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영국은 국민투표 결과에 따라 유럽연합 탈퇴 즉 브렉시트(BRitain EXIT)를 선언했다. 1957년까지 거슬러 오르는 오랜 정치, 경제, 군사적 결합을 부순다는 것은 단순히 어느 국가 단체에 속하냐 마냐로 정리할 수 없는 복잡하고 중대한 문제다. 실제로 영국은 이 결정으로 엄청난 후폭풍을 겪었으며 아직까지도 유럽연합과 완전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끝내 브렉시트를 수습하는데 실패하고 사퇴한 것이 불과 며칠전이다.

이런 와중에 유비소프트가 ‘와치 독스: 리전’를 발표한 것이 참으로 시의적절하달까 짓궂달까. 전작과 마찬가지로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를 표방하는 ‘‘와치 독스: 리전’은 브렉시트의 여파로 크게 뒤틀린 근미래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삼았다. 한때 유럽의 중심지였던 도시는 이제 군인이 시민들 면전에서 총을 겨누고 실탄을 장비한 드론이 도시를 통제하는 디스토피아로 퇴락했다. 더이상 ctOS가 은밀히 정보를 수집한다는 그런 귀여운 문제가 아니다.

브렉시트로 뒤틀린 영국, 프랑스 게임사가 이러니까 의미심장하다.

‘와치 독스’의 테마는 언제나 자유와 저항이었다. 그것이 이 시리즈가 그냥 ‘해커즈’가 아닌 ‘와치 독스’라 불리는 까닭이다. 1편의 주인공 에이든 피어스는 정부와 ctOS를 만든 대기업, 그리고 음지에서 암약하는 갱단을 감시하는 번견(Watch Dog) 즉 자경단이었다. 2편에서는 에이든을 돕던 해커 집단 데드섹이 전면에 나서며 저항의 규모가 한층 더 커졌고, 이제 ‘와치 독스: 리전’에 이르러선 압재에 맞서고자 일어선 런던 시민 전체가 주인공이 되었다.

그럼 본격적으로 실제 게임 플레이를 살펴보자. 기자는 국제게임쇼 E3 2019를 맞아 ‘와치 독스 리전’을 잠시간 플레이할 수 있었다. 큰 일을 도모하려면 우선 인재를 등용해야 하는 법. 제갈량을 삼고초려하는 유비의 마음으로 사람들이 모이는 주점에 들렸다. 서로 마주앉아 웃고 떠드는 남녀, 홀로 벽에 기대어 한 잔 들이키는 노인,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아리따운 바텐더도 보였다. 데드섹은 버튼 하나로 누구의 프로필이든 볼 수 있으니 따로 이력서가 필요 없다.

어디 보자,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별로 열심히 안 했구만. 그렇지?

이름, 직업, 돈벌이 정도만 나오던 전작과 달리 ‘와치 독스: 런던’의 프로필에는 그 인물이 지닌 특성이 기제돼 있다. 가령 공격 당했을 때 더 잘 버틴다거나 특정 총기류에 능숙하다는 등의 내용이 구체적인 +/- %로 표시되는 식이다. 집에서 느긋이 즐기는 중이었다면 최고의 인재를 찾아 런던 시내를 뒤졌겠지만 제한된 시간상 그냥 얼굴 보고 바텐터로 정했다. 그렇다. 외모가 취업의 당락을 좌우하는 것은 자유의 투사 데드섹조차 예외가 아닌 것이다. 이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단 영입 대상을 고르고 데드섹 가입을 권했더니 저쪽에서 역으로 조건을 제시하는 게 아닌가. ‘와치 독스 2’ 주인공 마커스 할러웨이는 데드섹에 들어오려고 입단 시험까지 치렀는데 이건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어쨌든 이 바텐더는 ctOS 데이터베이스에서 어떤 문서를 삭제해주면 가입을 고려하겠다고. 그걸 내가 할 수 있으면 당신을 안 뽑겠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원활한 시연을 위해 일단 수락했다.

거기 자네, 데드섹 한번 해보지 않겠나? 너무 부담은 갖지 말고….

ctOS 기지국에 침입하는 경로는 여러가지가 주어진다. 한 마리 외로운 늑대처럼 정문을 박차고 전부 쏴버릴 수도 있고 담벼락을 넘어 조용히 침투하는 것도 괜찮다. (Xbox 기준)R3 버튼으로 펄스를 쏴 주변 기물을 파악하고 감시 카메라에서 카메라로 시점을 이동하며 내부를 파악하는 과정은 기존 시리즈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간혹 잠입하는 와중에 선량한 민간인을 제압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는데, 이런 사람은 마킹해 뒀다가 나중에 병원으로 찾아가 영입할 수도 있다. 물론 한 방 얻어맞은 만큼 데드섹 호감도 수치가 많이 낮아진 상태겠지만.

기지국 옥상에는 마치 AI 청소기의 그것과 같은 드론 충전소가 마련되어 있다. 여길 조작하여 드론을 불러들인 뒤 다시금 그걸 해킹하는 수법으로 “이 드론은 이제 제 겁니다.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를 시전하자. 드론은 종류가 여럿이며 가장 큰 것은 그린 고블린마냥 타고 다니는 것도 가능하다. 특히 소총과 미사일이 달린 전투용 드론의 화력은 일대를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들 정도다. 무슨 전쟁터도 아니고 도시에 왜 이런 게 돌아다니는지 참.

