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스이펙트3 스토리가 마음에 안들어서 답답한 마음에 팬픽이라도 써볼려고요 ^^;
다른 분들 글을 보고 싶었는데 없는 것 같아서 제가 그냥 __;
매스 이펙트 2 DLC Arrival 이후 시점입니다. 매스 이펙트 1,2에서 나온 설정들만 공식으로 취급하며, 주인공은 여자 셰퍼드고 제목 보시면 눈치 채셨겠지만 풀 레네게이드입니다.
더 레네게이드
1화 – 재판
“피고 셰퍼드 소령은 바타리안 콜로니에 무단으로 침입하고, 허가 없이 프로시안의 유물을 발굴했으며 이어서 매스 릴레이를 파괴, 30만 2762명에 달하는 무고한 민간인들의 생명을 앗아간 사실을 인정합니까?”
셰퍼드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피고석에 앉아 쏟아지는 비난들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추궁이나 질문에도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셰퍼드의 모습은 군중에게 돌팔매질을 당하는 가련한 여인을 연상시켰다. 군인다운 당당함과 자신감도 없었고, 세상에 알려진 영웅적인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백 개가 넘는 소형 카메라봇들이 재판정 주위에 떠서 그녀의 초라한 모습을 생중계에 담고 있었다. 미처 허가를 받지 못해 재판장 밖에서 셰퍼드가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기자들의 카메라봇까지 합치면 족히 천 개는 넘을 것이다.
“대답을 하시오! 대답을!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가릴 수 없는 죄를 위한 변명을 짜낸다고 뭔가 달라질 줄 아는 거요?”
긍정의 메아리가 재판정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처음부터 이곳에 그녀의 편은 없었다. 수백, 아니 생중계를 통해 시청하는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적들이 그녀를 짓밟고 유린할 기회만 찾고 있는 상황에서 증인으로 나온 이들조차 매스 릴레이의 참사에서 살아난 바타리안들과 셰퍼드가 바타리안 행성계의 지도를 구입했었다고 증언한 정보상 인간 한 명뿐이었다. 적은 많고 아군은 없는 상황에서 셰퍼드는 다시 한번 침묵을 택했다. 바타리안 대표는 셰퍼드가 반응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이번에는 인간 대표들이 앉아있는 맞은편의 책상을 바라보며 적의를 담은 말을 꺼냈다.
“우리 바타리안 정부는 이 무도하고 잔혹한 테러가 셰퍼드 소령 혼자만의 계획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오.”
“지금 항성계 연합이 이 일을 사주했다고 주장하는 거요?”
“그럴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지. 셰퍼드 소령이 세버루스 테러리스트를 위해 일할 때도 눈감아 주지 않았소?”
“그 말 취소하지 못할까! 해적질을 공공연히 지원하는 바타리안 정부가 무슨 망발이오!”
양 종족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린 재판이었다. 바타리안은 어떻게든 셰퍼드를 항성계 연합과 엮어 인간들의 영향력을 축소시킬 셈이었고, 반대로 항성계 연합에서는 셰퍼드와의 끈을 자르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형식상으로 앉아있는 평의회에서 보낸 아사리 재판관이 허둥대는 동안 양 대표들은 혈압을 내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욕설과 모욕이 등가 교환되었고, 걷잡을 수 없는 분위기는 한 성급한 바타리안 방청객이 권총을 뽑아 들려고 했을 때 절정에 달했다.
양 대표단이 얼마나 소란스러웠는지 그들은 권총을 뽑으려던 방청객이 옆의 경비에게 제지 당하고 끌려나가는 것까지 눈치채지 못한 채 모욕의 한계를 실험해 보는 듯한 어휘를 주고받았고 한 바타리안 대표는 책상을 뛰어넘어 갈 듯이 그 위로 올라탔다. 모두가 바타리안 대표에게 시선을 빼앗기면서 언쟁이 잠시 멈췄다. 그때 재판장의 중간에서 비아냥거리는 여성의 목소리가 좌중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발언을 요청합니다. 좋은 구경거리를 놓치고 싶지는 않지만, 제가 여기서 끼어들지 않으면 바타리안은 금방 멸종할 것 같거든요.”
