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훈
대학 가서 연애하자
눈이 온다
집으로 가도 집에서 나와도
쌤
첫사랑 얘기 들려주세요
대학 가면 연애할 줄 알았지
한번은
전주에 갔지
연꽃이 가득하다는 호수에 갔지
그렇게 긴 다리는 또 처음 봐 꽃은 다 말라죽고
연잎만 우글우글 둥둥
헤어졌지
끝
헐
하나마나
아네모네
눈이 온다
집으로 가도 집에서 나와도
희야 영아
선생님이 미안해
선생님은 아름답지 못하고
너희는 아름다울 차례인데
창가에 놓아둔 화분에 이름을 붙이고
아침마다 물을 주고
식물을 썩혀 죽이고도 웃던 너희야말로
실수투성이 천사들을 곁에 두었는데
사실대로 말해줄걸
대학에 가지 않아도 연애할 수 있다
둘이 손잡아도 돼
둘이 뛰어가렴
두 손을 번쩍 들고 맞서렴
그 검고 무성한 것으로
대재앙은 늘 눈앞에 있단다
쌤
인생이 재밌어요
대학 가면 인생이 재밋다
끝
헐
하나마나
아네모네
눈이 온다
집으로 가도 집에서 나와도
선생님이니까
다 거짓말이다
인생은 삼각김밥만하고 딱 그 맛이다
살다보면 산다…… 미안해
이런 죽은 말을 어디서 배웠을까
선생님은
쌤
진도 그만 나가요
너희는
빛 속의 무지렁이들 같고
두부를 으깨먹는 죄 없는 죄인들 같고
생각의 이쪽저쪽을 오가는 철새들 같고
희야 영아
먹고 싶을 때 다 먹고 자고 싶을 때 다 자면 대학 간다
헐
하나마나
아네모네
왜 자꾸 떠오르는 걸까
너희 기쁜 목소리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김현, 문학동네시인선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