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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기묘한 2인조 사내들이 사라지자 주변의 긴장이 금세 풀렸다.
꾸욱 눌리듯이 몸이 무거워져서 나오토는 등 뒤의 콘크리트 벽에 온 몸의 무게를 실어 기댔다. 바로 무릎에서 힘이 빠져 그대로 질질 끌리듯 주저앉았다.
주변은 부서진 콘크리트 조각들이 산재해 있어 앉을 장소로서는 최악이다. 그래도 일어서서 위치를 바꾸자는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여러 감정과 함께 나오토의 몸을 짓누르는 피로 때문이었다.
“하…하하… 죽는 줄 알았네….”
유쾌한 기분 같은 건 티끌만큼도 없는데도 메마른 웃음이 흐른다.
죽는 줄 알았고, 죽었다 싶었다. 그것보다 엄청나게 아팠고, 무서웠다. 그런 짓을 당한 게 마음 깊은 곳에서 아니꼽게 느껴져 참을 수가 없다.
분노인지 공포인지 알 수 없는 감정에 이제 와서 농락당하는 기분이 된 나오토 앞에 라켈이 다가와 멈춘다.
나오토가 고개를 드니 커다란 금색 눈동자가 지긋이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못 봐주겠네. 걸레짝이라는 게 바로 이런 걸까.”
“시끄러─. 아니, 뭔데 저놈들은… 아는 놈들이지?”
냉정한 목소리에 반감을 담은 시선을 돌려주고 나오토는 입을 불만스레 비틀었다. 좀 걱정하는 기색이라도 보여주려나, 했지만 이미 걱정할만한 상처 따윈 하나도 없다.
라켈은 고개를 들고 2인조가 사라진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제법 엄한 어조로 말한다.
“처음 당신을 공격한 남자는 발켄하인 헬싱. 망토를 두른 건 레리우스 클로버. 대 불사자 전용 청부업자 『불사자 사냥꾼(이모탈 브레이커)』야.”
불사자 사냥꾼. 나오토는 라켈의 옆얼굴을 올려다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이 무슨 흉흉한 표현인가. 그 불사자인 흡혈귀 소녀와 이렇게 가까이 있는 입장이 되니 흉흉함에 더해 참 불온하게도 들린다.
어디선가 당황한 듯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온다. 가까워지고 있다.
‘누가 신고라도 했나… 뭐, 그야 그러겠지. 나라도 한다.’
일단 휴일 대낮이다. 아무리 사람이 적게 다니는 곳이라도 무인단지랑은 사정이 다르다. 바로 요 앞에 있는 오락실도 낡은 건물이긴 하지만 버젓이 영업 중이다.
남고생 하나를 떡대 하나가 자판기라던가 벽이라던가에 펴바르는 사건 같은 게 신고 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아…, 이젠 다 싫다…. 내 평온한 일상을 돌려줘….’
나오토는 무심코 양손으로 머리를 싸맸다. 그대로 라켈을 지친 눈으로 올려본다.
“야, 근데.”
아오의 잔재를 계속 찾을 거면 빨리 여기서 튀는 게 좋을걸. 그리 말하려고 나오토는 생각했다.
돌아서서 이쪽을 내려다보는 라켈의 안색이 나쁘다. 아까 그림자에서 쉰다고 했을 때보다 더 나빠진 것 같다. 거기다 머리 위의 숫자가… 내려가 있다. 10이나 20이 아니다. 오늘 아침에 본 수치를 정확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지금 수치는 『86501107』.
아마 마지막으로 본 숫자에서 몇 천 정도는 줄어 있다. 인간은 자칫하면 죽을 정도의 감소다.
‘이 녀석… 언제부터 이렇게 낮았지?’
그림자 안에서 쉬고 있었을 텐데 이렇게까지 낮다니, 그만큼이나 체력을 격하게 쓴 것일까. 아니면 아까 본 남자 둘에게 원인이 있는 걸까.
어쨌든 이 이상 대낮에 라켈을 걷게 해도 좋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라켈. 오늘은 일단 집에 가자.”
나오토는 라켈에게 진지한 얼굴을 향하고 권유라기엔 좀 강하게 말했다.
“나도 너도 만전이 아냐. 이런 상황에 추적해서 스피너를 찾아 봤자 아무것도 못하고 일방적으로 밀릴 뿐이야.”
