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머 심장 울리는 ‘P의 거짓’·’나혼렙’ OST, 이제 국악으로 듣는다
우리 전통의 국악과 첨단 엔터테인먼트 산업인 게임이 만났다. 국립국악원은 12일(목), 서초구 원내 풍류사랑방서 ‘게임 사운드 시리즈’ 신보 발매 간담회를 갖고 같은 날 저녁 6시 멜론·유튜브 뮤직·스포티파이 등 국내외 주요 플랫폼에 음원을 선보인다. 이날 행사는 정소림 캐스터가 진행을 맡고 이지수, 양승환 두 작곡가가 함께 자리했다.
금번 ‘게임 사운드 시리즈’ 신보는 2023년과 2024년 ‘대한민국 게임대상’ 대상 수상에 빛나는 네오위즈 ‘P의 거짓’과 넷마블 ‘나 혼자만 레벨업: 어라이즈’ OST를 재해석한 앨범이다. 국립국악원이 지난 2024년 이 시리즈를 첫 선보인 후, 그 성과를 더욱 확장해 국악과 게임으로 대표되는 K-콘텐츠의 연계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앞서 i-dle(아이들) 협업으로 주목받기도 한 ‘ARISE(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 OST)’는 실내악 편성을 통해 색다른 음악적 체험을 선사한다. 더불어 ‘Blood-Red Commander(The Igris Theme)’와 ‘Sunset Duel(Summer Battle Theme)’은 피리와 태평소를 중심으로 국악 관악기의 강렬한 음색이 곡을 이끌며, 원곡의 웅장함을 넘어서는 힘과 긴장감이 감돈다. 이를 통해 국악기가 게임 사운드 디자인에서 서사와 감정을 확장하는 핵심 음악 요소로 활용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다.
● ‘ARISE’는 강렬한 사운드가 특징입니다. 국악으로 편곡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이지수 작곡가 겸 서울대학교 교수(이하 이): 원곡을 들었을 때 “아, 어떡하지?”란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이 멋진 K-POP을 어떻게 국악으로 편곡하지 고민하다 신스 베이스에 주목했습니다. 거문고를 베이스로 대금과 피리의 소리를 얹어 국악 실내악이 지닌 매력을 담백하게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양승환 작곡가 겸 음악감독(이하 양): 너무 잘 들었습니다. 자진모리 장단을 사용해 거문고의 소리를 중간중간 적절하게 잘 넣었네요. 거문고가 4세기부터 기록이 있으니 대략 1,500년이 넘은 악기입니다. 왕산악이란 사람이 거문고를 켜자 검은 두루미가 날아와 춤췄다고 해서 이름이 거문고가 됐죠. 그 오래 된 악기로 이처럼 현대적인 연주를 한 걸 왕산악 선생이 듣는다면 무덤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 ‘Sunset Duel’은 장구가 전체적인 리듬을 받쳐주니 저도 모르게 어깨가 들썩거립니다
양: 흥이 많으시나 봅니다(웃음).
● ‘Endless Desert’를 들으니 사막처럼 고요하면서도 긴장감이 감도는 느낌이 들어요
양: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사막이 없으니까 좀 더 이국적인 느낌을 주고자 양금을 택했습니다. 양금 자체가 중동에서 전래된 악기라 서양금을 줄여 부르는 이름이거든요. 산투르 혹은 덜시머라고도 하죠. 다만 본래 국악에서 연주되는 양금은 굉장히 정적입니다. 탕- 치고 한참 있다 또 탕- 치는데요. 이렇게 역동적인 연주는 조상들은 상상도 못했겠죠(웃음).
이: 저는 듣자마자 영화 ‘놈놈놈(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떠올랐습니다.
● ‘Blood-Red Commander’는 태평소로 이렇게까지 강렬한 연주가 가능하구나 놀랐어요
이: 언제나 태평소 협주곡을 꼭 써보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뚫고 나갈 수 있는 악기가 서양의 경우 트럼펫인데, 그보다 국악의 태평소가 더 세거든요. 마침 ‘Blood-Red Commander’가 전투 장면에 쓰이는 곡이기도 하고요. 원래 전쟁 영화 같은 걸 보시면 출진 신호로 태평소 같은 소리를 많이 써요. 뿌우~ 울리면 이제 다 죽여라! 같이.
양: 워낙 소리가 커서 사실 작곡가 입장에선 다루기 조심스러운 악기인데, 반주와 자연스레 어우러지도록 잘 편곡하신 듯합니다. 무엇보다 연주자인 박시현 단원의 연주가 굉장히 훌륭했습니다.
