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완만한 언덕길을 다 내려와 사람들의 발길이 많은 한낮의 번화가로 나온다.
이대로 넓은 도로로 나가면 그대로 신카와하마 역에 도착한다. 하지만 나오토는 거기까진 가지 않고 조금 앞에서 도로를 빠져나가 오락실 뒤쪽 주차장 옆의 작은 공원에서 발을 멈췄다.
공원이라고 해도 놀이기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콘크리트 벽 앞에 벤치를 두 개 설치해 뒀을 뿐인 공간이다. 결코 치안이 좋다고는 할 수 없는 구역의 한 구석에 있는 탓에 별로 사람이 많은 장소는 아니고 오늘도 다행히 아무도 없다.
생각한 대로 들어맞았다. 나오토는 벤치에 허리를 걸치고 사람이 오지 않는 것을 확인한 뒤 발밑에 뻗은 그림자에 말을 걸었다.
“라켈, 번화가 다 왔는데?”
정확히는 번화가의 중심이 아니라 외곽이지만 지금은 휴일 대낮이다. 번화가 중심에서 자기 그림자에 말을 거는 수상한 남자가 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모처럼 그림자에서 소녀가 튀어나와도 소란이 일어나지 않을 만한 곳을 골랐는데 정작 그 라켈에게서 반응이 없다.
“야, 라켈? 안 들려?”
조금 목소리를 크게 하며 나오토가 그림자 안쪽으로 시선을 향한다. 공교롭게도 그림자 안을 뚫어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시선을 향하느라 의식이 집중된 탓에 안에 라켈이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곤 해도 너무 조용하다. 순간 불길한 상상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바로 나오토의 귀가 어떤 소리를 잡아내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조용한 호흡소리. 이건… 자고 있을 때의 숨결이다.
“자는 거냐!”
무심코 소리를 높여 빈정댔다가 당황해 주변을 살핀다. 다행이다. 아무도 없다.
“아 진짜… 어쩌라고, 이제부턴.”
나오토는 머리카락에 손을 찔러 넣고 긁었다.
아무리 중얼거려도 라켈이 눈을 뜨지 않는다면 이 이상의 추적은 불가능하다. 나오토에겐 아오의 잔재라는 게 느껴지지 않으니까.
‘일단 집으로… 안 되겠네, 하루카도 있고.’
라켈은 어쨌냐고 물어보면 끝장이다. 그림자 안에 있어요, 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나오토는 일어나서 바로 옆의 자동판매기에서 캔 커피를 산다.
덜컹, 하고 무거운 소리를 내며 캔이 굴러 떨어진다. 그것을 주워 올려 다시 벤치로 돌아갔다.
모처럼 좋은 날씨인데다 다행히 나오토는 햇빛을 받아도 별 문제 없는 듯하다. 잠시 여기서 느긋하게 시간을 죽이며 라켈이 깨어나길 기다리자.
‘딱히 다른 예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생각할 것도 있고.’
마음속으로 독백마저 중얼거리게 되어 버렸다. 나오토는 캔을 따서 차가운 커피를 마신다. 달지만 약간 쓰다. 고독한 청량감이 약간 몸속을 식혀 주었다.
“흡혈귀…라.”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중얼 하고 목소리로 내며 말했다.
이렇게 되어 버린 계기는 어제 저녁의 한 순간이었다. 하굣길에 눈에 들어온 두 이상한 수치. 그것이 나오토와 평온한 일상을 갈라놓았다.
아직 그때부터 24시간도 지나지 않았다고는 생각 못 하겠다. 그만큼 어제부터 오늘에 걸쳐 눈이 핑핑 도는 바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안면벌레남과의 조우에, 라켈과의 만남. 돌덩이가 날아다니는 이상한 전장과 검은 덩어리로 변한 남자의 시체. 한 순간에 빼앗긴 팔과… 『0』이 되어 버린 자신의 수치.
‘그래. 나… 한번 죽은 거지.’
어젯밤, 아무리 해도 기억나지 않는 끊긴 기억 사이에 뭔가 있어서, 어쨌든 나오토는 죽었다.
