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인을 돌려 보내고 소유민과 나는 전혀 비밀스럽지 않은 담화를 나눈다.
"학생회장으로 몸 담고 있는 입장이라...인적으로 너희를 도울 방법은 없는 거, 알고 있지?"
"이미 이런 억지를 받아준 것 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만약 소유민이 없었다면 한가인이 도플갱어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나의 막대한 도움 없이는 불가능 할 것이다. 동아리로 친구를 만든다- 라는 방법이 현 시점에선 가장 효율적으로 보이니까.
"하지만 한번 책임진 일은 더 밀어줘야 내 직성이 풀려. 좀 특이한 애들이나, '도플갱어' 현상에 관련된 애들이 발견되면 슬쩍 추천해 주도록 할게."
"진심으로 필요없어."
더이상 기의한 현상을 겪고있는 놈들은 내 수용범위를 한참 넘어선다. 몸을 배배 꼬며, 부끄러운 얼굴로 내게 다가오는 소유민에게 나는 뒷걸음질친다.
"우리사이에 뭘 그래~?"
뻔한 장난질에도 숫기없는 나는 저항력이 모자른다.
"저, 저리 가! 언젠 날 죽이려 들었으면서!"
"그땐 그때고. 이젠 진짜 민정현이잖아."
"...그렇긴 하지."
거듭 말하는데, 소유민은 예전에 도플갱어들을 빨치산 때려잡듯이 휘젓고 다닌 양아치다.내 경우는 막지 못해서 장기 휴가- 사실 은퇴에 가까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녀.
정작 본인이 '가짜 소유민' 이였으면서.
도플갱어들끼리는 서로 경계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그녀이지만 둔감한 나로선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해 무척 다행스럽다. 자신의 존재를 확고히 형성하고 싶은 본능에 같은 목적을 가진 도플갱어들끼리 모이면 그 본능이 위협을 느낀다는 어쩌고, 등의 어려운 이야기는 소유민같은 녀석들이나 아는 것이지, 나는 별로 관여치 않고 싶었다.
알 필요도 없고.
#
처음엔 바짝 긴장한 채로, 누가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몸 밖으로 빤히 보이는 한가인이였다. 도플러부 초대 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에 성실한 자세로 기다렸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국엔 학교 시간표를 벗어난 때가 되었음에도 아무도 오질 않는다.
어느새 녀석은 똑바른 부동자세에서 푸딩처럼 흐물거리는 액체상태로 책상에 엎어져있었다. 나른하다 지쳐 질렸다는 표정이다.
"초심을 잃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였냐."
신경질을 내며 내게 화풀이하는 한가인. 애완동물보다 약한 악력으로 날 때려봤자 소용없다.
"아무도 오질 않잖아~!"
팔공격을 막아가며 내가 말한다.
"인내심을 갖고 좀 기다려봐. 너 같으면 수상한 이름의 신생부에 들어오고 싶겠어?"
과연 이런 곳에서 부 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 할까, 아니...그 이전에 무슨 부 활동을 하려는지 의문이지만, 원탁의 기사단을 방불케하는 원형 탁자와 가벼운 철제의자를 두었을 뿐인데 가득 차 보이는 부실은 어찌하면 좋을까. 팔짱을 낀 채 녀석을 달래는 나였다.
"이,이상하다니? 도플부가 좋다고 한 건 너였잖아."
"부장주제에 책임을 나한테 떠넘기기냐."
"이래서는 부실을 얻은 보람도 없어."
"어째서 육체노동은 내 전담이지?"
"나는 여자고, 너는 남자야."
"윽...전 세계 모든 남성들이 반박할 수 없는 말을 해버렸군"
"다행스럽게도 엄~청 좁은 창고였으니까 다행이지. 일단 수고했다고 칭찬을 해줄게"
나는 의욕없이 책상에 엎어진 녀석에게 머리를 쓰다듬는 칭찬을 받았다.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서 원탁을 뒤집어 버리고 싶어지는 내 격한 감정 상태.
"뭐, 오늘 하루에 뭘 어쩌자는 기대도 지나친거지."
