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진짜 내가 어떤 존재였는지, 그리고 그 때의 내가 어떤 방법으로 존재를 바꿔 치는데 성공했는지,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녀석이 있다. 본명, 소유민. 영문도 모른 채 도플갱어로서 조용히 살려던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예전의 진짜 나'와 바꿔쳐버린 장본인이다. 나와 제법 복잡한 인연이 있는, 가짜를 찾아내서 진짜로 회귀하게 만드는 일을 지금은 장기휴가 중에 있는 녀석이다. '예전의 진짜 나'와 나를 바꿔쳐버린 죄책감으로 그만 둔 건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 정보가 없다.
수완 있어 보이는 또렷한 이목구비는 그녀의 똑똑한 머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짧은 한가인의 머리보다 두 배는 긴 머리길이는 여성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런 아가씨 같은 녀석이 어째서 내 주변을 감시하는지 몰라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우리 학교의 학생회장이란 점이다.
어제 일어났던 한가인의 자해소동을 비롯하여, 한가인이 동아리를 개설하려 시도했지만 역시나, 라고 해야할지 모를 당연한 기각. 새 학기가 한 달이 지난 지금 시점에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고 부원들을 모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테고, 억지 부리며 울고불고 난리 브루스를 쳐도 학교가 한가인에게만 특혜를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한 이유로,
한가인이 내 연줄을 이용하여 동아리를 새로 개설하려는 약은 꼼수를 부린다. 사정상 소유민의 신상은 비밀로 진행 됬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가인이 우리 학교의 학생회장과 만났다는 점이다.
이곳은 학생회실, 여자 둘, 남자 하나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 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동아리 신설에 대한 내 부탁을 순순히 받아준 소유민에게 적대감을 풀풀 풍겨대는 한가인을 진심으로 말리고 싶다. 진심으로, 녀석은 사람을 암울할 정도로 사귀지 못한다. 다행히도 넓은 마음씨를 가진 소유민이 야생 고양이에게 먼저 다가간다.
"동아리 이름은 뭐로 정할거니?"
소유민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한가인이 시선을 내게 고정시킨다. 들고 있는 프린트를 유심히 보는 척, 머리를 살짝 넘겨 정리한다.
"음. 도플갱부는 좀 그렇지?"
"많이 이상하네. 다른 게 어때. 아, 어차피 다른 걸로 할 거지?"
"이중자아, 자아 찾기, 또다른 나, 중2병, 등등 많이 생각은 해 봤지만 어감 상 좋지도 않을 뿐더러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잖아. 이런 이름으로 했다간 있던 존재감까지 다 사라질걸. 아무리 눈에 띄어도 이상한 여자가 되는 건 싫어."
"그래서 결론이 뭐야."
"저기...계속 날 무시하는데, 나는 뭐 시간이 넘쳐나는 줄 알아? 나름대로 학생회장이라고?"
지방방송은 가볍게 무시하고 검지를 세워 까딱까딱, 우리를 도발하는 제스쳐를 취하는 한가인.
"동방예의지국 부? 이건 너무 길어서 동방예의부로 하려 했거든?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자기 존재를 뚜렷하게 아는 사람들은 모두 예의가 바르니까. 근데 이건 너무 옛날 냄새가 진동해."
"그래서 뭐로 할 거냐고!"
"dead or alive- DOA는 너무 오타쿠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소유민과 내가 함께,
"그래서 뭐!!!" 남여의 혼성화음을 내질렀다. 악질적인 조합의 화음은 한가인의 귀 끝에도 닿지 않아 태연한 그녀의 태도를 볼 수 있다.
"도플러 효과에 대해 알아?"
"알게 뭐야."
"상대속도를 가진 관측자에게 파동의 주파수와 파원에서 나온 수치가 다르게 관측되는 현상인데, 파동을 일으키는 물체와 관측자가 가까워질수록 커지고 멀어질수록 작아지는 거야. "
똑똑한 한가인에게 꿇릴 것이 없는, 심히 아니꼬운 표정의 소유민이 '진부한 설명 하기는' 라는 식으로 중얼거린다.
