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다. 걷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전혀 걷고 있다는 느낌이 나질 않는다.
지금 걷고 있는 곳은 계단. 옆으로 ‘16’이라는 글자가 지나간다. 주변은 어두워서 계단 중간 중간에 있는 비상등만이 계단의 윤곽을 비쳐주고 있었다.
아마 우리 집이 7층이었다. 이렇게 높은 곳까지 그것도 걸어서 올라온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숨이 차지 않는다. 이미 생의 질감은 밑바닥까지 추락해있었다. 곧 내가 그렇게 될 듯이…….
‘17’이라는 숫자가 지나간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아득히 먼 시간을 걷는 듯 한 느낌이 든다. 왜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것이 비틀린 것은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그때부터였을까? 천천히 계단을 오르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만 전혀 진전은 없었다. 오히려 머릿속의 어둠만이 그 몸집을 키워갈 뿐이었다.
‘18’이라는 숫자가 지나갔다. 아마 이 아파트는 18층짜리였다. 다시 말해서 더 이상 나아가면 옥상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나타날 것이었다. 아마 내 생애 마지막이 될 장소로 나아가며 나는 생각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미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되새긴 말이었다.
어릴 적에는 별 탈 없이 자랐다. 정말 ‘평범’ 그 자체로 자랐다. 엄격하시지만 온화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 옆에서 항상 우리 남매를 지켜주시던 어머니. 그래 귀여운 남동생까지.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것 까지는 아니었지만 모자라지는 않았다. 주변관계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 일이…….
옥상문은 허술하게 열려서 삐거덕거리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보통은 조그마한 자물쇠로라도 잠겨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아마 내일쯤 되면 이런 옥상에 대한 부실한 관리에 대해 매스컴에서 집중 조명할 것이다. 매스컴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물쇠가 채워지겠지.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이후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옥상으로 나섰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무색할 정도로 강한 바람에 하계교복의 짧은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은 내 몸은 추위에 움츠러들었다. 강한 바람에 마치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 다리에 온 힘을 주었다. 가끔 몸이 휘청거리며 넘어지려고 하는 것을 안간힘을 다해 버텨내며 난간으로 다가갔다. 난간은 이렇다 할 안전장치도 없이 그래도 노출돼 있었다. 말 그대로의 낭떠러지. 이런 위험한 옥상. 아마 부실시공이라는 문책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어차피 내게는 장애물이 없어서 더할 나위 없는 장소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난간으로 다가가며 나는 생각했다. 그 사건. 아마 교통사고였을 것이다. ‘아마’라는 것은 내가 그 자리에 없어서 전해 들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들은 그때 모두 돌아가셨다. 행운이었는지 불운이었는지 그 날 나와 동생은 집에 있었다. 그렇게 단 둘이 되어버렸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 우리 집은 크게 기울어졌다.
다행히 보험사에서는 곧바로 보험금을 지급했고 친척들도 도와주어서 금전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문제라면 오히려 인간관계. 친척들 중에는 막대한 보험금을 노리고 접근해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개중에는 내 몸을 탐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큰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맡아주시고 지켜주셨다. 하지만 그 상실감만은 지켜주시지 못했다. 그래서 원래 살던 동네를 떠나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여전히 큰아버지는 우리남매를 지켜주시고 계시지만 그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처음 살게 된 동네에서 다니게 된 중학교에서는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정말 전형적이라고 불러주고 싶을 정도의 악질적인 괴롭힘이었다.
그래도 버텨냈다. 남동생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가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다졌다. 그렇게 중학교시절이 끝나고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고 남동생마저 가출했다.
그래. 가출했다. 가출. 가출. 가. 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막대한 보험금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듯이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내 몸 아니면 내 돈. 접근하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똑같았다. 동생은 나를 두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 무엇도 용서할 수 없었다. 특히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저 눈물을 지으며 마치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공주님처럼 있는 것이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정하기로 했다. 내 자신에 대해서…….
난간에 서자 바람은 너무나도 거세게 느껴졌다. 바람에 날아가 버릴 듯 한 느낌이었다. 이대로 날아가 버려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요 몇 년 사이에 처음으로 마음먹고 정한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먹고 정한 일이 될 것이었다.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을 이렇게 벌주는 것이다. 용서할 수 없는 세상을 이렇게 등지는 것이다.
저 위로는 어두운 밤하늘에 도심의 밝은 빛에도 드문드문 빛을 비추는 별들이 눈에 보였다. 저 어두운 밤하늘에서 마치 자신의 존재를 뽐내듯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은 희미해서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만 같았다.
저 아래로는 새까만 아스팔트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는 마치 미니어처 장난감처럼 보였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세워진 가로등이 어두운 거리를 밝게 비쳐주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로등 바로 아래뿐이었다. 대부분은 어둠에 덮여있었다.
저 반대편에는 다른 동의 아파트건물이 보였다. 저 건물의 사람들은 얼마나 즐거울까?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기쁠까?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불행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저 반대편의 대지로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내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을 향해 추락했다.
지금 걷고 있는 곳은 계단. 옆으로 ‘16’이라는 글자가 지나간다. 주변은 어두워서 계단 중간 중간에 있는 비상등만이 계단의 윤곽을 비쳐주고 있었다.