당연하다고 해야할까, 드디어 동아리를 새로 만들어 낸 지금. 전에 학교 잡동사니 창고로 쓰고 있던 방을 '나 혼자서' 쓸고 닦고 치워서 도플러부의 부실로 만들었지만, 가장 중요한 부원들의 가입할 의사가 새싹조차 보이질 않았다. 무슨 활동을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정확히 기재되어 있지 않은 이런 잉여부에 가입할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 사람의 생사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을 아무에게나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믿어줄 리가 없기에 이렇게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다. 다만 한가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이러다가 이 녀석과 남은 학교생활을 시원하게 낭비하는 게 아닐까?
이런식으로 계속 만담쇼를 벌이는 학창시절이 되지 않을까 불안해지는 나. 서로 태클거는 걸로 존재감이 생길리가 없잖아.
학생부인 소유민은 스카우트 불가능, 아는 사람이라곤 없는데...몇 사람을 추천하겠다는 말만 믿을 수 밖엔 없나.
나는 그 사실을 한가인에게 말해주고 싶었으나-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두 사람이 나타나 말문이 막힌다. 정말 슬로우 모션으로 보일 정도의, 심지어 도플갱어 현상을 뛰어넘는 특이현상을 본 도플러부원 두 명.
"도플러부 가입신청 두명."
"말도 안 돼?!"
"진짜냐?!"
부장 본인이 놀라는 가입 풍경이라니.
소유민에겐 나중에 따로 식사라도 대접해줄까 생각했다. 가장 고마워 해야 할 한가인은 그렇지 않은 듯 하지만.
#
동아리부로서 당연히 학교에 낼 신청용지에 난생 처음 신입 부원을 쓰고 있는 한가인은 초심으로 돌아가 얼음장처럼 굳어있다.
"언니쪽은 신세희...동생 쪽은 신지희?"
"응응, 나는 신세희."
"이 쪽은 신지희야~!"
내 감상을 말하자면, 요즘 학교엔 왜이리 미인들이 많은가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열고 싶은 마음이다. 언니인 신세희는 넓은 이마 앞 양쪽으로 머리를 두 갈래로 내놓았고, 동생은 이마 오른쪽에 한 갈래만 따놓은 것이 유일한 외관상의 차이인 쌍둥이 자매였다. 머리 스타일이나 자매의 성격차만이 유일한 구분방법이려나,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머리스타일이 묘하게 어떤 생물이 떠오른다. 두갈래 머리, 한갈래 머리가 한 무척추 동물로서 유추.어김없이 입 밖에 내버린 나.
"세발낙지."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참고로 세발낙지의 '세'는 얇을 세 자야." 스스로 덧붙인 설명을 하는 나.
"응? 뭐라는 거야 이 은둔형 외톨이가."
"누구보다 너한테 그런 말 듣고싶지 않아!!"
말도 안 되는 개그를 한 느낌이라 태클의 강도가 약했다.
"말단주제에 건방지긴."
"이래뵈도 원년멤버라고?!"
"그냥 짐꾼이나 하란 말이야. 신참들 들어왔다고 열광하는 모습이 엄~청 꼴사나워."
남의 눈엔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쌍둥이의 시선도 나를 향한다. 한가인의 공세에 밀린 나는 얌전히 있기로 하고,
둘다 3학년인지라 부활동을 하면 안 되는 시기지만, 그다지 성적에 신경쓰지 않는 그런 분류의 엘리트들 이신 듯 하다. 간단히 이름과 나이, 가족관계, 혈액형, 좋아하는 음식, 쓰리 사이즈 등을 나는 물어본다.
라는 식의 질문공세 요구를 내게 해오는 한가인이지만 불쾌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나는 간신히 회피한다. 대인기피증이라도 있는 거냐.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텐데 이 정도는 부장님이 하시지.
"참고로 말이야."
쌍둥이중 동생이로 보이는 신지희가 먼저 말했다.
"우린 여러 동아리를 도장깨기한 민폐 자녀니까, 이 이상한 부에 관심 떨어지면 퇴부 신청서를 낼 지 몰라. 알아서 편한 대우를 해줬으면 해."
