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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가는 김에 저녁거리 시장 좀 봐다 줘, 하는 하루카에게서 메모를 받아 들고 나오토와 라켈은 오전 외출에 나섰다.
구름은 약간 있지만 오늘도 푸른 하늘에서 눈부신 햇빛이 내려오는 좋은 날씨다. 공기는 딱 좋게 선선하고 지금부터도 기온은 약간 오를 테니 보내기 좋은 하루가 될 것 같다.
휴일 오전은 사람들의 목소리로 넘치고 있다. 떠들썩한 사람들을 옆눈으로 보면서 나오토는 라켈과 함께 번화가를 우회하는 형태로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었다.
앞서 걷는 건 하루카에게서 검은 부츠를 빌린 라켈이었다. 신카와하마의 지리를 자세히 아는 것도 아닐 텐데 망설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
그 등에서 좌우로 흔들리는 금색 꼬리를 바라보면서, 나오토는 자그마한 뒷모습에 말을 걸었다.
“야, 라켈.”
대답하지 않는다. 걸음에 흔들림도 없다.
나오토는 울컥 하고 눈썹을 좁혔다. 안 들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까부터 벌써 몇 번이나 부르고 있는 중이다.
“라켈? 야아, 라-케-엘?”
짜증나는 대로 끈질기게 불러주마. 하고 열 몇 번째 부르니 이제야 금색 포니테일이 뒤돌아봤다.
“라켈 『님』이야. 주제에 맞는 호칭을 쓰도록 해, 하인.”
“주제에 맞는, 은 무슨….”
불만 가득하게 명령하는 라켈을 역시 불만 가득하게 돌아보면서 나오토는 라켈의 옆에 섰다. 줄곧 무시하던 이유가 이거라고 생각하니 조금 질려버려서 한숨이 샌다.
“그런 것보다,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이번엔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호칭에 대한 건 포기한 모양이다.
“너, 하루카한테 뭐 한 거야?”
나오토의 물음은 캐내는 듯하다.
아까 전에 있었던 일이다. 나오토네 집 거실에서 대치했을 때, 하루카는 라켈의 말을 그대로 믿었다. 이상할 정도로 간단히.
하루카는 딱히 심려 깊은 쪽은 아니다. 누군가를 의심하는 게 서툴고 사람을 믿기 쉬운 성격의 소유자다. 하지만 감은 좋은 편이고 바보도 아니다. 그렇게 이상한 설명을 받아들이고 손을 흔들며 보내 줄 정도로 무심한 인간이 아니다.
라켈은 대단한 문제는 아니라는 듯 자연스런 태도로 어깨를 움츠렸다.
“딱히 아무것도. 내 이야기를 믿어 줬을 뿐이야. …라고 말해도, 당신은 납득 안 하겠지.”
“당연하지.”
“그렇지?”
알고 있었단 듯한 태도가 놀리는 것 같아 약간 짜증난다. 기분 나쁜 표정을 굳힌 나오토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라켈은 악의 한 조각도 없는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진홍의 마안(슬레이브 레드)』라는 강제인식 마법이야. 상대가 인식하고 있는 사실을 조작하는 거지. 하지만, 한 사람에게 딱 한 번 밖에 못 써. 부작용이나 피해는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믿어도 되려나.”
마법 같은 건 흡혈귀 급으로 신용할 수 없는 말이다. 의심에 어조를 뾰족하게 하는 나오토를 상대로 라켈에겐 어쩜 저렇게 의심만 한가득일까 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감돌았다.
“정말이야. 그런 시시한 농담을 하는 데에 무슨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바로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응? 그럼, 그 마법 때문인가?”
“뭐가?”
아까 하루카가 그랬던 것 정도로 이 소녀의 상태도 걸리는 점이 있었다.
“너, 아까 하루카가 왔을 때부터 묘하게 얌전했잖아. 옷도 순순히 입었고.”
나오토가 입으라고 했을 때는 상당히 강하게 거부했으면서 하루카가 그랬을 땐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따랐다.
라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당혹스럽다는 듯 대놓고 나오토에게서 눈을 돌리고 허둥지둥 하는 손으로 스커트 끝자락을 만지작댄다.
“그, 그건… 상정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그런 거야.”
“상정하지 못했다니 뭐가?”
“하루카 말야. …동성은 거북해.”
그게 너무나도 부끄럽다는 듯이, 곤란하다는 듯이 라켈은 눈썹 끝을 잔뜩 내리고 입가를 가렸다.
나오토를 내려다보며 위엄차게 명령하고 하인이라고까지 부르는 고압적인 소녀와 동일인물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온순하고 조신한 소녀가 거기에 있었다. 사기다, 불공평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오토는 팟 하고 눈치 챘다. 이건 부끄러워하거나 수줍어하거나 하는 게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무서워하는 것에 가깝게, 라켈은 우물쭈물이 아니라 바들바들 하고 있었다.
