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2077'의 목소리를 만든 사람들, 무사이&성우진 인터뷰
한국 게임 현지화의 산실, 무사이 스튜디오 한켠에는 지난 프로젝트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간 ‘GTA5’ 한국어화, ‘헤일로’ 시리즈의 한국어 더빙,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와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까지, 국내의 굵직한 현지화 프로젝트를 다수 진행해 온 무사이 스튜디오. 이들은 CDPR 의 이전 작품인 ‘궨트’ 와 ‘쓰론 브레이커’ 한국어화 및 더빙으로 쭉 연을 맺어오고 있다. 또한 주인공 V 역의 김혜성 성우는 ‘오버워치’ 의 겐지로 이름을 널리 알렸고, 조니 실버핸드 역의 정성훈 성우는 CDPR 의 이전 작품에서 바로 그 게롤트 역을 소화한 바 있다.
정성훈 성우(좌), 김혜성 성우(우)
이인욱 감독
Q. 안녕하세요. 먼저 이렇게 자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고 넘어갈게요.
이인욱 : 무사이 스튜디오의 이인욱 입니다. 디렉터를 맡고 있습니다.
김혜성 : 안녕하십니까. 사이버펑크 2077의 V, 성우 김혜성입니다.
정성훈 : 조니 실버핸드 역할을 맡은 성우 정성훈입니다.
- 자, 아시다시피 한글날에 이 한국어 더빙 사실이 공개되었어요. 다들 이번 발표, 어떻게 보셨을지 모르겠지만 반응이 정말 엄청 좋았습니다.
이인욱 : 이번에 발표 전략이 정말 좋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 반응이 그렇게까지 좋을줄 몰랐어요.
- 그럼요. 특히 성우들 입장에서 발표 당시의 반응을 보고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한데요. 마침 연기 샘플도 같이 공개되어서 거기에 대한 반응도 있었죠.
김혜성 :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어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하는 생각을 쭉 해왔죠. 물론 음성 더빙이 된다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당연히 반응이 좋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대작 게임을 더빙한다니, 앞으로 이에 버금가는 다른 게임들도 더빙이 되겠구나 하고 기대도 많이 생기겠고.
그런데 이제 사람들이 걱정을 하지 않을까, 여기에 김혜성이 붙었다고 하니까. 여기에 왜 김혜성이 붙었지? 하는 이야기가 나올까봐, 왜 나는 나를 이렇게 믿지 못할까, 김혜성 괜찮은 사람인데 내가 왜이렇게 의기소침해질까… 이런 생각을 했죠. 그런 걱정을 가지고 반응을 봤는데, 다행히도 정말 ‘아니, 왜 김혜성이야?’ 라는 말이 없었어요. 그게 정말 감사하더라고요.
이인욱 : 그런 댓글을 봤어. 겐지의 목소리로 ‘X발’ 을 듣다니!
김혜성 : 그러게요, 오히려 그 ‘오버워치’ 의 겐지 이미지를 좋아하시더라구요. 좋아하기보다는 겐지가 했으니까 또 잘 어울리겠다, 이런 반응이라고 할까. 겐지라서 좋다는 이야기도 많이 보아서 연기자로서 많이 힘도 얻었어요. 사실 그 발표 전까지 일정도 굉장히 빡빡하고 많이 힘들었거든요.
- 사실 그래서 계속 겐지 이야기가 나와요. 그런데 연기자로서 이전의 캐릭터 하나가 계속 언급되는게 마냥 달갑지만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동안 다른 영화 등의 연기자들을 보면.
김혜성 : 실은 겐지란 캐릭터를 맡고 나서 그 캐릭터로 이미지 소비가 많이 되고 있었던 건 사실이죠. 오히려 겐지라는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이 안될 때도 있고, 김혜성은 겐지 밖에 못해, 그런 이미지가 박혀버린 부분도 있어요. 오히려 그 역할을 맡았을 때에는 좋은 이미지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안좋은 이미지가 되어가는거에요. 이제는 한번 바꾸어봤으면 좋겠는데, 좋은 기회가 없을까? 하고 있었는데 바로 이 V가 온거죠. 저에게는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배역이었다고 생각해요.
정성훈 : 저는 솔직히, 이 발표가 한글날 된다는걸 알고 있었는데도 도저히 못보겠더라구요. 당연히 좋죠. 기쁜 일이고. 많은 사람들이 고생한 프로젝트가 이제 딱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인데요.