나오토는 스피너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못해도 나오토가 가진 상식의 범위 바깥쪽에 사는 마술사다. 지나가는 불량배에게 싸움을 거는 것과는 얘기가 다르다.
“…하지만 앞으로 10시간 정도 있으면 아오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져버려. 그렇게 되면 흔적을 쫓는 것도 불가능해.”
라켈이 망설이며 주변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이 근처에서 아오의 잔재가 느껴지는 거겠지.
하지만 나오토는 고개를 저었다.
“저쪽도 널 찾고 있다며. 그렇다면 곧 뭔 짓을 해올 거고 기회라면 얼마든지 있어. 허를 찔려서 당해 버리거나 하면 아무 의미 없고. 말로 해서 해결되는 상대도 아니잖아?”
아까 레리우스가 말했다. 불사자, 예를 들어 뱀파이어라도 죽이는 건 가능하다고. 나오토는 그 말을 전면적으로 긍정한다. 라켈에게도 생명력을 나타내는 수치가 있는 것이다. 그걸 전부 깎아 버리면 그녀도 죽는다.
“어쨌든 이 몰골로 돌아다니면 너무 눈에 띄잖아. 경찰한테 붙잡히거나 하면 귀찮으니 갈아입으러라도 돌아가야 돼.”
자신의 상태를 보여주듯이 양팔을 넓히고 나오토는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상처는 전부 사라졌어도 티셔츠와 청바지에 남은 피해는 그대로다. 여기저기 찢어지고 너덜너덜한데다가 옷깃 부분은 크게 찢어져 있다. 가슴팍에는 떨어진 피가 달라붙어 제법 참담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라켈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도 나름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고는 있는 거겠지. 잠시 뒤 한숨을 내쉬며 끄덕였다.
“당신 의견에 따르는 건 맘에 안 들지만, 집에 돌아가기로 할께. 하지만… 잠시 기다려.”
말하고는, 라켈은 나오토에게서 조금 떨어진 벽 앞에 섰다. 발켄하인에 의해 벽에 간 금이 피해간 위치다.
잿빛의 벽면에 손가락을 대고 미끄러뜨린다.
무인단지에서도 본 그 붉은 문자다. 하지만 이번엔 마법진 같은 원형이 아니라 뭔가 메모하는 듯한 옆으로 이어지는 문자열이었다.
“다 됐어, 가자.”
빙글 하고 발꿈치를 돌려 벽에 등을 향한다.
리본 같이 흔들리는 긴 머리카락을 쫓듯이 나오토도 일어섰다.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진다. 서두르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며 돌아서는 나오토는 벽에 쓰인 붉은 문자가 잿빛의 벽 속으로 녹아드는 듯이 사라지는 모습을 언뜻 보았다.
일부러 무인단지 앞을 지나 그 다음에도 되도록 사람의 눈을 피해, 때때로 여기저기 숨어 지나가는 사람을 넘겨 가며 나오토는 어떻게든 티셔츠에 묻은 핏자국이 발견되는 일 없이 집인 맨션 방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
주변을 똑바로 확인하면서 그림자 안에 있는 라켈에게 말을 건다. 그러자 라켈도 충분히 주위를 신경 쓰며 신중하게 나오토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왔다.
미리 만약 하루카에게 어떤 일인지 캐물어지면 상황에 따라 울려버릴 지도 모른다고 법석을 떨며 겁을 준 게 꽤 먹힌 모양이다.
지금은 아직 하루카의 눈이 없다. 그걸 확인하고 나오토와 라켈은 나란히 가슴을 쓸어 내렸다.
“그럼… 문제는 여기부터다.”
주머니에서 집 열쇠를 꺼내며 나오토는 목소리를 낮췄다. 아직 방심할 수 없다.
하루카가 방 안에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오히려 그녀의 성격으로 볼 때 그 가능성 쪽이 높을 정도다. 점심 식사를 만들고 나오토와 하루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런 참에 피투성이 티셔츠 같은 것을 입고 기어 들어가면 하루카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적어도 크게 다친 것으로 착각해서 엄청나게 걱정할 건 뻔하다.
