. 그건 그렇고, 끊임없이 밀고 닥치던 피조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제 끝난 모양인가?」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둘려보았다. 하지만, 안다. 이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그것을 직감하고 있는지. 시로는 한치의 방심도 없었다. 그것은 테루나 유카리, 구미호, 세이가도 마찬가지였다. 그 중에서 유카리가 이쪽으로 걸어오면서 의미심장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순간,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이건 위험하다. 저 유카리란 요괴 현자는 내 속을 꿰뚫어 보는 듯 했다. 그녀는 앵두같은 입술을 벌리고 수상함이 가득한 어조로 말했다. 「역시, 예상대로 액귀는 당신과 접촉을 한 모양이군요.」 사실이었기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을 꾹다물고 다음 이어질 얘기를 기다렸다. 그때, 옆에 있던 시로가 내 심정을 대변해 주듯 적개심 가득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이봐, 유카리. 또 무슨 꿍꿍이 속인 거야?」 「꿍꿍이라뇨. 듣기 않좋네요. 전 저 악마를 이용해 최대한 이상적인 방법으로 액귀를 처단할 생각인 걸요?」 「그게 꿍꿍이라는 거다. 도대체 어떤 식으로 액귀를 처단하겠다는 건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었어.」 「구체적인 설명이라... 여기서 말하라는 거예요?」 「당연하지. 저 놈이 듣는 앞에서 네 입으로 말하라고!」 유카리를 노려보는 시로의 눈은 살기로 넘실댔다. 한낱 인간이면서 저정도의 살기라니. 어지간한 요괴도 한 수 접어 들어갈 수준이었다. 시로가 저렇게 수상함으로 가득한 유카리에게 근지러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질문을 나 대신 해준건 고맙지만, 좋지 않은 예감만 들었다. 그러니까, 저 수상함 성분이 99%인 듯한 요괴의 입에서 결코, 나에게 좋은 소식이 나올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 단 말이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쉰 유카리는 가만히 내 얼굴을 응시하더니 사무적인 어조로 얘기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어. 네 대답에 따라 내 계획은 판이하게 달라 질 수도 있으니까.」 이거 완전히 취조받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물어보려고 저러는 거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으으... 대충 둘러댈수도 없고. 「액귀와 접촉해서 무슨 얘기를 나누었어?」 이거 솔직하게 털어놓으면 사망 플래그 100% 확실했다. 이제부터 허위진술을 해야 하므로 나는 저 보랏빛으로 영롱한 유카리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지 못하고 은근슬쩍 시선을 떨구었고, 입을 오물 거리며 어떡해서든 둘러댈 말을 떠올리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우물쭈물 거리고 있자, 얼른 말하라는 재촉의 눈총이 쏟아진다. 머리속이 수라장 처럼 복잡해진 나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아무런 말이나 던질 각오로 입을 열었는데 목소리는 내 입이 아닌 다른 쪽에서 흘려나왔다. 「이 요괴년아! 대답 여하에 따라 계획이 어떻냐는 소리 보다 그 계획이 뭔지 부터 알려줘야 할 거 아냐!」 시로가 잔뜩 성난 목소리로 유카리를 질책하고 나섰다. 나로서는 정말 구세주가 아닐 수 없었다. 유카리의 인상이 오묘하게 일그러졌다.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지만, 뭐라 항변하지 못한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정론이었나 보다. 그렇게 잠시, 부르르 떨고있는 유카리의 모습이 내심 통쾌하게도 보였으나 곧 이쪽으로 달려온 테루에 의해 유카리는 본래의 모습을 곧바로 되찾았다. 테루는 시로를 불만스럽다는 눈초리로 노려보고는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시로 형님이라도 제 아내를 나쁘게 몰아붙이는 건 용서할 수 없어요.」 조강지처를 챙기는 공처가의 발언이었다. 그러나 시로는 이에 굴하지 않고 바로 그 발언에 대한 반론에 들어간다. 「아내를 감싸는 거야 자유지만 말이야. 저 요괴년이 감추는 게 너무 많아서 묻는 거라고.」 그 말에 테루는 유카리를 쳐다보며 물었다. 「부인. 시로 형님의 말이 사실이야?」 