도장깨기는 대체 몇십년 전의 이야기인가. 거기다가 동아리 활동에 도장깨기라니.
"응응, 그런 얘기...가 아니라! 죽고싶지 않으면 입 다물고 있어, 지희야."
동생의 머리를 강하게 쳐내는 신세희. 심하게 자연스러운 바람에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어낸다.
"얘 말은 신경쓰지 마. 사정이 있어서, 여기저기 부실에 신세를 지고 다녔거든. 그러니까 '얼마나 같이 부실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선배라고 어려워 할 필요 없이 재미있게 활동하자."
"그런고로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봐."
"닥치렴."
이건 뭐냐, 라고 말할 뻔한 눈치없는 입을 원망했다.
아무래도 신입 부원으로서 좋은 태도는 아니잖아, 저건.
슬쩍 나는 한가인의 반응을 살폈다. 뜻밖의 발언에 그대로 표정이 얼어벼렸지만, 긴장한 모습이랑 별반 차이는 없군. 하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로, 아마 한가인은 꽤나 큰 충격을 받았을 터다. 자신의 존재를 기억해줄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이 자매들은 뻔뻔스럽게 부활동으로 엮어지는 인연을 바꾸고 다닌다. 각 동아리 활동에서 최고가 되면, 그 부활동을 그만 둔다는 그녀들이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나름대로의 수련일지도, 어렵게 생각하진 말아줘."
한가인은 무슨 사치스러운 생활인지 쌍둥이에게 대들고 싶을 것이다. '그 이유' 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우리로선 충분히 화를 돋구는 태도로 보인다. 부들부들, 약간의 분노가 온 몸에서 표출되는 한가인에게 나는 뭐라 말릴 방도가 없었다. 솔직히 내게도 살짝 열받는 쌍둥이였기에 말리기엔 살짝 망설인 나였다.
민정현이라는 브레이크가 없이 결국 폭발해버린 그녀.
"이..당신들...!"
"야, 일단 진정해."
"후우우..."
옳지. 우선 심호흡부터 하는 그녀가 대견하다.
"도플러부에 온 걸 환영합니다, 선배들."
그사이에 인간으로서 잃었던 많은 개념들을 찾은 거구나, 나는 진심으로 감탄한다. 이런 상황에서 열 내는 것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 않겠어? 적당히 인사를 받는 쌍둥이들에게 마찬가지로 인사를 마친 나.
"그 전에, 너희들이 철새처럼 부를 이동한 결과를 보여주실까?"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선배라며.
...존댓말 썼잖아.
아무리 편하게 대하라고 했다지만, 놀랄만한 친화력이다. 물론 한가인 한정이지만. 결과를 보여달라는 저 요구는 대체 어떤 것을 원하는 것인지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반면에 이 상황을 이해했다는 쌍둥이의 대처능력에 나는 절망한다.
"응응, 알았어."
"승부라. 좋지."
제발 부탁이니까 결과-승부로 연관짓는 이런 놈들은 잡아달란 말이다, 나는 어딘가에서 웃고있을 전 도플갱어 킬러, 소유민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계속 전해봤자 답이 올리가 없기에, 한숨을 내쉰 나는 한가인에게 귓속말을 청한다.
"갑자기 뭔 승부를 낸다는 거야...?"
"저 망할 년들, 콧대를 확 꺽어버리겠어. 아마 각 동아리에서 정상자리를 꿰차고 일 없다는 듯이 나간 모양인데, 우리 도플부가 순순히 당할 거라고는 생각치 말라고. 후후후."
사악한 웃음을 짓는 한가인.
나는 아직까지 도플부가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있다.
아마 나 혼자서만 그런 듯 하다.
그렇게 우리들은 학교 밖으로 나갔다. 학교 수업도 끝나고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느끼는 나는 평범한 사람인걸까.
존재감 센 녀석들이 주위에 있다보니, 내 존재가 희석되는 흐름은 약간 바람직하군.
"학생회장으로 몸 담고 있는 입장이라...인적으로 너희를 도울 방법은 없는 거, 알고 있지?"
