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잭
“크로간에게 맨손으로 덤비는 건 신종 자살의 방법으로 유명해 지겠는데요. 소령님, 제가 특허를 낼 테니 언제 매스컴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세요. 쎄시아에 가서 핫한 블루 베이비들과 놀고 남는 수수료로 장례식을 치러드릴게요.”
조커의 능청스런 어구에 리아라가 따가운 눈초리를 보냈다. 챠클라스 박사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노르망디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셰퍼드의 동료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은 티격태격하기 시작했다. 둘의 언쟁은 병상에 누워 있던 셰퍼드의 피를 토하는 듯한 격한 기침에 멈췄다. 둘이 돌아보자 셰퍼드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기침을 뚝 그치고 뻔뻔스런 미소를 비었다. 리아라는 심장이 철렁했고, 조커는 투덜거렸다.
“그런트가 이제 한살인가요? 어린애를 상대로 얻어맞고 오다니 다른 의미로 셰퍼드라는 이름이 퍼지겠군요. 예를 들어 할머니가 손주들을 모여놓고 해주는 이야기에서 한 살의 아기에게 쓰러진 지옥의 용 노르망디를 타고 온 악마의 이름으로 말이에요.”
“…… 괴물이던데.”
리아라는 그런트가 떠나기 전에 셰퍼드에 대해 똑 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샤도우 브로커인 그녀였지만 얻은 정보를 셰퍼드에게 주어서 자신감을 불어넣었다가는 그녀를 더 큰 위험에 빠트리는 꼴이었기 때문에, 함 내에 소문이 난 대로 셰퍼드가 시타델의 클럽 앞에서 그런트와 주먹다짐을 벌여서 길게 뻗었다는 사실을 건드리지 않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그녀가 심어놓은 감시 카메라에 담겼던 둘의 싸움 영상은 벌써 혼자 몇 번이고 돌려봤었다. 권총을 복도 옆에 서 있는 옷장에 올려놓고 맨손 격투를 시작한 셰퍼드는 곧 체력의 열세로 밀리기 시작했다. 마지막 순간 셰퍼드는 자신이 꺼내놨던 권총을 집어 들어 방아쇠를 당겼고, 그런트는 총알을 방비하기 위해 팔을 들어올렸지만 셰퍼드가 그런트를 쏠 리가 없듯이 총은 비어있었다. 가드가 올라간 틈을 이용해 달려든 셰퍼드가 그런트의 옆구리에 킥을 꽂자마자 그런트는 반사적으로 셰퍼드에게 박치기를 날렸다. 둘 다 동시에 쓰러졌고, 클럽의 술 취한 선원들이 몰려나오기 시작하자 그런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복도를 떠났다. 셰퍼드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런트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선원들이 그녀를 노르망디로 옮겨 왔다.
셰퍼드가 그런트가 인정한 그런트의 배틀 마스터이며, 인간 중 최고의 전사라는 건 아머와 각종 무기를 위시한 완전무장을 갖추고 동료의 지원을 받을 때나 해당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신체적인 차이로 그런트가 아닌 일반 크로간이라도 인간은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리아라는 셰퍼드가 인간 여자의, 아니 인간 전체의 신체 능력을 훨씬 초월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온갖 은하계의 정예 요원들이 전투를 시뮬레이션 하는 피나클 스테이션에서 셰퍼드는 튜리안 특수부대를 능가하는 기록을 세워놓았고, 그건 일반적으로 튜리안에게 모든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업적이었다.
‘넌 천년…… 아니 만년에 한번 나오는 영웅일 수도 있어. 하지만 리퍼라는 그림자에 비하면…’
그림자 정도가 아니다. 태양을 삼키는 어둠에 필적하는 적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리아라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이디의 경보음이 노르망디 전체에 울렸다.
“세버러스 소속 함선 셋이 접근 중입니다. 셰퍼드. 모두 무장한 프리깃입니다.”
