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 2
나 대학 시절 엠티 갔을 때, 술에 취한 한 친구가 참치 캔
따다 베인 손가락으로 민박집 안방 벽에 제 이름을 쓰고는
그 밑에 너를 죽이고 싶다……고 썼지 그는 제 이름 위에
자의식을 칠하고 그 위에 피를 칠하고 다시 그 위에 자의식
을 칠했던 거지만 그것도 남의 집 안방에서
물걸레 들고 그걸 지우던 나는 하도 약이 올라서, 너를 죽
이고 싶다……고 따라 썻지 나는 그 친구 이름 위에 물을
칠하고 그 위에 걸레 붓으로 글씨를 쓰고 다시 그 위에 물
을 칠했던 거였는데 친구는 지우면 쓰고 지우면 쓰고 우리
는 무슨 수바꼭질 같았는데 남의 집 안방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그거였을까, 여간해서 지워
지지 않던 그 글씨는? 민박집 주인은 자다 깨어 얼마나 놀
랐을까 벽에 너를 죽이고 싶다……고 쓰는 손가락이 나타
났다면
걸레를 입에 물고 말하는 기분이 그랬을까, 한때 순면이
었던, 내 몸을 지척에서 감싸던, 그 부드럽고 순한 구린내가
손가락을 따라가며 이 화상아 화상아, 철썩거렸을 테니
우리가 꿈속 귀신이 되어, 죄인이 되어 그 집을 나설 때
방구석에 있던 걸레는 바짝 말라서 다시 부풀어오르고 있
었지
자의식처럼
눌러도 눌러도 새로 돋아나는
순정한 한때처럼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권혁웅, 창비시선 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