"쉽게 말하면 가까운 사람끼리 말하면 잘 들리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들린다는 거지."
확실히 소유민이 말한 쪽이 나에겐 알아듣기 쉽지만, 중요한 맥락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다. 제발 본래 흐름을 타자고, 생각한 나지만 태클 본능이 버티질 못한다.
"굳이 너희 둘이 나를 위해 과학 수업을 열어줄 필요는 없어."
"네 성적이 암울할 정도로 빈약하니까 베푼 친절이야."
"결론이 뭐냐니까."
"동아리 이름은 도플러부로 정했어. 우리의 존재감도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커지고, 멀리 떨어진다면 없어진다는 뜻이야."
"그거 엄청 슬픈 얘기인데."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정말 슬픈 얘기를 한가인이 아무렇지도 하고 있다. 그녀가 종이에 펜 잉크를 물들이기 시작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라는 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야."
"하지만 가짜한테 당하지 않으려면 어느 상황에서나 널 필요로 하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그 정도의 우정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으음...그럴지도. 하여튼 도플러부야. 이거 외에는 떠오르지도 않고 어울리는 것도 없어."
쾅쾅! 소유민이 책상을 양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친다. 나와 한가인의 밑도 끝도 없는 담화를 듣는 것이 질린 것이 틀림없다. 한가인이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동아리 신설 용지에 써 넣었다. 약간 소심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아차."
한가인이 귀찮을 필요 없이 내 이름도 덤으로 껴 넣는다. 전혀 고맙지 않은 친절에 난 강하게 반발한다.
"잠깐만, 나는 왜 넣는데?"
"도와준다고 했잖아."
"도와준다고 확실히 말 한 적은 없어. 그냥 도플갱어 현상을 겪어본 선배로서 조금 원조를...윽."
고집불통으로만 보였던 매섭던 한가인의 눈매에 눈망울이 촉촉하게 맺혔다. 저 정도의 감정 변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니, 남자를 공략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건가!
아무리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지만 내가 한가인에게 끌려 다닐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 어디까지나 나는 내 존재감을 최대한 세상에 희석시키고 싶은 사람이다. 있는 둥, 없는 둥, 그냥 떠다니는 구름처럼. 때문에 나는 약간 심한 말을 해버린다.
"그,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너 솔직히 말해, 혼자서 할 자신이 없는 거지?"
"무무, 무슨 망언을! 네가 있는 편이 훨씬 수월하고, 신설된 동아리로서 연줄도 확보할 수 있잖아."
격한 반응과 그럴 듯한 변명을 들어놓지만 확실히 그녀에게 있어서 혼자 친분을 쌓아가는 것은 힘들지도 모른다. 애초에 동아리를 만든다 하더라도 부원이 한가인 하나뿐 이라면 금방 없어질 것이 뻔하다. 적어도, 같은 여자애끼리 밝은 얼굴로 학교에 드나들 수 있게 될 정도...까지만 도와줄까, 조금 마음이 흔들리는 나였다.
"그래, 그래. 이건 제출해줄게. 고문으로 원하는 선생님은 있어?"
애들을 다루는 데에 익숙한 듯이 소유민이 프린트를 집고 한가인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선다.
내 의견은 묵살된 건가.
이제 와서 딱히 상관은 없는 것 같지만...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되도록이면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해 줘."
"응? 왜? 새로 만든 부엔 가능하다면 영향력 있는 사람이 좋지 않아?"
"존재감이 센 사람이 부를 이끌면, 그 조직 안에 있는 내가 상대적으로 작아질 거 아냐."
"......"
"왜 그래?"
솔직히 말해서 할 말이 없다.
대체 어떤 학교생활을 살아 온 외길이기에 저런 사고가 가능한 것인지 심히 걱정된다. 아주 잠시 뿐이지만, 소유민과 나는 한가인을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시선이 집중되자 부끄러움을 타는 한가인.