"이미 이런 억지를 받아준 것 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만약 소유민이 없었다면 한가인이 도플갱어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나의 막대한 도움 없이는 불가능 할 것이다. 동아리로 친구를 만든다- 라는 방법이 현 시점에선 가장 효율적으로 보이니까.
"하지만 한번 책임진 일은 더 밀어줘야 내 직성이 풀려. 좀 특이한 애들이나, '도플갱어' 현상에 관련된 애들이 발견되면 슬쩍 추천해 주도록 할게."
"진심으로 필요없어."
더이상 기의한 현상을 겪고있는 놈들은 내 수용범위를 한참 넘어선다. 몸을 배배 꼬며, 부끄러운 얼굴로 내게 다가오는 소유민에게 나는 뒷걸음질친다.
"우리사이에 뭘 그래~?"
뻔한 장난질에도 숫기없는 나는 저항력이 모자른다.
"저, 저리 가! 언젠 날 죽이려 들었으면서!"
"그땐 그때고. 이젠 진짜 민정현이잖아."
"...그렇긴 하지."
거듭 말하는데, 소유민은 예전에 도플갱어들을 빨치산 때려잡듯이 휘젓고 다닌 양아치다.내 경우는 막지 못해서 장기 휴가- 사실 은퇴에 가까운 일상을 보내고 있는 그녀.
정작 본인이 '가짜 소유민' 이였으면서.
도플갱어들끼리는 서로 경계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그녀이지만 둔감한 나로선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해 무척 다행스럽다. 자신의 존재를 확고히 형성하고 싶은 본능에 같은 목적을 가진 도플갱어들끼리 모이면 그 본능이 위협을 느낀다는 어쩌고, 등의 어려운 이야기는 소유민같은 녀석들이나 아는 것이지, 나는 별로 관여치 않고 싶었다.
알 필요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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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바짝 긴장한 채로, 누가오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몸 밖으로 빤히 보이는 한가인이였다. 도플러부 초대 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에 성실한 자세로 기다렸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결국엔 학교 시간표를 벗어난 때가 되었음에도 아무도 오질 않는다.
어느새 녀석은 똑바른 부동자세에서 푸딩처럼 흐물거리는 액체상태로 책상에 엎어져있었다. 나른하다 지쳐 질렸다는 표정이다.
"초심을 잃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였냐."
신경질을 내며 내게 화풀이하는 한가인. 애완동물보다 약한 악력으로 날 때려봤자 소용없다.
"아무도 오질 않잖아~!"
팔공격을 막아가며 내가 말한다.
"인내심을 갖고 좀 기다려봐. 너 같으면 수상한 이름의 신생부에 들어오고 싶겠어?"
과연 이런 곳에서 부 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 할까, 아니...그 이전에 무슨 부 활동을 하려는지 의문이지만, 원탁의 기사단을 방불케하는 원형 탁자와 가벼운 철제의자를 두었을 뿐인데 가득 차 보이는 부실은 어찌하면 좋을까. 팔짱을 낀 채 녀석을 달래는 나였다.
"이,이상하다니? 도플부가 좋다고 한 건 너였잖아."
"부장주제에 책임을 나한테 떠넘기기냐."
"이래서는 부실을 얻은 보람도 없어."
"어째서 육체노동은 내 전담이지?"
"나는 여자고, 너는 남자야."
"윽...전 세계 모든 남성들이 반박할 수 없는 말을 해버렸군"
"다행스럽게도 엄~청 좁은 창고였으니까 다행이지. 일단 수고했다고 칭찬을 해줄게"
나는 의욕없이 책상에 엎어진 녀석에게 머리를 쓰다듬는 칭찬을 받았다. 기분이 엄청나게 좋아서 원탁을 뒤집어 버리고 싶어지는 내 격한 감정 상태.
"뭐, 오늘 하루에 뭘 어쩌자는 기대도 지나친거지."
