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과 담배
짬뽕에서 담배꽁초가 나왔다 1988년으로 기억한다 만리
장성이라는 중국집이었다 아저씨, 이게 뭐예요? 어이구, 미
안합니다 주인은 그릇을 들고 나가서는 꽁초를 건져내고는
다시 가져왔다
우리는 담배 냄새가 밴 짬뽕 국물을 마셨다 1988년이었
으니까, 여전히 군부독재 치하였고 우리는 장성 바깥의 오
랑캐였고 짬뽕은 불타는 물이었으니까 짜장에 버무린 담배
라면 버렸을지 몰라도
꽁초처럼 타들어가는 나날, 술에 취해 우는 아버지 같은
나날이었다 아버지, 여기서 뭐 해요? 어이구, 미안하다 아
버지는 짬뽕처럼 엎질러져 있었다 조각난 마음이 바닥에
낭자했다
그해 내가 한 일은 노태우를 찍었다는 ROTC 선배와 절
교한 것, 88올림픽이 싫어서 88담배를 끝내 피우지 않은 것,
더이상 아버지와 대통령을 존경하지 않게 된 것
하지만 시대는 어디든 따라왔다 그토록 피해 다닌 꽁초
를 짬뽕 국물 속에서 만나듯, 보증을 잘못 선 아버지는 또
한번 가게를 엎었다 대통령은 몇년 후면 TV에 나와서 나오
지 않는 눈물을 닦을 예정이었고
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
권혁웅, 창비시선 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