그런데 왜 못볼 것 같았냐면, 이 조니 실버핸드라는 캐릭터가 아이러니하게도 그 캐릭터보다도 키아누 리브스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거에요. 더 유명하고, 게임 캐릭터에 있어서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페이스 스캔까지 해서 본따 만든 캐릭터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그래서 이 캐릭터를 내가 더빙해서 나갔다, 라고 생각하니까 그 반응을 정말 볼 수가 없더라구요. 당일에는 정말 아예 못보고, 월요일이 되어서야 반응을 조금 살펴봤는데, 음… 저는 각오하고 있습니다(웃음). 욕을 포대기로 먹을 각오를 하고 있어야겠구나, 싶더군요. 지금 이순간에도 부담감이 느껴져요. 키아누 리브스의 캐릭터를 연기했다는 것, 부담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이인욱 : 그래서 우리가 모두 이 부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는데, 우리의 결론은 이거에요. 조니 실버핸드 역할을 키아누 리브스가 한거지, 키아누 리브스가 조니 실버핸드인건 아니다. 정성훈만의 조니 실버핸드를 잡아가면 된다, 이거죠.
정성훈 : 근데 현실적으로는, 사람들이 볼 때는 키아누 리브스가 떡하니 있으니까. 그래서 저는 이번 발표를 보면서 심정이 굉장히 차분했어요. 정말 마치 누구한테 혼나는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묘한 기분이었어요. 물론, 이 역할을 연기하게 된 것은 영광이죠. 그건 분명합니다.
- 저는 좋은 반응도 많이 봤어요. 특히 마지막의 강렬한 욕설에 대해서 좋아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김혜성 : 맞아. 그 X발이 너무 좋다고.
정성훈 : 뭐, 내 X발? 아, 내 X발.
김혜성 : 네. 저 목소리로 듣는 욕이 너무 감미롭다고. 잘 어울린다고.
정성훈 : 아니, 진짜 힘들었어? 뭘 힘들어, 다들 크다보면 한 번 씩 하는 욕이잖아.
김혜성 : 아… 아니, 힘들다가 아니라, 앞으로 힘들지 않을까… 하는거죠. 그리고 제가 알고 있는 여자 성우들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봤는데, 오히려 아니 너무 시원하다고 하는거에요. 그래서 나도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하고 있었죠.
- 사실 욕설이라는게 지역별로도 차이가 있고 톤도 다르기 마련인데, 그 욕설을 참조하고 디렉션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인욱 : 일단은 내가 듣는 욕의 기준, 내가 알고 하고 듣는 그런 욕의 기준을 따라가게 되죠. 욕의 수위와 단계가 있다면, 트레일러에서 보여준 것은 아주 애들 수준의, 기초적인 수준이고. 더 깊게 들어가서 게임 내에서는 아주 살벌한게 엄청나게 나와요.
김혜성 : GTA5 의 욕설 번역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이 좋아요. 그리고 그 GTA5 를 번역한게 바로 무사이 스튜디오잖아요.
- 네 그렇죠. 특히 ‘나마 X발’ 같은거.
김혜성 : 맞아 그거. 그렇다면 이번 ‘사이버펑크 2077’는 어느 정도일까. 확실한건 GTA5 이상이라는거에요. 그보다 찰지다, 이거죠.
이인욱 : 이건 단순히 욕이 아니라 표현 방법이 아주 기발할 정도에요.
이인욱 : 일단 CDPR 코리아에서 많은 조언을 주셨어요. 이 게임에 대해서 가장 많이 알고 있고, 캐릭터를 이해하고 있으니까. 굉장히 대단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외국의 악센트, 표현법 이런게 우리와 사뭇 달라요. 우리 직원 중에 영어가 더 편한 직원들도 있는데, 그런 친구들에게 옵티컬(참조용 원어 녹음본)을 들려주고, 그걸 듣고 의아해할 때가 있어요. 종종 한국어 더빙보다 원문 더빙을 듣고 자막을 보는게 낫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언어로서 그 더빙을 이해하기 보다는 그저 소리를 듣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그런 악센트까지 포함해서, 번역 단계에서부터 우리 스타일, 우리의 문화에 맞는 욕설, 이런식으로 맞춰나갔죠.
이인욱 : 몇 명이 들어가는지는 제 마음이죠.(웃음). 지금 한국 연기자가 약 200에서 250명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 됩니다. 정말 전문 성우들 외에도 연기 잘하는 사람들은 다 불러다 써야해요. 캐릭터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전부 다 전문 성우로 간다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죠.