● 실제로 국악과 양악을 통틀어 가장 들어오기 어려운 곳이 국립국악원이라 들었습니다
양: 경쟁률이 100:1 아니 200:1은 될 겁니다. 전세계서 태평소 분다는 사람은 다 지원할 텐데, 연주자 정년이 60세인가 그렇거든요. 박시현 단원이 30대 초반이니까 앞으로 30년간은 더 안 뽑는 거죠(웃음).
이: 전 서양 음악 전공이라 국악기의 어떤 불규칙성이 어렵기도 했습니다. 근데 거꾸로 생각하니 거기서 오는 개성과 힘을 부각시켰을 때 양악기로 낼 수 없는 진짜 사람의, 자연의 소리가 살아나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국악기의 경우 연주자에 따라 정말 소리가 천차만별인데, 이번에 국립국악원 단원분들과 함께 한 건 정말 큰 행운이었죠.
양: 반대로 전 국악을 전공하다 그게 싫어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었거든요. 구태의연한 얘기입니다만 미국서 되려 국악을 들으며 내 음악적 정체성은 무엇인가 고민했죠. 솔직히 오늘날 관점에서 봤을 때 국악기가 부족한 부분도 많습니다. 아무래도 과학적, 음향학적 고려를 갖고 계량된 악기가 아니니까요. 사실 이렇게 서양 음악을 국악기로 편곡 가능해진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빠르게 발전 중이라고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으로 'P의 거짓'이 지닌 섬세하고 서정적인 그래픽 이미지를 국악 선율로 재현하며, 게임의 세계관과 미학을 음악적으로 확장하는 공연이 이어졌다. 먼저 ‘Overture’는 특별히 현장 연주가 아닌 게임 트레일러와 함께 상영돼, 국악 사운드와 세련된 영상미를 결합한 입체적인 연출로 게임 서사 및 세계관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Proposal, Flower, Wolf Part 1(Golden)'은 JTBC ‘풍류대장’을 통해 잘 알려진 정승준이 정가 특유의 깊고 절제된 음색으로 귀를 즐겁게 해준다. 'The Clear Blue Sky'는 부드럽고 신비로운 음색을 지닌 생황과 소프라노 이한나의 미성이 한데 어우러졌다. 끝으로 'By any means'에서는 '서용석 류 대금 산조' 가락을 차용한 선율을 중심으로 전통음악의 즉흥성과 장단, 현대 게임음악의 비트가 결합된 완성도 높은 연주다.
● ‘Overture’와 어우러진 게임 트레일러가 한 편이 영화 같네요. 오케스트라에 국악기를 어떻게 녹여내셨나요
이: 80~90명이 어우러져 소리를 내는 오케스트라에 가뜩이나 존재감이 큰 국악기까지 들어가면 밸런스를 맞추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름 방법을 찾은 게 국악기는 오케스트라 음역대를 피해서 넣는 거죠. 오케스트라가 배경 같은 역할을 맡고요.
● ‘Proposal, Flower, Wolf Part 1(Golden)’에 쓰인 정가가 어떤 장르인지 좀 더 설명해주시길
양: 우리 전통의 노래 장르가 판소리, 정가 이렇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조선 시대는 계급 사회였잖아요. 그래서 판소리는 평민들의 노래였고 양반은 정가를 불렀죠. 지금이야 계급 사회가 아니니 둘 사이에 격은 없지만 판소리하는 사람은 정가를, 정가하는 사람은 판소리를 부르지 않습니다.
● ‘The Clear Blue Sky’는 이한나 소프라노의 노래 덕분인지 여운이 길게 남는군요
이: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마치 뿌연 안개 속에 갇혀 있다가 시야가 밝아지며 아름다운 풍경으로 확 들어가는 듯했습니다. 그걸 표현할 때 뮤지컬 같은 느낌이 좋겠더군요. 이한나 소프라노가 꼭 디즈니 애니메이션서 들을 법한 목소리라 부탁했는데, 흔쾌히 수락해주어 고마웠습니다.
● 함께 연주된 생황이란 악기가 생소한 편인데요. 주로 어떻게 연주되는 악기인가요
양: 마치 하모니카처럼 들숨과 날숨을 통해 이렇게 호흡을 빨아들이고 내뱉으며 소리를 내는, 국악서 화음을 만들어는 게 가능한 악기입니다. 본래 전통 생황은 18관짜리인데 오늘 연주는 37~38관 정도의 중국 생황이 쓰였네요.
