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양
봄꽃이라 물을 많이 먹어요
형, 이곳은 봄기운이 완연합니다
사람이 하나둘 죽어나가고
꽃이 천지사방으로 번져나가고
그곳도 그런가요
그곳은 죽음뿐이겠죠
멋져라!
형이 이승 떠나
저승 사람 된 지
일 년이 다 되어갑니다
공무원 시험 합격은 에듀윌
형이 동주민센터에서 일하다 갈 줄 몰랐다는 사실이
사실
인생의 수수께끼
대추리에서 만났던 형이
미군기지 이제는 평택 시대
미군무원 렌탈하우스 분양 소식을 알려왔다는 점은 말해
주지요
꿘충의 미래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쁨보다 슬픔의 발색이 선명해지는 계절을 건너가지요
이 년마다 한 번씩 이삿짐을 싸고
무릎 꿇고
눈물, 네 속셈 모르지 않아
서울에 이렇게 집이 많은데 나 살 집 하나 없네
개 짖는 소리
개의 개 같은 삶과
절이나 가서 우두커니
반가사유상의 반가사융상 같은 삶
자식밖에 모르는 부부의 따스함과
그 자식이 저지르는 과오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오리주물럭을 머고
개와 산책하고
흙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삶
현아, 인생이 만만하지
새벽에 협박당하는 삶
아침에 기겁하는 삶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삶
형이 꿈꾸던 형 같은 삶
가사와 육아는 나 몰라라 하는 새끼가
계급이니 노동이니 투쟁이니
시 쓴답시고
형수와 술잔을 기울이던
봄 햇살 꽃 나무
피 땀 눈물
방탄보다 소찬휘에게 정이 가는 건
눈 깜짝하면 저승 땅을 밟는다는 생각은
나이 탓일까요
살아생전
죽지 못해 살고 있느냐고
형에겐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민중을 노래하더니
형은 한 줌 재 되고
재 되기 전에 중년 남성 되어
노래방 끝 곡은 꼭 말 달리자
월요일엔 원래 한잔, 화요일엔 화끈해서 한잔, 수요일엔
수시로 한잔, 목요일엔 목에 찰 때까지 한잔, 금요일엔 금
방 마시고 또 한잔, 토요일엔 토할 때까지, 일요일엔 일찍
부터 한잔
공무원 철밥통이 간경화가 웬 말이냐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형
저는 이제 남자와 같이 살지 않고
개 한 마리에 의지합니다
그 생물 앞에서 가끔
참을 수 없어
뚫리고 싶어
애널 자위를 하는데
그럴 때마다
허공을 향해 짖어대곤 합니다
하루종일 그대 생각뿐입니다
이소라가 부른
봄
개의 맑은 눈동자를 보면
침을 뱉고 싶습니다
형들에게
좋니?
코로나19 때문에
한 시간 늦게 출근하며
아파트 화단에 떨어진
꽃잎들 주워 가슴에 확
뿌렸습니다
야생이 주는 위로라는 것도 있지요
요즘엔 밤낮으로
먼 산 먼 바다 먼 사람을 자주 생각합니다
활활 타오르는
멀리 있는 시를 원해서
우주적 상상력이라 하는 말에 고갤 끄덕인 적도 있었습
니다
옥수수의 기원은 그런 시였죠
형이 좋아했던 시
태총 만물과 문명과 상생과 생명이 하나로
어우러져 어허둥둥 춤추는 시
스무 살엔 그런 시를
거짓부렁을 쓰지요
형은 똥을 싸고 얼굴을 붉히고 의정부북부역 광장과 주한
미군과 아,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관해 썼어요 형
에겐 그것이
진실한 것이었나요
그때 우리
진정성 타령 좀 했는데
인문관 잔디밭에 신입생들을 앉혀놓고
조껍데기 막걸리 좀 마셨는데
사발을 돌리면서
시란 말이야
끝나나 싶으면 끝나지 않고
계속하려나 싶으면 끝나는
껍데기를 보면
형은 꼭 한마디 하셨어요
현아, 그렇게는 살지 마라
끝을 사선으로 잘라서 꽃병에 꽂아주세요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김현, 문학동네시인선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