- 그렇다면 캐릭터별 분량은 누가 제일 많은가요?
이인욱 : 분량이 제일 많은건 역시 V, 그 다음이 조니 실버핸드. 그리고 세번째는 미공개 캐릭터에요. 그리고 이 캐릭터들 모두 다 욕을 하죠. 2077년도에는 다 사람이 미친놈이 되는 것 같아요. 안녕하고 인사하기 전에 일단 X발부터 나가니까.
이인욱 : 역시 실력, 연기력이었죠. 외국처럼 시간이 1년 이상 넉넉하게 있었다면 더 많은 테스트를 할 수 있었겠지만, 시간이 워낙 부족하다보니 가장 먼저 본 것은 역시 연기력이었어요. CDPR 쪽에서 라이브 오디션을 할 때에도 아무나 부르는게 아니라 충분히 실력이 받쳐주는 이들을 데려다 놓고 진행을 했죠. 그 외에는 음… 잘생긴 사람들?(웃음)
Q. 일정이 타이트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모든 게임 장면을 보지 못하고 녹음을 하게 되는 등 작업이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요. 그런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무엇이 있을까요?
김혜성 : 그런 부분에서 이인욱 디렉터님의 디렉팅에 대해서 감탄을 느끼는게, 게임 화면도 없고, 번역은 훌륭한데 대사 속 상황이 마구 왔다갔다 하니까 어려움이 컸죠. 물론 베테랑 성우분들은 한 번 슥 보면 상황 파악이 딱딱 나오시죠.
정성훈 : 아이, 이건 너무 전형적인 멘트다. 저같은 경우에는 조니 실버핸드를 연기를 할 때 다른걸 모두 제쳐두고 고민하고 신경을 썼던 부분은, 역시 키아누 리브스에요. 키아누 리브스를 신경 쓰지 않으면서 동시에 또 신경을 써야만 했죠. 그 연기 스타일을.
키아누 리브스 자체가 연기 스타일이 어떤 작품에서든 일관되어 있어요. 조니 실버핸드 또한 그렇단 말이죠. 그런 키아누 자체의 스타일이 너무 강하니까, 그걸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대로 따라갈 수도 없고. 키아누는 키아누니까요. 그 중간의 어딘가를 찾는게, 감독님이 정말 많이 신경을 쓰셨고, 저 또한 그럤죠.
이인욱 : 영어와 한국어의 언어, 문화권의 차이도 있고, 키아누의 연기 차이도 있죠.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다르고요.
정성훈 : 굳이 따지자면 존 윅에 그나마 가깝달까.
이인욱 : 아냐. 둘 다 아냐. 존 윅의 키아누와 이 캐릭터는 또 완전 다르지. 물론 키아누는 똑같이 연기하지만, 캐릭터는 다르죠. 키아누의 연기 스타일이 그러니까.
정성훈 성우가 좋은 아이디어를 주었는데, 워낙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가 일관되다 보니까, 플레이어 입장에서는 루즈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우리는 좀 텐션을 살리면 어떨까 하는 의견을 주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키아누와는 조금 다른 조니를 연기했죠.
김혜성 : 영어를 이해하실 수 있다면, 한 번쯤 영문으로 듣고 저희 연기를 들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더 잘 어울리게 방향성을 잡고 연기를 하고자 했는지, 분명 더 좋아하실거라 생각합니다.
- 한국에서는 12월 11일에 음성 더빙이 추가되니까, 자연스럽게 다들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해요.
김혜성 : 그렇다면 좋네요.
이인욱 : 복불복이야. 영문에서 가장 좋은 부분을 봤다가 우리가 실수하거나 놓친 부분을 보게 되면 오히려 우리게 더 안좋게 되는거지.
김혜성 : 그런게 있어요. V 같은 경우에도 같은 말을 해도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 예를 들어 “왜?’ 한마디를 해도 가까이 던지고, 멀리 던지고, 왜, 왜? 왜! 이런 거리감과 톤의 차이가 있는데, 텍스트가 내려오면서 녹음을 할 때마다 이걸 실시간으로 선택해야하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옵티컬하고 비슷하게 요만큼 던지면, 디렉터님이 더 던져야지! 하시고, 제가 그래서 더 멀리 던져놓으면 아니 요만큼만 던져야지! 하시고. 그래서 막 다시하기를 반복하다 보면 제가 멘탈이 붕괴되고, 내가 하고 있는 연기가 연기인가 싶고, 내가 성우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하고 있나… 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게 어려웠죠.