"아, 아아, 아무튼 그런 거야. 여기 포스터."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전문가' 수준의 그림 실력과, '어린이' 수준의 문장 구성력이 결합되어 있는 동아리 홍보 포스터였다.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는 필력을 뻔뻔히 내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진짜 자신을 찾자' 같은 식의 문구라, 어디로 보나 도플갱어에 저항하기 위해 존재감을 찾으려는 목적이 보이지 않는 포스터다. 보통 '자아 찾기' 같은 명상부 비슷한 느낌으로 보지 않을까. 저런 실력으로 어떻게 성적이 좋을까 의심해보는 나와 소유민은 한숨을 내쉰다.
"...그것 참 거창한 이유구나. 알았어. 일단 이번 건은 학생회장의 이름을 걸고 책임질게."
당당히 핀 가슴에 주먹을 두 번 쳐낸 소유민, 그녀의 말은 의심할 시간도 아깝기 때문에 한가인의 목적은 무사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도 뭔가 아쉬운 것이 있는지 한가인이 소유민을 빤히 바라본다. 마치 처음 본 주인을 경계하는 새♡ 고양이 같은 모습이다.
"흐음."
"응? 또 무슨 일이야? 기분 나쁘게 그렇게 사람 쳐다보지 마."
말은 안 하겠지만 여자끼리 얼굴 붉히고 막 그러지 마라.
"그러는 너도 둘이서 날 기분 나쁘게 쳐다봤잖아."
"그거랑 이건 별개야."
"어째서 저 왕따랑 나를 도와주는 거야?"
"뭐랬냐, 이 학교 전따가." 즉각 반박한 나였다.
한가인의 질문에 순간 소유민의 숨이 멈췄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대상인 나조차도 모르는, 그녀 혼자만의 사연이 있는 모양이지만, 정작 나도 소유민에게 물어본 적 없는 질문이다. 설마 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을 아닐 테고. 도플갱어인 나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내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발언 카드를 꺼내들었다. 치마를 꼼지락거리는, 부끄러워하는 몸짓으로.
"부끄럽지만...내 모든 걸 내줘도 갚지 못할 신세를 져버렸거든."
"호오."
"몸도, 마음도, 전부 다."
"그래?"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로, 도플갱어를 싫어하고 막으려는 동아리 '도플러브' 아니... '도플러 띄어쓰고 부' 가 신설되는 역사적인 첫 걸음이 시작되었다. 학생회장인 소유민을 스카우트 하는 것은 불가능 할 테니, 폐부를 막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니자. 나는 화이팅을 외쳤지만
"뭐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영문도 모른 채 나는 한가인에게 매운 뺨 맛을 봤다.
짧고 강렬한 말에, 나는 학교에서 하루 종일 한가인의 취조질문에 시달려야만 했다.
정작 본인도 모르는 해괴망측한 말은 하지 말아다오. 그녀가 무슨 이유로 내 부탁에 호의적이며 심지어 내 학교에 자리 깔고 버티는지 몰라도, 가짜 한가인의 존재를 없애는데 이미 충분한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나를 막지 못해서 도플갱어들을 찾아내는 것을 그만 뒀기에, 만약 내가 '예전의 진짜 나'와 바꿔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한가인은 다른 여자애들처럼 한참 수다를 떨고 있지 않았을까, 한번쯤 나는 상상해본다.
정말 명랑하고 밝은, 평범한 여자애의 모습이 귀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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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사이 좋은 자매들이 살고았다. 신세희, 신지희 자매도 그런 사이좋은 '의자매' 로 분류할 수 있겠지. 의자매라고 하기엔 인체조직이나 DNA가 무서울 만큼 똑같아서, 생물학적으로 오류라고 볼 수도 있겟지만...
"언니~ 갑자기 왜 동아리를 바꾸자고 하는 거야?"
"응응, 네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흐음~ 그러지 말고 그냥 언니가 사라지라니까."
"자매라도 살인은 종종 일어난단다."
"...미안해."
