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런 짓을 하냐고? 생각보다 별 거 없어.
빛을 조롱하고, 어둠을 기만하는 자. 그게 바로 나, 알베르를 부르던 말이었지.
그런데 너희가 섬기는 그 어둠의 신인지 뭔지가 내가 조롱하던 빛을 빼앗고, 내가 기만하던 어둠을 집어삼켰지.
그 시점에서 나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지. 싸울 적도, 조력자도, 조롱할 빛도, 기만할 어둠도, 내 존재의 이유도.
선악같은 건 안 따져. 어차피 내 입장에선 고리타분하기도 하고. 다만 그저 너희가 모시는 어둠의 신인지 뭔지의 목을 날려버린 것을 본 것만으로도 즐거웠어.
그리고 이제는 그 목이 날아간 어둠의 신 따위를 따르는 떨거지들이 설친다길래 다시 돌아온 거야.
말이 너무 길었지? 이제 끝을 내보자고. 내 진짜 덱, 인간 세상의 사악한 지혜에 비하면 별 건 아니지만 마음껏 즐겨보라고.
[비스테드 디스 파테르], [카오스 앙헬]. 저 뉴비 광대에게 제대로 보여줘. 빛을 조롱하고, 어둠을 기만하는 광대가 무엇인지를.
"허억...!?"
"여어, 일어나셨어?"
시큐리티 포스 소유의 건물 지하에 배치된 독방, 아까 전의 듀얼로 기절했던 루샬카가 겨우 눈을 뜨고 있었다. 분명 강적의 손에 패배했었을 자신은 심장에 심어두었던 코카트리스 주입 장치로 인해 죽음으로 진실을 은폐한 후 그대로 화장(火葬)당했어야 했건만, 불경하게도 양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멀쩡히 살아남아 적에게 사로잡힌 처지가 되었다.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리니 거기엔 다크니스가 있었다.
"이건 또 뭐야... 왜 내가..."
"아, 이거 찾았어?"
다크니스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다름아닌 루샬카의 심장에 붙어있었을 코카트리스 주입 장치. 비록 몇 방울 정도의 소량이 들어가게끔 만들어졌지만, 그 정도로도 심장을 괴사시켜 죽이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정교한 외과적 수술이 아니면 섣부르게 뺄 수 없는 코카트리스 주입 장치를 주머니 속 물건 꺼내듯이 쉽게 꺼내버린 그 모습에 루샬카는 허망함마저 느껴졌다.
"애프터라이프의 걸작, 코카트리스. 이거 한 방울로도 닿은 곳과 그 주변까지도 괴사시켜버리고, 몸 속으로 들어가면 사람의 신체조직을 망가트리는 강력한 맹독. 이걸로 애프터라이프의 배신자를 둘이나 처치했었지, 아마?"
애프터라이프가 건재하던 시절에 만들어졌던 강력한 맹독, 코카트리스를 주입시켜 입막음을 시도했던 암흑 날개의 살인멸구의 수단 따위는 가소롭다는 듯이 다크니스, 정확히는 시큐리티 포스의 모습으로 위장한 알베르는 조소 가득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이걸 어쩐다. 너희 암흑 날개의 바람대로 순순히 놀아나주는 건 내 취향이 아니거든."
그 비릿한 웃음에도 루샬카는 화가 나기는 커녕 오히려 허탈하기 그지 없었다. 글레이브 하우스 테러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목숨을 건 마지막 임무를 수행했음에도 정작 그 임무에서 죽기는 커녕 도리어 시큐리티 포스 흉내를 내며 광대놀음을 벌이는 어둠의 정령에게 호되게 박살나고선 목숨만 붙은 채 이런 처지가 되었으니 루샬카 입장에선 자신의 생사조차 그에게는 그저 재밌는 놀잇감에 지나지 않았던 것같아 울컥하는 마음도 일어나질 않았다.
"그런다고 내가 순순히 이러쿵 저러쿵 떠들 줄 알고? 곧 하샤신들이 내 목을 따버리러 올텐데 말이야."
"아, 하샤신."