이인욱 : 디렉팅을 할 때는, 이런 경우에 게임 시스템이 어느 시점에서 발동되는가를 잘 봐야해요. RPG 에서 NPC 를 만나러 갈 때, NPC와 어느정도 거리값에서 대사가 발동하는지가 대표적인 예시죠. 본사에서 플레이 영상을 보내주었을 때, 그 영상을 보면서도 플레이어, V와 말하는 대상이 어느 정도의 거리감이 있는지 꼭 봐줘야 돼요. 특히 V 는 주인공이니까.
그런 것을 유지하면서 연기에 들어가야 됩니다. 조니가 나와서 어느정도 거리에서 움직이고 어디까지 활동하는지,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아야하고, 또 엑스트라들은 지나갈 때 어느정도 거리에서 나와서 어떻게 행동하며 지나가는지를 파악해야 하니까.
- 그런 부분을 게임 플레이 없이 모두 맞추시려면 정말 어렵겠는데요.
이인욱 : 그래서 결국 감이에요. ‘쓰론 브레이커’ 때는 그림 한 장 못봤어요. 그런데 다 틀렸죠.(웃음). 막 머리속에서 얘가 여기서 이렇게 나와서 이렇게 가서 이야기 하지 않을까? 했는데 2D로 캐릭터만 딱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녹음 시에는 딱 이게 정답이야, 보다는 보다 넓게 여기에도 맞을 수 있고 저기에도 맞을 수 있는, 보다 넓은 범위를 맞출 수 있도록 해야죠. 이건 노하우인데, 영업 비밀인데.(웃음)
Q. 이인욱 감독이 까메오처럼 npc 한두명씩 녹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에는 얼마나 들어가셨는지 궁금한데요.
이인욱 : 이번에는 딱 한마디 들어가요. 길가다 보게되는 광고 멘트로 재품명을 외치듯이 하는 그런 대사에요. 그거 딱 하나 들어갑니다. 어디서 나올지 몰라요.(웃음)
Q. 얼마 전 CDPR 일본 직원이 트위터에 올린 사진에 나온 대본의 양이 엄청나서 화제가 된 적이 있어요. 실제로 양이 그정도인가요?
이인욱 : 아니에요. 그보다 훨씬 많아요. 저희 대본을 다 프린트하면 정말 그거보다 많을겁니다. 대충 사진에 나온 양이 전체의 2/3 분량 정도 될거에요. 일본어임을 감안해도 그 정도에요. 아마 처음엔 녹음하고 버리다가 한 번 다 모아봐야겠다 하고 중간에 모아본게 아닐까 싶은데.(웃음) 지난해 저희가 진행했던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의 모든 대사량, 캠페인, 워존, 멀티 다 합쳐서 20만 단어인데, 그보다 몇배가 되는 양입니다.
#サイバーパンク2077 無事ゴールドマスターです!ひとつの大きなマイルストーンに到達しましたが、これからも引き続きブラッシュアップしていきます!まだまだやれることはある!
— 西尾勇輝 (@Nishio_EE) October 5, 2020
そしていい機会なので(あくまでも一部ではありますが)、日本語吹き替え台本の写真をどうぞ。 pic.twitter.com/Rg5PNu3aDF
- 사실 그것 때문에 더빙 한국어화가 더 이슈가 된 것도 있어요. 그 대본량을 보고 아, 저러면 안될만하지, 하는 반응들이 주를 이루었거든요.
이인욱 : 발표 타이밍이 좋았네요.
Q. 김혜성 성우는 그간 여러 작품을 경험해보았는데, 사이버펑크 2077만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오픈월드 게임인지라 대사의 중요도가 다르고 분량도 굉장히 많고 종류도 다를 것 같은데요.
김혜성 : 스토리에서 감정을 많이 넣어야 하는 대사도 있었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것 같은 대사가 많았어요. 살짝 캐릭터를 살리면서, 툭툭 던지듯이, 우리가 일상에서 이야기 하듯이 하는 대사들이요. 그래서 보다 V 자체가 말하듯이 모든 대사를 말하고자 했다고 하면 되겠네요.
