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공포증 치료를 받고있는 이십대후반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병의 증세로 받아들여진 건 20살 때부터입니다.
고등학교 입학전에는 낯선 환경에 갑자기 혼자 떨어지는 것만 아니면 친구관계도 원만한 편이었고
성적도 곧잘 나왔던 것같아요 . 하지만 점점 인간관게는 좁아져갔고 출석일수를 겨우 맞춰서 졸업했을 정도로
학교에도 잘 나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인서울 대학에 합격을 했지만 수능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로 시험을 봐서
받은 성적이었기때문에 재수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재수학원에서 처음으로 사회공포증이라고 스스로가 느낄정도의
불안함을 겪었어요. 하루에 말을 거의 하지 않았기때문에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습니다. 재수 생활은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어서
매일 커뮤니티 사이트에 우울한 글을 쓰곤했습니다. 그 무렵엔 인터넷이 제 생각의 유일한 표출구가 되고있었고 밤늦게까지 인터넷을 하느라
학원에 지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모님은 이해할 수 없었나봐요. 가족과도 속얘기를 거의 하지않기때문에 단순히 인터넷을 하면서
노느라 학업에 소홀히 하는 것인 줄 알았을거에요. 완전히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았습니다. 매일 우울한 노래를 들으며 지하철을 탔어요.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있는 것 같고 험담을 하는것 같았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늘 귀에 이어폰을 꼽고 눈을 감았습니다.
버스가 급정거할 때 휘청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모두가 나를 비웃을 것 같아서 땀을 흘리며 손잡이를 잡았습니다.
여름에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일부러 우산을 받지않고 비를 맞으며 집에 오는 제 모습을 보고
아마 처음으로 정신과라는 곳에 가게 된것같습니다. 병원에 간 게 19살때였는지 재수학원 이후였는지도 잘모르겠네요,
그때 먹었던 약의 부작용이 심해서 기억이 나지 않는 건지 , 방어기제처럼 기억을 무의식적으로 안하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병원에 가면 언제 입원했고 언제 우울했는지를 묻는데 저는 항상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요. 심지어 폐쇄병동에
몇번 입원했는지도 기억하지못할정도입니다. 그래서 군대 신검을 받을 때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해서 의혹을 사기도 했었습니다.
하여튼 처음 그곳에서 상담을 하고 약을 받았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제 기억엔 각성제와 우울증약을 받았던것같아요.
의사가 공부할 때 먹는 약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이 많지만 자기는 각성제를 먹으며 공부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한것으로 기억합니다.
아마 저를 포함한 모두가 병에 대해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사춘기가 오래 간다고 생각했다고 나중에 말했습니다.
저는 거기서 받은 약을 어느날 모두 먹어버렸습니다.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고있었는데 처음 보는 표정으로 아빠가 저를 흔들어깨우고있었습니다.
엄마는 무서워서 제 침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있었구요. 그리고 저는 응급실에 갔습니다. 약을 먹은건 자살의 의도라보다는
기분이 쉽게 나아지지않아서 한꺼번에 먹었던 것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자살의 의도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포자기해서 마구 먹었으니까요. 의사와 상담하기전 엄마와 단둘이 작은 방에서 기다리고있었는데, 눈물이 갑자기 흘렀습니다.
피곤했던 어머니는 옆에서 자고있다가 제가 흐느껴우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저를 껴안았고 울었습니다.
그 뒤로 부모님은 심하다싶을 정도로 과잉 보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여느 강남 부모님처럼 과도한 교육열에 휩싸여계셨기때문에
자식의 일에 간섭하는 일이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나있었는데, 제가 환자로써 치료를 받게되자 더 저를 보호하려 들었습니다.
페쇄병동에 입원을 했고, 묶여서 안정주사를 받기도하고 다시 퇴원했다가 다른 곳에 또 입원을 하고.
약의 부작용때문에 어눌하게 말하기도 했고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할정도로 불안해해서 다리가 아플정도로 집 주변을
마구 걸어다녀야했던 적도 있습니다. 의사도 약에 민감한 체질이라고 굉장히 부작용이 적은 약인데도 힘들어 한다고 하더라구요.
대학 병원에 입원햇을 때에는 부모님이 면회를 오면 페쇄병동밖으로 잠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벤치에 앉아서 지나가는 대학생을 구경했습니다.
가방을 매고 , 자전거를 타고 , 어울려다니며, 전공책이 한손에 있던 나의 또래들을 봤습니다.
닿을 듯이 가까이있었고 잡을 수 없는 꿈들이 제 앞에서 돌아다니는 듯 했어요. 하지만 저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매일 아침마다 약을 먹고 혀 아래를 보여주는 정신병 환자에 불과한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 있는 것은 답답했고 돈이 아주 많이 들어갔습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해서 집단인지치료를 받았습니다. 너무 많은 의사를 접했기때문에 의사마다 제 병을 조금씩 다르게 진단해서
맞지않는 약을 먹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 경험을 할 때마다 저는 일반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사람이 되버린 듯한느낌을 받았어요.
선천적인 병이거나 유전적인 병이기 때문에 나약한 유전자를 지닌 개체가 세대를 지날 때마다 죽어 없어지듯이
없어져야만 하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 치료를 받으며 기숙학원에도 다니고 인강도 들으며 수능 준비를 했어요.