● ‘By any means’는 대금의 독주가 인상적입니다. 특별히 대금을 택한 까닭이 있나요
이: 대금이야말로 어떤 비극적인 느낌, 처절한 음색으로 ‘By any means’를 표현하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국악기라 생각해 이렇게 편곡했습니다.
이처럼 국립국악원은 이번 작업을 통해 국악만이 구현할 수 있는 게임 사운드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전통음악 고유의 음색과 주법을 게임의 서사와 장면에 맞게 활용함으로써, 국악은 현대 콘텐츠로의 확장 가능성을 입증하는 동시에 게임 음악의 표현 영역을 넓히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황성운 국립국악원장 직무대리는 "게임은 세대와 국경을 넘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종합예술"이라며 "이번 행사가 국악이 현대 대중문화 속에서 K-콘텐츠로서 새로운 역할과 가능성을 탐색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게임 사운드 시리즈’는 오는 11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주영한국문화원이 주관하는 '제12회 K-뮤직 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되어 영국 관객과 만난다. 국악으로 재해석한 게임 음악을 선보이며, 한국 전통음악의 글로벌 확장 방향을 제시하는 뜻깊은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 이렇듯 국악과 게임 사운드가 만나는 프로젝트가 두 분께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합니다
이: 단순히 국악과 게임 사운드, 두 음색을 합치는 데 그치지 않고 게임이란 매체를 통해 국악이 보다 대중들 가까이 다가서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프로젝트라 좋습니다.
양: TV서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누가 뭘 잘못했을 때 삐리리~ 이렇게 국악이 나오죠. 어쩐지 안 좋은 상황이나 기분을 표현하는 도구가 된 감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그 인식을 깨고 싶습니다. 국악으로도 이렇게 세련된 편곡이 가능하다고요.
● 국악기 중에서도 현대에 개량된 것들이 꽤 있는데, 일부러 전통 음색을 주로 쓴 건가요
이: 저는 서양 음악 전공자라 그런지 몰라도, 되려 서양 음악의 음계를 흉내내는 개량 국악기는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보다 옛 전통의 소리를 들려드리는 편이 프로젝트에 취지에 맞다고 봅니다.
● 앞서 국악의 즉흥성에 대해 말씀하셨죠. 편곡 과정서 그걸 어떻게 적절히 통제했나요
이: 서양 음악은 악보 안에 모든 정보가 다 들어있습니다. 그래서 무조건 악보대로 연주하는 게 옳죠. 반면 재즈는 최소한의 정보만 주고 연주자끼리 자유롭게 합을 맞춥니다. 국악은 그 사이 중간쯤 위치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협주라는 게 모두가 자유로우면 성립 자체가 안 되니까, 먼저 서양 악기가 단단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공간은 열어주고자 했습니다. 국악기가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말이죠.
양: 가령 피아노 역할을 가야금이 한다든지, 이렇게 국악기로 대체해봤는데 아무래도 믹싱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긴 합니다. 국악과 양악이 다루는 음역대가 다른지라 그걸 맞추는 데 굉장히 애를 먹었네요.
● 수많은 게임 장르 가운데 특별히 이건 국악기와 궁합이 더 좋다, 라는 게 있을까요
이: 앞서 얘기했듯 전투 장면에서 태평소를 출진 신호로 활용하기도 하고, 공포 장르도 국악기를 즐겨 쓰죠. ‘미궁’ 같은 곡이 대표적입니다. 코믹한 장면을 연출할 때도 많이 쓰여서 좀 안타깝긴 한데요. 저 같은 경우 영화 ‘올드보이’의 우진 테마(Cries And Whispers)’를 작곡했는데, 언제부턴가 개그 프로서 곧잘 쓰이더라고요(웃음).
정소림 캐스터: 개인적으로 게임도 많이 즐기고, 게임 음악도 자주 듣는 일을 하다 보니 이렇게 국악을 통해 게임 사운드가 표현되는 게 무척 반갑습니다. 두 분은 아무래도 젊은 세대가 국악을 멀게 느낀다고 여길지 모르는데, 오히려 요즘 게이머들은 K-컬처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거든요. 앞으로 국악이 우리 게임 곳곳에 더 많이 쓰인다면 참 좋겠습니다.
‘국립국악원 × P의 거짓: 서곡’, ‘국립국악원 × 나 혼자만 레벨업:어라이즈’ 두 앨범은 이날(2월 12일) 오후 6시부터 멜론·유튜브뮤직·스포티파이 등 국내외 주요 음원 플랫폼을 통해 공개된다.
|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