그래서 대사중에는, 이거 그냥 김혜성이 하는 말 아니야? 싶은 것도 있어요. 그냥 가볍게 “밥 먹었어?’ 하는 그런 대사도 무게를 잔뜩 잡고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런 편한 대사들도 있어서 저건 김혜성인데? 싶은 느낌도 조금 받으실 것 같네요.(웃음)
- 그렇다면 비슷하게, 조니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어땠나요?
정성훈 : 조니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라 디지털 환영이잖아요. 그래서 조니는 그런 일상적인 대사라고 할 수 있는 비중이 훨씬 낮아요. 대부분 V를 까대거나, 연신 투덜거리거나, 대부분이 V가 듣는걸 전제하는 대사니까. 그리고 조니 실버핸드라는 캐릭터 자체가 좀 삐딱해요. 일상적인 대사를 하는 느낌은 좀 적죠. 또 워낙 락커보이다 보니까 허세가 심하고, 자기 폼내는거 좋아하고. 의외로 허당이기도 하고요.
김혜성 : 잔소리꾼이에요 잔소리꾼.
Q. '사이버펑크 2077' 이 더빙이 되면서, 분명히 앞으로 더 많은 게임 더빙에 대한 기대가 있어요. 지금까지는 대부분의 게임을 자막으로만 즐겨왔으니까요. 예를 들어 영화 ‘기생충’ 을 자막으로 보는데 거부감을 표하는 미국 관객을 보고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걸 놓쳐왔을까 했어요. 현업자로서, 자막과 더빙으로 콘텐츠를 플레이할 때의 차이, 그리고 더 많은 것이 더빙으로 서비스 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김혜성 : 일단 수요가 많아야 되겠죠.
이인욱 : 일례로 예전 조사 자료가 하나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외국 영화를 봤을 때 장면이 잊혀지는 시간 대 별 자료가 있는데요. 우리가 영화를 보고 나와서 기억하는 장면은 채 30%가 안된다고 해요. 그리고 나머지 70% 은 전부 자막을 보느라 영화의 장면을 보지 못한거죠. 원어민하고 자막을 보는 사람하고 같은 영화를 봤을 때, 영화를 기억하는 기간이 5배 정도 차이가 난다는 자료가 있습니다. 분명 우리가 극장에서 본 영화인데 명절 TV에서 보면 저런 장면이 있었나? 하고 느끼는건 다 그런 이유인거죠.
물론 예전의 우리나라의 더빙 수준이 떨어져 있을 때, 그때 엉망으로 더빙을 해놓은 것들을 보고 반감이 생기곤 하는데, 그 이후에 다시 발전을 시켜온 결과물을 본 유저들은 그걸 반기고, 좋아하고, 그럼에도 그 전에 그런 엉망인 더빙에 한번 데였던 유저들은 데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나 싶어요.
하지만 게임이란 것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하는 가상 체험인데. 그만큼 가장 리얼리티를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막을 보고 글을 읽으면서 게임에서 하라는대로 시키는 것만 하고 있으면 너무 답답하잖아요.
- 그렇죠. 저는 얼마전에 VR 게임 ‘하프라이프 알릭스’ 를 했는데 거기 자막은 진짜 절대 못보겠더군요. 그걸 더빙으로 했어야 했는데, 하고 안타깝더군요.
이인욱 : VR 은 절대 자막으로 못보죠. 어지러워져요. 앞으로 수요가 많이 늘어나고, 저희도 점점 일을 더 많이 해야죠. 그래야 먹고 살고.(웃음)
Q. V는 플레이어의 분신인 주인공이라서, 뭔가 지금까지의 다른 게임 캐릭터들처럼 확실한 특징이 잡혀져 있지 않아서 어려움도 많았을 듯 합니다. 실제 녹음 과정에서는 어땠나요?
김혜성 : V 같은 경우에는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잖아요. 내가 만든 캐릭터가 움직이는데 캐릭터의 아이덴티티가 너무 강하고, 스토리가 너무 강하면 안되니 이런 부분을 절제하라는 쪽으로 디렉팅을 받기도 했어요. 저도 연기를 하면서 내가 정말 이 게임을 한다면 거슬리지 않게 연기를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더 많이 풀어서 연기를 한 부분이 있어요. 호흡도 절제하고, 일일이 하나하나 감정 넣고 호흡 넣고 하지 않고, 쓸만큼만 쓰고, 플레이어가 몰입하고 이입하고 내가 게임을 주도적으로 한다는 느낌을 받도록요.