재판이 시작된 이후 한 마디도 하지 않던 셰퍼드였다. 아사리 재판장은 화를 내야 할지 경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조금 일어났고, 바타리안 대표 중 한 사람은 없는 총을 찾아 허리 깨에 손을 가져다 대었으며, 나머지 사람들은 놀라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말 한마디로 좌중을 침묵시킨 셰퍼드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피곤해 보였지만 그녀의 파란 눈동자는 이 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확신에 차 있었다. 총을 찾으려다 찾지 못한 바타리안 대표가 핏대를 높이며 셰퍼드를 손가락질했다.
“지금 인간들이 우리랑 전쟁을 벌이겠다는 건가? 당신은 정말 미쳤군!”
인간 대표가 당황한 목소리로 거들었다.
“아니… 이건 셰퍼드 소령의 개인적인 발언으로……”
하지만 그의 변명은 셰퍼드의 다음 말에 멈췄다.
“리퍼.”
웅성거림이 물결처럼 일었다. 하지만 곧 폭소가 재판장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그 단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시타델 전투의 영웅 셰퍼드 소령이 지난 2년간 일관적으로 주장했던, 5만년마다 모든 지성체를 멸망시킨다는 전설 속에서나 나올법한 기계의 종족을 셰퍼드가 부르는 이름이 리퍼였다. 아사리 재판장이 어이 없다는 듯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그게 어쨌다는 겁니까, 셰퍼드 소령?”
셰퍼드는 준비해 왔던 대본을 읽는 것처럼 막힘 없이 말했다.
“제가 발락 시스템의 알파 릴레이를 파괴시킨 것은 앞서 소견서에서 제출했듯이 리퍼들이 알파 릴레이를 이용, 발락 시스템으로 침입해 들어오려고 시도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촉박하여 미처 대피 절차를 밟을 수 없었지만 30만 5천 바타리안의 희생으로 리퍼의 침공을 늦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끝이 아니라, 지난 수 백 만년 간 이어졌던 리퍼의 긴 침공 시도의 일환일 뿐으로 앞으로도 바타리안 영역에서 집중적으로 이어질 겁니다. 이대로 가면 바타리안이 멸종한다는 발언은 그걸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습니다.”
“헛소리! 인간들은 거짓말쟁이다!”
손을 들어 바타리안 대표의 발언을 제지한 재판장은 셰퍼드에게 말했다.
“하지만 셰퍼드 소령, 당신은 그 입장을 철회한 줄 알았는데요. 재판 시작 이후 한 마디도 없었잖습니까. 지금 당신은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재판을 조롱하는 겁니까?”
“재판부를 납득시킬 수 있는 증거를 준비하고 심사 숙고하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허가를 주신다면 지금이라도 리퍼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
다시금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재판장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고, 셰퍼드는 방청객에 앉아있는 남자 한 명을 지목했다. 남자는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는데, 자신이 지목 받자 씹던 풍선껌을 불어 터트렸다. 재판장이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재판장에서 모자는 벗어주십시오. 그리고 음식물은 반입 금지입니다. 경비병들은 뭘 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보다 아까 총을 꺼내든 바타리안은 도대체 어떻게 무기를 반입한 거죠? …… 됐습니다. 모자는 벗어주시고 껌도 뱉어주세요.”
“행운을 붙잡고 싶으면 절대 모자를 씻지 말라, 아버지가 하시던 말씀이죠. 하루만 더 채우면 1달째인데.”
남자의 투덜거림에 셰퍼드가 무표정으로 말했다.
“씻지 말고 다시 쓰면 되잖아.”
남자는 모자를 벗더니 껌을 뱉어 안쪽에 붙였다. 그리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이건 씻어야 할 걸요. 이디가 소독액을 조종석에 막 뿌려대면 손이 미끄러질 수도 있거든요.”
