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픽을 쓰는 건지 소설을 쓰는 건지 ^^;
우왕좌왕 하다가 일단 팬픽을 쓰는 거니 진행 속도를 조금 올려 보았습니다. 경험이 쌓이다 보면 완급조절을 할 수 있겠죠 __;
4화 – 크루서블
반쯤 강압적으로 운전수를 설득해서 베타 릴레이로 향하는 셰퍼드는 카이렝에게 당한 왼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베인 살 가죽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장갑을 벗고 응급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다. 셰퍼드는 끓는 고통을 분노로 환원시키며 다른 손으로 셔틀의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리아라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괜찮아?”
“뒤질 듯이 아파.”
셰퍼드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는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세버러스의 셔틀이 베타 릴레이를 통과하기 전에 잡을 수 있다면 셔틀에 입력된 항로를 파악하여 그들의 본거지가 위치한 곳을 대강 파악할 수 있었다. 베타 릴레이까지 비행하고도 그들을 놓친다면 세버러스의 셔틀이 베타 릴레이를 지나갔다는 걸 입증 못하는 이상 바타리안과의 외교 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았다.
셰퍼드는 창 밖으로 보이는 우주의 별빛들을 힐끗 보았다. 별빛이 순간 어두운 그림자에 먹혔다.
“꽉 잡아!”
쿠쿠쿵!
세버러스의 셔틀 중 하나가 셰퍼드의 셔틀에 충돌하면서 기내가 난장판이 되었다. 셰퍼드는 그녀에게 날아와 가슴을 들이받은 병사의 머리 위로 피를 토하면서 기침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저놈들 뭐야!”
“또 온다!”
셰퍼드는 벽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이번 충돌은 셰퍼드의 반대편에서 온 또 다른 셔틀에 의한 것이었다. 셰퍼드는 돌멩이처럼 뒤로 굴렀고, 팔다리가 멋대로 비틀어진 채로 좌석에 널브러졌다. 조종사가 소리쳤다.
“소령님! 다 죽겠어요!”
하지만 도망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남아있었다. 셰퍼드는 피를 울컥 쏟아내고 대답했다.
“미사일… 전방 발사. …… 터진다.”
“아, 예!”
혹시나 세버러스가 다른 셔틀을 잠입시켰을 경우를 대비해 셔틀을 무장시켜 놓았는데, 이 대로 놔두다가는 밖에 노출된 미사일과 적 셔틀이 충돌, 공중에서 모두 함께 폭사해 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조종사는 발사 버튼을 찾느라 허둥대다가 앞에서 다가오는 셔틀에 경악했다. 그는 무기에 관련된 모든 버튼을 아무렇게나 난타한 뒤 비명처럼 외쳤다.
“또!”
쿠쿠쿵!
깜빡이던 비상 뻴이 불꽃과 함께 꺼지고 완전한 어둠이 셔틀 내에 찾아들었다. 셔틀은 세 번째 충돌로 동력을 잃고 다시 행성의 지표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셰퍼드는 가물가물한 의식 가운데서도 리아라가 그녀를 꼭 끌어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살수 있을까?’
“다음 뉴스입니다. 은하 표준시로 3일 전 항성계 연합군 소속의 셰퍼드 소령이 베타 릴레이를 정찰하던 바타리안 소속의 셔틀에 락-온된 미사일을 발포, 이를 격추시켰습니다. 바타리안 스페이스에서 벌어진 이 사태에서 셔틀의 탑승자들은 모두 사망했으며, 바타리안 통합정부에서는 이를 항성계 연합군의 계획적이고 치밀한 도발 행위로 규정하고, 최근 리퍼의 침공을 빌미로 강한 목소리를 내오던 항성계 연합의 사죄와 보상문제에 대해 평의회에 중재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한편 셰퍼드 소령도 그 직후 바타리안 셔틀의 반격으로 탔던 셔틀이 격추되어 휘하 병사들이 모두 사망했으며, 셰퍼드 소령과 노르망디의 승무원 리아라 타소니 박사만 생존하여 무사히 귀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녹음된 음성이 멈추자 회의실 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셰퍼드를 돌아보았다. 사고로부터 한달 뒤, 헤킷 제독의 호출로 소집된 지구 방어 의원회는 바타리안과의 긴장 사태를 고조시킨 셰퍼드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해왔다. 회의를 주도하던 해킷 제독이 말했다.