당연하다고 해야할까, 드디어 동아리를 새로 만들어 낸 지금. 전에 학교 잡동사니 창고로 쓰고 있던 방을 '나 혼자서' 쓸고 닦고 치워서 도플러부의 부실로 만들었지만, 가장 중요한 부원들의 가입할 의사가 새싹조차 보이질 않았다. 무슨 활동을 하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정확히 기재되어 있지 않은 이런 잉여부에 가입할 사람이 있을리가 없다. 사람의 생사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을 아무에게나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믿어줄 리가 없기에 이렇게 기다리는 수 밖에는 없다. 다만 한가지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이러다가 이 녀석과 남은 학교생활을 시원하게 낭비하는 게 아닐까?
이런식으로 계속 만담쇼를 벌이는 학창시절이 되지 않을까 불안해지는 나. 서로 태클거는 걸로 존재감이 생길리가 없잖아.
학생부인 소유민은 스카우트 불가능, 아는 사람이라곤 없는데...몇 사람을 추천하겠다는 말만 믿을 수 밖엔 없나.
나는 그 사실을 한가인에게 말해주고 싶었으나- 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두 사람이 나타나 말문이 막힌다. 정말 슬로우 모션으로 보일 정도의, 심지어 도플갱어 현상을 뛰어넘는 특이현상을 본 도플러부원 두 명.
"도플러부 가입신청 두명."
"말도 안 돼?!"
"진짜냐?!"
부장 본인이 놀라는 가입 풍경이라니.
소유민에겐 나중에 따로 식사라도 대접해줄까 생각했다. 가장 고마워 해야 할 한가인은 그렇지 않은 듯 하지만.
#
동아리부로서 당연히 학교에 낼 신청용지에 난생 처음 신입 부원을 쓰고 있는 한가인은 초심으로 돌아가 얼음장처럼 굳어있다.
"언니쪽은 신세희...동생 쪽은 신지희?"
"응응, 나는 신세희."
"이 쪽은 신지희야~!"
내 감상을 말하자면, 요즘 학교엔 왜이리 미인들이 많은가에 대해 심도 깊은 토론을 열고 싶은 마음이다. 언니인 신세희는 넓은 이마 앞 양쪽으로 머리를 두 갈래로 내놓았고, 동생은 이마 오른쪽에 한 갈래만 따놓은 것이 유일한 외관상의 차이인 쌍둥이 자매였다. 머리 스타일이나 자매의 성격차만이 유일한 구분방법이려나,나란히 앉은 두 사람의 머리스타일이 묘하게 어떤 생물이 떠오른다. 두갈래 머리, 한갈래 머리가 한 무척추 동물로서 유추.어김없이 입 밖에 내버린 나.
"세발낙지."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참고로 세발낙지의 '세'는 얇을 세 자야." 스스로 덧붙인 설명을 하는 나.
"응? 뭐라는 거야 이 은둔형 외톨이가."
"누구보다 너한테 그런 말 듣고싶지 않아!!"
말도 안 되는 개그를 한 느낌이라 태클의 강도가 약했다.
"말단주제에 건방지긴."
"이래뵈도 원년멤버라고?!"
"그냥 짐꾼이나 하란 말이야. 신참들 들어왔다고 열광하는 모습이 엄~청 꼴사나워."
남의 눈엔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쌍둥이의 시선도 나를 향한다. 한가인의 공세에 밀린 나는 얌전히 있기로 하고,
둘다 3학년인지라 부활동을 하면 안 되는 시기지만, 그다지 성적에 신경쓰지 않는 그런 분류의 엘리트들 이신 듯 하다. 간단히 이름과 나이, 가족관계, 혈액형, 좋아하는 음식, 쓰리 사이즈 등을 나는 물어본다.
라는 식의 질문공세 요구를 내게 해오는 한가인이지만 불쾌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나는 간신히 회피한다. 대인기피증이라도 있는 거냐.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텐데 이 정도는 부장님이 하시지.
"참고로 말이야."
쌍둥이중 동생이로 보이는 신지희가 먼저 말했다.
"우린 여러 동아리를 도장깨기한 민폐 자녀니까, 이 이상한 부에 관심 떨어지면 퇴부 신청서를 낼 지 몰라. 알아서 편한 대우를 해줬으면 해."