아마 우리 집이 7층이었다. 이렇게 높은 곳까지 그것도 걸어서 올라온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숨이 차지 않는다. 이미 생의 질감은 밑바닥까지 추락해있었다. 곧 내가 그렇게 될 듯이…….
‘17’이라는 숫자가 지나간다.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아득히 먼 시간을 걷는 듯 한 느낌이 든다. 왜 나는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일까?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모든 것이 비틀린 것은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면 그때부터였을까? 천천히 계단을 오르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만 전혀 진전은 없었다. 오히려 머릿속의 어둠만이 그 몸집을 키워갈 뿐이었다.
‘18’이라는 숫자가 지나갔다. 아마 이 아파트는 18층짜리였다. 다시 말해서 더 이상 나아가면 옥상이라고 불리는 장소가 나타날 것이었다. 아마 내 생애 마지막이 될 장소로 나아가며 나는 생각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미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되새긴 말이었다.
어릴 적에는 별 탈 없이 자랐다. 정말 ‘평범’ 그 자체로 자랐다. 엄격하시지만 온화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 옆에서 항상 우리 남매를 지켜주시던 어머니. 그래 귀여운 남동생까지. 경제적으로도 부유한 것 까지는 아니었지만 모자라지는 않았다. 주변관계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그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 일이…….
옥상문은 허술하게 열려서 삐거덕거리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보통은 조그마한 자물쇠로라도 잠겨 있어야 할 텐데 말이다. 아마 내일쯤 되면 이런 옥상에 대한 부실한 관리에 대해 매스컴에서 집중 조명할 것이다. 매스컴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물쇠가 채워지겠지.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이후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안 될 테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옥상으로 나섰다.
여름이라는 계절이 무색할 정도로 강한 바람에 하계교복의 짧은 블라우스와 치마를 입은 내 몸은 추위에 움츠러들었다. 강한 바람에 마치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아 다리에 온 힘을 주었다. 가끔 몸이 휘청거리며 넘어지려고 하는 것을 안간힘을 다해 버텨내며 난간으로 다가갔다. 난간은 이렇다 할 안전장치도 없이 그래도 노출돼 있었다. 말 그대로의 낭떠러지. 이런 위험한 옥상. 아마 부실시공이라는 문책을 피하기 힘들 것이다. 어차피 내게는 장애물이 없어서 더할 나위 없는 장소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난간으로 다가가며 나는 생각했다. 그 사건. 아마 교통사고였을 것이다. ‘아마’라는 것은 내가 그 자리에 없어서 전해 들었을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부모님들은 그때 모두 돌아가셨다. 행운이었는지 불운이었는지 그 날 나와 동생은 집에 있었다. 그렇게 단 둘이 되어버렸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의 일이었다. 그 이후 우리 집은 크게 기울어졌다.
다행히 보험사에서는 곧바로 보험금을 지급했고 친척들도 도와주어서 금전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문제라면 오히려 인간관계. 친척들 중에는 막대한 보험금을 노리고 접근해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개중에는 내 몸을 탐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큰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맡아주시고 지켜주셨다. 하지만 그 상실감만은 지켜주시지 못했다. 그래서 원래 살던 동네를 떠나 지금 사는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여전히 큰아버지는 우리남매를 지켜주시고 계시지만 그것에는 한계가 있었다. 처음 살게 된 동네에서 다니게 된 중학교에서는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정말 전형적이라고 불러주고 싶을 정도의 악질적인 괴롭힘이었다.
그래도 버텨냈다. 남동생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살아가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다졌다. 그렇게 중학교시절이 끝나고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고 남동생마저 가출했다.
그래. 가출했다. 가출. 가출. 가. 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아무것도 없다. 사람들은 막대한 보험금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을 듯이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아무도 믿을 수 없었다. 내 몸 아니면 내 돈. 접근하는 모든 사람들은 모두 똑같았다. 동생은 나를 두고 집을 나가버렸다.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었다. 그 무엇도 용서할 수 없었다. 특히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저 눈물을 지으며 마치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는 공주님처럼 있는 것이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정하기로 했다. 내 자신에 대해서…….
난간에 서자 바람은 너무나도 거세게 느껴졌다. 바람에 날아가 버릴 듯 한 느낌이었다. 이대로 날아가 버려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요 몇 년 사이에 처음으로 마음먹고 정한 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음먹고 정한 일이 될 것이었다.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을 이렇게 벌주는 것이다. 용서할 수 없는 세상을 이렇게 등지는 것이다.
저 위로는 어두운 밤하늘에 도심의 밝은 빛에도 드문드문 빛을 비추는 별들이 눈에 보였다. 저 어두운 밤하늘에서 마치 자신의 존재를 뽐내듯이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빛은 희미해서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 만 같았다.
저 아래로는 새까만 아스팔트 바닥이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에 세워진 자동차는 마치 미니어처 장난감처럼 보였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드문드문 세워진 가로등이 어두운 거리를 밝게 비쳐주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로등 바로 아래뿐이었다. 대부분은 어둠에 덮여있었다.
저 반대편에는 다른 동의 아파트건물이 보였다. 저 건물의 사람들은 얼마나 즐거울까?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기쁠까?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불행할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저 반대편의 대지로 발을 내딛었다. 그렇게 내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을 향해 추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