루샬카가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다만 자신의 숨을 끊어줄 하샤신들의 칼날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알베르는 이미 그런 것도 다 예상했다는 듯이 그 비릿한 웃음을 유지하며 받아쳤다.
"이를 어쩌지. 하샤신은 내 아침밥이거든. 마침 배고프기도 해서, 좀 즐겼지."
그리고선 알베르가 뭔가를 보여줬다. 지금은 죽고 없는 세라피스가 사용하던 인조 피부 마스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특제 복면이었다. 사람의 피부를 닮은 외관 덕분에 하샤신들이 신분을 위장한 채 자신의 임무를 수행할 때 잘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런 특제 복면을 이번 계획에 투입된 하샤신의 숫자만큼 보여주자, 루샬카는 깊은 한숨을 내쉴 뿐, 달리 뭐라 할 말이 없었다.
"그럼 나는 왜 살려둔 거야... 공개처형이라도 하려고?"
"그런 재미없는 소리를 하면 안 되지."
힘없이 나오는 루샬카의 질문에 알베르는 소위 '메롱'이라 부르는 행위를 한 번 해준 후, 그의 짜증을 불러일으킬 새로운 손님들을 데려왔다.
"앞으로도 네가 즐길 것이 많아서 그렇지, 루샬카 쨩."
살아야 할 때 죽는 것은 천벌이요, 죽어야 할 때 사는 것도 천벌이다. - 양주
"네가 그 대장로 루샬카로군. 너희 암흑 날개의 주장대로라면 말이지."
시큐리티 포스의 취조실, 다크니스라는 신분으로 활동 중인 알베르의 농간에 휘말린 루샬카는 애프터라이프의 전직 간부이자 배신자들이기도 한 세 사람의 등장에 대단히 불쾌함을 느끼고 있었다. 신의 일곱 눈의 일원이자, 누구보다도 어둠의 신에게 충성을 바쳤지만 애프터라이프와 그들이 섬기는 어둠의 신에게 깊은 환멸을 느껴 에스트렐라의 도움을 받아 전향해버린 '마카리아' 마리아. 일곱 눈의 최연장자이며 세 심장의 한 명이자 지금은 그 행방을 알 수 없는 페르세포네와 함께 애프터라이프의 구심점이 되어줬던 '카론' 알파드. 그리고 일곱 눈의 행동대장이자 선봉으로서 온갖 궂은 일을 맡아온 '자그레우스' 아케르나의 세 명이 루샬카의 눈 앞에 있었다.
"이 배신자들이 왜 여기로 온 거야...!"
"쯔쯧. 그렇게까지 너무 날을 세우고 그러지는 마. 내가 감히 한 마디하자면, 너는 저 다크니스라는 요원에게 죽을 때까지 감사해야 마땅해."
"뭐라고...!"
알파드의 말에 루샬카는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이 셋을 듀얼로 끝장내 어둠의 신의 부활을 위한 제물로 바치고 싶었지만 이미 그가 품었던 힘은 알베르와의 결전에서 모두 빼앗긴 다음이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미 그의 양 손은 수갑이 채워져 행동의 제약이 컸으므로 별 의미가 없는 생각일 뿐이었다.
"농담 아냐. 그 어둠의 신 어쩌고가 너한테 뭘 얼마나 잘해줬든, 정작 네가 필요할 땐 절대로 널 안 도와준다고. 마침 경험자도 있고."
"헛소리하지마! 배신자 주제에 날 가르치려들다니! 우리의 신은 다시 돌아온다고! 그 날이 오면 너희 배신자들 모두에게 벌을 줄 거란 말이다!"
알파드의 설득에도 루샬카는 언성을 올리며 오히려 자신의 신앙을 내세우는 것으로 버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다는 듯, 마리아는 2년 전의 그 사진들을 루샬카에게 들이대며 차가운 눈길로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래? 그럼 이 사진이나 보고서 머리 식혀. 그 다음에 다시 이야기를 해보자고."