자신의 도플갱어와 자매의 연을 맺은 자매가 도플러부에 쳐들어온다.
수완 있어 보이는 또렷한 이목구비는 그녀의 똑똑한 머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짧은 한가인의 머리보다 두 배는 긴 머리길이는 여성스러운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런 아가씨 같은 녀석이 어째서 내 주변을 감시하는지 몰라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우리 학교의 학생회장이란 점이다.
어제 일어났던 한가인의 자해소동을 비롯하여, 한가인이 동아리를 개설하려 시도했지만 역시나, 라고 해야할지 모를 당연한 기각. 새 학기가 한 달이 지난 지금 시점에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고 부원들을 모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을 테고, 억지 부리며 울고불고 난리 브루스를 쳐도 학교가 한가인에게만 특혜를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한 이유로,
한가인이 내 연줄을 이용하여 동아리를 새로 개설하려는 약은 꼼수를 부린다. 사정상 소유민의 신상은 비밀로 진행 됬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가인이 우리 학교의 학생회장과 만났다는 점이다.
이곳은 학생회실, 여자 둘, 남자 하나가 협상 테이블에 앉아 묘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동아리 신설에 대한 내 부탁을 순순히 받아준 소유민에게 적대감을 풀풀 풍겨대는 한가인을 진심으로 말리고 싶다. 진심으로, 녀석은 사람을 암울할 정도로 사귀지 못한다. 다행히도 넓은 마음씨를 가진 소유민이 야생 고양이에게 먼저 다가간다.
"동아리 이름은 뭐로 정할거니?"
소유민의 말은 가볍게 무시한 한가인이 시선을 내게 고정시킨다. 들고 있는 프린트를 유심히 보는 척, 머리를 살짝 넘겨 정리한다.
"음. 도플갱부는 좀 그렇지?"
"많이 이상하네. 다른 게 어때. 아, 어차피 다른 걸로 할 거지?"
"이중자아, 자아 찾기, 또다른 나, 중2병, 등등 많이 생각은 해 봤지만 어감 상 좋지도 않을 뿐더러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잖아. 이런 이름으로 했다간 있던 존재감까지 다 사라질걸. 아무리 눈에 띄어도 이상한 여자가 되는 건 싫어."
"그래서 결론이 뭐야."
"저기...계속 날 무시하는데, 나는 뭐 시간이 넘쳐나는 줄 알아? 나름대로 학생회장이라고?"
지방방송은 가볍게 무시하고 검지를 세워 까딱까딱, 우리를 도발하는 제스쳐를 취하는 한가인.
"동방예의지국 부? 이건 너무 길어서 동방예의부로 하려 했거든? 자신을 제대로 알고, 자기 존재를 뚜렷하게 아는 사람들은 모두 예의가 바르니까. 근데 이건 너무 옛날 냄새가 진동해."
"그래서 뭐로 할 거냐고!"
"dead or alive- DOA는 너무 오타쿠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소유민과 내가 함께,
"그래서 뭐!!!" 남여의 혼성화음을 내질렀다. 악질적인 조합의 화음은 한가인의 귀 끝에도 닿지 않아 태연한 그녀의 태도를 볼 수 있다.
"도플러 효과에 대해 알아?"
"알게 뭐야."
"상대속도를 가진 관측자에게 파동의 주파수와 파원에서 나온 수치가 다르게 관측되는 현상인데, 파동을 일으키는 물체와 관측자가 가까워질수록 커지고 멀어질수록 작아지는 거야. "
똑똑한 한가인에게 꿇릴 것이 없는, 심히 아니꼬운 표정의 소유민이 '진부한 설명 하기는' 라는 식으로 중얼거린다.
"쉽게 말하면 가까운 사람끼리 말하면 잘 들리고,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들린다는 거지."
확실히 소유민이 말한 쪽이 나에겐 알아듣기 쉽지만, 중요한 맥락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하다. 제발 본래 흐름을 타자고, 생각한 나지만 태클 본능이 버티질 못한다.