“라켈 너… 혹시 의사소통장애?”
게다가 여성 한정이라니 귀찮기도 하다. 반쯤 놀리는 나오토의 말은 복부에 꽂힌 둔한 충격에 의해 끊어졌다.
“으헉….”
하늘을 가르는 속도로 날아온 라켈의 돌려차기가 나오토의 옆구리에 먹혀 있었다.
라켈이 귀찮다는 듯이 다리를 당기니 나오토는 에는 듯한 충격을 받은 옆구리를 감싸고 휘청거렸다.
“뭔 짓거리야!”
“교육이야.”
흥, 하고 분개를 코로 뿜으며 라켈은 긴 머리카락을 다시 크게 휘날리며 걸음을 서둘렀다. 조금 거리가 벌어지니 돌아보고는 빨리 따라오라고 재촉하든 시선을 보낸다.
“너….”
완전히 이쪽이 시중이라는 듯한 태도다. 아니꼽다. 그렇다고 이대로 혼자 돌아가 버리면 하루카가 무슨 말을 할지 모르고, 라켈에겐 아직 들어야 할 게 산처럼 있다.
떨떠름하게 쫓아가 옆에 서서 차인 옆구리를 어루만지며 걷는다.
훔쳐보듯이 살피니 라켈의 걷는 리듬에 맞춰 검은 리본이 뿅뿅 뛰듯 흔들리고 있다. 그 위엔 그 숫자가 있다.
‘일, 십, 백… 만… 역시 팔천만을 넘어가네.’
보인 숫자는 『86510752』였다. 여전히 괴물 같은 생명력이다. 아니 흡혈귀니까 정진정명 괴물이라고 해야 하려나.
라켈은 방향을 틀어 어떤 길로 들어갔다. 거기서 나오토는 그녀가 어디로 가고 있는 건지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길은 어제 나오토가 라켈을 쫓아 달린 길이다. 이 앞쪽에서 라켈이 갈 만한 곳을 고르라면 한곳밖에 없다.
무인단지다.
하지만… 이상했다.
‘이 길… 어젠 그렇게 엉망진창이었는데.’
전봇대가 부러지고, 가드레일은 찢어지는 등 손 가는 대로 박살난 채였을 터이다. 하지만 하룻밤 지난 지금 같은 장소가 맞을 텐데도 어제 있었던 피해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원래대로 돌아와 있다.
이게 어질러진 쓰레기들을 치운 정도라던가 쓰러진 자전거를 세워놓은 정도라던가 그런 거라면 모른다. 하지만 부러진 전봇대나 뒤집힌 아스팔트까지 원래대로라니 얼마나 신속한 공사가 진행된 것인가.
아무리 사람이 많이 다니는 역 근처 길이라고 해도 이런 재빠른 처치가 가능할까.
의문을 안은 채로 나오토는 라켈과 함께 인기척 없는 길을 나아간다.
“이런 곳은 뭐 하러 가는 거야?”
설마 현장검증이라도 할 생각일까.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경찰들을 떠올리면서 나오토가 묻는다.
라켈은 돌아보지 않고 앞을 향한 채 뒤에 머리카락을 흔들고 있다.
“아오의 잔재를 확인하러 가는 거야.”
“아오의 잔재?”
또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든 단어가 나왔다. 나오토는 오른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다.
“그러니까 아오의 실마리를 찾으러 간다는 말이야. 됐으니까 입 다물고 따라오도록 해.”
“네, 네. 그럼 그 괴인 벌레남은 뭐야?”
결국 아직도 녀석이 뭐하는 놈인지는 하나도 듣지 못했다.
아오의 잔재처럼 설명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라켈은 희미하게 표정을 흐리며 오히려 나오토에게 잘 들리도록 대답했다.
“『스피너 스페리올』의 사도야.”
“스피… 뭐야 그건?”
“당신한테도 관계된 일이니까 설명해 둘게. 스피너 스페리올은 마도도시(魔導都市) 이샤나도 한 수 접어주는 우수한 마술사야. 그리고 누구보다도 아오에 가깝다고 소문이 난 사내지.”
“…이샤나?”
나오토는 선생님에게 질문하듯이 어깨 높이로 손을 들고 물었다.
도시, 라고 했으니 어딘가의 지명일 테지만 나오토는 그런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라켈은 흘끗 나오토에게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는 가볍게 고개를 젓는다.
“이 세계의 마도의 중심지야. 마법을 관리하고 있는 장소. 하지만 지금은 딱히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누구보다도 아오에 가깝다』라는 점.”
아오.
갑자기 특별해진 이 두 글자의 단어를 삼키듯 나오토는 입을 다물었다.
“아오는 근원의 힘. 그것을 스피너가 원하고 있어. 하지만 아오는 존재 자체는 마술사들 사이에 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떠한 것인지, 어디에 있는지, 어떤 모습을 취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아. 정보가 너무 없는 거야. 하지만 스피너는 그런 상황에서도 확실하게 아오를 원하고, 가까워져 있어. 그리고 지금은 더욱 아오에 가까워지기 위해 나를 노리고 있지.”