“셰퍼드 소령. 바타리안은 과거 그들의 영토였던 톨판을 양도할 것을 최후통첩으로 요구했네. 물론 피해 배상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들의 최전방 릴레이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그 가까운 곳에 전진기지를 지어야 한다는 당위성도 함께 주장했지. 그렇게 하면 자네의 죄를 묻지는 않겠다는군. 기한은 내일까지야.”
의원들이 눈짓을 주고받는다. 셰퍼드는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알아챘다. 7년 전 셰퍼드가 자신의 부대원들을 전부 희생시켜 바타리안 해적들을 소탕한 악명 높은 사건의 발생지가 바로 톨판이었다.
“행성도 아닌 달 하나 가지고 바타리안과의 전쟁 위험을 피할 수 있다면 싸게 먹힌 셈이지만, 문제가 있네. 톨판의 옆 행성인 벨레로스에서는 특이 원소들이 대량으로 저장되어 있어.”
“벨레로스를 양도하라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바타리안은 세버러스를 돕고 있었단 말입니다. 미사일 발사도 사고였고요.”
셰퍼드는 무례하기 그지없는 어조로 말했고 의원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해킷은 상관 없다는 듯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세버러스와 그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는 한 그건 의미가 없네. 그리고 톨판이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어. 부관, 그걸.”
“제독……”
방위 의원회의 의원 한명이 해킷에게 이의를 제기했지만 해킷은 이의를 기각했다.
“셰퍼드 소령도 알아야 할 권리가 있소.”
셰퍼드는 회의실 탁자의 한가운데 떠오르는 둥근 물체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버섯처럼도 보이고, 둥근 머리에 길쭉한 막대기를 꽂아놓은 듯한 구조물이었다.
“이건 크루서블이라고 하네. 자네가 처음 리퍼의 존재를 주장했을 때, 솔직히 말해서 나도 믿지 않았었네. 소버린은 리퍼가 아니라 게스가 발굴한 프로시안의 전함이라고 생각했었지. 하지만 2년 전 이걸 발견했네.”
“이게 뭡니까?”
“프로시안의 유물을 연구하던 도중 화성에서 발견된 설계도일세. 프로시안들이 ‘리퍼’를 맞아 싸우기 위해 설계되었지만 카탈리스트라 불리우는 마지막 재료를 찾지 못해 완성되지 못했고, 프로시안들은 멸망하면서 다음 사이클을 위해 이 설계도를 남겼다고 적어두었지. 그 때서야 나는 자네의 말이 옳았음을 알게 되었고, 바타리안을 비롯 인간을 경계하는 종족에게 방해받지 않도록 항성계 연합은 비밀리에 크루서블을 2년 전부터 제작해 왔네. 콜렉터들이 인간의 식민지를 기습하고 주민들을 납치했을 때 우리가 군사적 대응을 하지 못한 게 이것 때문이었네. 항성계 연합은 거의 모든 자원을 크루서블을 만드는데 투입해야 했어. 그런 의미에서 콜렉터를 자네가 무찔른 것은 그들의 위협을 제거한 것 뿐만 아니라 크루서블이 노출되지 않도록 도와준 셈이었지.”
셰퍼드는 새로이 밝혀지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리퍼에 관련되어 그녀가 남들보다 덜 아는 것이 있으리라는 점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해킷은 숨을 고르고 이어 말했다.
“콜렉터들이 격퇴된 이후 화성을 비롯한 많은 프로씨안 유물에서 새로운 정보들이 발견되었네. 콜렉터들의 수가 극도로 줄어들면서 프로씨안이 멸망하고 리퍼가 돌아갔다고 판단한 컴퓨터들이 정보를 공개한 것 같네. 거기서 배운 바에 따르면 카탈리스트는 바로 시타델이라는군. 시타델이라는 리퍼의 기술을 이용해서 리퍼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인 것 같네.”
