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2의 악몽을 잊고, '배틀필드 6' 오픈 베타 체험
■ 스페셜리스트를 버리고 병과로 돌아가
본작은 ‘배틀필드 2042’ 의 스페셜리스트를 버리고 전통적인 돌격병/공병/보급병/정찰병의 4개 병과 체계로 돌아왔다. 4개의 병과는 약간의 조정을 거쳤다. 일단 제세동기를 사용하지 않고 아군을 부활시킬 때 아군을 뒤로 끌어낼 수 있다는 점은 가장 유명한 변화다. 그리고 앉은 채로 달리거나 하는 새로운 동작이 공통적으로 추가됐다.
보급병은 전천후 서포터로 거듭나서 체력 회복/탄약 및 도구 보급/전선 유지에 특화되어 있다. 정찰병은 스코프로 조준하는 동안 적을 자동으로 정찰해 표식을 남기며, C4와 리스폰 비콘을 쓸 수 있다. 리스폰 비콘이 돌격병에게 간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일단 현재로서는 정찰병에게 있다.
일단 4개 병과의 역할 분담은 대체로 잘되어 있지만, 현재는 모드나 맵에 따라서 크게 활용도 차이가 나는 경우가 발생한다.
솔직히 이제 항공병기는 그렇게 무서운 위협이 아니다
카이로 공성전의 규칙. 일단 샷건 들고 뛰기
또한 현재 제공되는 모드에서 공병의 입지가 다소 모호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도 RPG 런처의 경우 건물 파괴용이나 보병 공격용으로 전용할 수 있으니 괜찮은데, 남은 한 슬롯에 반드시 넣어야 하는 능동식 지뢰/대공미사일은 조금 계륵이다. 물론 잘 설치한 능동식 지뢰 2개로 바로 적 차량을 따버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지만, 둘 다 용도가 매우 제한적이고 활용 빈도가 낮아 RPG를 더 들고 싶어질 때가 있다.
또 속칭 똥싸개로 대표되는 캠핑 정찰병 플레이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리스폰 비콘이 정찰병에게 있기 때문이다. 근접전 세팅을 한 정찰병도 밸런스 문제가 있는데 바로 정찰병에게 옮겨간 C4 가 구작들과 달리 수류탄에 준할 정도의 투척거리를 보유했고 자연적으로 재생되기 때문에 그냥 숨어있다가 C4 만 뿌리고 도망가는 정찰병이 샷건 돌격병과 실내전을 양분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병과별 보병 외에 또다른 전장의 주축인 장비들의 위용이 꽤나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항상 ‘배틀필드’ 의 밸런스를 파괴하는 범인이었던 공격헬기가 이제는 이전처럼 비합리적일 만큼 강력하지는 않으며 전차, 보병전투차, 공격헬기 같은 장비들은 보병들이 만든 전선이 고착될 때 타개책으로 투입되는, 딱 알맞은 역할을 부여받았다.
■ 맵과 모드, 문제는 카이로 공성전과 브레이크스루
먼저 ‘배틀필드 6’ 오픈 베타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은 혼돈과 파괴가 난립하는 전장의 분위기를 역시나 잘 살렸다는 점이다. 허허벌판에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날틀의 각종 화기를 맞고 죽어나가던 2042 에서의 매우 불쾌했던 기억보다는 훨씬 좋다. 특히 시가전에서 장비를 중심으로 주변의 건물이 파괴되고 중화기와 총탄이 날아다니는데 그 속에서 살아남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그 ‘배틀필드’ 특유의 감각이 잘 살아있다.
다만 이번 오픈 베타에서 선보이는 콘텐츠는 대부분 그 ‘배틀필드’ 다움을 잘 어필하지 못하는 것들로 채워져 있다. 현재 맵/모드 중에서 카이로 공성전의 두 전면전 모드가 가장 큰 비판의 대상이며, 이베리안 공격 컨퀘스트와 리버레이션 피크 브레이크스루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공통된 문제는 맵이 작아도 너무 작다는 것, 그리고 기존의 ‘배틀필드’ 와 다른 전투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카이로 포위전은 극히 밀도가 높은 시가지의 건물과 골목을 끼고 벌이는 보병전이 중심이 되는데, 이러한 모든 상황이 합쳐져서 미친 난전이 지속된다. 모든 골목에서 적이 튀어나오고 심심하면 캠퍼가 있다. 아군이 형성한 교두보가 옆 골목에서 튀어나온 적에게 와해되는 일이 일상적으로 펼쳐진다.
이렇게 사방에서 적이 튀어나올 수 있고 장비는 부족하여 실내와 코너를 끼고 샷건과 온갖 폭발물이 판치는 보병 간의 살육전이 무한하게 펼쳐진다. 플레이 메타가 기존 배틀필드보다는 콜 오브 듀티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콜 오브 듀티처럼 날라다니고 바닥청소하고 돌핀다이브하는 꼴은 보지 않아도 되서 위안이다.