2년 전의 그 기억. 천재 듀얼리스트 스트에게 자신이 재기할 수 있는 기회마저 무너지고 끝내 지켜야했던 동생들마저 지키지 못 한 자신에 대한 지독한 혐오감을 느끼던 그녀를 어둠으로 덮어주며 자신의 축복을 내려준 어둠의 신, 아스트라이모나드. 허나 그를 가장 필요로 하던 그 순간에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그 지독한 배신감에 시달린 끝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건만 이제와서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이유로 억지로 되살려내고서는 '어둠의 성모'라는 되도 않는 이름이 붙은 채 지금은 죽어 없는 '사도'들의 모체가 되어 비참하게 목숨을 연명당했던 그 날의 처절한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들을 루샬카에게 들이댄 마리아는 그의 신앙에 대해 깊은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우, 씨... 이야기는 들었지만... 진짜 끔찍하네..."
"나도 그 날의 기억만 떠올리면 치가 떨려. 차라리 소중한 가족들을 따라 같이 죽었으면 그걸로 나름대로 행복했을텐데, 제 때 죽지 못했다는 죄로 이 지경이 되었어. 너도 알아야 해. 세상에는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인 경우도 있지만, 태어난 것 자체가 대죄인 경우도 있다는 걸."
그리 말하는 마리아 자신도 깊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세상의 모든 축복을 다 타고난 것만 같은 스트의 손에 파멸이나 다름없는 결과를 맞이했는데, 그녀의 의자매 덕분에 한 번의 자비를 손에 넣었으니 세상은 이런 지독한 아이러니에 환장한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정도로 환호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 사진의 주인공이... 마카리아, 너라고?"
루샬카의 이름에서 '마카리아'라는 과거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그녀는 루샬카의 머리를 붙잡아 테이블에 세게 내리찍어버렸다.
"내 이름은 마리아다, 계집애. 또 그렇게 부르면 다음엔 네 손가락을 부러트리겠어. 열 개 달렸으니까, 열 번은 부러트릴 수 있어."
그 말이 나오기 무섭게 특수 처리된 유리창을 통해 네 사람을 지켜보던 다크니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아무리 중범죄를 저지른 범인이라도 죄가 확정되기 전엔 법적으론 무죄다. 그런 짓은 삼가해주도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알베르는 자신의 신앙이 서서히 무너져내릴 루샬카의 모습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어으으... 하지만 이 사진... 도대체..."
"뭐냐고? 나도 알고 싶진 않았어. 그런데, 이게 바로 마리아 씨가 애프터서비스인지 뭔지에게 잘못 걸려서 인생 망치던 시절의 모습이야. 루샬카 쨩, 너도 그 암흑 날개인지 뭔지에 계속 남았다간 너도 이 꼴 난다?"
"웃기지 마! 그리고 말 조심해! 배신자 주제에 어디서 그 혓바닥을 놀리는 거냐!"
"아, 미안. 하지만 난 이런 말싸움이 마음에 들거든."
이번에는 아케르나의 턴이었다. 마리아가 '어둠의 성모'로서 며칠이고 당했던 성적 폭력의 기억들을 보며 당황하던 루샬카의 정신을 그 세 치 혀로 흔들어놓기 시작하고, 그런 그녀에게 화를 내는 루샬카에게 아케르나는 자신의 재주를 100%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 식용 가능한 신 따위를 계속 믿었다간... 그쪽은 남자였지?"
"그게 뭐 어때서?"
"그 식용 가능한 신이 너를 여자로 만들어서 신의 아이를 낳으라면서 며칠이고 널 괴롭히고 조교하면서 끝내 너를 사람도 뭣도 아닌 비천한 무언가로 만들거라는 거지. 이미 그걸 실제로 당한 인물이 바로 눈 앞에 있고, 근거도 떡하니 내놨는데, 그걸 못 믿으면 넌 사람도 뭣도 아니야."