“라켈을? 왜 또?”
“내가, 누구보다도 강하게 아오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야.”
말하며 라켈은 자신의 가슴에 하얀 손을 대었다. 그 몸이 어떤 감각으로 아오를 느끼고 있는 건지 나오토는 모른다. 하지만 결코 쾌감은 아닐 거라는 사실 만큼은 라켈의 옆얼굴을 보며 알 수 있었다.
무의식적이겠지만 라켈은 「아오」를 어딘가 애달프게 부른다. 마치 가슴속이 아픈 것처럼.
“즉… 아오를 찾기 위한 레이더로 쓰려고 한단 건가?”
혼잣말처럼 나오토가 중얼거리니 라켈은 작게 수긍했다.
“그렇겠네. 그러니까 나는 어제 스피너의 사도에게 습격당했어. 하지만 그건 나한테 있어서도 잘 된 일이야. 나도 스피너를 찾는 중이니까.”
“찾아? 왜? 쫓기는 거 아냐?”
“말했잖아. 아오에 관해서는 정보가 너무 없다고.”
그때까지 규칙적으로 이어지던 발소리를 멈추고 라켈은 나오토에게 얼굴을 향했다. 벽처럼 빽빽이 들어찬 번화가가 보도를 그림자로 짓누르고 있었다. 그 그림자 안에서 금색의 눈동자를 빛낸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아오를 느끼는 것은 가능해도 아오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나는 스피너에게 접촉해 그가 알고 있는 정보를 얻고 싶다는 거야.”
“그건….”
스피너도 라켈도 아오라는 정체불명의 보물에 대한 정보를 원하기에, 자신이 모르는 정보를 손에 넣기 위해 서로를 찾고 있다. 이해하면서도 나오토는 복잡함에 얼굴을 찡그렸다.
“찾아서 스피너라는 남자를 발견했다고 쳐도, 그럼 정보교환이나 하죠,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으론 안 되겠지?”
어제 본 벌레남이 라켈을 공격한 것만 봐도 대화에 의한 정보 주고받기가 진행되는 원만한 세계가 아니란 것쯤은 명백했다. 그리고 저쪽에서 조용한 수단을 택하지 않으니 라켈 쪽에서도 비폭력적인 수단으로 스피너에게 접촉을 시도하는 건 어렵겠지.
“물론이지. 가르쳐 주세요, 했다고 가르쳐 주는 상대라면 고생도 안 해.”
“그럼 어떻게 정보를 얻을 건데?”
“둔해 빠졌네. 당신이 싸워서 스피너를 때려눕히고 캐내는 거야.”
무슨 당연한 걸, 하고. 라켈의 커다란 눈이 깜박인다.
그 순간, 아니 몇 초 동안이나 나오토는 눈앞의 소녀가 무슨 말을 한 건가 이해하지 못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메마른 웃음으로 나오토의 입가가 비틀어진다.
“하…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웃기지 마! 너 바보냐?! 그 녀석 어제 그 괴물 주인이지? 이길 수 있을 것 같냐! 나, 고등학생인데요. 지극히 평범한 인축무해 고.등.학.생 인데요!!”
팡팡 하고 자신의 가슴을 두드리며 나오토는 전신전령으로 주장한다. 상대의 생명력을 숫자로 보는 특징에서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인가 자기 스스로도 의문이었지만, 그런 사소한 트집을 스스로 잡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니다.
“괜찮아. 당신, 벌써 죽었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무리라고! 대체 뭐하는 놈인데 그 스피너란 놈은. 강하지? 뭔가 엄청 위험한 놈이지?!”
“몰라.”
“네?!”
“그러니까, 모른다고. 나는 그와 만나본 적도 없고, 그와 직접 만나본 마술사도 거의 없는 것 같으니까. 어떤 생김새에 어떤 마법을 쓰는 지도 모르고, 어제 괴물도 어떻게 길들인 건지 몰라.”
뺨에 붙은 옆머리를 귀에 걸치면서 말하는 라켈의 어조는 실로 긴박감 없고 시원했다. 그거야 그렇겠지. 라켈에게는 그렇겠지. 스피너는 전부터 자신을 노리고 있는 존재였고 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황도 전전부터 그랬다.
하지만 나오토에겐 이야기가 다르다. 스피너의 존재도 그 녀석과 싸우라는 라켈의 주장도 지금 처음 들은 것이다.
자연스럽게 눈이 텅 열리고 손은 부조리에 부르르 떨렸다.
“너… 그럼 스피너에 대해서도 아오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거잖아!”
“시끄럽네. 그렇게 크게 말하지 않아도 잘 들려.”
울부짖는 나오토를 보고 표정을 뒤틀며 라켈은 귀찮다는 듯이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게다가, 모르니까 조사하러 온 거잖아.”
