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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네요."
얼마나 달렸을까, 등이 땀으로 축축해질 쯤에 에실이 그런 말을 했다.
"음…… 그러네."
땀 때문에 미끌어지는 핸들을 바로 잡는다. 그리고 똑바로 스쿠터를 몰아 간다. 가만히 서 있는 것 자체가 중노동일 정도로 더운 날씨다.
"이제 완전히 더워졌구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불 없이는 잠도 못 잤을 정도였는데 말야."
문득 주위에 귀를 기울여 본다.
사람의 소리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다. 모두 더위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일까. 그 흔한 휴대전화 가게의 호객행위 조차 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 대신일까, 벌레 소리만은 평소의 배로 시끄럽게 귀를 파고든다.
"……에실."
"예?"
"네 말대로 정말…… 완전히 여름이네. 너무 더워."
내 의미도 없는 그 말에 등 뒤에서 쿡쿡, 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건 내 감성을 비웃는 듯이도 들리지만, 그게 아니라 정말로 즐겁기 때문이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정말 그래요."
에실은 여름의 계곡처럼 맑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말한다.
"여름이예요."
"여름, 좋아하냐?"
"좋아해요. 해가 길잖아요. 오래 일어나 있을 수 있어요."
"아아…… 난 덥고 습해서 싫어하지만."
어린애와 어른의 감상차라는 것일까. 보는 관점이 다르다.
가까운 곳에 자판기가 있는 등나무 쉼터를 발견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잠깐 쉬어 가기로 했다. 사실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고 하는 여행은 아니었기 때문에 바쁘지 않다는 것도 그 이유중 하나지만.
"이제 어디로 갈거예요?"
에실이 자판기의 버튼을 누르며 물었다.
에실이 고른 건 실론티. 개인적으로는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음료지만 영국 출신인 에실에겐 다르게 느껴지는 거겠지. 영국인의 홍차 사랑이라는 걸까.
"그게 아니예요."
에실은 실론티를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 차가운 감촉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에실은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한모금 마셨다.
"굳이 홍차가 아니더라도, 맛이 없더라도 괜찮아요. 그것들은 모두 제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 주니까요. 이렇게, 마실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기뻐요."
"……그러냐."
나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면서 자판기 버튼을 눌렀다. 배출구로 코카콜라가 떨어졌다.
"그래서 어디로 가실 거냐구요."
"아, 맞다. 그게 본제였지? 음, 그러니까…… 일단은 대학으로 돌아가자. 아무리 이름만 교수라지만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는 건 예의가 아닐테니까. 겉치레긴 해도 얼굴은 내 비쳐 주자고."
그렇다. 아직 20대 애송이 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난 어엿한 서울권 대학의 교수인 것이다. 담당 학과는 철학.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의를 하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이름만 교수. 나에게 강의를 한다는 역할은 부여 되어 있지 않다. 가르치는 것에도 취미는 없고. 다만, 그 대신에 나는, 세계가 인정할만한 논문을 꾸준히 재출하고 있다. 이렇게 여행만 다녀도 대학에서 해고당하지 않는다. 자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해고 하는 쪽이 대학에 손해다. 나는 단지 있는 것만으로도 대학을 빛내주는 간판이 되니까. 물론 봉급도 꾸준히, 오히려 다른 교수님들보다도 많이 받고 있는 나다.
"어마."
에실이 실론티를 홀짝 거리다가 그렇게, 과장되게 놀라는 척을 하면서 뭔가를 주워 들었다. ……바람에 굴러다니는 종이조각이었다.
"뭐야?"
"전단지예요. 축제의."
"축제?"
나는 몸을 낮춰 에실의 손에 들린 전단지를 보았다. 전단지는 지역 축제의 홍보물이었는데, 상당히 빛이 바랜 것으로 보아, 또 축제의 내용으로 보아서 지난 겨울에 뿌려진 모양이었다.
축제의 내용은 빙어 낚시. 근처 계곡의 빙판에 구멍을 뚫고, 거기서 낚시를 하는 방식이다.
"계곡이예요, 혁씨."
"응?"
"계곡이라구요, 혁씨."