“그렇군요. 하지만 왜 톨판이 중요합니까?”
나이 지긋한 의원이 해킷을 대신하여 대답했다.
“당연히 크루서블이 톨판에서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지! 바로 옆의 벨레로스 행성에서 나오는 희귀 원소를 들키지 않고 쉽게 운반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지금 크루서블은 거의 완성단계이지만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해.”
해킷이 무거운 표정으로 뒷짐을 졌다.
“톨판을 넘겨줄 수는 없어. 크루서블의 연료를 채우는 것만 해도 많은 시간이 들고 아직 완성조차 되지 않았으니. 결국 이를 무마하는 건 크루서블의 정체를 공개하고 바타리안에게 협조를 부탁하는 수 밖에.”
“안됩니다!”
셰퍼드는 자신도 모를 정도로 크게 소리를 쳤다. 셰퍼드는 예의 아니게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뭔가가 잘못되어 간다는 본능과도 같은 속삭임이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
“바타리안은 세버러스랑 연계하고 있습니다! 저는 세버러스가 리퍼와 연계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바타리안이 리퍼의 영향력 안에 있다면 크루서블을 공개하는 건 자살행위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네. 자네가 세버러스와 리퍼가 연계한다는 주장은 상황증거 뿐이잖은가. 하지만 그들에게 크루서블을 공개하지 않으면 당장 전쟁이 터지고 말아. 리퍼가 쳐들어 올지도 모르는데 자멸을 택할 수는 없네.”
셰퍼드는 계속 반대했지만 의원회의 주장을 뒤집을 수 없었다. 그들이 셰퍼드를 호출한 것은 셰퍼드가 혹시 리퍼와 세버러스, 그리고 리퍼와 바타리안의 연계에 대한 확실한 증거물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였음을 깨달은 셰퍼드는 입술을 깨물며 물러났다. 하지만 회의가 끝난 이후에도 불안한 느낌은 전혀 가시지 않았다.
한달 뒤, 바타리안과 인간의 연합함대는 완성된 크루서블을 호위해 시타델로 운반하는 임무를 맡았고 셰퍼드의 노르망디도 호위함대의 자격으로 그 곳에 끼게 되었다. 셰퍼드는 불안한 마음에 전투준비를 갖추라고 했지만 몇 번의 릴레이를 거치면서 시타델로 향하는 과정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시타델로 향하는 유일한 입구인 위도우 매스 릴레이의 출구 쪽에서는 시타델 권역의 수비함대가 크루서블을 맞이하기 위해 포진해 있었다. 셰퍼드는 크루서블이 위도우 릴레이로 쏘아지는 것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몇 초 뒤 함내 통신 체널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크루서블이 나오질 않습니다! 사, 사라졌습니다!”
“뭐야?”
“어떻게 그런 일이….”
셰퍼드는 통신 체널에 대고 재빨리 말했다.
“리퍼 IFF 같이 특수한 코드가 삽입되었었나 봅니다. 아마 다른 릴레이로 나왔을 겁니다.”
해킷 제독은 수색을 명령했다. 고작 몇 시간 뒤 5함대에서 보고가 올라왔다.
“찾았습니다! 바타리안의 영역인 베타 릴레이로 나온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바타리안 함선 몇이 크루서블에 도킹해 있습니다.”
셰퍼드는 머리를 망치를 두들겨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프로씨안이 리퍼를 파괴하기 위해 설계한 결전병기에 리퍼가 만든 릴레이와 상응하는 IFF가 들어가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함께 크루서블을 호위하는 바타리안이 발견 뒤에도 이를 알려주지 않고 크루서블에 도킹을 했다는 것은 더더욱 의심스럽다. 갑작스런 깨달음 속에서 셰퍼드는 미친 듯 통신 채널에 대고 소리쳤다.