좋은 경찰, 나쁜 경찰 이론 같은 건 둘째 치더라도, 아케르나는 자신의 말발을 최대한 활용해 루샬카의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고, 점점 루샬카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깊은 혼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잘 생각해봐. 너희가 믿는 어둠의 신이, 그것도 자길 하나님처럼 여기는 단체의 여간부를 고작해야 애낳는 기계로 생각했다는 거야. 루샬카 쨩은 대장로인가 뭔가였었지만, 내가 아는 어둠의 신의 성질머리대로면 그 쪽은 아무리 좋게 봐도 일회용품이야. 그게 아니면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 같은 걸지도 모르고. 어쨌든, 네 신앙이 얼마나 깊은지는 안 중요해. 결국 그 식용 가능한 어둠의 신은 널 절대 사랑하지 않아. 이 사진을 잘 보고 다시 생각해보라고."
"그... 그럴 리 없어... 우리의 신이..."
애프터라이프의 일곱 눈이자 그 누구보다도 애프터라이프와 자신에게 열렬히 자신의 신앙을 바치던 광신도 마카리아를 자기 멋대로 내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자신이 배신한 신도를 멋대로 되살려내고서는 그런 그녀를 한낱 씨받이 취급했을 뿐인 어둠의 신의 일면에 루샬카의 혼란은 더욱 깊어져갔다. 물론 아케르나가 말한 것 자체는 일부 사실과는 다를 수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사진 자료로서 남은, 그 시절의 마카리아를 씨받이 삼아 자신의 혈육 비슷한 것을 낳게 한 어둠의 신의 파렴치한 면모에 루샬카는 자신의 신앙이란 도대체 무엇이냐며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 마리아 씨도 그렇게 생각했을 걸. 먹을 수 있는 신이 자신을 버릴 리 없다고. 그 녀석과 함께하면 자신은 언제까지고 성공할 거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고, 옆에 이 양반도 그렇게 생각했어."
"하지만 그 실체를 알아버린 이상, 이제 루샬카 군도 더는 진실에서 눈을 돌릴 순 없을 거야. 아쉽군, 마리아 씨의 기억을 실제로 체험할 수 있게만 했다면 우리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았을텐데 말이야."
"어둠의 신은 결코 너를 사랑하지 않아. 아니, 식재료에 대한 감사 정도는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하지만 어둠의 신의 패악질이 사진으로까지 남아 너에게 진실을 전해주고 있는데도 그걸 부정한다면, 너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진심으로 후회하게 될 거야."
애프터라이프의 전직 간부 세 명의 압박에 루샬카는 도저히 제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었다.
"그만... 그만해...! 우리 암흑 날개는..."
"암흑 날개? 차라리 아트몬 프라이드 치킨이라 부르지 그래. 정말로 그 작자의 눈에 비칠 너희 암흑 날개는 딱 그 정도에 지나지 않거든. 그런 걸 생각할 정신 머리가 남았다면 말이야."
"아냐... 아냐!"
"그만 발버둥치고 현실을 다시 직시해. 넌 어차피 테러 단체의 괴수로 낙인찍혔어. 죽는 것이 무섭지 않다고 치자. 하지만 너를 과연 죽게 놔둘까? 천만에. 오히려 너를 몇 번이고 살리면서 세월의 무게로서 널 벌할텐데."
"그만해... 그만해!"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던 광신도에게도 그렇게 매몰차게 대했던 어둠의 신이야. 샬루카 군에게 과연 네가 생각하는 축복을 내려줄까?"
"으으...!!"
왜 자신은 그 때 죽지 못 하고 살아서 이런 치욕을 당하는 것인가. 죽어야 할 때 죽지 못 하는 것도 고통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샬루카였다.
새로운 체제하에서 모든 인민이 만족하고 범죄도 그림자를 감추게 되었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믿게끔 한다.
그리고 며칠 후, 뉴스는 하루 종일 불타오르는 중이었다. 암흑 날개가 저지른 글레이브 하우스 방화 사건에 이어 트와일라잇 시티의 스카이라인에 포함된 마천루에도 맹독을 포함한 온갖 장치들로 무고한 생명을 해치려 했던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대대적인 방화 테러까지 시도해 재산 피해까지 입히려 했던 암흑 날개의 수괴, 루샬카 대장로에 대해 살인교사, 고의적 방화, 폭발물을 이용한 테러 등의 여러 혐의를 적용, 이례적일 정도로 신속하게 사형이 선고되었다는 소식이 뉴스를 통해 하루종일 퍼져나오고 있었다. 비록 원래의 목적을 이룬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렇게라도 수많은 인민들로 하여금 암흑 날개가 소탕되어 사라졌다고 속일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정말 위험했습니다. 루샬카 전 장로의 체포 소식을 전해듣자마자 피신하지 않았더라면..."