드론은 본작의 새로운 재미 요소다. 호위로도, 탈것으로도 쓴다.

어떤 방식으로든 ctOS 기지국을 터는데 성공했다면 영입 대상에게 돌아가 임무를 완수하면 된다. 그러니까 ‘와치 독스: 리전’의 캐릭터 획득 방식은 대상 물색 → 영입 임무 수락 → 수행 → 영입 완료 순이다. 여차저차 정식으로 데드섹의 일원이 된 캐릭터는 엔포서(Enforcer, 집행자), 인필트레이터(Infiltrator, 잠입자), 그리고 해커(Hacker) 가운데 하나의 전문화를 선택할 수 있다. 데모에서는 각 전문화별로 네 개 스킬이 있었는데 정식 버전에선 훨씬 많을 거라고.

먼저 엔포서는 그야말로 전투의 프로다. E3 2019 트레일러를 보면 어떤 여자가 권총 하나로 일개 분대를 쓸어버리는데 그녀가 바로 엔포서다. 특기는 스틱키 마인이며 데모에서 확인한 스킬은 건카타, 컴뱃롤, 익스플로시브 라운드, 인설트 코인. 다음으로 인필트레이터는 잠입의 달인으로 특기는 일종의 투명 망토인 AR 클록이고 스킬은 런지, 올씽, 쇼크웨이브, 퍼스트 스트라이크. 끝으로 시리즈 전통의 해커는 스파이더 봇 특기에 스킬은 다이렉트 컨트롤, 스파이더 아미, 드론 트래퍼, 드론 스캐너이다. 물론 해커가 아니라도 다들 기본적인 해킹은 한다.

남들 TPS 하는데서 혼자만 대전 격투 게임을 즐기는 엔포서.

앞서 바텐더에서 보듯 게임 내 모든 캐릭터는 저마다 다른 직업과 외형, 음성, 몸동작을 보여준다. 이러한 차이는 컷신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완전히 똑같은 장면이라도 말투와 행동에 미묘한 차이가 나타난다. 확보한 데드섹 요원은 관리 UI를 통해 언제든 조작할 수 있고 설령 임무 도중에 주체가 바꾸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임무를 수행하는 플레이어는 어느 한 요원이 아니라 그들의 총합인 데드섹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목적지 근처에 있는 요원으로 조작을 옮겨가는 식으로 빠른 이동을 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쯤 되면 ‘와치 독스: 리전’을 어떻게 즐겨야 할지 감이 온다. 보통 이런 식으로 무작위 생성되는 캐릭터는 처음에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하지만, 플레이하며 쌓은 추억이 하나의 퍼스널리티가 되어 점차 대체할 수 없는 존재로 변해간다. 간단히 말해 정이 드는 셈이다. 그리고 한번 가까워진 캐릭터를 상실한다는 것은 굉장히 견디기 힘든 일이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해 더욱 집중하게 되고 게임에서도 죽음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아니 지금 어디를 보는 겐가, 젊은이. 그건 내 잔상일세.

‘와치 독스: 리전’ 또한 이러한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한편으로 ‘와치 독스’하다 죽을 일이 얼마나 되겠나 싶지만 어쨌든 구색은 갖췄다. 임무 수행 중 적들의 흉탄에 쓰러진 데드섹 요원에게는 두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마지막까지 불꽃처럼 산화하여 영구적인 죽음(Permadeath)를 맞이하거나 순순히 항복하여 목숨만은 건지는 것이다. 이렇게 붙잡혀간 캐릭터는 추후 감옥을 습격하여 다시금 동료로 영입할 수 있다. 아무래도 본작이 ‘엑스컴’이나 ‘다키스트 던전’처럼 하드코어한 게임이 아니다 보니 이정도 구제책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와치 독스 2’와 ‘와치 독스: 리전’의 관계는 ‘어쌔신 크리드 2’와 ‘어쌔신 크리드: 브라더후드’를 연상시킨다. 물론 ‘와치 독스: 리전’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비교도 안되게 강력하지만 말이다. 이런 게임은 잘만 만들면 굉장한 중독성과 리플레이 가치를 창출하기 마련이다. 다만 한편으로 무작위 생성 콘텐츠의 명확한 한계도 잊지 말아야 한다. 제아무리 잘 만든 무작위 캐릭터라 해도 한 작품을 위해 고유하게 설계된 주인공, 가령 ‘와치 독스’ 에이든 피어스와 같은 깊이를 갖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게임 전체의 서사성이 헐거워질 수밖에 없다.

즉 ‘와치 독스: 리전’은 기존 시리즈의 완벽한 상위 호환이라기 보단 서로 다른 장점과 단점을 취한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렇기에 정식 넘버링이 아닌 부제를 달았는지도. 유비소프트의 오픈월드 액션 어드벤처 ‘와치 독스: 리전’은 오는 2020년 3월 6일 PC, PS4, Xbox One 그리고 스태디아로 출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