에실이 진지한 표정을 하고 반복해서 말했다.
"계곡이라예, 혁씨."
"아니, 사투리까지는 쓰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정말이지 귀여운 애다. 물론 무슨 말인지는 진즉에 알아 들었다. 계곡에 가고싶다, 그거겠지.
"계곡 좋아해?"
"아뇨."
즉답.
엥? 하고 놀랐지만 금방 그 이유를 알았다.
"아아, 그랬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예요. 가본 적이 없는 걸요. 하지만 뭔지는 알아요. 좁고 길게, 움푹 들어간 지형을 말하는 거지요? 하천이 흐르는 경우가 많고요. 아마도 이 계곡은 큰 하천이 있겠죠."
"그래. 똑똑한데."
다만, 그 지식은 다소 사전적인 느낌이지만. 책만 읽고 세상을 모르는 센님이라는 느낌이다.
"그래. 뭐, 딱히 시간 약속을 한 건 아니니까……."
나는 왼손목의 스포츠 시계를 본다. 시침은 막 오후 1시를 지난 참이다.
"수박이라도 사서 계곡에 가 볼까?"
"참외, 참외가 좋아요."
"그건, 설마 빙빙 돌려서 멜론을 사 달라고 하는 건 아니지? 난 부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서양에서는 참외가 멜론이다. 멜론은 참외보다 크고, 초록색이고, 무엇보다 비싸다. 난 딱히 구두쇠는 아니지만 돈 소중한 건 아는 녀석이다.
……구두쇠가 아니라고!
"제가 좋아 하는 건 노란색 참외예요."
"그렇다면 좋아. 둘 다 사서 가자."
나는 다 마신 코카콜라 캔을 쓰래기통에 던져 넣고 스쿠터에 올라탔다. 물론, 내가 타기 전에 키가 작은 에실을 먼저 뒷좌석에 태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단지 그것만으로, 우리들의 여행 준비는 끝난 것이다.
"여름이네요."
얼마나 달렸을까, 등이 땀으로 축축해질 쯤에 에실이 그런 말을 했다.
"음…… 그러네."
땀 때문에 미끌어지는 핸들을 바로 잡는다. 그리고 똑바로 스쿠터를 몰아 간다. 가만히 서 있는 것 자체가 중노동일 정도로 더운 날씨다.
"이제 완전히 더워졌구만.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이불 없이는 잠도 못 잤을 정도였는데 말야."
문득 주위에 귀를 기울여 본다.
사람의 소리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다. 모두 더위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일까. 그 흔한 휴대전화 가게의 호객행위 조차 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 대신일까, 벌레 소리만은 평소의 배로 시끄럽게 귀를 파고든다.
"……에실."
"예?"
"네 말대로 정말…… 완전히 여름이네. 너무 더워."
내 의미도 없는 그 말에 등 뒤에서 쿡쿡, 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건 내 감성을 비웃는 듯이도 들리지만, 그게 아니라 정말로 즐겁기 때문이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정말 그래요."
에실은 여름의 계곡처럼 맑은 하이톤의 목소리로 말한다.
"여름이예요."
"여름, 좋아하냐?"
"좋아해요. 해가 길잖아요. 오래 일어나 있을 수 있어요."
"아아…… 난 덥고 습해서 싫어하지만."
어린애와 어른의 감상차라는 것일까. 보는 관점이 다르다.
가까운 곳에 자판기가 있는 등나무 쉼터를 발견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서 잠깐 쉬어 가기로 했다. 사실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고 하는 여행은 아니었기 때문에 바쁘지 않다는 것도 그 이유중 하나지만.
"이제 어디로 갈거예요?"
에실이 자판기의 버튼을 누르며 물었다.
에실이 고른 건 실론티. 개인적으로는 맛이 없다고 생각하는 음료지만 영국 출신인 에실에겐 다르게 느껴지는 거겠지. 영국인의 홍차 사랑이라는 걸까.
"그게 아니예요."
에실은 실론티를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 차가운 감촉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에실은 행복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한모금 마셨다.