이거 맞고 바로 똥싸개 잡으러 득달같이 등산했다
즉 브레이크스루 두 맵 중 카이로 포위전은 매 초 다른 방향을 봐야할 만큼 정신병 걸릴 것만 같은 상황이 자주 펼쳐지고, 리버레이션 피크는 고개만 들었다 하면 사방에서 반짝거리는 조준경들과 날아오는 저격총탄에 비명을 지르게 된다. 심지어 둘 다 공격측이 공격에 성공해도 주는 티켓이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특히 카이로 포위전은 수비측의 이점이 너무나 커서 카이로 포위전 공격은 대체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냐는 말이 나온다. 카이로 포위전은 맵 구조상 2~3층 정도 되는 작은 건물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는 시가지를 골목과 골목을 오가며 싸우게 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통로는 끝에서 쉽게 감제할 수 있는 구성이다. 미리 자리만 잡으면 무조건 유리한 상황이 펼쳐지는 것. 거기다 골목이 워낙 많으니 서로서로 뒤를 잡으려고 무한하게 우회하고 우회하는 질리는 상황이 일상적이다. 그나마 거점으로 통하는 통로는 한정적이고 플레이어 밀도는 높으니 분대 단위로 전략적인 우회를 하기도 힘들다.
그나마 고전적인 ‘배틀필드’ 의 전투 양상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리버레이션 피크는 그 문제가 제한적이어서 안전지대의 저격수 같은 문제만 제외하면 공수 밸런스 문제에 가깝다. 하지만 카이로 포위전은 기존 ‘배틀필드’ 와 다른 메타로 게임이 흘러가기 때문에 더 문제가 부각된다. 일단 맵이 너무 좁다는 문제만 해도 맵을 대대적으로 손을 보아야만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리버레이션 피크의 풍경에는 감동이 있다
그리고 같은 보병전의 카테고리라 하더라도, 이전에 선보인 보병전과 카이로 공성전에서 보이는 보병전의 양상은 다르다. 배틀필드의 보병전은 보병전이라고 해도 앞서 언급한 특징을 잘 담고 있었다. 진영과 거점을 두고 싸우는 전선과 힘싸움 말이다. 하지만 카이로 공성전은 유독 그러한 모습에서 매우 멀어진, 이질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메트로 작전 같은 맵이 과거 사랑받았던 건 그냥 보병끼리 죽이고 죽이는 정신없는 살육전이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고착된 힘싸움 양상에서 장비의 도움 없이 보병만의 힘과 기지로 전선을 뚫고 나가는 카타르시스가 있는 살육전이었기 때문이다.
즉 전술적 파괴로는 완전히 전장을 뒤바꾸어놓을 수는 없으며, 건물 자체는 유지되기 때문에 침입과 공격에 더 취약해진다고 보는 것이 옳다. 아예 건물을 무너뜨려버려 거점을 없애는건 불가능하다. 이러한 부분은 일장일단이 있다. 일단 건물 자체가 무너지는게 전장에서 그렇게까지 많이 필요하지 않은건 사실이며, 밸런스적으로는 좋지 않게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그리고 현재로서도 충분히 전술적인 활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총체적인 파괴가 주는 전략 전술적 창의성, 그리고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비교적 적게 적용되는 부분은 아쉽다.
두어시간에 한 번 꼴로 본 그래픽 버그
■ 그래도 재미있는, 오랜만의 배틀필드
때문에 오픈 베타의 내용은 제외하고서, 이번 오픈 베타의 공개 전략에 대해 상당한 아쉬움이 남는다. 가장 ‘배틀필드’ 스러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풀 스케일 대형 맵 하나 없이 오직 가장 작은 맵들로만 라인업을 채운 점은 과연 ‘배틀필드’ 다움을 어필하고 싶어했는가 하는 의문을 남게 만든다. 실제로 전면전(올아웃워페어)인 컨퀘스트/브레이크스루 모드를 제외한 다른 모드들은 ‘배틀필드’ 의 중심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현재로서 보이는 ‘배틀필드 6’ 는 상당히 희망적인 부분도 많다. 사실, 비판 내용이 더 많기는 하나 여기서 언급된 브레이크스루/카이로 공성전/일부 무기 밸런스를 제외하면 모든게 마음에 든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전술적 파괴를 적극 활용한 ‘배틀필드’ 에서만 가능한 전면전 경험이 여실히 녹아있고, 4개의 병과의 균형을 잡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이며 동시에 병과별 특화무기, 그러나 모든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점 등은 기존의 고질적인 단점들을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때문에 일단 재미있으며, 매우 몰입감 높은 전장 체험을 제공한다.
분명 전체적인 기조는 ‘배틀필드’ 3편에서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디테일한 면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동시에 기존의 특징과 궤를 달리하는 변화도 눈에 띄기 때문이다.
더불어 차량과 항공병기 등 장비들의 위력은 적절한 선을 유지해야 하지만 현재는 조금은 과하게 약세를 보이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초창기 ‘배틀필드 2042’ 처럼 날틀필드가 되어버리는건 그야말로 최악이겠으나 현재로서는 항공병기가 전혀 공포로 군림하지 못하고 있다. 뭐, 그래도 날틀필드보다는 지금이 낫기는 하다.
정리하여, 오랜만에 맛보는 ‘배틀필드’ 의 맛은 분명 좋았다. 그리고 이번 오픈 베타에서는 ‘배틀필드’ 가 보여주는 정체성 고민도 엿보인다. 요즈음 인기를 끄는 슈터 유저층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버릴 수 있는건 무엇이고 취할 수 있는건 무엇인가 하는 고민 또한. 보통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나기가 더 쉽다. 마치 카이로 공성전의 공격처럼 말이다. 하지만 일단은 ‘배틀필드 6’ 의 희망적인 부분도 보았으니, 향후를 기대하고 싶다. 이번 오픈 베타는 1주차는 오늘(9일)부터 10일, 2주차는 14일부터 17일까지 진행된다.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