탓하듯이 말하며 라켈은 얼굴을 들었다. 약간 턱을 올리고 올려보듯이 보는 건 벽처럼 늘어선 번화가의 건너편.
대낮에도 울적한 공기를 머금은 무인단지였다.
5
상쾌한 날이었지만 무인단지 안에 들어오니 공기가 돌변했다. 모래먼지 냄새가 만연한 질감에 햇빛을 받으면서도 차가운 공기. 거기에 죽음과 같은 불온한 냄새가 자연스레 혐오감을 간질인다.
라켈은 단지 안에 들어와 곧장 어젯밤의 현장으로 향했다. 나오토와 라켈이 곤충남과 대치한 곳으로.
건물과 그 주위에는 어젯밤의 사건을 알리는 흔적이 아직 남아있었다. 곤충남이 라켈에게 차여 날아가 뚫은 커다란 구멍도, 그 파편을 던져 만든 좀 더 작은 구멍들도.
라켈은 삼거리 한중간에 다리를 멈추고 쪼그려 앉아 발밑의 도로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귀를 기울이듯 눈을 감고.
어떤 방법인 건지 나오토는 알지 못했지만 라켈의 말에 의하면 어제 도망친 벌레의 흔적을 따라가려는 것 같다. 벌레가 도망친 목적지에는 스피너가 있을 것이다. 벌레를 쫓는 것으로 스피너가 있는 곳을 알아내는 수법이었다.
“역시 옅어진 모양이네. 어제 그대로 쫓아갔으면 좋았을걸.”
잠시 후 라켈이 입을 열고 그런 말을 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보도블록에 앉아 그 모습을 보던 나오토가 일어나 모래가 묻은 엉덩이를 털며 라켈 쪽으로 돌아갔다.
“그럼 어제 쫓아갔어야 되는 거 아냐?”
“…어디 사는 바보가 죽을 것 같아서. 응급처치 하느라 바빴거든.”
“아… 죄송함다. 신세 졌슴다.”
『바보』가 누굴 가리키는 건지 암시하듯 노려보기에 나오토는 무심코 눈을 피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어젯밤 입은 부상은 흔적도 없으니 완전히 꿈에서나 있었던 일처럼 감각이 약해져 있었다. 막 일어났을 때에는 생생하게 남는 감각에 떨었으면서 잘하는 짓이다.
“그래서 어떤데? 못 찾는 거야?”
“재촉하지 마. 흔적을 감지하기 쉽게 만들면 될 뿐이야.”
기웃기웃 들여다보는 나오토를 올려다보며 라켈은 약간 울컥한 듯이 대답한다.
그때까지 대고 있던 손을 바닥에서 떼고 모래에 그림이라도 그리듯이 손끝을 미끄러뜨렸다. 그러자 잉크도 뭣도 묻어있지 않으면서 땅에 붉은 문자 같은 것이 그려져 간다.
피 같다고 생각하니 약간 오싹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나오토의 흥미를 끈 것은 라켈이 그린 문자 쪽이다.
“그거….”
나오토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가 새었다.
라켈이 그리고 있는 문자는 본 적이 있다.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나오토가 잘 아는 문자… 그 머리 위에 보이는 숫자와 굉장히 닮았다.
“고대문자야. 마법을 돕는 마법진을 만드는 거지.”
나오토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본적 없는 문자를 향한 의문이라고 받아들인 것 같다. 흔쾌한 얼굴로 멍청한 하인에게 가르침을 주며 하얀 손끝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한 이상한 문자로 이루어진 문양을 넓혀 간다.
어쩐지 밟으면 안 될 것 같아 라켈의 손끝이 빨간 문자의 범위를 넓히는 만큼 나오토가 물러난다. 그 발소리에 반응한 건지 라켈이 슬쩍 문자를 그리던 손을 멈추고 얼굴을 들었다.
“…여기, 아무도 안 사네.”
똑 하고 떨어뜨리듯 중얼거렸다.
그 목소리에 나오토도 싸악 하고 가라앉은 단지를 둘러본다.
“옛날에 이 단지에서 사고가 났댄다. 그게 원인이 돼서 아무도 안 살게 되고 그대로 방치됐다고 들었는데.”
“사고…?”
“내가 이쪽 오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 나도 자세힌 몰라.”
뺨을 긁으면서 나오토가 설명하는 동안 라켈은 다시 시선을 떨구고 땅에 문자를 쓰는 작업에 들어갔다.
다음 이야기를 재촉하는 목소리는 없지만 자신이 물어본 거니 듣고 있겠지. 맘대로 그리 판단하고 나오토는 쓸쓸한 단지를 바라보며 전에 들었던 이곳의 일화를 늘어놓았다.
