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조기교육에 관하여
철들기 전에 영어를 배웠다 담장에서 배웠다
미선이는 내 거다 건들지 마라
‘mine'은 광산이란 뜻이었다 여자는 노다지였다
중학교 때 화장실에서 알파벳을 다 외웠ㄷ 대문자로 외
웠다
알파벳은 WXY로 끝나는구나
스승은 세로쓰기를 했다 삐뚤빼뚤했다
영어를 잘하니 여자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고등학교 때엔 A가
뒤집힌 양날도끼에서 왔다는 걸 알았다
감탄사였다 아이들은
손에 잡히는 건 무엇이든 무기로 썼지만
열번 찍어도 안 넘어가는 여자가 도처에 있었다
대학 때 처음으로 ㅍㄹㄴ를 보았다
남자나 여자나 퍽을 입에 달고 살았다
’f■ck'은 ‘매우’란 뜻이었지만
남자가 쓰면 욕, 여자가 쓰면 사랑이었다
사회에 나와서야 BC를 제대로 이해했다
나는 여태껏 문법도 모르고 살았구나
부자 되시라고 여자가 속삭였지만
봉급날은 결제일과 함께 왔다
세계화와 여성상위 시대,
어디나 영어와 여자가 있었다
여자에 사로잡힌 영어의 몸,
그게 나였다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권혁웅, 창비시선 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