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GS]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 3, 지나치게 가벼운 피사로 전생
JRPG라는 용어가 널리 쓰일 만큼 RPG 장르에 진심인 나라 일본. 그곳에서 국민 RPG라 할만한 입지를 지닌 작품이 바로 ‘드래곤 퀘스트’다. 1986년 첫 선을 보인 이래 정식 넘버링만 열두 편, 외전까지 더하면 셀 수조차 없으며 ‘아벨 탐험대’, ‘타이의 대모험’ 같은 코미컬라이즈 역시 대성공을 거뒀다. 그간 쌓인 캐릭터와 몬스터 등 관련 설정도 방대해 따로 모아다 뭔가 내도 되겠다 싶었으니. 실제로 이러한 흐름을 타고 나온 기획이 98년작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였다. 부제가 말해주듯 늘상 용사에게 당하기 바쁘던 몬스터를 주역으로 내세운 것.
다만 그 많은 외전을 전부 유지하긴 쉽지 않을 터.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 역시 1편 ‘테리의 원더랜드’와 2편 ‘마르타의 이상한 열쇠’를 끝으로 넘버링이 제자리걸음이다. 3DS 리메이크 ‘이루와 루카의 신기한 열쇠’까지 헤아려도 거의 10년 전이라 잊힌 건 아닌가 싶었는데. 지난 5월, 시리즈 25주년 기념작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 3 마족 왕자와 엘프의 여행’이 깜짝 공개되어 스퀘어에닉스가 ‘드퀘몬’을 기억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심지어 ‘드래곤 퀘스트 4’ 최종 보스이자 인기남 피사로가 주인공으로 낙점. 과연 재미도 여전할지 체험판을 통해 살펴봤다.
시리즈 25주년을 맞아 오랜만에 돌아온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
'드래곤 퀘스트 4' 최종 보스이자 인기남 피사로가 주인공을 맡았다
국민 RPG 속 몬스터를 영입하고 배합하라
세계 최강 몬스터 마스터(진짜 공식 명칭…)를 향한 피사로의 여정은 로잘리가 아직 무명의 엘프 소녀였던 시절, 숲속 마을 로잘리 힐에서 출발한다. 그러니까 로잘리 힐의 어원이 로잘리인 게 아니라 로잘리 힐이 로잘리의 어원이라는 듯.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 3’가 어디까지 정사인지 애매한데 일단 본작에서의 설정은 그렇다. 아직 ‘드래곤 퀘스트 4’서 풍기던 흉흉한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 청년 피사로는 어떠한 경위로 공격 불가의 저주가 걸린 상태. 말 그대로 직접 누군가를 공격하는 게 불가능한지라 대신 싸워줄 몬스터 무리를 육성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아마도 대부분 ‘포켓몬스터’를 떠올리지 싶다. 하지만 실제 게임 플레이는 가벼운 ‘여신전생’에 가까운데, 심볼 인카운터로 다대다 전투를 치르고 배합 시스템까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획에서 콘텐츠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몬스터 가짓수는 무려 500마리 이상. 솔직히 ‘드래곤 퀘스트’가 오래된 시리즈라 한들 이렇게나 몬스터가 다양한 줄 상상도 못했다. 이들 몬스터는 저마다 태생 성능에 따라 랭크가 나뉘고 공격, 수비, 민첩, 총명 수치와 빙결, 전격, 폭발 등 내성을 지닌다. 이 역시 ‘포켓몬스터’보단 ‘여신전생’을 연상케 한다.
청년 사절 피사로는 직접 공격이 불가능해지는 저주에 걸렸던 모양
결국 포ㅋㅔ…가 아니라 몬스터 마스터를 목표로 정진하기로 한다
여행길에 동행하는 몬스터는 보통 여덟 마리로 전투원이 넷, 예비대도 넷이다. 다만 사이클롭스 같은 대형 몬스터의 경우, 굉장히 강력한 대신 혼자 두 자리를 차지한다. 만약 정원이 가득 찼는데 또다른 몬스터를 영입하면 누구 하나는 목장으로 보내진다. 앞서 언급했듯 심벌 인카운터이므로 동료로 삼고픈 몬스터가 보이면 얼른 다가가자. 몬스터볼스러운 전용 도구나 ‘여신전생’ 같은 설득 절차는 없고, 전투 메뉴 중 스카우트 어택을 고르면 확률에 따라 영입의 성패가 갈린다. 당연히 실제 공격은 아니라 스카우트 어택에 맞아 죽지 않으니 걱정 말자.
그저 오가며 조우하는 몬스터를 영입하는 것도 괜찮지만 뭔가 진행이 더디다 싶으면 배합의 사당을 방문할 때다. 레벨 10 이상의 몬스터 2체를 받쳐 아직 필드서 보기 힘든 상위 랭크까지 노려볼 수 있다. 설령 배합 결과가 동일 랭크에 그치더라도 재물에게서 스킬 및 SP를 계승하여 야생 몬스터보단 훨씬 쓸만하다. 배합식은 원하는 몬스터 2체를 직접 골라도 되고 결과부터 선택한 다음 재료를 확인해도 된다. 여러모로 ‘여신전생’과 겹쳐보지 않을 수 없는데, 본작 역시 무수한 배합으로 최강의 몬스터를 낳는 게 실질적인 엔드 콘텐츠 아닐까 싶다.