그래서 좀 어떻게 보면 심심한 캐릭터일 수도 있어요.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그랬거든요. V는, 얘는 대체 뭐가 특성일까? 캐릭터의 특별함이 뭘까? 이런 고민을 했어요. 나이는 몇이고, 용병이고, 출신은 무엇이고… 그런 걸로 연결해서 나의 캐릭터라고 받아들이니까요.
이인욱 : 1인칭 시점의 게임은 절대로 주인공이 너무 설치면 안돼요. 플레이어가 너무 피곤해져요. 내가 보고 있는 1인칭 시점 내에서 다른 캐릭터들이 이미 무엇인가하고 있기 때문에, 유저들은 내가 뭘 선택했을 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연기가 나올지 기대를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 캐릭터가 너무 뭔가를 하면 안돼요. 그래서 아까 말한 것처럼 심심하게 느껴져야 할 때가 있기도 하죠.
남자 V로서의 감정 표현, 여자 V로서의 감정 표현을 좀 차이를 준 것도 있어요. 그래서 서로 다른 성별로 V를 플레이 할 때 느낌이 다른 부분도 있을 겁니다. 내가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서 인물들의 대사가 달라지는 점도 있고요. 그 경우의 수를 모두 따져서 다 다르게 녹음을 했어요.
김혜성 : 고르는 재미가 있을거에요. 다른 주조연 캐릭터들의 연기가 화면 안에서 잘 들어와서, 주인공은 그걸 잘 보고 있고, 그럼으로서 주조연이 빛나게 되는, 그런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Q. 영문판을 플레이했을 때 재키는 멕시칸 억양이 매우 강한데, 한국 샘플 트레일러에서는 흔히 생각할 법한 사투리 같은 말투를 부여하지 않으셨어요. 재키를 이렇게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인욱 : 문화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서울 사람인데, 전라도 등 사투리를 사용하는 지방 사람들의 그런 말투, 느낌을 흉내를 낼 수는 있지만 그걸 똑같이 가질 수는 없어요. 재키 또한 멕시칸 갱에서 거칠게 살아온 인물인데, 그 감성으로 어떻게 연기를 풀어가는지 우리는 추측을 할 뿐이지 온전하게 이해하기는 정말 어렵거든요. 또 해외는 다민족, 여러 문화가 얽힌 환경이 있지만 우리는 아직까지 단일 문화권이다보니 그런 부분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구요. 영문에서는 그런 느낌을 참 잘 잡았지만, 우리가 그런 부분을 따라하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름의 방식으로, 처음에는 재키한테 전라도 사투리를 쓰게 할까? 그랬어요. 그러다가 에이, 안되겠다, 이건 내가 못살리겠다, 해서 표준어로 만들었죠. 그런 부분은 우리 더빙하는 사람들이 늘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성우들이 지금 이 프로젝트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나요?
이인욱 : 성우들 중에서 게임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이번 프로젝트 오디션이 안된 친구들도 전화를 걸어서 지나가는 행인 1도 괜찮으니까 꼭 끼워 달라고 하기도 하고요.
또 한 번은 메일이 왔는데, (성우 지망생이) 저에게 샘플 녹음을 보내서 이 프로젝트에 꼭 끼고 싶다는거에요. 캐스팅만 해주면 돈 안받고 하겠다. 그만큼 관심이 크구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성우들도 굉장히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타이틀이에요.
- 두 성우 분은 어떤 게임을, 얼마나 플레이 하시는지?
정성훈 : 저는 사실 PS3 때 가장 열심히 했어요. 요즘은 많이 못하고 있죠. RPG를 가장 많이 헀는데, 학생 때는 정말 밤새가면서 미친듯이 플레이했죠. 그런데 나이들수록 점점 그렇게 하기 힘들더라구요. ‘파이널 판타지 7’ 을 플레이할 때는 정말 전 파티원을 레벨 99로 만들고 세피로스에게 야, 너 이 XX 죽어. 하는 심정으로 만나러 갔어요.
그렇게 열심히 했던 제가 지금 게임을 한다고 하면 오히려 액션 같은 게임을 주로 할 것 같아요. 즉각적으로 플레이하는, 하나만 진득히 붙잡고 게임하기가 요즘은 어려운 느낌이에요. 게임기를 새로 산다고 하면, 일단 ‘사이버펑크 2077’ 이 딱일 것 같네요.