"굳이 홍차가 아니더라도, 맛이 없더라도 괜찮아요. 그것들은 모두 제가 살아있다는 걸 증명해 주니까요. 이렇게, 마실 수 있는 것 만으로도 기뻐요."
"……그러냐."
나는 뒤통수를 벅벅 긁으면서 자판기 버튼을 눌렀다. 배출구로 코카콜라가 떨어졌다.
"그래서 어디로 가실 거냐구요."
"아, 맞다. 그게 본제였지? 음, 그러니까…… 일단은 대학으로 돌아가자. 아무리 이름만 교수라지만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는 건 예의가 아닐테니까. 겉치레긴 해도 얼굴은 내 비쳐 주자고."
그렇다. 아직 20대 애송이 처럼 보일지는 모르지만, 난 어엿한 서울권 대학의 교수인 것이다. 담당 학과는 철학.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강의를 하는 건 아니다. 말 그대로 이름만 교수. 나에게 강의를 한다는 역할은 부여 되어 있지 않다. 가르치는 것에도 취미는 없고. 다만, 그 대신에 나는, 세계가 인정할만한 논문을 꾸준히 재출하고 있다. 이렇게 여행만 다녀도 대학에서 해고당하지 않는다. 자만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해고 하는 쪽이 대학에 손해다. 나는 단지 있는 것만으로도 대학을 빛내주는 간판이 되니까. 물론 봉급도 꾸준히, 오히려 다른 교수님들보다도 많이 받고 있는 나다.
"어마."
에실이 실론티를 홀짝 거리다가 그렇게, 과장되게 놀라는 척을 하면서 뭔가를 주워 들었다. ……바람에 굴러다니는 종이조각이었다.
"뭐야?"
"전단지예요. 축제의."
"축제?"
나는 몸을 낮춰 에실의 손에 들린 전단지를 보았다. 전단지는 지역 축제의 홍보물이었는데, 상당히 빛이 바랜 것으로 보아, 또 축제의 내용으로 보아서 지난 겨울에 뿌려진 모양이었다.
축제의 내용은 빙어 낚시. 근처 계곡의 빙판에 구멍을 뚫고, 거기서 낚시를 하는 방식이다.
"계곡이예요, 혁씨."
"응?"
"계곡이라구요, 혁씨."
에실이 진지한 표정을 하고 반복해서 말했다.
"계곡이라예, 혁씨."
"아니, 사투리까지는 쓰지 않아도 괜찮으니까……."
정말이지 귀여운 애다. 물론 무슨 말인지는 진즉에 알아 들었다. 계곡에 가고싶다, 그거겠지.
"계곡 좋아해?"
"아뇨."
즉답.
엥? 하고 놀랐지만 금방 그 이유를 알았다.
"아아, 그랬지……."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니예요. 가본 적이 없는 걸요. 하지만 뭔지는 알아요. 좁고 길게, 움푹 들어간 지형을 말하는 거지요? 하천이 흐르는 경우가 많고요. 아마도 이 계곡은 큰 하천이 있겠죠."
"그래. 똑똑한데."
다만, 그 지식은 다소 사전적인 느낌이지만. 책만 읽고 세상을 모르는 센님이라는 느낌이다.
"그래. 뭐, 딱히 시간 약속을 한 건 아니니까……."
나는 왼손목의 스포츠 시계를 본다. 시침은 막 오후 1시를 지난 참이다.
"수박이라도 사서 계곡에 가 볼까?"
"참외, 참외가 좋아요."
"그건, 설마 빙빙 돌려서 멜론을 사 달라고 하는 건 아니지? 난 부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서양에서는 참외가 멜론이다. 멜론은 참외보다 크고, 초록색이고, 무엇보다 비싸다. 난 딱히 구두쇠는 아니지만 돈 소중한 건 아는 녀석이다.
……구두쇠가 아니라고!
"제가 좋아 하는 건 노란색 참외예요."
"그렇다면 좋아. 둘 다 사서 가자."
나는 다 마신 코카콜라 캔을 쓰래기통에 던져 넣고 스쿠터에 올라탔다. 물론, 내가 타기 전에 키가 작은 에실을 먼저 뒷좌석에 태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단지 그것만으로, 우리들의 여행 준비는 끝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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