예전에 이 단지의 정면에 있는 작은 언덕에는 한 동의 병원이 서 있었다. 지금은 건물은 철거되고 전선을 받치는 철탑만이 서있지만 당시엔 입원환자도 잔뜩 있을 정도로 규모가 있던 병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느 날, 단지의 완성이 눈앞에 있는 시기에 사건이 일어났다. 병원에서 미지의 병원균이 퍼져서 단지 근처 일대를 오염시켰고 결국 부지 안에 있던 인간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녹여버린 듯 하다.
“인간이 녹았다고?”
묻는 라켈의 목소리에 나오토가 끄덕인다.
“입고 있던 옷이 안쪽만 확 없어진 것처럼, 사라진 인원수만큼 남아있었대. 그래서. 인간만 없어졌다, 그렇다면 흔적도 없이 『녹았다』라고밖에 할 수 없다, …고. 여러 가지 조사해본 다음에 발표된 모양이야. 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어쨌든 그런 이유로 이 단지는 판매중지. 그대로 방치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는 거지.”
진짜인지 거짓인지 결국은 잘 모른다. 지금도 괴담이나 정부의 음모나 우주인의 기술력 어쩌고 하는 설까지 퍼져 있고,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가끔가다 화제가 되곤 한다.
“그래….”
어째선지 약간 슬픈 듯 라켈이 내뱉었다.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나오토는 라켈을 돌아본다. 하지만 라켈은 아까 봤을 때와 변함없이 얌전한 무표정으로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을 뿐이었다.
‘기분 탓…인가?’
걸리는 구석은 있었지만 들려온 목소리가 슬퍼보였던 만큼 함부로 캐물을 수도 없다. 결국 나오토가 뭔가 물어보기 전에 라켈이 문양을 다 그리고 일어섰다. 다 그린 마법진의 중심으로 걸어간다.
“지금부터 스피너의 벌레의 흔적을 찾을 거야. 좀 걸릴 텐데 끝날 때까지 말 걸지 말아 줄래?”
그렇게 말하고 라켈은 양손을 벌리고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라켈의 몸을 둥실 띄운다. 작은 발끝이 땅에서 완전히 떨어지니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려진 붉은 문자가 어슴푸레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오, 신기하다, 마법 같아…! 아니, 마법이구나.’
마법이라고 알고 있어도, 아니 알고 있으니까 더욱 나오토는 감동에 눈을 크게 뜬다. 비싼 무대장치의 향연과는 다른, 이치를 뛰어넘은 힘에 의한 현상이다.
라켈은 공중에 뜬 채로 감각을 예민하게 하려는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등에는 한데 묶은 긴 금발이 마치 물속을 헤매듯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다.
말 걸지 말라고 해두지 않았더라도 함부로 말을 걸기 힘든 분위기가 맴돈다. 뭔가 사소하게라도 간섭했다간 깨져 버릴 섬세한 유리세공 같은 아슬아슬함을 느끼며 나오토는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조심 물러났다.
잠시 떨어져 있자. 그렇게 생각하고, 그럼 이 틈에 하고 바로 근처 건물로 발을 향한다.
그 건물엔 2개의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하나는 벌레남이 날아가서 부순 부분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팔을 잃은 상태에서 의식을 차렸을 때 나오토가 묻혀 있던 곳.
그 때 의식은 거의 비몽사몽이었지만 그래도 바로 앞까지 오면 여기에 자신이 쓰러져 있었다고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위화감이 있었다. 아까까지는 막연하게 걸리는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바로 앞에서 내려다보고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나오토는 벌레에게 팔을 뜯기고, 아마 그 이외에도 여기저기 다친 빈사상태로 돌더미 아래에 묻혀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몸은 다치면 피를 흘린다. 거기다 팔 한 짝이 없어진 직후다. 그 출혈량은 나오토의 생사를 크게 죽음 쪽으로 기울게 했겠지.
그런데도 여기엔 한 방울의 핏자국도 남아있지 않았다.
‘꿈…이 아냐. 꿈이었다면, 여기가 이렇게 부서져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나오토의 뇌리에는 무인단지를 낳은 계기가 된 그 사건이 떠오르고 있었다. 건물도 옷도 그대로였는데 인간만이 사라진 사건.
그것과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난투의 흔적은 남아있는데 사람이 다친 흔적만이 사라져 있다.
사라진 것은 나오토의 핏자국만이 아니다. 나오토는 어깨너머로 돌아보았다.
시체가 없는 것이다. 가로등 근처에서 굴러다니고 있던, 나오토의 눈에는 검은 덩어리로밖에 안 보이는 벌레남의 시체가 없다. 거기다… 놈에게 물어뜯긴 나오토의 오른팔도 아무데도 없다.
누군가가 회수한 걸까. 그렇다면 누가 무슨 목적으로 회수한 걸까. 인근 주민의 신고를 받고 경찰이 회수해 간 거라면 단지 안쪽은 살인사건현장으로서 엄중히 봉쇄되어 있었겠지. 나오토와 라켈이 순순히 침입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스피너란 놈이 정리한 건가? 아니, 그런 짓 할 필요는 없을 거 아냐.’