함내가 크게 흔들렸다. 무언가가 노르망디를 가격했다.
“지근거리에 스텔스 함선도 하나 있습니다. 쉴드90%. 회피기동을 시작합니다. 조커, 조종석으로 돌아가 주세요.”
조커는 막 들어서는 닥터 챠클러스랑 부딪칠 뻔했다. 셰퍼드는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려고 노력하면서 리아라에게 말했다.
“리아라, 나 대신 전투를 지휘해 줘.”
노르망디에 대한 습격으로부터 삼일 전.
잭은 고양이처럼 자세를 낮춘 채로 어둠 속을 방황하듯이 걸었다. 미란다의 컴퓨터에서 나온 정보에도 오직 위치만 기록되어 있을 뿐, 내부의 구조도, 연구의 목적도 명확하지 않은 유일한 시설이 이곳이었다. 잭은 본능적으로 세버러스에게 치명적으로 중요한 어떤 연구가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살 임무가 끝난 뒤 원래 잭은 지구연합(항성계 연합)의 바이오틱 아카데미에 교사로서 자원할 생각이었다. 오랜 옛날 세버러스의 지옥 같은 연구실을 탈출한 이후 그녀는 기나긴 살육의 나날을 보냈다. 가로막는 적도, 쫓아오는 적도 스스로의 피 웅덩이에 빠트리며 스치는 모든 것을 절명으로 인도하는, 스스로 역시 죽어있던 파멸의 폭풍은 셰퍼드를 만난 시점에서 생명을 얻었다.
잭의 파괴의 혈로에 의미를 부여했다. 잭의 폭풍조차 건드릴 수 없는 불가능한 바위산을 향해 돌격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 잭은 자신이 구원받았음을 알았다. 동료애, 우정, 협력, 믿음, 친구……. 과거 아무 의미도 없던 단어들은 잭이 걸었던 수라의 길보다 훨씬 거대한 장애물을 극복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고, 이제 오히려 살인과 강도가 시시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맹수였던 그녀였다. 몸은 살과 피가 아니라 말초신경계와 자극신경으로 채워져 있었다. 독고다이의 사냥과 쫓김보다 다른 이들과 협력하여 더 거대한 적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그녀를 더 흥분시키고, 더 힘든 싸움을 가져오는 것을 깨달은 이상 맹수가 택할 길은 당연했다. 하지만 맹수는 따스한 온기에 덮여도 발톱이 무뎌지지는 않는 법이었고,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발톱을 바이오틱 아카데미에 교사로 지원해서 사용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았다. 미란다가 셰퍼드에게 세버러스가 리퍼의 세뇌 기술을 연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하는 것을 엿들었을 때까지.
잭은 그날 당장 미란다의 사무실에 들어가 컴퓨터를 해킹했다. 이디에게 제지 받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덕분에 그녀는 쉽게 여러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중 유일하게 특수기밀로 분류된 한 연구소의 위치를 알아냈다.
잭은 지구연합의 바이오틱 아카데미로 향하는 여정에 중간 과정을 하나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셰퍼드가 리퍼에 대항해 싸우는 것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작은 보답이라고 볼 수도 있었고, 리퍼에게 대항하느라 바쁜 셰퍼드에게 세버러스와 관련해 걱정을 더하는 건 피하고 싶기도 했다. 그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세버러스에 대한 복수심도 꿈틀거렸다. 어느 쪽이 이유이든, 잭은 극비리라는 연구소에 잠입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사용 물자조차 최소화 해야 하는 기지는 경비 병력조차 거의 없었다.
잭은 몇 번째인가 모를 모퉁이를 돌았다. 감시 센서를 바이오틱 힘으로 벽 깊숙이 쑤셔 넣고, 적외선과 열 감지기가 있는 통로에서는 바이오틱 에너지로 자신을 둘러싸고 가속하는 방법으로 순식간에 통과하면서 돌아다녔지만 별 신통한 발견은 없었다.
