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감성과 A급 재미의 로그라이트 액션, 풀 메탈 스쿨걸
때는 쇼와 164년, 사이보그화된 근로자가 거대 블랙 기업서 24시간 노동을 강요받는 세계. 기업에 의해 아버지를 잃은 두 여고생이 원수를 갚고자 본사로 쳐들어간다. 물론 그들 역시 체인소와 개틀링건 등으로 전신을 무장한 머신걸이었으니. 이 뭔가 나사가 두어 개 빠진 설정이야말로 개발사가 어딘지 말해주는 증표다. ‘오네찬바라’과 ‘지구방위군’으로 유명한 D3 퍼블리셔 오카지마 노부유키P의 신작이기 때문.
아는 사람은 알다시피 D3 퍼블리셔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평가가 소위 B급, 이다. 다만 본지 인터뷰서 오카지마P가 진지하게 짚었듯 B급 게임이라고 완성도나 재미가 B급이란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유머러스한 키치 감성을 듬뿍 담아냈다는 의미로서 B급인 것. 애당초 가격 대비 만족도가 떨어졌다면 D3 퍼블리셔가 이토록 오랫동안 존속할 수 없었으리라. 그리고 이 평가는 신작 ‘풀 메탈 스쿨걸’ 역시 마찬가지다.
쇼와 164년, 사이보그 여고생 VS 블랙 대기업의 결말은? '풀 메탈 스쿨걸'
게임은 주인공들이 블랙 기업의 로비 전면 통창을 뚫고 돌격하며 곧장 시작된다. 둘 중 아라하바키 료코는 와일드계 미소녀로 학업은 그닥이지만 기운 넘치며 감정에 솔직하고 미나미아자부 아케미는 쿨계 미소녀로 명문고를 다니며 의외로 록 음악과 서브컬처를 좋아한다는 게임 플레이에 하등 상관없는설정이 존재한다. 보기와 달리 처음에 한 쪽을 선택하면 이후 플레이어블 캐릭터 교체나 2P CO-OP은 지원치 않는다.
료코와 아케미는 초기 장비가 살짝 다르지만 어차피 계속 무기를 얻으며 나아가니 그냥 취향껏 고르자. 장비 항목은 근접 및 사격 무기, 드론까지 세 가지. 게임 자체는 100층에 달하는 빌딩을 오르다 덤벼드는 워킹(Walking 아니라 Working) 데드를 썰고 부수면 되는 호쾌, 담백한 구성이다. 빌딩 내부는 매번 구조가 바뀌며 특정 층마다 보스가 기다리는 로그라이트 시스템을 채택했다. 일종의 절차적 생성 방식인 모양.
와일드계 료코와 쿨계 아케미, 겉모습 외에 성능차는 없으니 취향껏 고르자
요즘 학생답게 복수극도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로네이션을 받아 개조 비용까지
그리고 담백한 구성과 별개로 액션 메커니즘은 나름 깊이가 있다. 일견 심심풀이용 버튼 연타 게임 같지만 그래서야 10층조차 오르기 힘들다. 사격 무기는 보통 화력과 연사력이 반비례하고 장탄수도 아주 넉넉한 편은 아니다. 근접전은 적에게 다가가기 위한 호버 대시와 무기를 휘두를 때 스태미나를 공유하기 때문에 적절한 안배가 필수다. 괜히 신나게 달려들었다가 옴짝달싹 못하는 과녁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따라서 애초부터 무기를 선택할 때 근접, 사격의 조합을 잘 맞춰야 한다. 개별 층 규모는 그리 크지 않으며-필자가 초반만 시연했음은 감안하길- 사무실의 적을 일소하거나 숨겨진 장소를 찾았을 때 장비 상자가 주어진다. 거기서 나오는 무기는 언제나 현재 장비한 것보다 Lv, 등급이 높거나 같다. 다만 샷건과 그레네이드 런처, 블레이드와 엑스의 운용법이 전혀 다르므로 오롯이 스펙만 따져 챙기면 낭패를 보기 쉽다는 것.
마냥 호쾌하기만 한 액션이 아니라, 적절히 스태미너 관리가 중요하얀색이다
그레이트 액스처럼 대미지는 일격필살인데 동작이 너무 크고 굼뜬 무기도 있다
실제로 필자는 초록색 언커먼 등급의 Lv.2 그레이트 엑스를 신나서 집었다가 되려 고전을 면치 못했다. 분명 공격력은 아케미의 초기 장비 바이브로 블레이드보다 340 → 1648로 훨씬 높지만 휘두르는 동작이 지나치게 크고 느렸다. 하필 사격 무기도 사거리가 짧은 샷건이라 HP 손실을 감내하며 근접전을 이어갔다. 그나마 내려찍는 모션의 타격 판정이 넓긴 한데 도저히 손에 익지 않아 다른 무기가 나오자마자 바꿔버렸다.
그렇다고 특정 무기는 무조건 별로인가, 묻는다면 말을 아끼겠다. 일단 개인 취향차가 있을 테고 필자가 시연하지 못한 위층에 또 어떤 워킹 데드가 나올지 모르니까. 무엇보다 같은 그레네이드 런처라도 빠른 3점사가 가능한 블루퍼, 여섯 발 착탄 후 지연 폭발하는 썸퍼 등 운용법이 각기 다르다. 체인소와 개틀링건을 향한 오카지마P의 편애가 살짝 느껴지긴 하는데 뭐, 어차피 상자서 늘 원하는 무기가 나오는 것도 아닌지라.