“알겠지, 라켈? 확인 한 번 하자. 우선 네가 먼저 들어가서 하루카의 주의를 끈다. 그 틈에 내가 방에 들어가서 갈아입은 뒤에 합류하는 거야.”
“…몇 번이나 말하는 거지만, 동성은 거북해.”
라켈은 찡그린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내켜하지 않는다는 건 귀갓길에 작전회의를 할 때부터 명백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참는 수밖에 없다.
“부탁이야. 이런 꼬라지 들켰다간 그 녀석 패닉이라도 일으킬지 모른다고.”
“알고 있어. …알고 있어.”
나오토의 간청에 약간 짜증내고 시드는 듯이 기력을 잃어가면서 라켈은 현관문에 마주 섰다.
바로 나오토가 자물쇠를 열었다. 빨리, 하고 재촉하니 라켈은 속 좁아 보이는 얼굴로 흘끗 나오토를 보고 어색하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싫냐.’
문 뒤에 숨어 라켈이 들어가던 말던 닫으면서 나오토는 내심 질려버렸다.
위대하고 당당하게 개인 얼굴만 보여주던 라켈이 그저 하루카와 아주 잠깐 둘이서 이야기라도 하라는 것만으로 저렇게 연약한 얼굴을 하다니.
‘괜찮으…려나.’
반강제로 먼저 보낸 것뿐인데 좀 걱정되기 시작했다.
똑바로 하고 있으려나, 하고 나오토는 문에 찰싹 붙어 안쪽에서 나는 소리를 찾았다.
잘 안 들린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하루카가 라켈이 들어오는 걸 눈치 채고 「어서와」하고 반기고는 나오토가 없는 걸 의문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걸 라켈이 어떻게든 얼버무리고 있는 동안에 작전을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하루카의 「어서와」가 들리지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아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무리 제법 좋은 맨션이라도 이렇게 문에 직접 귀를 대고 있으면 희미하게라도 안쪽에서 나는 소리가 들릴 터이다.
이상하게 생각해 나오토는 문과 벽 틈으로 이동해 귀를 기울였다. 그래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라켈이 입을 다물어 버린 거라면 또 모른다. 하지만 그 하루카가 라켈이 돌아왔는데도 아무 말도 안 하는 건 이상하다. 하루카가 없는 거라면 당연히 라켈이 돌아와 문을 열려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이건 너무, 이상하게 조용하다.
“라켈! 하루카?!”
무슨 일이 있는 것이다. 직감적으로 그리 느낀 나오토는 바로 문을 열고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신발을 벗어 던지고 복도로 올라간다. 그 순간에는 직선 구조의 복도 저쪽 끝에 망연히 선 라켈의 모습이 보이고 있었다.
다행이다, 라켈은 무사하다. 하지만 상태가 이상하다. 마치 굳어 버린 것 같이 미동도 하지 않는다.
“야 라켈, 무슨 일이야?!”
어쩐지 집 안이 평소와 분위기가 다른 듯 해 불안하다. 서둘러 발소리를 울리며 나오토는 거실로 달려가 입구에 멍하니 서 있는 라켈의 어깨를 강하게 당겼다.
당기려고 했다. 하지만 그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마치 꿰매 박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나오토가 살고 있는 맨션의 한 방. 그 거실 소파 위에 모르는 인물이 앉아 있었다.
나오토의 발소리를 듣고, 방문자는 몸을 비틀 듯이 천천히 돌아본다.
“아… 좀 실례하고 있어.”
오싹할 정도로 달콤한, 귓구멍을 녹이는 듯한 목소리.
말도 안 되게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른 남자였다. 돌아본 얼굴은 핏기가 멀고 무서울 정도로 하얀 피부다. 그 중심에서 빛나는 눈동자는 선혈의 색. 용모는 이 세계의 것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넘치고 있었다.
“네가 『쿠로가네 나오토』인가.”
이름을 불려, 나오토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뱉은 한 마디는 예리한 실처럼 착각 속에서 나오토를 죄어 죽인다.
작은 움직임이, 희미한 날숨이, 종이보다도 얇은 칼날이 되어 나오토의 사지를 베어낸다. 그런 망상에 감각이 침범당한다.
움직이면 죽는다. 근거도 없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나오토의 바로 옆에서 공기가 떨린다. 라켈의 목소리가 들렸다. 짜내는 듯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아…, 아버님….”
