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이 왔건만 게임 업계는 여전히 겨울이다. 최근 1분기 실적 발표가 한창인 와중에 밝은 낯으로 희소식을 전하는 업체는 드물다. 핵심 플랫폼 PC·모바일서 이럴진대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은 어떠랴. 물론 역으로 도전할 여지가 많은 기회의 땅이라 할 수 있고 실제로 괄목할 만한 흥행작도 없지 않으나, 아직 국내에서의 성공 사례는 퍽 드물다.

여기 창립 10년째 VR·XR 한 우물을 파며 좋은 때를 기다려온 업체가 있다. 바로 ‘월드 워 툰즈: 탱크 아레나’를 대표작으로 내세운 스토익엔터테인먼트다. 2021년 지스타와 이듬해 게임스컴에 출품한 ‘월드 워 툰즈: 탱크 아레나’는 세계대전서 활약한 셔먼, 티거 등 전차들로 벌이는 슈팅 액션이 크게 주목받았다. 당시 본지와 스토익엔터테인먼트 김홍석 대표가 만나 VR 시장에 대한 깊은 이야기(링크)를 나누기도 했다.

2022년 말 ‘월드 워 툰즈: 탱크 아레나’ 정식 출시 후 스토익엔터테인먼트는 계속해서 VR 게임 개발에 매진했다. 현재 업계를 양분하는 스팀 VR과 메타 스토어를 겨냥하여 바로 어제(9일) 호러 파티 게임 ‘스펙트럴 스크림’을, 오는 23일 ‘탱크 아레나: 얼티밋 리그’를 각각 선보인다. 특히 ‘탱크 아레나: 얼티밋 리그’는 제목에서 보듯 ‘월드 워 툰즈: 탱크 아레나’의 정식 속편으로, 국내 업체가 메타 스토어에 게임 2종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5월 9일(목) 스팀에 출시된 ‘스펙트럴 스크럼’은 최대 4인이 함께 즐기는 호러 파티 게임이다. VR 전용이 아니라 평범한 PC 게임처럼 즐기는 게 가능하다. 본작 개발을 진두지휘한 황기현 PD는 ‘파스모포비아’, ‘리썰 컴퍼니’의 코어 게이머로서 영향을 받았음을 밝혔다. 거금 운운하는 전단지에 혹하여 모여든 주인공 일행은 동물 가면을 뒤집어쓰고 현실과 지옥의 경계, 연옥으로 향한다. 저택이나 사무실, 학교 등 익숙한 풍경이지만 괴물과 유령이 득시글대는 연옥에서 탈출하려면 숨겨진 오브를 찾아야 한다.

다양한 외견과 행동 양식을 지닌 괴물, 유령은 저마다 퇴치 도구와 방식이 다르다. 따라서 십자가, 말뚝, 부적 등을 습득하고 시기적절이 사용하며 연옥에서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 멀티 플레이 중이라면 습격 당해 쓰러진 아군을 역병의사 NPC에게 데려가 되살릴 수 있다. 유용한 도구를 판매하는 상인 NPC도 존재한다. 최종적으로 오브와 금화를 챙겨 다음 챕터로 넘어갈지, 아니면 그만 끝내고 모아둔 보상을 정산할지 결정한다. 론칭 빌드서 제공되는 분량은 총 세 챕터로 처음 플레이했을 때 대략 10시간이 걸린다.

다음으로 5월 23일 메타 스토어로 선보이게 될 ‘탱크 아레나: 얼티밋 리그’는 미래적인 모습의 전차로 펼치는 4vs4 대전 게임이다. 실존하는 전차가 등장했던 전작과 달리 가상의 근미래를 배경 삼아 보다 다채롭고 뚜렷한 역할군이 특징. 진형 구축에 특화된 돌격형 센티넬, 강력한 저격의 화력형 노바, 일정 범위를 모두 수리하는 보조형 헤르메스 등이 존재한다. 아울러 각 전차마다 고유한 조종석 디자인이 적용되어 VR 체험을 극대화했음은 물론이다. 경기 도중이라도 한 차례 파괴된 후 복귀 시 원하는 전차 선택이 가능하다.