뭔가 이유가 있어서 시체가 필요한 것이었다면 그것만 가져가면 되지 않는가. 나오토의 피나 오른팔까지 깨끗하게 정리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여기에 오는 도중 도로까지 완전히 수복되어 있던 것도 신경이 쓰였다.
나오토는 돌더미를 손으로 직접 만져봤다. 무너져 싸인 콘크리트는 차갑고 안쪽은 약간 축축해져 있다.
‘축축해?’
감촉으로 볼 때 피 때문에 축축한 건 아니다. 신경이 쓰여서 얼굴을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본다.
피라면 그에 맞는 냄새가 남아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오토의 코가 느낀 건 세제 같은 약품의 냄새였다.
“나오토.”
갑자기 말이 걸려 나오토는 무심코 흠칫했다.
어느 샌가 라켈 식 추적조사가 끝난 것 같다. 하루카에게 빌린 구두를 똑바로 땅에 대고 라켈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다.
그녀의 뒤쪽에는 이미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붉은 문자로 그려진 마법진은 빛과 함께 사라진 건지 자국조차 남아있지 않다.
“대강 방향은 알았어. 조금 거리를 돌아보고 싶으니 안내하도록 해.”
“하도록 해, 라니. 해 줘, 정도도 말 못하냐… 엇, 야?”
언제나 그렇듯 기세등등한 태도인 라켈에게 불만을 토로하고 문득 나오토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기분 탓인가 하면서도 얼굴이 찡그려졌다.
“너, 안색이 안 좋은데.”
그냥 있어도 비칠 듯이 하얀 피부인데 그 뺨이 이상하게 희푸르게 된 것 같다.
뱀파이어라면 희푸른 상태가 평범한 걸지도 모르지만.
라켈은 나오토를 지긋이 올려다보고 고개를 저었다.
“별로 아무렇지도 않아. 됐으니까 빨리 안내해.”
“뭐, 괜찮다면 상관없는데.”
라켈이 빨리도 걷기 시작해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쫓아간다. 뱀파이어는 원래 그런 건가하고 혼자 납득하고선 나오토는 살짝 달려서 소녀의 옆에 섰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해가 상당히 높이 떠 있었다. 기온도 약간 올라갔으려나.
나오기 전에 한 번 나오토는 무인단지를 돌아보았다. 기분 나쁜 사건 때문에 버려진 사연 있는 장소. 쭉 그런 인식이었다.
하지만 아까 라켈과 이야기하고 의문이 생겼다. 단지 밖에는 흘러나가지 않고 이 부지에만 퍼지고 마침 이 안에 있던 인간을 눈 깜짝할 새에 녹여서 소실시킨다. 그런 병원균 같은 게 정말 존재하는 건가, 하고.
‘그래도, 옛날 일이니까.’
지금 여기서 나오토가 생각해 봤자 소용없는 것이다.
나오토는 사소한 의문을 실을 끊듯이 쫓아내 버리고 라켈과 함께 조용한 폐허를 뒤로 했다.
아오의 잔재는 마을 중심에 있는 번화가 쪽으로 이어진 듯하다.
길안내라는 말을 듣고 나오토가 고른 건 무인단지 앞을 지나가는 도로를 내려가는 루트였다. 나오토도 평소에는 쓰지 않는 길이지만 온 길을 돌아가는 것보다 약간 빨리 번화가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무인단지 앞을 횡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때문에 이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보기에 자신들 이외엔 아무도 걷고 있지 않은 조용한 언덕길을 내려가면서 나오토는 옆에 있는 라켈에게 눈을 돌렸다.
아까부터 쭉 라켈은 스커트나 블라우스를 당기며 곤란하다는 듯이 눈썹을 좁히고 있는 것이다.
“옷, 사이즈가 안 맞아?”
보기에는 딱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오토가 물으니 라켈은 한 덩이 불만을 담아 노려보는 눈빛을 보냈다.
“옷을 입는 건 처음이거든. 자꾸 들뜨고 답답해. 특히 이 속옷이란 게 자꾸 달라붙어서 간질간질해….”
말하면서 라켈은 스커트 자락을 꾸욱 하고 들어 올리려고 했다.
“우와아앗, 뭐하는 거야, 하지 마! 그런 짓 하지 마!”
“이제 벗고 싶어.”
“절, 대, 안 돼! 하지 마! 부탁이니까!”
완전히 진심을 띄운 눈으로 호소하는 라켈을 나오토는 필사적으로 막았다.
라켈은 불만에 가득 찬 눈으로 입술을 삐죽이지만 그런 건 알 바 없다. 분명 여긴 이 순간 사람 눈이 없다. 하지만 백퍼센트 아무도 안 다닌다고는 할 수 없다.
혹여 벗는다고 치자. 그러는 중에 누군가가 지나간다면. 그 누군가가 목격하는 장면은 아마 남고생이 억지로 여고생의 속옷을 벗기고 있는 장면인 게 분명할 것이다.