거기서 모든 것이 끝날 터였다. 오늘은 오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그것을 라켈이 구해준 것이다.
─살고 싶어?
그렇게 묻던 소녀의 목소리를 떠올린다.
‘또 도움 받은 거네….’
돌덩이를 던지며 날뛰던 벌레남에게서도 몇 번이나 구해줬는데 이번엔 죽음에서 건져 올렸다. 덕분에 생명력은 『0』이 되고, 라켈은 나오토네 집에 눌러앉을 생각 가득하고, 거기다 아오를 손에 넣어라 초강력 마술사랑 싸워라 같은 심상찮은 주문을 받았지만.
그래도 라켈은 구해주었다. 나오토에게 오늘을 주었다. 무엇보다 라켈 덕에, 하루카를 울게 만들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었다.
나오토는 차가운 캔을 입에 댄 채 그림자를 내려다봤다.
태어나고 2년하고 4일 된 흡혈귀, 라켈 알카드.
알몸에 망토라는 강렬한 모습으로 등장해서는 사람의 몸이 콘크리트 벽을 박살낼 정도의 힘으로 차대는 것도 가능한, 여러 의미로 엄청난 소녀다.
하지만 아까 힘을 잃고 쓰러지려 했을 때 받은 어깨는 가늘었다. 처음으로 입은 옷을 싫어하는 모습은 어린애 같았고, 하루카를 보고 긴장해서 아무 말도 못하게 된 모습 같은 건 말 그대로 남에 집에서 빌려온 고양이 같았다.
‘나나 하루카가 지금까지 접해온 걸, 분명 잘 모르는 거겠지.’
친구와 웃고 떠드는 거나 잠을 깨우는 알람의 우울함이나, 나오토의 손 안에 있는 캔 커피의 맛은 물론 따는 법도 모를 지도 모른다.
말하는 대로라면 지식만큼은 나오토의 5억 배 있다지만.
“그러고 보니 깜빡했네.”
그림자에서 캔 커피로 시선을 이동하고 나오토는 다시 한 마디 중얼거렸다. 오른팔에 대해 라켈에게 물어보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잃어버린 오른팔이 눈을 뜨니 원래대로 돌아와 있던 이유를. 애초에 자신의 팔은 정말로 잃어버린 게 맞나, 어째서 상처가 나은 건가, 그런 걸 그 어린 흡혈귀 소녀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뭐, 그것도 저 녀석이 깨어난 다음에야….’
물어볼 수, 있겠지.
그리 이어질 터였던 사고는 새하얗게 튕겨나갔다.
뭔가가 시야 구석에서 움직였다고 생각했다. 그 직후, 아니 직후라기보다 거의 동시일지도 모른다. 나오토의 몸은 바로 옆에서 쓸어내는 듯이 후려쳐지는 압력에 의해 엄청난 기세로 뭔가에 격돌했다.
“───읏?!”
몸 안쪽에서 공기가 짓이겨져 파열한다. 종이풍선이 된 기분이다. 한 순간 체중을 완전히 잃고, 1초 뒤에는 자신의 몸이 몇 배나 무거워진 것 같이 느껴졌다.
하얗게 튀어 오른 시야가 지직거리며 되살아난다.
거긴 그 주차장 옆의 공원이었다. 본 기억이 있는 경치. 그 안에서 나오토는… 두꺼운 말뚝이라도 박힌 것처럼 아까 캔 커피를 뽑은 자판기에 등부터 파묻혀 있었다.
“커…헉”
떨리는 턱이 갑자기 숨을 빨아들이는 데에 실패해 성대하게 콱 막혔다. 숨 쉬는 게 맘대로 되지 않았다. 목에서 얽혀 갈 곳을 잃은 숨 대신 목 아래쪽에서 올라온 미끈한 덩어리가 입으로 흘러나온다.
그것이 액체라고 인식한 것은 뱉어낸 뒤였다. 뿌옇게 변한 시야에 그것은 기분 나쁠 정도로 검붉게 비치고, 토기를 불러일으키는 냄새를 맡고서야 많은 체액과 뒤섞인 대량의 피라는 것을 알았다.