또한 전차로 싸울 때 아니면 접속을 유지할 이유도 공간도 없었던 전작의 문제를 해소하고자 라운지를 도입했다. 불특정 다수의 유저와 만나 축구, 농구, 다트 같은 소소한 놀이를 즐기며 자연스레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최근 VR 시장에선 이처럼 게임 자체를 일종의 SNS로 향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소유한 탱크와 전리품을 전시하는 마이룸, 남들과 시간을 보내는 라운지, 그리고 본 게임인 아레나까지 세 구역의 선순관 구조야말로 안정적인 중장기 서비스를 위해 스토익엔터테인먼트가 그리는 큰 그림이다.

과연 스토익엔터테인먼트는 ‘스펙트럴 스크림’과 ‘탱크 아레나: 얼미팃 리그’로 VR 시장서 국산 게임의 기치를 휘날릴 수 있을지, 현장 질의를 통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현장에는 김홍석 대표와 최윤화 대표, ‘스펙트럴 스크림’ 황기현 PD, ‘탱크 아레나: 얼티밋 리그’ 정욱진 PD, 신혜련 CPO, 사업마케팅 김도형 실장과 오현우 팀장이 참석했다.

● 스팀 출시되는 ‘스펙트럴 스크림’은 어떤 HMD를 지원하나

황기현 PD(이하 황): PC에 연결 가능한 모든 VR 기기를 호환 및 지원하는 게 목표다. 다만 HTC 바이브의 경우 살짝 문제가 있어서 확인 중이다. 또한 앞서 소개했듯 VR 전용이 아닌 겸용 게임이라 HMD를 장착하면 더 현실적인 플레이가 가능하다는 거지 필수는 아니다.

● 뛰고 피할 일이 많은 호러 게임인 만큼 멀미 저감 대책이 중요하겠다

황: VR 멀미 증상은 밝은 장소에서 더 심하게 나타난다. 다행히 ‘스펙트럴 스크림’은 호러 게임이라 화면 가장자리가 어둡게 처리되어 여타 게임에 비하면 VR 멀미는 덜한 편이다.

● 엔딩까지 10시간이 걸린다면 네 명이 계속 모이기 부담스러울 듯하다

황: 한 챕터를 클리어했을 때 야외로 나와 보상을 얻고 끝내는 게 가능하다. 그러면 재도전 시 다시 1챕터부터 플레이해야 한다. 대신 게임을 반복하는 와중에 점차 숨겨진 요소와 적 대응 방법을 학습하여 클리어가 빨라질 터다. 죽고 실패하며 배우는 과정을 포함하여 10시간이란 것뿐, 완전히 숙달된 4인 파티를 가정한다면 3챕터까지 2시반 반에서 3시간 정도다.

● 4인 CO-OP 기반인 만큼 혼자 플레이하면 난이도가 맞지 않을 텐데

황: 그렇지 않다. 혼자서도 충분히 클리어할 수 있다. 물론 나는 오랫동안 테스트를 진행하며 숙달된 편이긴 하지만. 그저 멀티 플레이처럼 쓰러졌을 때 아군이 와서 구해주거나 하는 이점이 없을 뿐이다.

● 앞으로 추가 챕터나 캐릭터, 몬스터 등 콘텐츠 업데이트를 계획 중인가

황: 4챕터 추가가 목표이긴 한데, 기술적인 고려사항이 적잖아서 여전히 고민 중이다.

● 과거 스팀 VR서 ‘좀비 버스터즈’로 고배를 마셨는데, 재차 도전하는 까닭은

김홍석 대표(이하 김): 사실 ‘좀비 버스터즈’는 VR 테마파크에 들어갈 콘텐츠였다. 당시 VR 테마파크는 어디까지나 짧고 강렬한 경험으로 최대한 회전율을 높이는 게 중요했다. 2018~19년 즈음이니 직원이 HMD 껴주고 벗겨주는 데만 3분씩 걸렸다. 즉 플레이 타임이 10분만 넘어가도 업주 입장에서 수지타산이 안 맞는 거다. 그래서 ‘좀비 버스터즈’도 12분짜리 게임이었고 스팀 환불 정책에 괴리된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출시를 강행했던 건 스팀이 어떤 시장인지 직접 경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메타 점유율이 80% 이상이지만 하나의 플랫폼에 올인하긴 위험 부담이 있다. 스팀 역시 15% 정도로 영향력이 많이 올라온 터라 ‘스펙트럴 스크림’으로 재차 도전하게 됐다.