트와일라잇 시티와 리나 시티 양 쪽에서 다소 떨어진 작은 도시인 루나 시티의 어느 건물에 새로이 비밀 거처를 마련한 '암흑 날개'의 장로들은 하샤신들을 통해 시큐리티 포스 측이 자신들이 원래 거주하던 비밀 거처를 급습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신들의 계획과 동선이 이상할 정도로 적에게 노출된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비록 그들이 원했을 정보는 내주지 않았다곤 해도, 이 정도의 신속함은... 루샬카 전 장로의 배신의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되겠지요?"
"불가능합니다. 이미 그의 심장에도 코카트리스 장치를 심어놓은 만큼,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그는 이미 죽었어야 했습니다."
루샬카 전 장로의 배신도 생각해봤지만 아즈라 여장로와 르보리스 장로의 대화를 통해 일축되었고, 결국 대장로와 여섯 장로 모두 하나의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정령이로군요..."
대장로 샤키르의 말대로, 정령의 힘이 역적패당들을 돕고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뭐, 비록 덕분에 한 방 크게 먹기는 했습니다만... 그래서 어렵게 모셔온 분이 한 분 있지요. 앞으로 이 분이 루샬카 전 장로의 빈 자리를 채울 겁니다. 어쩌면... 제 자리를 대신하는 날도 오겠지요."
"후후, 초면부터 그렇게 칭찬을 하시면 많이 부끄러운데 말이죠."
그리고 루샬카 전 장로의 자리였던 대장로의 오른쪽 자리에는 하늘색의 웨이브 머리와 탐스럽고도 탐욕스럽게 빛나는 붉은 눈의 여성이 앉아있었다. 그녀는 검은 스타킹으로 감싼 자신의 다리를 꼬며 오만방자하게 자기 소개를 했다.
"그리고 앞으론 절 리스라고 불러주세요."
리스. 그녀 역시 어둠의 신의 전례없는 침공에 휘말려버린 수많은 세계 중 하나에 살던 연구원이었지만, 어둠의 신의 대대적인 침공에 분개하거나 맞서거나 절망하던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르게 리스는 어둠의 신이 보여준 파멸적이고도 강렬한 힘에 반했고, 언젠가는 자신도 신의 힘을 거머쥐어 자신이 새로운 어둠의 신이 되어보겠다는 비정상적인 야망을 품고 있었다. 대장로 샤키르 역시 어렵게 접촉에 성공한 리스의 터무니없는 야망을 읽어낼 수 있었지만 이미 그는 자신이 겪게 될 파멸과 지독한 운명을 인지하고도 자신의 모든 것을 어둠의 신에게 바쳐버린지 오래였던 광신도 중의 광신도였고, 거기에 그녀가 연구했던 수많은 자료들과 기록들, 정령계 등의 현실 너머의 세계에 존재하는 초차원적 세계에 대한 각종 연구 자료들, 거기에 그녀가 우연히 손에 넣은 신의 세 심장 중 하나인 '페르세포네'의 혼이 담긴 구슬을 본 대장로가 그런 리스에게 반했다는 표현을 써도 무방할 정도로 둘의 뜻이 맞아떨어져 암흑 날개의 새로운 축으로서, 그리고 새로운 구심점으로서 작정하고 키우기로 마음먹은 상황이었다.
"리스 여장로가 우리 암흑 날개에 새로이 합류했습니다. 그녀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샤키르 대장로는 리스가 장로의 자리를 넘어 추후 자신과 자신들의 신앙을 바칠 새로운 어둠의 신이 되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고, 그런 리스도 대장로의 바람에 부응해 새로운 어둠의 신으로 등극해 암흑 날개를 넘어 온 세상을 손아귀에 넣어주겠다며 벼르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만의 비밀을 아는 이 하나 없이, 나머지 장로들은 그런 리스를 맞이해주고 있었다.