희미하게 달콤한 커피 맛이 난다. 그게 더욱 기분 나빴다.
“으…으윽…”
신음하듯 한 목소리가 떨리며 흘러 퍼진다.
아직도 뚝뚝 하고 입에서 피를 흘리며 나오토는 자신을 자판기에 처박은 것이 무엇인지를 보았다.
팔이다. 통나무처럼 두껍고 억센 사람의 팔. 그것이 나오토의 배를 거의 반쯤 찢고 나가 말 그대로 말뚝처럼 몸을 자판기에 꽂아 두고 있다.
팔은 질척, 하고 젖은 감촉을 끌며 나오토의 배에서 뽑혀 나갔다. 하지만 바로 다른 한 팔이 나오토의 멱살을 붙잡고 자판기에서 뽑아냈다.
옷이 붙들려 올라가 목을 압박한다. 하지만 팔을 떨쳐내려 해도 손이 올라가지 않는다. 막힌 배수구처럼 입 안에서 피가 뭉치고 있었다.
온몸이 너덜너덜하게 으스러진 것 같은 감각이었다.
힘없는 사지를 흔들며 나오토의 몸이 크게 당겨진다.
나오토의 눈이 잿빛의 콘크리트 벽을 포착했다. 이 팔의 의도를 이해한다. 두꺼운 콘크리트 벽은 자판기보다 훨씬 딱딱하겠지.
‘거긴 좀… 위험하잖아…’
얌전한 위기감이 나오토의 사고 옆쪽에서 속삭였다.
하지만 그런 저항이 팔의 주인에게 닿을 리가 없다. 휙, 하고, 인형이라도 버리는 것처럼 나오토의 몸을 벽을 향해 던진다. 가벼운 부유감에 손발이 춤춘다.
다음 순간.
배에 맞았던 건 귀엽다고 웃어줄 만 한, 베인 것과 비슷한 날카로운 충격이 나오토의 몸통을 헤집었다.
뭔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것을 들으면서 나오토는 잿빛 벽에 격돌하고, 콘크리트의 차가움을 맛볼 틈도 없이 의식을 잃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의식. 죽었나 하고 생각했다. 모처럼 라켈이 살려 줬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무의식적으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처음 맞은 것보다 시야와 의식의 부활이 빠르다.
눈 깜박임 한 번에 시야는 안정되고 밀어내는 듯한 거친 호흡이 나오토의 몸을 크게 흔든다.
확실히 멈췄을 거라 생각한 심장이 쿵, 쿵, 하고 시끄러울 정도로 크게 뛴다.
나오토는 벽에 늘어지듯이 양다리를 늘어뜨리고 주저앉아 있었다. 오른쪽 시야가 붉다. 호흡은 가능해도 온몸이 무거워서 만족스레 몸부림조차 칠 수 없다.
하지만 있어야 할 고통은 어딘가 멀리 날아간 모양인데, 무참하게 상처받았을 터인 온몸 대신에 쓸데없이 검지 관절이 아팠다.
스윽, 하고 시야가 그늘진다.
보인 것은 구둣발이었다. 밟힌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나오토는 필사적으로 목을 틀었다.
딱딱한 것이 으깨지는 소리가 귀 바로 옆에서 들린다.
피가 전신을 바삐 도는 것이 느껴졌다.
나오토는 눈만 움직여 옆을 본다. 자신의 머리가 바로 전까지 자리 잡고 있던 장소. 거기에 흠집투성이인 가죽 구두를 신은 발이 파묻혀 있었다.
오싹 하고 오한이 나오토의 목덜미에 뻗쳤다. 미처 반응하지 못했더라면 나오토의 머리는 저 구두 밑에서 패대기친 토마토 꼴이 나 있었을 것이다.
“무… 무슨… 짓이야…”
빨리 돌아오지 않는 호흡에 크게 어깨를 상하로 움직이며 나오토는 벽에 파고든 다리를 따라 그 주인의 모습을 찾았다.
겨우 제대로 눈에 담은 습격자는 키가 크고 다부진 체격의 남자였다.