하지만 잭은 자신이 기지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있다고 확신했다. 어느 순간부터 밖의 방어는 돌파했는지 센서나 감시 카메라가 확연히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텅 빈 수술대 여럿이 놓여져 있는 하얀 방에서부터는 희미하지만 조명도 있었다. 복도로 나가 두 개의 방을 더 수색한 뒤 잭은 중앙에 콘솔이 하나 세워져 있는 커다란 방에 도달했다. 방은 어두컴컴했고, 콘솔 전원의 깜빡임이 유일한 조명이었다. 잭은 콘솔에 손을 얹었다.
“그러면 곤란해, 잭.”
잭은 익숙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뒤돌아 보았다. 천장의 불이 환하게 켜졌고, 순간적인 밝기 변화에 잭은 눈을 가렸다. 그녀가 들어온 입구에 총으로 무장하고 전신 갑옷을 입은 세버러스 요원들이 열 명이 넘게 도열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잭은 속은걸 깨닫고 이를 부드득 갈았다.
“세버러스 창녀.”
미란다는 잭의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움찔했다. 그녀는 승리자의 미소도, 평상시의 거만한 표정도 짓지 않았다. 미란다의 굵은 눈썹은 쳐져 있었고 입가는 자조의 감정을 담아 옅게 올라가 있었다.
“미안해. 내가 세버러스에서 나온 뒤, 아버지는 동생을 다시 빼앗아 가려고 했어. 아마 일루시브 맨이 아버지에게 말해줬겠지.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셰퍼드를 배신할 수는 없어. 그녀가 어깨에 짊어진 건 은하계의 운명이고 그녀의 방식이 더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일루시브 맨을 배신했으니까. 하지만……”
“나라면 넘겨줘도 괜찮다고?”
“…… 그래. 너하고 내 신변 둘 다.”
결국 미란다가 셰퍼드에게 이야기 하는 것을 잭이 엿듣고 있다는 것도, 잭이 해킹하기 쉽도록 자료를 방치해 둔 것도 미란다의 술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디를 어떻게 해서 잭이 미란다의 컴퓨터를 해킹하는 것에 관여하지 않도록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건 어찌되었던 좋았다. 잭은 미란다를 찢어버릴 생각과 함께 전신의 바이오틱 에너지를 일으키며 사자처럼 으르렁거렸다.
“재수 없는 치어리더 인줄 알았는데 이리 붙엇다 저리 붙었다 하는 걸레였군."
미란다는 화가 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침착함을 잃지는 않았다.
“그만 둬. 너 혼자만으로는 나보다 강할지 몰라도 이건 결투가 아니야. 여기뿐만 아니라 연구소 사방에 매복 병력이 널 기다리고 있었고, 지금 이리로 오고 있어.”
“너희 따위에게 항복하느니 너라도 죽이고 죽겠어!”
잭이 달려들려고 할 때 방으로 스무 명이 넘는 요원들이 더 들어왔다. 잭이 움찔한 틈을 타 미란다가 재빨리 말했다.
“잠깐만. 너를 어떻게 할 생각은 없어. 일루시브 맨은 너 같이 강력한 바이오틱 능력을 가진 인간만이 견딜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해. 그 일이 끝나면 다시 놔줄게. 약속하지. 원한다면 셰퍼드에게 그 정보를 가져다 줘도 좋아. 많은 도움이 될걸? 일루시브 맨도 세퍼드가 리퍼를 상대로 잘 싸우는 게 필요하니까.”
다른 말들은 전부 흘려 들었지만 셰퍼드에게 도움이 된다는 항목에서 잭은 망설였다. 잭은 살짝 누그러진 목소리로 반문했다.
“매개체?”
미란다의 대답은 잭이 상상도 못하던 것이었다.
“리퍼와의 대화를 위한 매개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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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매스 이펙트 3 팬픽] 더 레네게이드 - 6화 - 잭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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