학원에서도 외톨이처럼 지냈습니다. 기숙학원에서는 친해진 친구도 있었지만, 견디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늘 6월 모의고사 즈음에 포기하느게습관이었습니다. 수능도 단 한번도 제대로 끝까지 준비한적이없었고 가족들이 수능시험장앞까지 저를데려다주며
격려를 해야 수능도 겨우 볼 지경이었으니까요.
군문제도 하필 군기피자들이 많아지던 때여서 군기피사건이 터지기 전만해도 면제가 될 케이스였지만, 저는 공익 판정을 받았습니다.
공익도 순탄치않았어요. 힘든 과거 얘기를 글로 쓰다보니 피곤해서 자세히 적기가 힘드네요. 최근에 면제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진로를 바꿔서 다른 공부를 시작했어요. 어린 고등학생들과 오래 어울려서 공부를 해야했습니다.
하고싶은 일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잘 되지 않더라구요.
그리고 2014년 10월입니다.
저는 군면제자고 고졸입니다. 경제적능력도 없고 사람이 많은 곳은 아직도 어색하네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친구를 사귄적도 없습니다.
아버지는 곧 명예퇴직을 하실 나이가 되셨고, 주위 사람들중에 성공하는 사람도 보이기 시작하네요.
최근 마음이 맞는 상담가를 만나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고있습니다. 수능공부도 하지않고 사회공포증을 치료해보려고해요.
일부러 해외여행을 가기도했습니다. 공항수속이 어찌나 긴장되던지 . 또 외국인들 틈사이에서 지하철 표를 사는건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그래도 최근 굉장히 상태가 좋아졌다고 생각하고있어요. 여행에서 돌아와서 많은 것들을 계획했습니다.
또 여행을 갈까, 워킹홀리데이를 가볼까.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다르니까 앉아서 공부하는 것을 그나마 잘하니까 공무원을 준비해보자.
집에 더이상 경제적으로 부담을 줄 수 없으니 생산직 업종에 뛰어들기위해 기술을 배우자. 꿈을 포기하지않고 밀어부쳐서
하고싶은 일을 한다는 것에서 행복을 찾자. 에너지가 생기니까 하고싶은 것들이 생기더라구요.
20살때 포기했던 그룹인지치료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20살때 제 진료차트가 26살때의 진료차트와 합쳐질 때 기분이 정말
우울했지만. 기운을 냈습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부모님의 변하지 않는 과잉 보호를 다시 접하자 , 또 우울해지더라구요.
끊임없는 공무원 시험의 추천과 워킹홀리데의 반대. 현실 도피라는 말까지 듣고나자 가족들을 사랑하지만
이제는 울타리에서 나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러 자살계획까지 자세히 부모님께 설명하면서
하루하루 자살 생각이 끊이지않는다. 심지어 몇시간 간격으로. 무슨 선택을 하고 거기에 도전하려고할때마다 귀결되는 해답은
늘 자살계획이다. 스스로 결정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치료를 위해서는 혼자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부딪혀보고싶다고 설득을 했지만.
등록금은 걱정하지말고 일단 대학에 가보라고 하시네요.
대학에 가면 공무원 준비를 하라고 하실것같고, 대학에 다니다보면 저도 아마 30에 가까워진 나이가 될텐데
그때즈음에 다른 공부를 하고싶어서 수능을 본다는 건 현실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스스로 돈을 벌어서 성취감을 느끼고싶어요.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할지말지도 결정하지 않았는데
아무 대학이나 가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싶지않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선택한 것에 집중해보고싶습니다.
독립을 하고싶어요. 낯선 곳에서 부당한 일도 겪어보고싶고 부드러운 손도 거칠게 만들어보고싶습니다.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부모님이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제가 돈을 벌어서 워킹홀리데이를 할 자금을 만들어야하는데
알바사이트를 뒤적이면서 저는 이 내리막 인생이 갈데까지 가는 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우울해요. 밤에 자기전에 생각이 많아 우울합니다. 수면패턴은 늘 불규칙해서 오래앉아있으면 멀미가 납니다.
어지럽고 마음에 안개가 껴있어요. 이성적인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정도의 우울함을 겪고있는 것같아서 제 선택에 확신이 없습니다.
제 의지에 대한 영역도 이미 약물에 잠식당한것같아요. 제가 게으른건지 우울해하는건지 잘모르겠어요.
그냥 기계처럼 약을 먹으면 호르몬이 해결해줄 것같아요. 나이를 먹고 이상황까지 온것들이 모두 거짓말같습니다.
집안의 골칫덩어리가 된 느낌이에요. 알바하나를 하는데도 겁이나서 망설이는데 워킹홀리데이를 할 돈을 모으는건 더욱
불가능한 일인것같습니다. 여행을 또 가고싶다고 말할때 그 부모님의 찰나의 실망하는 모습을 머리속 깊이 넣어두고
제 우울함의 먹이로 사용합니다. 즐거웠던 기억은 쉽게 날아가버리고 우울함을 즐기는 습관은 익숙해요.
독립을 하신 분이 있다면 , 제 성격에 맞는 가장 적절한 아르바이트를 알려주세요.
이왕이면 숙식제공이 가능한 곳이였으면 좋겠어요. 워홀에 성공하신분들이 있나요? 영어회화는 얼마나 연습해가야하는걸까요?
사회공포증을 이겨내신 분들이 있나요. 도와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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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길 빕니다 딱 하나 조언드리면 외국나가서 한국말 잘하는 인간만 조심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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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길 빕니다 딱 하나 조언드리면 외국나가서 한국말 잘하는 인간만 조심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