"굳이 너희 둘이 나를 위해 과학 수업을 열어줄 필요는 없어."
"네 성적이 암울할 정도로 빈약하니까 베푼 친절이야."
"결론이 뭐냐니까."
"동아리 이름은 도플러부로 정했어. 우리의 존재감도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커지고, 멀리 떨어진다면 없어진다는 뜻이야."
"그거 엄청 슬픈 얘기인데."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정말 슬픈 얘기를 한가인이 아무렇지도 하고 있다. 그녀가 종이에 펜 잉크를 물들이기 시작한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라는 말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야."
"하지만 가짜한테 당하지 않으려면 어느 상황에서나 널 필요로 하는 친구가 필요하다고. 그 정도의 우정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과연 효과가 있을까?"
"으음...그럴지도. 하여튼 도플러부야. 이거 외에는 떠오르지도 않고 어울리는 것도 없어."
쾅쾅! 소유민이 책상을 양 손바닥으로 강하게 내리친다. 나와 한가인의 밑도 끝도 없는 담화를 듣는 것이 질린 것이 틀림없다. 한가인이 눈치를 살피며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동아리 신설 용지에 써 넣었다. 약간 소심한 면이 없잖아 있었다.
"아차."
한가인이 귀찮을 필요 없이 내 이름도 덤으로 껴 넣는다. 전혀 고맙지 않은 친절에 난 강하게 반발한다.
"잠깐만, 나는 왜 넣는데?"
"도와준다고 했잖아."
"도와준다고 확실히 말 한 적은 없어. 그냥 도플갱어 현상을 겪어본 선배로서 조금 원조를...윽."
고집불통으로만 보였던 매섭던 한가인의 눈매에 눈망울이 촉촉하게 맺혔다. 저 정도의 감정 변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니, 남자를 공략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건가!
아무리 돕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지만 내가 한가인에게 끌려 다닐 이유는 없지 않을까 싶은데. 어디까지나 나는 내 존재감을 최대한 세상에 희석시키고 싶은 사람이다. 있는 둥, 없는 둥, 그냥 떠다니는 구름처럼. 때문에 나는 약간 심한 말을 해버린다.
"그,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너 솔직히 말해, 혼자서 할 자신이 없는 거지?"
"무무, 무슨 망언을! 네가 있는 편이 훨씬 수월하고, 신설된 동아리로서 연줄도 확보할 수 있잖아."
격한 반응과 그럴 듯한 변명을 들어놓지만 확실히 그녀에게 있어서 혼자 친분을 쌓아가는 것은 힘들지도 모른다. 애초에 동아리를 만든다 하더라도 부원이 한가인 하나뿐 이라면 금방 없어질 것이 뻔하다. 적어도, 같은 여자애끼리 밝은 얼굴로 학교에 드나들 수 있게 될 정도...까지만 도와줄까, 조금 마음이 흔들리는 나였다.
"그래, 그래. 이건 제출해줄게. 고문으로 원하는 선생님은 있어?"
애들을 다루는 데에 익숙한 듯이 소유민이 프린트를 집고 한가인을 진정시키기 위해 나선다.
내 의견은 묵살된 건가.
이제 와서 딱히 상관은 없는 것 같지만...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되도록이면 존재감 없는 사람으로 해 줘."
"응? 왜? 새로 만든 부엔 가능하다면 영향력 있는 사람이 좋지 않아?"
"존재감이 센 사람이 부를 이끌면, 그 조직 안에 있는 내가 상대적으로 작아질 거 아냐."
"......"
"왜 그래?"
솔직히 말해서 할 말이 없다.
대체 어떤 학교생활을 살아 온 외길이기에 저런 사고가 가능한 것인지 심히 걱정된다. 아주 잠시 뿐이지만, 소유민과 나는 한가인을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본다. 시선이 집중되자 부끄러움을 타는 한가인.