● 아무래도 이 장르는 유튜버 등 인플루언서 마케팅이 중요하지 않나

황: 북미를 중심으로 여러 메가 유튜버에게 게임을 전달했다. ‘스펙트럴 스크림’ 자체가 다양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게임이고 그러한 재미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게 유튜버 크리에이터 등 인플루언서들이라 본다. 앞으로 많은 분들과 최대한 스킨십하며 관련 콘텐츠를 만들어갈 예정이다.

신혜련 CPO(이하 신): 뿐만 아니라 스팀에서 보여지는 이미지 하나하나까지 미니 테스트를 거쳐 들어갔다. 아무래도 알파 세대를 겨냥한 장르에다 글로벌 서비스라 우리가 함부로 추측하지 않고 데이터 기반으로 접근하려 한다. 크리에이터 선정 역시 이 장르에서 가장 전환 반응이 우수한 분들을 선택했다. 앞으로의 콘텐츠 업데이트도 수집한 피드백과 더불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유저 니즈를 파악할 것이다.

● ‘탱크 아레나: 얼미팃 리그’는 전작의 세계대전이 아닌 SF 컨셉을 택했다

최윤화 대표(이하 최): 물론 세계대전을 원하는 밀리터리 팬덤이 존재하지만 VR 시장은 또 다르다. 그 중에서 메타와 스팀 VR의 유저 성향 및 소비 배턴조차 상당히 다르다. ‘탱크 아레나: 얼미팃 리그’의 경우, 명확히 메타에 집중한 작품으로 이 스토어서 어떤 컨셉이 잘 먹히는가 면밀히 분석했다. 비비드한 색감과 입체적인 캐릭터 묘사, SF 컨셉 등이 그러한 고민의 결과다. 또한 북미를 중심으로 알파 세대의 유저들이 게임을 하나의 SNS처럼 활용하는 모습을 보고 커뮤니티 요소를 강화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이제껏 만들어온 게임이 아니라 새로운 문법으로 접근하는 만큼 조금 떨리기도 한다. 각종 퀘스트와 아레나패스 등 지속적으로 콘텐츠가 공급되는 가운데 커뮤니티를 통한 선순환이 일어나길 바라본다.

● VR로 즐기는 FPS, 그것도 전차전이 줄 수 있는 고유한 재미가 무엇일까

정욱진 PD(이하 정): 가장 어려웠던 지점이다. 전작의 경우, 탱크마다 장전 방식을 다르게 만들었더니 어려움을 느끼는 유저가 많았다. 2차 세계대전 컨셉의 VR 게임을 할 정도면 어느 정도 연령대나 숙련도가 받쳐줄 텐데도 어렵다는데, 그보다 타깃이 더 어린 ‘탱크 아레나: 얼미팃 리그’는 어떻겠나. 그래서 복잡한 기능은 과감히 덜어내고 레버를 잡아 내리거나 당기는 수준의 조작만 남겼다. VR 게임 고유의 재미는 다소 떨어지더라도 팀 파이트에서의 역할 수행에 중점을 둔 작품이라 괜찮다고 판단했다.

● 그래픽이 훌륭한데, VR 게임 특성상 최적화가 쉽지 않았을 듯하다

정: 전차의 경우 집중적으로 보여줄 오브젝트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조종석에 탑승했을 때 레버나 버튼 등이 가장 먼저 보일 테고 그 텍스처 품질을 통해 게임의 첫인상이 결정된다. 사실 외부로 보이는 맵은 그렇게 높은 품질의 텍스처를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 지난주까지만 해도 퍼포먼스 문제로 골머리를 썩었는데 다행히 지금은 크게 개선된 상태다.