죽기를 원하는 사람은 불쌍하지만 죽음을 두려워 않는 사람은 더 불쌍하다. - 독일 속담
"축하한다, 루샬카 쨩. 너, 공식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어. 아무도 널 변호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어서 형 집행이 신속하게 이뤄지더라."
비슷한 시간, 독방에서 그의 미모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죄수복 차림으로 자신의 신앙이 무너져내린 것에 크게 슬퍼하던 루샬카는 시큐리티 포스의 베테랑 요원 '다크니스'의 신원으로 활동 중인 알베르를 통해 자신이 공식적으로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그런 것이 아무래도 좋을 정도로 루샬카는 크게 낙심한 상태였다.
"나도 그 자리에 있어서 알고 있어. 어차피 사형이라고 해도, 결국은 차일피일 미루다 늙어죽게 하는 정도겠지."
"전혀 아닐걸. 보통의 경우라면 그랬을테지만 테러 단체의 수장인 루샬카 쨩은 아주 신속하게 전기의자로 구워버린 다음에 재로 만들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조용히 묻어버릴걸."
알베르의 그 말에 루샬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언론을 통해 얼굴이 실컷 팔린 것은 둘째치고, 표면상으로는 유명 코스튬 플레이어로 활동하던 자신이 테러 단체의 수괴로 낙인찍힌 것으로도 모자라, 정말로 누구 하나 자신을 변호하는 이 하나 없음을 느낀 루샬카는 며칠 전에 만났던 배신자들에 의해 자신의 신앙이 철저하게 붕괴된 시점에서 이제와서 더 살아봐야 큰 의미도 없다 느끼고 있었다.
"그럼 빨리 집행해. 이제와서 죽고 말고는 아무래도 좋거든."
"쯔쯧. 그러면 안 되지. 루샬카 쨩, 그렇게 일찍 죽으면 너무 아깝거든."
그렇게 말하던 알베르는 어느 커뮤니티의 반응들을 루샬카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희대의 테러단체 수괴가 이런 미소년이란 걸 알고 나니까, 너를 살려야한다는 반응들이 아주 차고 넘쳐. 그 어떤 범죄자라도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말은 정말이지 현실의 진리라니까."
그리 말하는 알베르는 특유의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그 말에 루샬카는 또 한 번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래서, 나한테 뭘 바라는 건데. 네 꼭두각시 인형으로 살다가 떠돌이 개처럼 죽는 거?"
"어허, 그렇게 죽는 소리만 하면 안 되지, 루샬카 쨩. 난 너더러 죽으라고 한 적은 전혀 없거든."
알베르의 비릿한 미소를 보던 루샬카는 자신에게 뭘 바라는 것인가 싶어 불안했다.
"루샬카 쨩이 해줄 것이 있어. 암흑 날개가 다른 도시로 도망치긴 했지만, 이미 도망치기 전까지의 암흑 날개에 관한 여러가지 정보는 손에 넣었고 단지 그 정보가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해줄 사람이 필요하거든."
"그걸 나더러 해달란 말이야? 그리고 나를 전기 의자에 앉혀 태워죽이는 거고?"
루샬카는 싫다는 반응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지만 이미 알베르는 그의 거부 반응을 거부한지 오래였다.
"죽는 소리만 하면 안 된다니까. 삶은 멋진 거야, 루샬카 쨩. 예전처럼 코스프레하면서 즐거운 생활을 하고 싶지 않아? 단지 거기에 암흑 날개와 엮였다는 기록을 모두 빼주는 거지. 어떻게 생각해?"
알베르와의 개인적인 거래. 루샬카는 그의 조롱 가득한 미소에 본능적인 거부 반응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 개인적으로 내 신분을 바꿔주겠다는 말이잖아. 그런 걸 나더러 믿으라고?"
"싫다면 늙어죽을 때까지 독방에 가둬놓으면 돼. 하지만 네 미모가 독방에서 삭아없어지는 거, 아깝지 않아?"