필드서 영입하고픈 몬스터 발견 시 접촉을 통해 전투 장면으로 전환
스카우트 어택을 날려서 영입 확률을 충분히 끌어올리면 성공이다
가벼움도 좋지만 깊이까지 잃은 건 아닌지
국민 RPG로 친숙한 몬스터들을 영입하고 배합을 통해 더욱 멋지고 강력한 존재로 바꿔간다는 기획은 나무랄 데 없다. 이미 훌륭한 선례가 존재하니 후발주자로선 잘 닦인 길을 따라가기만 해도 괜찮다. 거기다 ‘여신전생’은 특유의 세기말적 컨셉과 기괴한 디자인 탓에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라 왕도 판타지인 ‘드래곤 퀘스트’가 대중성면에서 유리하기까지. 그렇기에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 3’가 추구하는 방향성을 한 문장으로 풀자면 ‘가벼운 여신전생’이다. 문제는 가벼워도 너무 가볍다는 것. 쉽고 재미있다는 게 아니라 헐겁고 어설픈 쪽으로 말이다.
일단 첫인상부터 실망감이 앞선다. 평소 그래픽에 그리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은 필자조차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 3’는 보자마자 한숨이 튀어나왔다. 그래픽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성의가 부족하다 느꼈기 때문이다. 뭉개진 텍스처와 오브젝트 몇 개쯤 대충 흩어 둔 필드는 이 작품이 얼마나 저렴한 기획의 산물인지 단적으로 드러낸다. 애써 ‘드래곤 퀘스트’ 감성이라 포장하기에도, 닌텐도 스위치의 성능 탓으로 돌리기에도 반박할 만한 예시가 얼마든지 있다. 그 와중에 로딩이 길고 잦기까지 하니, 12월 정식 출시를 앞두고 최적화에 전력해야 하겠다.
겉포장보다 알맹이가 중요하다지만 2023년에 이런 그래픽은 좀…
이벤트신도 어설퍼 모처럼 피사로와 로잘리의 전일담이 밋밋하다
피사로씩이나 내세운 것치고 스토리 역시 무성의하다. 짧은 체험만으로 단언하기 조심스러우나 솔직히 더 해봐도 달라지진 않을 듯하다. 왜냐하면 본작에서 스토리란 피사로가 몬스터 마스터 노릇을 하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구실일 뿐이니까. 피사로와 로잘리의 첫만남, 그들 뒤에서 암약하는 에빌프리스트 등 ‘드래곤 퀘스트 4’ 전일담스러운 내용을 다루긴 한다. 온통 조잡한 이벤트신과 짧은 스크립트로 때워서 그렇지. 게임 자체가 로잘리 힐 중심으로 몇몇 필드와 아레나를 오가는 단출한 구성이라, 계절에 따른 경로 변화가 그나마 이채로운 지점이다.
끝으로 전투의 경우, 아군과 적 몬스터가 서로 차례대로 치받는 것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다. 십여 가지 특성과 내성으로 약점을 찌르는 건 ‘여신전생’스럽지만 정작 이쪽은 핵심인 프레스 턴 시스템이 없으니까. 대신 위기에 빠진 몬스터가 갑자기 분전하는 버스트가 추가됐으나 전략적 활용도는 다소 미묘한 편. 결국 레벨로 찍어누르면 그만이라 자연스레 노가다로 빠지는데, 게임 내에서 2배속 및 자동 전투까지 지원하며 부추기는 감이 있다. 전투의 깊이가 얕으니 몬스터를 어떻게 육성할지 목표도 불분명해지고 배합의 재미조차 반감되는 악순환이다.
'여신전생'이 그러하듯 결국 끊임없는 배합이 본작의 엔드 콘텐츠
게임 자체는 로잘리 힐과 필드, 아레나를 오가는 단출한 구성이다
출시까지 아직 3개월, 개선의 기회는 있다
본가의 높은 위상과 별개로 외전은 어디까지나 외전. 저마다 방향성도 무게감도 다르다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도 ‘드래곤 퀘스트’라는 간판을 내건 이상 다들 기본은 한다는 신뢰가 있었다. 소싯적 ‘토르네코의 대모험’은 물론이고 ‘드래곤 퀘스트 히어로즈’와 ‘드래곤 퀘스트 빌더즈’도 준수했다.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 1, 2편 역시 맛 들리면 수백 시간은 즐길 만하고. 그러다 작년 말 ‘드래곤 퀘스트 트레저즈’부터 불안하더니 본작 ‘마족 왕자와 엘프의 여행’까지 내내 걱정스러운 지경이다. 똑같이 9월 15일 체험판을 배포한 ‘스타 오션’과 너무 대비된다.
다름아닌 시리즈 25주년 기념작 아닌가. 굳이 10년 가까이 침묵하던 ‘드래곤 퀘스트 몬스터즈’를 부활시켰을 때는 그만한 각오와 포부가 있었을 텐데. 기기가 닌텐도 스위치임을 감안하더라도 2023년에 이 그래픽은 아니지 싶다. 피사로와 로잘리의 재등장도 팬들에게 못다한 이야기를 전하기 보다 캐릭터 인기에 편승 좀 하겠다는 비릿한 의도가 먼저 읽힌다. 그럼에도 1, 2편서 호평 받은 중독적인 게임성을 충실히 계승했다면 좋겠으나, 체험판 감상으로는 반신반의다. 모쪼록 세간의 반응을 면밀히 살펴 12월 제품판은 완성도에 만전을 기하길 바란다.
재미가 없기 힘든 기획인데, 그래도 너무 성의가 부족하지 않은지
정식 출시까지는 아직 3개월이 남았다. 모쪼록 완성도를 더 높이길
|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