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3] 드래곤볼 Z 카카로트, 이것이야말로 손오공의 이야기
흔히 만화를 빼놓고는 일본 문화를 설명할 수 없고, 일본 만화를 말하려면 토리야마 아키라作 ‘드래곤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한다. 그 위상이 얼마나 높으냐 하면, 첫 연재로부터 35년이 흘렀음에도 전세계에 걸친 ‘드래곤볼’ 팬덤은 여전히 건재할 정도다. 덕분에 그들을 위한 TVA와 영화, 게임 등이 계속해서 쏟아지지만 기자는 여태껏 ‘드래곤볼’이 지겹다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 그야말로 미디어믹스의 최고봉, 마르지 않은 샘물이라 할만하다.
그런데 이렇게 매년 적어도 하나씩은 들려오는 ‘드래곤볼’ 게임화 소식 대부분이 액션 아니면 대전 격투다. 원작부터가 싸움에서 싸움으로 이어지는 왕도적인 배틀물이라 액션 장르에 최적화됐기 때문이다. 챠오즈를 주인공으로 도돔파 FPS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반다이남코가 본격 액션 RPG ‘드래곤볼 프로젝트 Z’를 발표했을 때 적잖이 놀랐다. 거기다 개발사가 믿고 즐기는 ‘나루티밋 스톰’ 시리즈를 만든 사이버커넥트2라니.
사이버커넥트2가 만드는 액션 RPG '드래곤볼 Z 카카로트'
이후 몇 개월간 기다린 끝에 금번 E3 2019 컨퍼런스에서 드디어 ‘드래곤볼 프로젝트 Z’의 구체적인 정보가 공개됐다. 누가 봐도 정식은 아닐 것 같았던 제목도 ‘드래곤볼 Z 카카로트’로 바뀌었다. 원작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박진감 넘치는 연출이 감탄스러운가 하면 군데군데 비어 보이는 오픈월드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했다. 솔직히 여러 의미에서 기자가 상상하던 액션 RPG와는 많이 달라 보였다. 어쨌든 게임이 재미있으면 장르야 아무래도 좋긴 하지만.
결국 내면의 덕심에서부터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불안감을 해소하고자 직접 시연대에 올랐다. 지원 언어는 영문이었으며 데모 구간은 Earth’s Dream Team to the Rescue!(해냈다! 이것이 지상 최강의 콤비다!) 즉 라데츠에게 납치된 오반을 구하러 손오공과 피콜로가 손을 잡는 유명한 장면이었다. 게임 플레이는 오직 손오공으로만 가능했으며 피콜로는 알아서 따라다니며 전투를 지원하는 서포터 역할이었다. 서포터 자리가 하나 비어 있는 것으로 보아 최대 3인 파티인 모양.
'드래곤볼 Z'의 서막을 연 '해냈다! 이것이 지상 최강의 콤비다!'
시연을 시작하면 손오공이 근두운을 타고 있는데, 사실 이 시점에서는 이미 무공술을 배운 터라 굳이 필요한가 싶긴 하다. 일단 그냥 날아다니는 것보다 체감상 약간 더 빠르고 Y 버튼을 눌러 만화에서처첨 뱅그르르 돌 수 있다. 단순한 눈요기 기술은 아니고 공중에 떠있는 Z오브란 것을 수집해야 할 때 나름 유용하다. 후술하겠지만 ‘드래곤볼 Z 카카로트’는 원작 재현에 큰 역점을 두고 있는 작품이라 근두운도 그냥 별 고민 없이 넣었을 가능성이 있다.
캐릭터 UI를 열어보니 나름 RPG답게 레벨과 능력치가 보였다. 레벨은 캐릭터 레벨과 스킬 레벨로 나뉘며 능력치는 물리 공격, 기 공격, 물리 방어, 기 방어, 치명타율까지 다섯 가지. 서포터에게도 해당 항목이 전부 있는 것으로 보아 성장 시스템은 별 차이가 없는 듯했다. 다만 아이템은 비타 드링크나 선두 같은 소모품뿐이고 제대로 된 착용 장비는 찾아볼 수 없었다. RPG의 양 축이 캐릭터 성장과 장비 수집이라면 ‘드래곤볼 Z 카카로트’는 그 절반만 갖춘 셈이다.
완전한 오픈월드는 아니고, 월드맵에서 돌입하는 방식을 취했다.