하지만 알베르는 이미 루샬카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이 그를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고, 그런 루샬카도 자신의 마음 속에서 바래져가는 신앙과 겹쳐 점점 그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루샬카 쨩, 잘 생각해봐. 네가 내 말을 믿고 말고는 자유지만, 그... 아케르나 말마따나 식용 가능한 신이 자길 열심히 섬기던 광신도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다시 생각해봐. 이대로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는 녀석만 믿고 기다리다 평생 늙어가려고? 하샤신을 믿는 거라면, 다시 말하지만 하샤신 따위는 내 아침밥에 지나지 않아. 이미 지난 며칠 동안에도 실컷 맛봤고."
결국 루샬카도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지워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함께 알베르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설령 알베르가 단물만 빨아먹으며 자신을 실컷 이용하다 하샤신들에게 먹이로 던져주거나, 자신이 생각할 수도 없는 가장 끔찍한 결말과 함께 자신을 보기좋게 배신하더라도, 어둠의 신만 기다리며 남은 평생을 보낼 생각은 더는 없었다.
"그러면... 네 말을 들어주는 대가로, 난 어떻게 되는 거야?"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너무나도 좁고, 그 길이 비좁아서, 그것을 찾는 사람이 적다. - 마태복음
그리고 루샬카 자신이 굳게 믿어온 신앙을 완전히 저버리자, 시큐리티 포스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루샬카 대장로'가 공식적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던 그 날, 비록 존재 자체는 '다크니스' 덕분에 알고 있었으나 진위 여부는 확신할 수 없었던 여러 고급 정보들의 진위를 사형 집행을 받아 법적으로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 루샬카의 입증을 통해 확실하게 확인한 시큐리티 포스는 이를 바탕으로 암흑 날개에게 다시 한 번 타격을 주었으며 이를 통해 암흑 날개와의 전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아무리 법적으로는 죽은 사람이라지만, 암흑 날개가 내 배신을 알게 된다면 틀림없이 날 죽이러 선수를 보낼텐데. 차라리 먼저 죽어버려야 하나?"
"또 그러네. 루샬카 쨩, 이제는 죽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고."
아직 독방 신세였지만 이제는 거울도 달리고, 제대로 된 옷도 챙겨 입는 등 나름대로 대우를 받고 있는 루샬카를 '다크니스'의 신분으로 알베르가 다시 한 번 찾아왔고, 그는 다소 온화해진 미소와 함께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넌 법적으로 확실히 죽었고, 설령 루샬카 쨩을 보복 살해하려고 마음먹는다고 해도 그 친구들은 널 건들지 못 해. 설령 대장로라는 녀석이 터무니없는 우군을 끌고 온대도 말이야."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 건데."
루샬카의 말에 알베르는 독방 너머에 있는 그의 보랏빛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루샬카 쨩은 늦게나마 옳은 길을 골랐고, '축복'을 받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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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남의 외전을 쓰는 건 재밌어
일단 기세가 엄청 꺾였을 암흑 날개의 우군으로 성유물 보스 리스 쟝을 데려왔읍니다 (알베르 쿤, 리스 쟝, 알겠지? 지금부터 서로 죽이는 거다)
그리고 루샬카 쟝은 일종의 거래를 통해 법적으로 죽은 대신 무언가를 약속받았는데 자세한 것은 아직 몰?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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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의 아스트라이모나드가 될 수도 있지만 일단 뭐가 되든 되겠죠(?) 그리고 어둠의 신에게 법규를 날린 루샬카 쟝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 23.04.19 00: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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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마 본편이 진행되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외전 에피소드에서도 비상 식량을 넘어 아예 먹을 것 그 자체로 취급받는 어둠의 신... 이쯤 되면 아트몬은 진짜 살아서도 죽어서도 식량 취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에헷떼 난다요!!! (해탈) | 23.04.19 02: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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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제 때 정하지 못 한 업보인 걸로 합시다(???) 그리고 오늘부터 암흑 날개는 아트몬 프라이드 치킨인걸로(?????) | 23.04.19 08:2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