“해킷 제독! 크루서블에 도킹한 바타리안 함선들을 요격해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셰퍼드 소령?”
“제기랄. 바타리안의 군 지도자 일부가 리퍼에게 세뇌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크루서블은 아마 리퍼가 만든 함정일 겁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셰퍼드 소령, 지금 우리 군은 바타리안 주력 함대와 코앞에서 운행하고 있네. 만약 베타 릴레이에서 전투가 벌어진다면 이곳에서 양 군대는 전멸할 걸세.”
셰퍼드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건 필요한 희생입니다! 제발 제 말을 믿어주십시오! 우리가 베타 릴레이와 이곳에서 동시에 선제공격을 해서 바타리안을 제압하고 크루서블을 파괴해야 합니다! 프로씨안의 무기인 크루서블이 특수한 릴레이 코드를 가지고 있는 것도, 베타 릴레이에서 튀어나온 크루서블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 앞에 도킹한 것 역시 리퍼가 조종하고 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한참의 침묵 뒤에 해킷 제독이 대답했다.
“셰퍼드 소령,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전부 추측뿐 아닌가. 자네는 추측으로 지금 양 종족을 공멸시키려는 겐가? 그건 절대로 허락할 수 없네.”
셰퍼드는 이를 악물었다. 한달 전부터 불안했던 느낌이 이것 때문이었나.
“그럼 최소한 바타리안 사령관에게 해당 함선들을 크루서블에서 떨어지게 명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함대를 크루서블로 진격시켜 주십시오.”
해킷 제독은 셰퍼드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몇 분 뒤 해킷이 전해준 정보는 뜻밖의 것이었다.
“바타리안 함대의 제독인 이단 하다가 말하기를 자기도 그 보고를 받지 못했고 그 함대들이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군. 교신도 되지 않는다고 하네. 내가 자네의 의견을 전했으나 발포는 허락할 수 없다고 했네. 크루서블에도 손상이 갈 수 있으니.”
셰퍼드는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바타리안 전체가 리퍼에 조종당한다고는 생각하기 힘들고, 크루서블에 도킹한 이들 조차도 리퍼의 명령이 아닌 단지 기술을 빼내기 위해 도킹했고 바타리안의 함대 제독은 거짓말로 기술을 캐낼 시간을 벌고 있는 것뿐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대로 놔두면 엄청나게 불행할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셰퍼드는 계속해 해킷에게 해당 바타리안 전함의 격추를 요구했지만 해킷은 거절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난 뒤 양 종족의 주력 함대는 크루서블이 있는 베타 릴레이에 접근했다. 크루서블은 여태 본 적이 없는 붉은 색의 빛을 내뿜으며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크루서블에 도킹해 있던 바타리안 프리깃들이 함대의 도착을 보자 마침내 떨어져 나왔다. 셰퍼드가 신음처럼 말했다.
“해킷 제독!”
“….. 전군, 크루서블을 파괴하라. 반복한다. 크루서블을 파괴하라.”
항성계 연합군이 크루서블에 대한 포격을 시작하자 격노한 바타리안 이단 하다 제독이 항의했다.
“뭐 하는 짓이오! 미쳤소?”
하지만 이단 하다 제독의 항의는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수많은 레이저와 미사일들이 우주 공간을 가르며 크루서블로 날아드는 동안, 베타 릴레이의 띠가 점점 빠르게 회전을 시작했다. 크루서블에 포격이 직격되면서 어마어마한 파편이 튀어져 나왔지만 베타 릴레이의 작동은 멈추지 않았다. 셰퍼드는 끔찍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베타 릴레이의 띠가 최고 속도로 가장자리의 매스 에너지 볼 주변을 돈 지 몇 초 뒤, 그 자리에 있던 수만의 바타리안과 수만의 인간들 중 오직 단 한 명만 보았던 거대한 물체가 어둠의 공간에서 빨려나오듯이 눈앞에 나타났다. 셰퍼드는 기어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하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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