남자는 목발을 짚고 셰퍼드의 옆에 섰다. 남자는 단에 턱을 괴기 전에 셰퍼드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왜 거짓말을 하세요? 여자라고 방심하다가 뒤에 털나요.”
셰퍼드는 남자를 노려보았고, 남자는 딴청을 피우며 재판장에게 농담을 섞어가며 자신의 이름과 직업을 밝혔다. 재판장은 남자의 말 중 무엇이 농담이고 진담인지 알 수 없어 식은땀을 흘렸다. 셰퍼드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상황을 정리해 보았다.
셰퍼드는 군인이었고 정치가는 아니었지만, 리퍼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했다. 우디나, 평의회, 항성계 연합…… 너무나도 많은 것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고, 더 이상 우직한 군인으로서는 앞에 놓여진 과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상대인 리퍼들은 수 백 만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전 은하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항상 승리해 오던 종족인 것이다. 인간으로서 대항할 수가 없는 거대한 존재 앞에 셰퍼드는 초라했고, 그녀의 영웅적 업적도 빛이 바랬다. 자기 자신을 강력한 적의 대항마로 단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한계를 부숴야 했다.
지난 3년 동안 리퍼를 막기 위해서 분주했지만 세상은 세 가지 분류로 나누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셰퍼드를 따라오는 자들, 그녀를 방해하는 자들, 그리고 그녀의 행동에서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는 자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침공에서 진정으로 리퍼를 상대로 전쟁을 이끌 리더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걸 하리라, 셰퍼드는 결심했다. 속임수도 쓰고, 모략이나 술수도 꺼리낌 없이 사용하는 정치가이자 군인이자 리더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을 것이다.
이 결심이 확고하게 된 시점은 자살미션 이후 일루시브맨이 그녀를 배신한 뒤였다. 리퍼의 귀환을 막기 위해 바타리안의 발락 시스템으로 향할 때 셰퍼드는 리퍼의 존재를 증명할 준비를 해두었고, 물증은 확보되었다. 그리고 셰퍼드는 언론에 정보를 흘려 공개재판을 이끌어 냈다. 몇 시간 동안 묵비권을 행사하며 침묵한 결과 바타리안의 대표는 셰퍼드에게 모든 종류의 모욕과 빈정거림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고, 셰퍼드에게서 건질 것이 없자 인간 대표와도 다툼에 들어갔다.
이 모든 것은 조커가 말한 대로 셰퍼드의 속임수였다. 증거는 있었지만 일부러 기다렸다. 30만 5천명을 죽게 만든 살인마가 실제로는 은하계를 구한 장본인이었다면, 그녀에게 모든 비난을 표출하던 바타리안들은 어떻게 보일까? 이어 거대한 위협을 앞에 두고 자기끼리의 이권 다툼에 열중하는 모습이 밝혀진다면? 그렇다면 그녀는 원하던 바를 얻을 수 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재판에서 충격적인 반전으로 주도권을 쥔 다음…….
그녀의 생각은 거기서 멎었다. 재판장이 셰퍼드에게 증거의 제출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조커는 품에서 작은 검은색 상자를 꺼냈다. 재판장이 물었다.
“블랙박스? 노르망디가 추락했습니까?”
“아니요. 셰퍼드 소령이 알파 릴레이에 충돌하는 소행성에 올랐을 때, 탈출하기 직전 녹음된 대화입니다. 차후 검사하시면 알겠지만 어떤 수정도 가하지 않았습니다.”
재판 보조인이 그것을 받아 옴니툴에 연결해 재생을 시작했다. 웅성거리던 재판장에 들린 처음 목소리는, 죽음이 깃든 것처럼 소름끼치고 무감정한 기계음이었다.
“셰퍼드. 너는 방해물일 뿐이다. 네 불가능을 향한 저항은 우주의 폭풍에 대항하는 먼지조각에 불과하다.”
재판장은 셰퍼드를 돌아보았다. 그 눈동자에 공포가 깃든 모습을 보면서, 셰퍼드는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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