애초에 벗은 속옷은 어떻게 할 건가. 들고 걸어다녀? 누가. 라켈의 스커트에는 장식 수준의 주머니만 있을 뿐이고 가방도 없다. 나오토도 지갑이나 휴대전화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가방만 갖고 있다. 그렇다면 도출되는 결론은 하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만큼은 죽어도 싫다.
“근데 옷 입는 게 처음이라니, 지금까지 뭐 입고 산거야?”
벗게 둘 순 없어서 말꼬리를 돌려 견제하면서 나오토는 마음속에서부터 흘러나온 의문을 입에 담았다.
라켈은 금색 머리카락을 파도치듯 흔들며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멍청하네. 옷을 입는 게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으니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입은 게 당연하잖아.”
“안 당연해! …태어나서 지금까지라니, 그러고 보니 너, 몇 살이야?”
겉으로 보기엔 자신과 그렇게 나이 차이가 있어 보이지 않으니 확인하는 것을 잊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오토는 라켈의 이름과 흡혈귀라는 정보 이외엔 그녀의 프로필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뱀파이어라고 하면 2백 살이라던가 하는 어이없는 나이이려나. 그런 생각을 한 나오토의 예상은 정반대로 먹혀들었다.
“『나』라는 자아가 발생한 건 2년 전, 관에서 나온 건 4일 전이야. 그러니까 인간 식으로 이야기하면 난 두 살 하고 4일이려나.”
“두… 두 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짧다. 라기 보다는 흡혈귀는 2년 만에 고등학생 정도로 성장하는 거였나.
몇 발 앞에서 걸음을 멈춘 라켈이 빨리 오라고 시선으로 재촉한다. 그 눈이 놀리듯이 웃었다.
“안심해. 그래도 지식만큼은 당신 몫의 5억 배는 있으니까.”
“5억 배는 또 뭐야….”
초등학생이냐. 속으로 틱틱대며 나오토는 다리를 내디뎌 다시금 라켈 옆까지 가서 섰다.
다시 번화가를 향해 언덕을 내려간다. 라켈은 그래도 스커트를 당기고 블라우스 가슴께를 신경 쓰며 다리를 움직였다. 나오토는 그것을 옆눈으로 바라보며 떫은 표정을 지었다.
라켈이 알몸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할 순 없지만, 그녀가 의복이라는 것에 익숙해질 때까지는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그런데 그 순간, 이번엔 라켈이 갑자기 멈춰 섰다.
“응? 왜 그…”
너무 갑작스러워서 몇 발짝 앞으로 나가 버린 나오토는 무슨 일이냐며 돌아본다. 곧바로 당황해서 달리며 양팔을 뻗는다.
들이마신 숨을 내뱉듯이 라켈이 예고도 없이 온몸에서 힘을 잃으며 쓰러진 것이다.
“야! 이번엔 뭐야, 왜 그래?!”
쓰러질 정도로 옷이 스트레스였냐, 하고 웃기는 소리가 목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바로 그것을 구겨 넣는다. 받아 멈춘 라켈의 몸이 이상하게 뜨겁다. 마치 감기로 체온이 오른 인간처럼, 만지는 것만으로 아는 명백한 이상사태였다.
“함부로 만지지 마, 하인 주제에….”
한 번 잃은 의식을 차리고 라켈은 가늘게 눈을 뜨고 나오토를 노려본다. 하지만 나오토를 밀어내려 한 손엔 전혀 힘이 들어가고 있지 않았다.
눈부신 듯이 반쯤 감긴 금색의 눈동자는 열을 띄고 열린 입술에서 거친 숨이 흐른다. 멍해진 눈빛은 몸에서 나는 열보다도 뜨겁게 나오토의 목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힘없이 고개를 젓고 아마 지금 낼 수 있는 혼신의 힘으로 꾸욱 하고 나오토를 밀어내고 자신을 일으킨다.
“만지지 마.”
“너 진짜, 지금 허세 부릴 때가 아니잖아.”
척 보기에도 몸 상태가 안 좋은 걸 견디고 있는 라켈에게 나오토는 짜증내듯이 말했다.
라켈은 붕 뜬 움직임으로 몸을 일으키고 한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조금만… 쉴게….”
말하다 말고 괴로운 듯이 눈을 감고 나오토 쪽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그 발이 나오토의 그림자 속으로 가라앉았다.
“어, 뭔, 엥?!”
나오토가 목을 쭉 빼고 흠칫흠칫 발밑을 바라본다. 환각인가 했다. 하지만 틀림없다. 라켈의 다리가 진짜로 나오토의 그림자 속으로, 마치 물이나 늪에라도 들어가는 듯 가라앉고 있었다.
한 발, 또 한 발 걸어갈 때마다 라켈의 몸은 계단이라도 내려가는 듯 나오토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몇 초 후에는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다.
“라… 라켈, 양?”