나이는 20세 전반 정도일까. 일본인은 아니다.
대체 어떻게 몸을 단련하고 있는 건지 입고 있는 셔츠가 갑갑해 보일 정도로 가슴팍은 두껍고 어깨에는 살이 올라 있었다. 근육을 두른 두꺼운 팔과 마찬가지로 두꺼운 창 같은 다리. 그리고 두꺼운 눈썹에 날카로운 눈, 힘차게 당겨진 얼굴에 송곳니를 내보인 위험한 표정.
뒤쪽으로 그냥 넘겨 버린 손질 따윈 하지 않은 조잡한 머리모양 때문에 그렇게 보이기도 했는데, 마치 야생 육식동물 같은 남자였다.
머리 위에 보이는 숫자는 『2394211』. 이 남자도 라켈 수준은 아니지만 평범한 인간은 훌쩍 뛰어넘은 수치를 내걸고 있었다.
“…빗나갔나.”
남자는 으르렁거리듯 낮게, 분한 기색으로 내뱉었다. 목소리는 풍채만큼 난폭하고 거친 분위기를 띄고 있진 않았지만 그만큼 귀기어린 살의가 들러붙은 중압감을 가지고 있었다.
나오토는 거친 호흡에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짐승 같은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모르는 남자다. 덧붙여 이런 흉흉한 분위기를 띈 남자에게 습격당할 만 한 이유도 짐작 가는 데가 없다.
지지 않겠다는 듯 적의를 담아 되쏘아보았다.
“뭐야, 넌… 죽이려는 거냐!”
“이미 두 번 죽였다. 왜 안 죽지.”
즉각 돌아온 무거운 목소리에 나오토는 흠칫했다.
당연하다고 하면 당연하다. 나오토는 무식한 힘으로 자판기에 때려 붙여지고, 이어 콘크리트 벽에 매다 꽂힌 것이다. 대량의 피도 흘렸다. 뭐가 어디 있던 건지 모를 정도로 몸속에서 뼈가 부서졌다. …그랬을 텐데.
아까까지 숨도 맘대로 쉬지 못했는데, 지금은 거친 목소리로 호통마저 칠 수 있다.
나오토는 아직 맘껏 움직이지는 못하는 목을 움직여 자기 자신의 몸을 살폈다.
‘역시….’
남자의 팔이 박혀 있던 복부의 상처가 사라져 있었다.
“역시 『불사자』인가.”
“뭐…?”
말하자마자 억센 남자는 밟은 벽에서 다리를 뽑아내 그대로 다시 나오토의 머리를 밟아 부수기 위해 내리 찍었다.
“우왓…!”
나오토는 몸을 굽혀 직격을 피한다. 하지만 머리 대신에 오른쪽 어깨가 남자의 구두 깔창이 되어 버렸다. 콘크리트를 부순 힘이 이번엔 나오토의 어깨를 짓누른다.
“으극, 아아아악!”
역시 아프다. 흐린 비명이 어깨를 눌려 밀려나온 나오토의 목에서 울린다.
남자는 혀를 차며 그대로 이번엔 다른 쪽 발을 휘둘렀다. 채찍처럼 휘어지는 다리는 그 강력함으로 허공을 가르고 역시 나오토의 머리를 노린다.
겨우겨우 나오토는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뿐이다.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저 발끝이 두개골을 으깨는 감촉을 한발 먼저 상상했다.
하지만 남자의 다리가 내리친 건 나오토의 머리가 아니었다.
살아 있다. 아직 눈도 입도 머리도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이해하지 못한 나오토의 눈앞에는, 기묘한 물체가 있었다.
또 팔이다. 하지만 이번엔 억센 남자의 팔이 아니라, 하얗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진 여성의 팔 같은 것이었다. 『같은』이라는 건 그것이 분명하게 인간의 팔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팔은 나오토의 등 뒤, 콘크리트 벽에서 뻗어 나와 있었다. 팔꿈치도 손목도 있는 그것은 이상하게 길고, 마네킹의 팔과 닮았다. 그것이 총 6개, 좌우에서 3개씩 나오토를 지키듯이 얽혀 방패가 되어, 그 중 하나가 부서지면서도 남자의 강렬한 발차기를 막아내고 있었다.
