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용丘庸 선생
인사동이나 그 어디에서 만나 인사드리면 나보다 더
허리를 굽히셨다. “아이구, 평안하신지요?” “아, 선생님
저 제자입니다. 말씀 낮추세요” 해도 소용없었다.
수업 시간이면 그 마른 몸매에 ‘청자’ 하나 가치를 맛있
게 태우며 말씀하셨지. “님이여, 들으시나요, 내가 다시 눈 뜨
는 소리를……”* 릴케의『형상시집』속의 한 구절을 외며
“바로 이 눈 감는 소리를 듣는 것이 시”라고. 그리하여 나
는 구용 선생 하면 그의 대표작인「삼곡三曲」보다 릴케가
먼저 떠오른다. 제자를 향해 허리 굽히시던, 그 만상에 대
한 경배와 함께.
* 릴케의「정적」부분(『20세기시집』, 구기성 옮김, 동아출판사, 1958).
나비가 돌아왔다
이시영, 문학과지성 시인선 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