이런 감각은 어제부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나오토는 눈에 들어온 것이 믿겨지지 않아 잡아먹을 듯이 자신의 그림자를 노려봤다.
시험 삼아 자신도 자신의 그림자를 밟아 본다. 발이 가라앉는 일은 없었고, 당연하단 듯이 땅바닥의 딱딱한 감촉이 돌아온다. 하지만….
“뭐야.”
그림자에서 기어 올라오는 듯한 감각과 함께 라켈의 목소리가 머리 안에서 울렸다.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지만 이 당당한 말투와 목소리는 틀림없다.
“아니, 그치만, 그림자에.”
“조금 햇빛을 너무 받은 것 같으니까, 쉴 장소를 빌렸을 뿐이야. 당신 몸이 어찌 되는 것도 아니니까 꼴사납게 징징대지 마.”
약해져 있어도 이 위엄찬 태도는 그대로였다. 그 사실에 약간 안심하면서도 다른 것이 마음에 걸렸다.
“햇빛이라니… 아, 흡혈귀라서?”
흡혈귀는 햇빛을 쬐면 재가 되어 버린다,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오토가 말하자 그림자 안에서 울컥 하고 기분 상한 듯한 기척이 전해져 왔다.
“다른 저급한 흡혈귀들과 한데 묶지 말아 줬으면 하는데. 나 정도로 고위의 존재라면 햇빛이던 성수던 별 문제 없어.”
“근데 방금 쓰러졌잖아.”
“그건 아까 큰 마법을 사용해서 지쳐서 그런 거야. 다소 영향은 받아도 햇빛 같은 건 아무렇지도 않아.”
햇빛 같은 거라. 나오토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떤 말로 포장해도 결국 그녀가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곧바로 재가 되어 흩어지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버티려고 하다니 참 굳센 아가씨다.
“뭐 됐지. 그래서, 어쩔 거야?”
어깨를 으쓱이고 나오토는 발밑의 그림자에게 물었다.
묘한 기분이다. 길바닥에 펼쳐진 옅은 검은색의 그림자에 말을 거는 꼴이라니, 아무한테도 들키고 싶지 않다.
그림자 안에서 깊게 한숨을 쉬며 라켈의 목소리가 돌아왔다.
“어쨌든 마을 중심으로 향해 줘.”
“네네, 알겠습니다.”
약해져 있을 때 정돈 하인으로서 충실히 따라줘도 괜찮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오토는 그림자를 이끌고 혼자가 된 길을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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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켈! 두 사리에여!!
범죄의 냄새가 나네요.
드디어 뭔가 진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본편과의 연관점도 이리저리 던지네요.
먼저 라켈의 마안 말인데... 진홍의 마안(真紅の魔眼)이라 쓰고 슬레이브 레드라고 읽죠.
본편의 레이첼이 사용(했다가 아마네의 무지개반사에 튕겨나갔죠)한 마안은 심홍의 마안(深紅の魔眼)이라 씁니다. 물론 발음은 같음.
나오토가 보는 숫자들의 문자체계가 고대 마법문자랑 비슷하단 떡밥도 어디로 이어지려나요.
그리고 이샤나와 스피너란 마도사 얘기가 나왔죠.
스피너가 너무 대단해서 마도의 중심 주제에 한 수 접어준다네요. 근데 나중 내용이나 다른 스핀오프 정황증거 보면 그냥 이샤나가 막장 찌랭이집단인 걸지도 모름.
특히 그나마 10성에 해당하는 애들 아니면 전투력 묘사가 한심하기 그지없으니... 술식이란 것도 범용성 딸리고 재능빨 타는 마법 대신 쓰려고 만들어진 거고.
또 스피너가 본편 캐릭터 누구랑 연관이 있을 지 눈치 빠르신 분들은 이 단계에서 아실지도요. 사실 벌써 제가 스포했지만.
아오, 벌레.
근데 라켈 너무하네요. 당신 죽었으니 나가 싸우다 더 죽어도 상관 없잖아 운운이라니. 머리가 나쁜 건지 뭔지...
했는데 얘도 하권까지 다 보고 나니 머리가 나쁜 게 맞는 듯. 나오토만 고생하죠 뭐.
일본 웹을 돌아다니면서 이 소설 관련 내용을 보다 보면 참 아리송함.
제일 큰 떡밥이 '나오토는 라그나의 전인가, 후인가?' 인데요. 이게 진짜로 막장이에요.
애초에 루프물에서 이런 거 따지면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싸움이지만.
이제 개강시즌이니 본격적으로 느려지기 시작할 것 같습니다. 버녀억...
가끔 보이면 재미있게 보시고 댓글이나 달아 주셨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모리P, 좀 참신한 스토리를 추가하던가 플레이어블 캐릭터를 추가하던가 하길 바랍니다.
어째 과거이야기만 줄줄이 추가되는 CPEX를 보고있으면 짜증남. 그래서 우리 라그나쨩은 어떻게 된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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