“…그만둬라, 발켄하인.”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팔과 반대편에서 들려왔다. 굴곡이 있지만 냉정한 젊은 남자 목소리다.
발켄하인이라 불린 억센 남자는 반신을 빼듯이 목소리가 난 쪽을 돌아본다.
그것을 기다리고 나서 나오토의 방패가 되어 있던 팔이 소리도 없이 벽 쪽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3쌍의 팔에 가려져 있던 시야가 개방되어, 이제야 나오토는 다른 한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오락실 뒤 주차장에도 본적 없는 남자가 서 있었다.
발켄하인, 이라 불린 남자는 생김새부터가 난폭하게 생겼는데 셔츠에 바지에 가죽구두에, 있는 힘껏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외국인이라는 인상이다. 하지만 두 번째로 등장한 남자는 생김새는 어쨌든 눈을 끄는 점이 있었다.
머리카락은 금색으로, 단정하게 쳐서 정리했다. 체구는 극히 평균적이다. 하지만 검은 가죽 밴드가 눈을 완전히 덮어 가렸고, 양복 같은 의상 위로 보라색의 망토를 휘날리고 있다.
피부색을 보고 아마 백인일거라는 것만은 알았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탓인지 어떤 인물인지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외견이 아무리 주위와 어울릴 생각 없어 보여도, 인사 한마디 없이 사람을 죽이려 드는 발켄하인에 비하면 이쪽이 훨씬 이성적으로 이야기가 통할 것 같다.
“어째서 방해하는 거냐, 레리우스!”
레리우스, 라고 눈을 가린 남자를 부르며 발켄하인이 또 낮게 떨리는 공격성을 띄고 말한다.
레리우스라는 남자는 발켄하인의 물어뜯을 듯한 기백 같은 건 신경도 쓰지 않는 듯 천천히 발을 움직여 나오토 쪽으로 걸어왔다.
“그건 『인간』이다. 『불사자』와는 달라.”
눈을 가렸으면서도 시야는 확보했다는 듯이 레리우스의 걸음에는 망설임도 위기감도 없다.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나오토는 벽에 손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등을 벽에 가까이 대고 지탱하며 일어선다.
발켄하인의 공격을 막아 줬다곤 해도 레리우스란 남자가 아군일 거라고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되도록 방심하지 않게 안광을 빛내고 두 남자를 바라보며 나오토는 몸을 바로잡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발켄하인이 위협적으로 어깨를 들어올린다.
“이게 어디가 『인간』이라는 거냐. 인간은 죽이면 죽는 법이다.”
“꼭 그렇지는 않지. …됐으니 물러나라. 애초에 그건 표적이 아니야.”
분개하는 발켄하인에 비해 레리우스의 목소리는 평탄하고 감정이 옅다. 변함없는 속도로 다리를 움직여 발켄하인 옆에 서서 다시 물러나라고 재촉하듯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칫.”
잠시 동안 노려보더니 발켄하인은 혀를 차며 갑자기 다리를 들어올렸다. 주저 없이 나오토의 발을 밟는다.
“우아아악!”
물풍선이라도 터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나오토의 오른발이 으스러졌다. 눈앞이 뒤집힐 정도의 격통에 나오토는 쓰러지듯이 몸을 굽히고 오른 발목을 강하게 붙잡는다. 그 앞쪽은 원형을 알아보기 힘든 고기와 피와 부서진 뼈 반죽이 되어 있었다.
“아, 아윽… 크…읏”
고통스런 신음을 뱉는 나오토에게 등을 돌리고 발켄하인은 재미없다는 듯이 걸어 나간다. 그대로 공원을 나가 주차장을 가로질러 어딘가로 가 버렸다.
한편 레리우스는 그 장소에 멈춰 서서 땅바닥에 엎드린 나오토를 지긋이 보고 있었다. 묘하게 열심히 보고 있는 듯해서 나오토는 그의 시선을 ─가려져 있는 탓에 그 각도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지만─ 쫓아, 부서져 버린 자신의 발이었던 고깃조각을 보았다.