● 맵이 살짝 좁다는 인상을 받았다. 사양 탓에 더 큰 맵은 불가능한지

정: 그와 반대로 전차 여덟 대가 중앙에 모였을 때 가장 사양을 탄다. 나를 제외한 일곱 전차가 모두 화면에 표시되니 어쩔 수 없다. 따라서 맵이 넓으면 오히려 사양 걱정을 덜어낼 수 있다. 그럼에도 맵을 좁게 설계한 건 각자 역할에 맞춰 팀 파이트를 펼친다는 감각이 희석되지 않도록 안배한 바다. 만약 맵이 지금의 3~4배 크기가 된다면 모두가 하나의 목표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다.

● 여덟 명이 다 모이려면 오래 걸릴 수 있다. AI 플레이어도 지원하는가

정: AI 플레이어는 이미 지원하는 기능이다. 경기 중인 유저의 최근 전적 열 판을 기준으로 그 점수에 맞는 AI 플레이어가 들어간다. 즉 내가 잘하면 상대 AI도 그만큼 고수가 되는 셈이다.

최: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현재 LLM(대규모 언어 모델) 기반의 AI 에이전트 연구 개발을 진행 중이다. 현재 VR 시장의 중심은 북미와 유럽이다. 그 외 지역에선 게임이 대박을 치지 않는 한 매칭 문제로 악순환이 벌어지기 쉽다. 결국 어느 정도 AI에 의존하게 되는데 전차를 움직이고 싸우는 수준까진 어려울 게 없으나 라운지서 함께 소통하는 건 한계가 있다. 그래서 당장 적용하긴 어렵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일종의 휴먼 라이프 AI를 개발하려 한다. 앞으로 2년 정도 지나면 충분히 우리 게임에 활용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업데이트 주기를 어느 정도가 될지, 신형 전차도 준비 중인지 궁금하다

정: 업데이트는 보름마다, 그러니까 2주 단위로 진행하겠다. 주로 밸런스 패치가 될 텐데 핫픽스가 필요한 경우는 즉시 반영도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해뒀다. 출시 후 두어 달 가량 서비스를 안정시킨 다음에는 시즌 업데이트와 함께 새로운 전차도 선보일 계획이다.

● 정가가 19.99달러다. 커뮤니티 형성을 위한 저가 정책도 고려했을 법한데

최: 일단 위시 리스트에 넣고 할인을 기다리는 스팀과 달리 메타는 오히려 너무 저렴할 때 그 원인을 걱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아레나패스 등을 고려할 때 19.99달러가 무조건 적정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 ‘월드 워 툰즈: 탱크 아레나’를 구매했던 유저에게 파격적인 세일 코드를 배포하거나, 메타 스토어서 지원하는 여러가지 할인 정책을 활용하려 한다. 정가를 너무 낮췄다가 향후 메타 스토어 전체 프로모션에 발맞추기 힘들 수 있다. 자칫 서버 유지 및 운영에 부담이 커질 수 있어 지난주까지도 계속 논의한 지점이다.

● 올해가 창사 10주년이다. 줄곧 VR 시장에 도전해온 소회를 전한다면

김: 단군 신화를 보면 곰이 웅녀가 되려고 100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는다. 그런데 50일즈음 되었을 때 어땠을까. 여전히 곰이었지 않을까. 그동안 손이라도 사람처럼 바뀌었다면 호랑이가 도망치지 않고 버텼을 터다. 우리 VR 업계도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 토마스 쿤이 과학 혁명을 이야기할 때 중간중간 큰 변곡점이 있다. VR 역시 ‘오큘러스 퀘스트’, ‘HTC 바이브’, ‘메타 퀘스트 2’ 그리고 아직 비싸서 널리 보급되진 않았지만 ‘비전 프로’가 또 나왔다. 기술이 발전하고 콘텐츠 수준도 계속 올라간다. 저 애플이 참전하고 중국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여태껏 버텨왔다면 이제는 날아갈 시기가 다가온다. 우리만 잘하면 될 것 같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