오픈월드에서의 활동은 이제까지 ‘드래곤볼’ 게임과 본작을 가르는 가장 큰 차별화 요소다. 정확히는 세미-오픈월드로, 월드맵이 따로 존재하고 그 안에 각 지역이 큼지막하게 구현되어 있다. 여기서 손오공은 낚시를 하거나 과일을 따 먹고, 공룡을 사냥하는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물론 간단한 서브 퀘스트를 해결해주며 번외적인 이야기를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장르에서 필수적인 (흑백 화면에서 오브젝트만 빛나는)색적용 시야는 ‘기를 느낀다’는 설정으로 자연스레 구현. 서양 AAA급 오픈월드에 비하면 상당히 비어 보이지만 일단 구색은 갖췄다.
마지막으로 전투를 살펴보자. 금번 데모에서 주어진 메인 퀘스트 상대는 ‘드래곤볼 Z’의 서막을 알리는 사이어인 편 첫 강적이자 손오공의 형 라데츠. 기본적인 전투 조작은 (Xbox 기준)기 모으기 Y, 기 공격 X, 근접 공격 B, 빠른 이동 및 회피 A, 가드 LT, 버스트 LT + X이며 LB를 누른 상태에서 에네르기파나 용권 같은 강력한 기술이 나간다. 전체적인 감상은 같은 개발사가 아님에도 ‘드래곤볼 제노버스’ 시리즈와 놀랍도록 유사한 느낌이었다.
전투 감각은 이제까지 나온 '드래곤볼' 3D 게임들의 업그레이드 버전.
다만 적이 라데츠 하나여서 그런지 몰라도 타게팅과 카메라 이동은 ‘제노버스’보다 훨씬 자연스러웠다. 캐릭터 조형과 시각 효과도 원작을 그대로 옮겨온 듯 훌륭했으며 특히 에네르기파가 적중했을 때 상대가 저 멀리 밀려나 쳐박히는 연출은 호쾌 그 자체였다. 라데츠 역시 단순한 CPU와의 대전이 아니라 메인 퀘스트를 위해 설계된 보스전이라는 듯 중간중간 탄막 슈팅에 버금가는 공격 패턴으로 전투의 긴장감을 높여 줬다. 일반적으로 RPG라면 스탯으로 밀어버리는 경향이 없잖아 있는데 데모만 봐서는 레벨보다 조작의 숙련도가 중요해 보였다.
전투는 대강 체력 깎기 → 컷신 → 패턴 변화 → 체력 깍기의 반복이었다. 두어 번쯤 패턴 변화를 겪고 한번 더 라데츠를 쓰러트리자 원작 팬들에게 매우 익숙할 꼬리잡기와 피콜로의 마관광살포 연출이 나왔다. 라데츠의 뜬금없는 가족애 호소와 또 거기에 낚여서 치명타를 입는 오공, 그리고 분노 게이지가 폭발하여 어택볼에서 뛰쳐나오는 오반까지. 그 뒤는 다들 아는 데로다.
이 장면이 이상해 보인다면 BL 동인지를 너무 많이 본 것.
짧은 시연으로 무어라 판단하긴 어렵지만, 기자가 그간 이 게임이 액션 RPG라는데 너무 의미 부여를 했나 싶었다. RPG로서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드래곤볼’ 게임으로선 무난하게 잘 뽑혔다. 일단 작년 E3에서 ‘원피스 월드 시커’를 했을 때 그 쎄한 느낌은 아니다. 시연 종료 후, ‘드래곤볼 Z 카카로트’에 대한 더 자세한 얘기를 듣고자 반다이남코 하라 료스케 디렉터와 사이버커넥트2 키모토 카즈키 프로듀서를 만났다.
CC2 키모토 카즈키 프로듀서(좌), BNE 하라 료스케 디렉터(우)
● 반갑다. 가장 먼저, 어째서 ‘드래곤볼 Z 오공’이 아니라 ‘드래곤볼 Z 카카로트’인가
: ‘드래곤볼 Z’는 라데츠와 만나는 데서 출발한다. 그때 라데츠는 손오공을 오공이 아닌 카카로트라 부른다. 그것이 ‘드래곤볼 Z’ 모든 이야기의 시발점이므로, 그 지점에 주목하여 부제를 카카로트라 지었다.