총들도 사거리, 탄창 용량이 각기 다르므로 근접 무기와의 조합을 고려해야 한다
반드시 Lv, 등급이 높다고 좋은 게 아닐 수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무기를 찾자
거기다 어쩔 수 없이 궁지에 몰리더라도 타개책은 존재한다. 적을 처치할수록 화면 좌하단에 PP 게이지가 쌓여 퍼니시먼트 무브를 발동할 수 있기 때문. 흔히 말하는 필살기로 근접과 원거리 효과가 각기 다르니 상황에 따라 대처하자. 또한 워킹 데드들이 부숴지며 합성 섬유나 나사 같은 부품을 떨구는데 거의 후술할 강화 개조에 소모된다. 단 하나 MJP만은 장비 상자를 열거나 할 때 쓰이고 빌딩 바깥까지 보전되지 않는다.
이처럼 워킹 데드에게 부품을 갈취한다면 가장 중요한 돈은 뭇 시청자에게 도네로 받는다. 누가 신세대 아니랄까봐 료코와 아케미는 자신들의 복수극을 라이브 스트리밍 중이다. 솔직히 사이보그 여고생이 대기업 본사를 무장 테러한다는데 안 보고 배길쏘냐. 작중 시청자들은 실제 인터넷 방송마냥 채팅을 쏟아내며 이따금씩 50초 내 모든 적 처치, 같은 미션까지 건다. 시청자를 도발해 더 많은 돈을 뜯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적들을 처치하다 보면 PP 게이지가 차, 강력한 퍼니시먼트 무브를 날릴 수 있다
가끔씩 스트리밍 시청자들이 미션을 주는 등 소소한 즐길 거리이자 돈벌이도
만약 시청자 미션에 무리하게 도전하다 삐끗했거나 무기 조합이 엉켜 적 물량을 감당치 못했더라도 너무 상심할 필요 없다. ‘풀 메탈 스쿨걸’은 1회차 100층 도달을 전제로 만들어진 게임이 아니다. 상술했듯 액션 메커니즘이 나름 빡빡하고 회복 수단인 배터리 역시 부족한 편이라 누구든 고배를 마실 수 있다. 로그라이트 시스템을 채택한 만큼 게임 오버 시 여태껏 모은 장비와 MJP는 잃지만 그 외에 부품, 돈은 보전된다.
어쨌든 게임 오버는 게임 오버이니 돌격은 늘 1층 로비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저 이름도 수상쩍은 하카세 박사(일본어로 はかせ はかせ)에게 개조를 받아 직전 회차보다 강화된 채로 올라가자. 개조 항목은 HP, 스태미나, 배터리 보유량, 피격/회피 무적 시간 등 기본적인 스펙 상승부터 실드, 대시 어택, 슬라이딩 부스터 같은 액티브 스킬 해금까지 다양하다. 도중에 얻는 무기의 최소 Lv를 높여주는 개조 역시 반필수적이다.
죽어도 상심 마시라, 애당초 1회차 100층 공략을 전제한 레벨 디자인이 아니다
워킹 데드들에게 갈취한 부품과 도네이션 받은 돈으로 머신걸을 한층 더 강화
재돌격 시 2층부터 내부 구조가 달라지므로 이쯤에 상자가 있었지, 같은 암기 플레이는 불가능하다. 어디까지나 전투에 방점이 찍힌 게임이지만 에너지 장벽, 레이저 빔, 움직이는 플랫폼 등 무작위 적용되는 스테이지 기믹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다만 10의 배수마다 나오는 듯한 보스전 층은 고정인데, 미리 특정 무기나 개조를 잘 챙겨둬야 공략이 수월하다. 고정 포탑의 십자포화를 실드로 받아내며 싸운다든지 말이다.
종합적으로 무려 100층짜리 빌딩에다 무작위 구조 및 보상, 수많은 개조 항목을 전부 즐기려면 십수 시간은 충분히 가지고 놀겠구나 싶다. 그저 살짝 아쉬움이 남는 건 료코와 아케미의 성능차가 없어 -로그라이트 시스템과 별개로-리플레이 가치가 떨어지고 2P CO-OP 역시 지원하지 않는다는 점. 대신이라긴 뭣하나 선택받지 못한 쪽 주인공도 나름대로 역할이 있다니 기다려보자. 약속의 세뇌 → 라이벌행 같기는 한데…
100층도 100층인데, 매번 구조가 바뀌므로 상당히 오랫동안 가지고 놀 수 있겠다
보스전 층은 고정이며, 특정 무기나 강화를 챙기지 못했을 경우 고전하게 된다
끝으로 좀 다른 얘기지만 ‘풀 메탈 스쿨걸’은 근래 D3 퍼블리셔가 만든 작품들 중 손꼽히는 그래픽을 자랑한다. 덕분에 료코와 아케미, 두 머신걸의 매력이 한껏 살아나고 워킹 데드들도 저마다 개성이 드러난다. 물론 현세대기에 걸맞은 텍스처, 모션이라 상찬할 순 없겠으나 최소한 게임이 지향하는 액션은 제대로 뽑아냈다. 사무실서 깽판 칠 때 비산하는 서류더미와 기름을 흩뿌리며 조각나는 워킹 데드의 사지가 퍽 볼만하다.
소싯적 ‘오네찬바라’를 즐겼거나 몇 년 전 발매된 1&2편 리메이크 ‘오네찬바라 오리진’으로 팬이 되었다면 본작이 얼마간 대체제로 괜찮겠다. 블레이드를 휘두를 때 손맛이 비슷한 데다 콜라보 의상을 통해 진짜 ‘오네찬바라’ 사키의 세라복도 입힐 수 있다. 그게 아니라도 가볍게 즐기기 좋은 로그라이트 액션 게임을 찾는 이에게 ‘풀 메탈 스쿨걸’을 추천하는 바다. B급 감성이라고 재미까지 B급은 아닐 테니 말이다.
그런데 이쯤되면 사이보그 여고생이 아니라 그냥 100% 로봇인 게 아닌지…?
|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