무참하다. 무자비한 행위의 결과가 거기 있었고,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리저리 튄 고깃조각이 다 탄 재처럼 부서져 흩어져 눈물을 쏙 집어넣었다. 으스러진 고기와 뼈가 전부 빨간 안개가 되어 사라지고 나오토의 발끝에 돌아와서는 눈 깜짝할 새에 원래 모습을 되찾는다.
이게 어디가 인간이라는 거냐. 나오토는 아연실색한 상태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런 나오토의 의식을 현실에 다시 돌아오게 한 건 바로 옆에서 들린 레리우스의 목소리였다.
“호오… 과연. 이거 재미있군… 『재생능력(리제너레이션)』인가.”
슬쩍 다가온 목소리에 놀라 나오토는 튕겨나듯이 몸을 뺐다.
레리우스는 상체를 굽히고 꽤나 열심히 나오토의 재생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오토가 거리를 벌리자 어딘가 놀란 듯이 몸을 일으킨다. 갑자기 왜 그러나, 하고 묻는 듯이.
“제법 화려하게 저질렀군… 또 『키이로』한테 잔소리를 듣겠어….”
가볍게 주위를 둘러보고 나오토와 다르게 재생되려 하지 않는 무참히 파괴된 자판기와 벽을 보며 레리우스는 담백하게 중얼거렸다.
이어 다시 나오토를 향하고는 하얀 장갑으로 싸인 손을 내밀었다.
“괜찮나?”
그 행동과 말에 나오토는 대응을 헤맨 채 어깨를 좁혔다.
바로 방금 자신의 발을 밟아 으깬 남자가 있고, 그 동료 같아 보이는 남자가 이번엔 손을 내밀며 배려한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이면 적, 아니면 아니게 통일해줬으면 좋겠다. 일일이 진의를 탐색하며 행동하는 건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밀어진 손을 쫓아 버리고 스스로 일어났다.
“안 괜찮아. 엄청 아파.”
“통각은 기능하고 있는 모양이군.”
“당연하지! 너, 아까부터 사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뱃속에서 진정되지 않는 분노와 짜증을 목소리로 표현해, 나오토는 내밀었던 손을 턱에 대고 감탄하고 있는 레리우스를 노려보며 지껄였다.
얼굴이 감춰져 있는 탓에 분명하게 알기 힘들지만 목소리의 상태도 분위기도 나오토와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아까 그 발켄하인 보다도 나이는 어릴 것이다.
나오토의 눈이 레리우스의 머리 위를 본다. 떠 있는 숫자에 놀랐다.
『9152』. 무심코 이쪽 남자도 사람을 벗어난 이상수치겠지 하고 예상하고 있었지만 보인 건 극히 평범한 인간의 수치였다. 오히려 나오토의 평균보다 조금 낮을 정도다.
그 때였다. 오싹 하고 오한이 들었다. 이유는 모른다. 그저 노려보던 시선 앞의 레리우스가 빙긋이 웃음을 지은 게 원인일지도 모른다.
“일행이 폐를 끼쳤군. 사과 대신에, 몇 가지 가르쳐 주지.”
옅게 지은 웃음 그대로 레리우스가 말했다.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목소리를 가진 남자다. 하지만 지금은 웃음과 함께 희미하게 즐기는 듯한 기쁨의 감정이 풍긴다.
“만약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우선 머리를 지켜라. 머리를 당해 버리면 아무리 불사자라도 곧바로는 재생할 수 없다. 그 틈에 이쪽은 불사자를 「죽여내는」 게 가능하다.”
느긋한 어조의 말에 나오토는 이끌린 듯이 자신의 머리를 만졌다. 그러고 보니 발켄하인은 집요하게 나오토의 머리를 밟아 부수려고 했다. 그건 그런 이유가 있던 건가, 하고 납득한다.
하지만 의문도 들었다. 발켄하인의 첫 일격은 분명 배였다.