도장깨기는 대체 몇십년 전의 이야기인가. 거기다가 동아리 활동에 도장깨기라니.
"응응, 그런 얘기...가 아니라! 죽고싶지 않으면 입 다물고 있어, 지희야."
동생의 머리를 강하게 쳐내는 신세희. 심하게 자연스러운 바람에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웃음을 지어낸다.
"얘 말은 신경쓰지 마. 사정이 있어서, 여기저기 부실에 신세를 지고 다녔거든. 그러니까 '얼마나 같이 부실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선배라고 어려워 할 필요 없이 재미있게 활동하자."
"그런고로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여봐."
"닥치렴."
이건 뭐냐, 라고 말할 뻔한 눈치없는 입을 원망했다.
아무래도 신입 부원으로서 좋은 태도는 아니잖아, 저건.
슬쩍 나는 한가인의 반응을 살폈다. 뜻밖의 발언에 그대로 표정이 얼어벼렸지만, 긴장한 모습이랑 별반 차이는 없군. 하지만 그건 별개의 문제로, 아마 한가인은 꽤나 큰 충격을 받았을 터다. 자신의 존재를 기억해줄 사람을 구하고 있는데, 이 자매들은 뻔뻔스럽게 부활동으로 엮어지는 인연을 바꾸고 다닌다. 각 동아리 활동에서 최고가 되면, 그 부활동을 그만 둔다는 그녀들이다.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지 물어보고 싶다.
"나름대로의 수련일지도, 어렵게 생각하진 말아줘."
한가인은 무슨 사치스러운 생활인지 쌍둥이에게 대들고 싶을 것이다. '그 이유' 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우리로선 충분히 화를 돋구는 태도로 보인다. 부들부들, 약간의 분노가 온 몸에서 표출되는 한가인에게 나는 뭐라 말릴 방도가 없었다. 솔직히 내게도 살짝 열받는 쌍둥이였기에 말리기엔 살짝 망설인 나였다.
민정현이라는 브레이크가 없이 결국 폭발해버린 그녀.
"이..당신들...!"
"야, 일단 진정해."
"후우우..."
옳지. 우선 심호흡부터 하는 그녀가 대견하다.
"도플러부에 온 걸 환영합니다, 선배들."
그사이에 인간으로서 잃었던 많은 개념들을 찾은 거구나, 나는 진심으로 감탄한다. 이런 상황에서 열 내는 것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 않겠어? 적당히 인사를 받는 쌍둥이들에게 마찬가지로 인사를 마친 나.
"그 전에, 너희들이 철새처럼 부를 이동한 결과를 보여주실까?"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선배라며.
...존댓말 썼잖아.
아무리 편하게 대하라고 했다지만, 놀랄만한 친화력이다. 물론 한가인 한정이지만. 결과를 보여달라는 저 요구는 대체 어떤 것을 원하는 것인지 짐작조차 가질 않는다. 반면에 이 상황을 이해했다는 쌍둥이의 대처능력에 나는 절망한다.
"응응, 알았어."
"승부라. 좋지."
제발 부탁이니까 결과-승부로 연관짓는 이런 놈들은 잡아달란 말이다, 나는 어딘가에서 웃고있을 전 도플갱어 킬러, 소유민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계속 전해봤자 답이 올리가 없기에, 한숨을 내쉰 나는 한가인에게 귓속말을 청한다.
"갑자기 뭔 승부를 낸다는 거야...?"
"저 망할 년들, 콧대를 확 꺽어버리겠어. 아마 각 동아리에서 정상자리를 꿰차고 일 없다는 듯이 나간 모양인데, 우리 도플부가 순순히 당할 거라고는 생각치 말라고. 후후후."
사악한 웃음을 짓는 한가인.
나는 아직까지 도플부가 뭘 하는 곳인지도 모르고있다.
아마 나 혼자서만 그런 듯 하다.
그렇게 우리들은 학교 밖으로 나갔다. 학교 수업도 끝나고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느끼는 나는 평범한 사람인걸까.
존재감 센 녀석들이 주위에 있다보니, 내 존재가 희석되는 흐름은 약간 바람직하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