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무엇보다
우리 삶이 늘 시적일 필요는 없다
책상에
볕이 들고 어둠이 스밀 때까지
두 사람이 궁리하는 것이
둥근 나무의 일몰이라면
긍지라는 건
경언아
송창식을 들으며
홀로 맹물에 밥을 말아먹고
눈물 앞에 허수아비처럼 서 있게 되더라도
이해하지 말자
둘이라는 건
상필아
출근 때문에
리버풀 경기를 포기하지 말고
꽃이 활짝 피면 꽃 사진을 찍는
아저씨가 될지언정
헤아리지 말자
기쁨이라는 건
빛을 수집하여
글자로 채울 수 없는 여백에 두고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을 때 집 생각이 간절해진다
완성이라는 건
빵 옆에서 세상 진지한
시인이랑 친구 먹으니 시집도 선물받는다 얏호 외치는
그해 여름 미소가 예쁜 갱
짝눈으로 세상의 평화를 기원하는 유뽕
사람이라는 건
졸릴 때 자고
배고플 때 먹고
일할 땐 일하고
놀 땐 놀게 하소서
아픔 없이 데려가소서
믿음이라는 건
의자에게 빚진 생각만큼 의자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오래 말하지 않아도 무섭지 않고
친구들과 작은 운동장에 모여 일광욕하고
어제오늘 부쩍 산다는 건 뭘까, 라는 생각이 든다
행복이라는 건
좋은 날끼는 천사와 함께 온다
꿈에서는
알아서 자라는 사랑을 꿈꾸고
잠들기 전까진 알 수 없는 사랑을 가꾸길
슬픔이라는 건
비록
집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여전히 암흑일지라도
걱정 말고
불을 밝히고 탁자 위에 놓아두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건
오늘의 집에
두 사람이 들고 온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들고 오지 않은 것
덕분에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다가간다
그것이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시다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김현, 문학동네시인선 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