“…그럼, 왜 처음부터 머리를 노리지 않은 건데?”
“불사자는 누구나 머리 쪽으로 오는 공격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니 우선 한 번 움직임을 멈추고, 이어서 머리를 확실하게 파괴한다…. 그게 정석이다.”
말하고는, 레리우스는 몇 걸음 물러났다. 그림자를 피한 거라고 이해한 건 레리우스가 턱을 살짝 들어 발밑을 가리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노리고 있는 것은 뱀파이어다. 재생능력을 가진 다소 튼튼한 소년에게 고통을 주는 게 목적이 아니지. 물론 갓 태어난 소녀를 쫓아다니기 위해 온 것도 아니야.”
움찔 하고 나오토의 몸이 굳고, 레리우스를 노려보는 안광을 날카롭게 갈았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바로 알았다. 라켈이 있는 것을 이 남자는 알고 있다.
나오토가 경계하는 이유도 꿰뚫어 본 거겠지. 레리우스는 한 번, 나오토의 표정을 훔쳐보듯 약간 턱을 들어 올리고 이번엔 분명히 그림자를 향해 말을 걸었다.
“성능은 좋은 듯하지만, 미숙하군…. 적어도 좀 더 능숙하게 기척을 지워라. 그러지 않으면 또 그가 착각을 할 거다….”
여기까지 들어놓고 가만히 있을 순 없었던 모양이다. 나오토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물결치더니 거기서 소리 없이 라켈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 안으로 들어갔을 때처럼 계단을 올라오듯 조금씩 나오고 마침내 나오토 앞에 선다.
눈매가 올라간 커다란 금색 눈은 도발하듯이 레리우스를 보고 있었다.
“충고, 황송하게 받지. 레리우스 클로버.”
그 말을 듣고 레리우스가 또 웃음을 지었다.
“호오… 내 정보도 있는 건가. 굉장하군.”
만족스러운 듯한 목소리였다. 레리우스는 나오토와 라켈을 바라보며 그대로 몇 걸음 물러나고, 가슴에 손을 댄 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일행을 뒤쫓지 않으면 안 되겠군. 언젠가 또 만나도록 하지.”
그렇게 남기고 레리우스는 인상적인 보라색 망토를 돌려 발켄하인이 사라진 쪽으로 모습을 지웠다.
---------------------------------------------------------------------------------------------------------------------------------------------
오늘의 주인공 : 6B에 쳐맞고 뚫리고 JC에 터지고 으깨졌다. 이지선다 그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소설 읽으면서 제일 놀란 파트 중 하나입니다.
본편 캐릭터가 대놓고 나왔어?!
그것도 과거 모습으로요. 본편에서 약간씩 암시되던 발켄하인과 레리우스의 관계가 조금이나마 밝혀지네요. 동료라니 허허.
나오토의 서술을 따르자면 발켄하인은 20대 초반, 레리우스는 그것보다 어릴 것이라 했으니 10대 후반~20대 극초반 정도겠네요. 어려.
근데 레리우스가 변태가 아니잖아? 뭐야 변태같아.
덧붙여 아무리 변태성을 드러내지 않았어도 언행에서 라켈을 '인형'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게 느껴집니다. 변태같긴.
그리고 발켄하인. 뭐지 이 마초... 이게 무슨 일이 있으면 150년쯤 뒤엔 그리도 젠틀한(주인공 대하는 태도는 변함이 없는 것 같기도 하지만) 영감님이 되는 건지...
일본에서도 말이 많았던 부분입니다. 흡혈귀를 쫓는다던 저 깡패는 앞으로 뭔 짓을 당했길래 흡혈귀의 개가 되는 걸까요.
그리고 나오토... 보면서 답답합니다. 이 호구같으니. 애초에 죽은 것 원인제공도 라켈이 한 건데 살려준 것 가지고 아주 진흙탕을 구르네요. 여기 주인공들 이상해.
이번엔 한 챕터만 올리느라 좀 짧네요. 재밌게 보시고 댓글 하나씩 달아주세요. 번역에 박차가 가해집니다.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
(IP보기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