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코쿠 만자이(漫才)*
―페르나 편(篇)
1
고무인형이잖니 그건 먹는 게 아냐…알아요…그런데 왜
먹니?…웃고 있잖아요…웃고 있다니…무서워요 즐거운 사
람들이…무서운 사람들이에요 홀로 휴일의 공원을 찾아본 적
있나요?…홀로 휴일의 공원…모른 체하시긴 그런데 이 지
독한 냄새는 뭐죠…누가 고양이라도 태우나 보지…바보 저
기 시계탑이 불타고 있어요…빨간 애드벌룬 말이냐…새들
이 허공에 꼼짝없이 매달려 있는 게 안 보이세요 무슨 누런
꽃무늬들처럼…어른을 놀리면 못쓴다…완전한 어른은 없어
요…완전한 어른…어린 시절의 회상에 빠져 있는 저 사내를
보세요 그는 어른인가요 아님 어린아이인가요…엉뚱한 녀
석, 그래봐야 너는 절망과 불만을 혼돈하는 어린애…글쎄요
새들은 왜 마주 보고 노래하지 않는 걸까요?…부끄러우니
까…짐승들은 왜 결투할 때만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거
죠?…부끄러움을 잊었으니까…꼭 우리 두 사람 같군여 티격
태격 태격티격…나는 페르나에 가요…페르나?…페르나, 시
계도 달력도 없고 아름다운 오빠들의 춤과 음악이 계속되
는…저기 쌍둥이 빌딩 사이 주름치마 같은 돌계단을 따라 올
라본 적 있나요?…커다란 빌딩들이 쬐끄만 벌레 정도로 뵐
때쯤 거기 페르나가 있어요…그곳에 도착하면 아저씨께 근사
한 엽서를 보내드리지요…페르나, 처음 듣는 얘기로군 헌데
그곳엔 왜 가려는 거냐?…울기 싫어서요…울기 싫어서?…잠
꼬대하기 싫어서요…잠꼬대?…잠꼬대, 밤마다 검은 노트를
펼치는 일 잊을 수 없는 페이지를 열고…붉게 번진 입술의 오
빠를 오빠 곁에서 들끓는 개들을 개들을 때려잡는 아버지
를…나무 위에서 덤불 속에서 뜨문뜨문 읽어내는 일 싫어요
페르나에선 잠들지 않고 아무도 울지 않죠…아저씨도 함께
갈래요?…페르나?…페르나…나는 아파서 못 가…어디가 아
픈데요?…이곳을 떠나는 게…아파…아프죠 그러니 두려워하
지 말아요…두려워하면 느려지고 눈치 빠른 아버지가 금방
알아채고 말죠…싱거운 녀석, 너는 페르나 따위가 정말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페르나 따위가 왜 없을 거라고 생각하
죠?…관두자꾸나…그래요 그만두죠…그런데 넌 원래 그렇게
울보였니?…아뇨…아님 뭐가 그렇게 널 슬프게 하는 게
냐?…당신이…내가?…빠가…빠가라…
빌딩 사이로 난 작은 골목으로 총총히 사라지는 소녀
까맣게 타버린 시계탑이 힘없이 뭐너져 내리고
사내는 소녀가 버리고 간 고무인형을 한입 깨물어본다
골목 뒤편에서 시끄럽게 흔들리는 소녀의 웃음소리,
고무인형이잖아요, 그건 먹는 게 아녜요, 그건……
2
소년은 땀에 흠뻑 젖은 이부자리를 털고 일어나
페르나 페르나 사전을 뒤져보지만, 페르나라는 단어는 없다
방바닥엔 어지럽게 널려 있는 책들이며 옷가지들 그리고
창틈으로 날아든 정오의 눈부신 엽서 한 장이 기다랗게 놓
여 있었다.
* 일본의 전통 예능, 만담의 한 종류.
여장남자 시코쿠
황병승, 문학과지성 시인선 R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