「딱히 감출 의도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모든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려면 어쩔 수 없이 감출 수 밖에 없는 사실이 있을 뿐이에요. 특히, 저 악마에게 만은 알려져선 안 될 사실이라면 더 더욱요.」 나는 방금 유카리가 내뱉은 발언에 머리가 띵해져 왔다. 나에게 만큼은 알려져선 안 될 사실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처음부터 저 뀽뀽이를 믿지 않았다곤 해도 썩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니다. 당장 저 입에서 나에게 알려져선 안 된다는 사실을 들어야 겠다. 나는 유카리에게 재촉하듯 말했다. 「얼른 말해봐요. 화 안 낼테니까!」 말은 그렇게 해도 나는 이미 화를 내고 있었다. 유카리의 보랏빛 눈동자가 차가워졌다. 「그럼, 바램대로 말해드리죠.」 이거 좋지 않아. 그런 예감이 적중하듯 유카리 입에서 흘려나온 말은 사망선고와 같은 것이었다. 「당신, 역시나 액귀와 일체화 된 것 같네요. 만약, 액귀와 접촉해서 그와 일체가 되었다면 당신과 함께 액귀를 동시에 처리할 생각이었어요. 그래서 적당히 피조물을 상대하며 시간을 끌었던 거고요.」 진짜 이거 염통이 쫄깃해진다. 저 망할 년의 입을 당장 비틀어버리고 싶었다. 뭐가 어째고 어째? 이건 미끼 정도가 아니라 날 이용해 액귀와 동귀어진 시킬 작정이었던 거구나! 심장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감각을 느꼈다. 피가 말그대로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이었고, 이마 위로 십자로 된 혈관 마크가 새겨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것은 어쩔 도리 없을 정도의 분노. 저 비열한 요괴년에게 이용당한 약자의 억울함이었다. 요괴년이 말이 이어졌다. 「하지만, 남편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 수단을 쓸수는 없는 노릇이니. 제 능력을 이용해 일체화된 액귀를 분리 시킬 거에요.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나 어쩔 수 없어요.」 나는 저 년이 지금 무슨 소리를 씨부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평소보다 더 격한 분노의 감정에 몸을 맡기고, 오직 나를 기만한 야쿠모 패거리들에게 보복을 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갔다. 그래. 난 지금 액귀의.. 아니, 힘을 가지고 있어! 그 증거로 온 몸에 재액의 기운이 넘쳐나지 않는가? 단순히 넘쳐나는 게 아니라 이걸 다스릴 수 있다고! 할 수 있어! 이 순간 나는 그 액귀와 계약을 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언리미티드 다메닝겐 워크스...」 조용하게 읊조린 나의 주문에 세상이 반전되었다. 나를 중심으로 꽤나 넓은 반경까지 격리된 하나의 세상으로 초대를 한다. 나의 심상풍경이 구현화된 이른바, 고유결계. ─ 초대하지. 이곳이 바로 나의 전장이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마!!』 나의 세계에 초대된 자들. 테루, 시로, 구미호, 세이가, 강시 그리고 경멸스런 요괴 현자. 야쿠모 유카리가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며 달라진 주변 풍경을 둘려보고 있었다. 결계술의 대가라고 해도 이런 조화는 부리지 못할 테지. 모 마술협회에 들켰다간 봉인지정감이지만, 나는 해내고야 말았다! 전국의 모든 중2병들의 염원을. 붉은 궁병의 언리미티드 블레이드 워크스와 같은 고유결계 창조를 말이다. 한마디로 지금의 나는 매우매우매우 ── ! high한 기분이다 이거야!!! 근데 어째 내 고유결계는 조금 상태가 이상한 거 같다. 간지나는 황량한 풍경이 아니라 매우 유치찬란한 색감의 알록덜록한 풍경. 하늘은 분홍색이고 대지는 푸르고.. 거기다 '오우- 예!'를 외치며 자위를 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피조물들... 뭐야 이거?! 설마, 내 심상풍경이 이따구라는 거야!? 아오~ 젠장, 내 정신상태는 이렇지 않단 말이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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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결계란 사용자의 심상풍경을 그대로 구현하는 결계로
루키드의 고유결계의 상태가 저렇다는 거는... 즉, 루키드의 심상이 저렇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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