● 그간 여러 ‘드래곤볼’ 게임이 나왔지만 RPG는 드물었다. 이런 장르를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 이 게임의 중요한 테마는 ‘손오공의 삶 그 자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토리야마 아키라 선생의 원작을 보면 싸움 외에 일상적인 묘사도 많이 나온다. 손오공이 그저 하늘을 날아다니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사냥을 하고 요리해 먹고 다른 이들과 상호작용하는 모든 모습, 그걸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장르가 바로 RPG라 보았다.
● 사이버커넥트2는 이런 오픈월드 RPG 개발이 처음인데, 특별히 참고한 작품이 있나
: 어떤 한 작품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기 보다는, 이제껏 여러 게임을 해오며 이건 우리에게 잘 맞겠다 싶은 요소를 모아서 만들었다. 그것들이 모였을 때 총합은 ‘드래곤볼 Z 카카로트’만의 독창적인 느낌으로 다가가길 바란다.
● RPG의 두 축은 캐릭터 성장과 아이템 파밍이라 생각하는데, 장비 변경이 없는 듯하다
: 성장 측면에서는 플레이를 하며 해금할 수 있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 손오공은 스토리를 따라 성장하며 더욱 강해지게 될 것이다. 다만 세부 시스템은 아직 공개할 수 없는 점 양해 바란다.
그리고 코스튬 커스터마이징은 할 수 없는 것이 맞다. ‘드래곤볼 Z 카카로트’는 원작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각 시기에 맞는 옷을 입도록 만들었다. 반대로 그런 부분을 즐겨주었으면 한다.
아쉽게도 코스튬 변경은 없다. 원작에서의 복장을 그대로 따라간다고.
● ‘드래곤볼 Z’의 이야기는 매우 길다. 최근에는 브로리 극장판까지 나왔는데, 게임의 분량은 어느정도인가
: 많은 분들이 ‘게임 분량이 프리저편까지인 거 아니냐’며 궁금해하는 것 잘 안다. 구체적으로 어디까지라고 아직 말할 수 없어 미안하다. 하지만 팬이라면 실망하지 않을 정도라는 건 약속할 수 있다.
● 사이버커넥트2 전작 ‘나루티밋 스톰’처럼 시리즈화를 염두에 두고 분량을 조절하는 건가
: 그렇지 않다. ‘드래곤볼 Z 카카로트’를 시리즈화할 계획은 현재로선 없다. 이 작품 하나만으로 충분히 깊이 있고 즐길 요소가 충분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드래곤볼 Z’에는 손오공 외에도 매력적인 캐릭터가 많다. DLC를 통한 추가를 고려 중인가
: 이 역시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마찬가지로 명쾌한 답을 줄 수 없어 미안하다. 하지만 이 부분도 직접 해보면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 원작을 바꿔버리는 if 전개도 가능할까. 가령 나메크성에서 크리링을 살린다거나
: 그런 발상도 매우 흥미롭지만, ‘드래곤볼 Z 카카로트’는 원작을 최대한 충실히 따르는데 집중하고 싶다. if 까지는 아니지만 서브 퀘스트에서 새로운 이야기도 전개되니 그쪽을 즐겨주기 바란다.
원작의 명장면을 충실히 재현하는데 집중했다는 '드래곤볼 Z 카카로트'
● 플레이어블 1인, 서포터 2인 구성이더라. 이 조합을 내 마음대로 꾸릴 수 있는 건가
: 메인 퀘스트에서는 원작과 동일한 조합만 허용한다. 가령 라데츠와 싸울 때는 손오공과 피콜로로 팀을 짜야 한다. 하지만 오픈월드에서 만나는 서브 퀘스트는 원하는 조합으로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다.
● 그 서브퀘스트는 사이버커넥트2가 임의로 만든 것인가, 아니면 원작자 검수가 있었는지
: 물론 게임이라고 아무 서브퀘스트나 집어넣을 수 없도록 제약이 걸려있다. 그래서 개발 과정에서 슈에이샤와 끊임없이 회의를 하고 원작자에게 확인을 받는 과정이 필요했다.
● 한국에도 수많은 ‘드래곤볼’ 팬들이 있다. 본작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인사를 전한다면
: ‘드래곤볼 Z 카카로트’를 통해 여러분 스스로 손오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 이처럼 다양한 야외 활동을 구현한 ‘드래곤볼’ 게임은 본작이 유일하다고 본다. 과연 앞으로 또 어떤 경험을 할 수 있을지 기대하며 기다리기 바란다.
하라 디렉터는 사실 이렇게 생겼다. 원래 잘생긴 사람이 얼굴을 막 쓰는 법.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