김혜성 : 저는 장르 안가리고 다좋아해요. 그런데 저도 정성훈 성우님하고 비슷한게, 시간을 지날수록 진득하게 게임을 할 시간도, 집중력도 떨어지는 듯 해요. 그래서 액션 쪽을 더 찾게 되고, 다행히도 오픈월드 게임들은 액션성이 강조되다 보니까 손쉽게 하는 편이에요. 특히 ‘GTA’ 는 시리즈 전부다에 GTA 온라인도 엄청나게 많이 했죠. 루리웹도 많이 합니다.(웃음)
이인욱 : 그러고보니 루리웹에서 인연으로 김혜성 성우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나네요. 대단하다는 생각이 확드네.
김혜성 : 2002년도인가, 그때 기동전사 건담 일반인 성우 콘테스트를 했는데, 제가 루리웹에서 기사를 보고 신청해서 1차를 통과하고 무사이 스튜디오에 와서 이인욱 감독님을 처음 봤죠. 되도 않는 실력으로 했는데 그때.
이인욱 : 그때 고등학생 김혜성을 봤지.(웃음) 30대 이인욱과 10대 김혜성이 그때 만났지. 그리고 그 때 더빙쪽이 크게 훅 올라갔다가, 다시 한 번 싹 가라앉았다가. 지금까지 왔지.
김혜성 : 한때 게임 더빙 황금기가 있었죠.
Q. 그러고보니 요즘 코로나 시기인데, 더빙 쪽에는 영향이 없나요?
이인욱 : 해외 옵티컬을 들어보면 스튜디오가 아닌 환경에서 녹음한 듯한 버전들이 있어요. 그래서 참 이 친구들 코로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겠다, 싶더군요. 저희는 방역에 철저히, 성우들의 안전 관리도 철저히 해서 홈 레코딩 없이 모두 스튜디오 녹음으로 진행합니다.
Q. 자 그럼, 감독 입장에서 마지막으로, 한국 더빙에 대해서 좀더 강점을 어필하자면요?
이인욱 : 영문보다는 한국어로 하는게 더 귀에 쏙 들어오면서 캐릭터들의 열연을 볼 수 있을 겁니다. 가끔 영문 옵티컬을 들으면 녹음 과정에 따라 목소리가 변하더군요.
그리고 디렉터가 실수하는 부분인데, 이런 길게 길게 녹음을 하게 되는 작업에서는 성우가 원래 소리에서 바꿔서 연기를 하는 캐스팅을 하면 안돼요. 오래 가다보면 그 바뀐 목소리가 풀려서 원래 목소리가 다시 나오거든요. 자신에게 편한 소리를 찾아가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전혀, 그러지 않고, 모든 성우가 마스크도 잘 쓰고 다녀서 감기 하나 없이 잘 끝내가고 있어요. 물론 플레이어 분들이 이런 부분까지 모두 세세하게 다 캐치하시지는 못하겠지만, 느낌 정도는 받으실 겁니다. 한국어로 들을 때 더 감흥이 강하도록 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음에 안드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거기에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그럼 이제 마무리하며,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마무리 인사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이인욱 : 연기력 면에서 한국 성우들이 절대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더 좋은 연기를 최선을 다해 하고 있으니 꼭 기대해주시고, 한국어로도 한 번 플레이해주시길 바랍니다.
김혜성 : 너무나 대단한 프로젝트라서,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 고생하는 성우, 스탭분들의 노고를 알아주신다면 더욱 좋겠고, 작품이 나와서 즐기실 때 한번 쯤은 이 더빙되기까지의 고생을 한 번 쯤은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아직 할 일이 더 많이 남았네요. 정말 재미있을 것이고, 저도 많이 기대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정성훈 : 저는 뭐, 같이 참여한 사람으로서 이거 재미있을거에요, 고생해서 만들었어요 이런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아요. 당연하고, 그런 사정 너무 잘 아니까요. 그런 뻔한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제 스타일대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더빙이 되었던 다른 게임들을 폄하하는게 아니지만, 이 게임은 어쩌면 대한민국 게임 더빙 시장에 새 장을 여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새로운 장이 열렸어요. 기대해주세요. 12월 11일, 열심히 플레이하고 사랑해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김혜성 성우가 루리웹 유저들을 위해 남긴 포상(?)을 하나 전합니다.
유머로 보아주셨으면 하지만, 캐릭터 성격을 살려 욕설이 포함되어 있으니 시청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