"아, 아아, 아무튼 그런 거야. 여기 포스터."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전문가' 수준의 그림 실력과, '어린이' 수준의 문장 구성력이 결합되어 있는 동아리 홍보 포스터였다.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는 필력을 뻔뻔히 내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진짜 자신을 찾자' 같은 식의 문구라, 어디로 보나 도플갱어에 저항하기 위해 존재감을 찾으려는 목적이 보이지 않는 포스터다. 보통 '자아 찾기' 같은 명상부 비슷한 느낌으로 보지 않을까. 저런 실력으로 어떻게 성적이 좋을까 의심해보는 나와 소유민은 한숨을 내쉰다.
"...그것 참 거창한 이유구나. 알았어. 일단 이번 건은 학생회장의 이름을 걸고 책임질게."
당당히 핀 가슴에 주먹을 두 번 쳐낸 소유민, 그녀의 말은 의심할 시간도 아깝기 때문에 한가인의 목적은 무사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래도 뭔가 아쉬운 것이 있는지 한가인이 소유민을 빤히 바라본다. 마치 처음 본 주인을 경계하는 새♡ 고양이 같은 모습이다.
"흐음."
"응? 또 무슨 일이야? 기분 나쁘게 그렇게 사람 쳐다보지 마."
말은 안 하겠지만 여자끼리 얼굴 붉히고 막 그러지 마라.
"그러는 너도 둘이서 날 기분 나쁘게 쳐다봤잖아."
"그거랑 이건 별개야."
"어째서 저 왕따랑 나를 도와주는 거야?"
"뭐랬냐, 이 학교 전따가." 즉각 반박한 나였다.
한가인의 질문에 순간 소유민의 숨이 멈췄다는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대상인 나조차도 모르는, 그녀 혼자만의 사연이 있는 모양이지만, 정작 나도 소유민에게 물어본 적 없는 질문이다. 설마 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을 아닐 테고. 도플갱어인 나를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내 주변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예상하지 못한 발언 카드를 꺼내들었다. 치마를 꼼지락거리는, 부끄러워하는 몸짓으로.
"부끄럽지만...내 모든 걸 내줘도 갚지 못할 신세를 져버렸거든."
"호오."
"몸도, 마음도, 전부 다."
"그래?"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로, 도플갱어를 싫어하고 막으려는 동아리 '도플러브' 아니... '도플러 띄어쓰고 부' 가 신설되는 역사적인 첫 걸음이 시작되었다. 학생회장인 소유민을 스카우트 하는 것은 불가능 할 테니, 폐부를 막기 위해서 열심히 뛰어다니자. 나는 화이팅을 외쳤지만
"뭐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영문도 모른 채 나는 한가인에게 매운 뺨 맛을 봤다.
짧고 강렬한 말에, 나는 학교에서 하루 종일 한가인의 취조질문에 시달려야만 했다.
정작 본인도 모르는 해괴망측한 말은 하지 말아다오. 그녀가 무슨 이유로 내 부탁에 호의적이며 심지어 내 학교에 자리 깔고 버티는지 몰라도, 가짜 한가인의 존재를 없애는데 이미 충분한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나를 막지 못해서 도플갱어들을 찾아내는 것을 그만 뒀기에, 만약 내가 '예전의 진짜 나'와 바꿔치지 않았다면 지금의 한가인은 다른 여자애들처럼 한참 수다를 떨고 있지 않았을까, 한번쯤 나는 상상해본다.
정말 명랑하고 밝은, 평범한 여자애의 모습이 귀엽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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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사이 좋은 자매들이 살고았다. 신세희, 신지희 자매도 그런 사이좋은 '의자매' 로 분류할 수 있겠지. 의자매라고 하기엔 인체조직이나 DNA가 무서울 만큼 똑같아서, 생물학적으로 오류라고 볼 수도 있겟지만...
"언니~ 갑자기 왜 동아리를 바꾸자고 하는 거야?"
"응응, 네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흐음~ 그러지 말고 그냥 언니가 사라지라니까."
"자매라도 살인은 종종 일어난단다."
"...미안해."
자신의 도플갱어와 자매의 연을 맺은 자매가 도플러부에 쳐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