들린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3초. 그게 눈앞에 있는 검은머리 남성을 말하는 거라고 이해하는 데에 5초가 더 걸렸다.
‘아버님…?!’
의문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 채 나오토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걸 눈에 담기라도 한 듯한 표정으로 소파 위의 남성을 본다.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건지 모르겠다. 숨을 삼킬 정도로 미남이지만 억셈이나 강인함과는 멀다.
하지만 본능의 근원을 떨리게 하는 듯한 차가움과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마성을 가득 머금고.
“만나서 반갑다. 딸이 신세를 지고 있는 모양이구나. 나는… 클라비스 알카드라고 하지.”
그는 진홍의 눈동자를 좁히며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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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님 떴다 \(ㅇAㅇ;)/
뜬금없이 등장하셨습니다. 등장하셨는데... 이상하네요. 왜 이렇게 젊죠?
다른 정황증거로 이 소설이 본편의 150년 전 시간대라고 때려맞추고 있었는데, 이 아저씨가 50년만에 산송장 수준으로 늙는 거라고 생각하면 앞뒤가 안 맞습니다.
근데 발켄하인이 50년 후 어떤 모습인지 생각하면 이건 또 맞고...
무슨 일이 생기는 건지, 아님 혼자 루프하는 시간들까지 전부 겪어서 폭삭 늙으시는 건진 모르겠네요.
그리고 또 하나 떡밥이 나왔네요. 이모탈 브레이커.
번역은 불사자 사냥꾼이라고 했습니다만, 이건 그냥 자연스러움을 추구한 거고 원문은 후시샤고로시(不死者殺し), 직역하면 불사자살 내지는 불사자 죽이기, 풀어쓰면 불사자를 죽이는 자, 정도입니다.
어... 이자요이님? 어디서 뭐 하시길래 별명을 다 뺏기고 계시죠?
그리고 어떻게든 라이프만 죄다 까면 불사자도 죽는다니, 이자요이의 히든카드스러움도 약간 줄었네요. 한방에 없애버릴 수 있다는 건 확실히 가치가 있긴 하지만...
나중에 정리 한 번 하고 넘어가겠지만,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본편 라그나의 약골 이미지 쇄신에 신경쓰는 듯한 구석이 있습니다.
CT~CS때까진 분명 능력은 있다만 어딘가 애매한 깡패가 아오의 마도서 템빨만 믿고 날뛰며 한계에 부딪히는 느낌이었죠.
아오의 마도서 덕분에 몸도 튼튼해, 재생까지 시켜주고, 술식도 아오의 마도서 덕분이야, 드라이브도 아오의 마도서의 힘이야, 각성도 아오의 마도서로 하는 거고, 본인 멘탈면에선 성질 급하고 앞뒤 안 가리고...
그런에 이 소설에서 나오는 몇몇 설정(아마 새로 생긴 거라고 생각합니다)에 따르면 저 내용 태반이 '헉 우리 라그나가 그랬다니;;' 하는 내용으로 고쳐집니다.
딱 이제까지 밝혀진 것만 봐도 몸이 기본적으로 튼튼한 건 레리우스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고, 재생능력도 아오의 마도서를 떠나 리제너레이션이라는 특수능력으로 언급됐죠.
그 리제너레이션도 이 소설을 통해 보면 아오의 마도서가 아니라 라켈(레이첼)과의 링크에 따른 것에, 나중에 나오겠지만 반 흡혈귀화로 신체능력도 강화된 상탭니다.
라그나가 꼭 이 상황에 들어맞는 거라 그렇다곤 할 수 없지만, 만약 그렇다면 몸싸움 자체는 아오의 마도서의 힘과 관계없이 하고 있다는 게 되겠네요.
상권 후반과 하권 초반에 중요한 내용이 마구 나옵니다. 하권 후반까지 따지면 어찌어찌 출생의 비밀까지 멋대로 추리해볼 수 있을 수준이고요.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하권까지 다 번역하고 다시 이야기해보고 싶네요.
이번엔 짧은 부분인 김에 잡설을 좀 길게 써봤습니다.
재밌게 보시고 댓글 많이 달아주세요. 하나씩 말고 두개씩. 안 다실 분들은 하나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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