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에...??? 할아버지!!! "
이른 아침부터, 코콧트 마을 촌장의 집 마당에서는 어린티를 벗어난 듯한 소년 두명이 촌장이신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놀라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말투로 카츠가 촌장을 향해 되물었다.
" 듣지 못했느냐... 이제부터 너희의 실력을 잘 알았으니, 처음 기본 훈련부터 다시 시켜야겠다는 말이다. "
" 말도 안돼요! 저희도 이젠 초식공룡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실력이 있단 말이예요. "
" 초식공룡 정도는 죽기 직전까지도 공격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나 잡을 수 있다. "
" 그래도 저희도 이젠 마을에서 어엿한 사냥꾼으로 불리고 있어요. 가끔 돼지를 끌고 돌아다니는 잡상인 아저씨도 우리를 보면 어이~ 꼬마 사냥꾼, 하며 부른단 말이예요. "
" 그건 옆집 5살바기 루니에게 꼬마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
애초부터 촌장은 비록 남이지만, 친자식 처럼 키웠던 카츠와 테오 두 형제에겐 사냥꾼처럼 위험한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둘이는 워낙 열성적이고 특히나 생각이 깊은 카츠가 언제부터인지 부모님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남몰래 훈련연습을 한다는 걸 알고 지켜본터라 더더욱 말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사냥꾼이란 것은 너무나도 확실히 위험한 일이었다.
때때로 일거리를 찾아 들어오는 사냥꾼들을 따라 허드렛일을 하며 배우고 자라온 막무가내의 솜씨라, 둘이 합쳐봐야 아직은 겨우 람포스 한 두마리 정도밖에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약간은 위험한 얀쿡정도의 비룡을 사냥하는 일을 시켜 그들 스스로가 두려워서 다시는 사냥터에 가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예상은 맞았지만, 두번째는 보기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얀쿡사냥의 실패에 의해 쳐져있던 것도 잠시...
이들이 다시금 사냥일을 맡겨 달라고 조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할아버지... 제발요. "
" 안돼! 사냥꾼이란 직업은 항상 목숨을 담보로 선택해야 하는 직업인것을... 너희들처럼 미숙한 어린애들이 장난삼아 할게 아니란 말이다! "
" 할아버지도 어렸을적부터 이름있는 사냥꾼이셨잖아요. 저희 기분을 잘 알거 아니예요. "
" 난 집도 부모도 형제도 없었다. 키워주고 가르쳐준 내 주위에는 사냥꾼들 뿐이었지. 거기서 내가 해야 할일이 다른 무엇이 있었겠느냐. "
" 저희도 부모님이 없는건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좀 더 훈련하고 꼭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예요. "
" 이제보니 이놈들이... 안된다면 안되는 줄 알거라. 앞으로 너희의 일은 내가 결정해서 시켜주도록 하마. "
" 할아버지..... "
더 이상 들을것도 없다는 듯 촌장은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들의 복수다짐을 확연히 눈치챈 촌장은 아이들을 더 이상 사냥일에 빠지게 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해 볼 수밖에 없겠군... 공포심보다는 너무 쉬운 일로 아이들이 헌터일에 싫증을 느끼고 질려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방법을 쓰는게 나을듯 했다.
창가로 가서 밖에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뜰에서 풀이 죽은체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니 괜시리 약한 마음이 드는가 싶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 나중에 혹시라도 저 아이들을 잃어버린 후회를 하는 것 보단 낫겠지... '
아이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듯이 촌장은 창문을 닫았다.
마을에서는 벌써부터 해마다 치루는 연례행사인 '사냥꾼의 축제' 준비로 떠들썩 대고 있었다.
집집마다 뜰에서 축제 준비를 위해 가지각색의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고 냄새를 맡은 개들과 고양이가 침을 삼키며 사람들이 고기라도 한 점 던져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밖에 있는 초식룡을 길러 고기를 팔고 있는 한 목장의 울타리 옆에선 카츠와 테오가 축제를 위한 고기를 굽고 있었다.
" 테오... "
" 왜, 카츠 형... "
" 어째서 비룡을 잡고 있던 우리가 이 뜨거운 날에 마을 구석에서 고기나 굽고 있는것이냐. "
" 나도 말하기 싫어 형... 축제하니까, 도와야 한다잖아. 이것도 일이라는데 별 수 없지... "
" 내 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이런것 정도밖에 없냐는 것이지. "
" 할 수 없지 뭐... 사냥꾼 무리에선 할아버지의 말이 절대적이라는 거 형도 잘 알잖아. "
테오는 이미 체념한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굽고 있었다.
나름대로의 멋진 해석에 카츠도 고개를 끄덕이며...
" 하긴... 그렇지. 우리는 사냥꾼 이었지. 사냥꾼이니 할아버지 말은 들어야겠지? "
" 그러니까, 고기나 잘 굽고 있자구. "
" 네 고기는 지금 타는 거 같은데? "
" 앗 뜨거... 형이 말 시키는 바람에 타버렸잖아! "
하지만, 카츠와 테오는 요즘 하는 일에 대해서 적잖은 불만이 쌓여 있었다.
무슨 일인지, 자신들의 차례가 되면 으례 돌아오는 일이 항상 생고기를 마련하는 것이나 약초캐기 등의 허드렛일 수준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 동안을 투덜대며 고기굽는 둘은 얼굴에 부아가 치밀어 올라 있었다.
" 형... "
" 왜... "
" 있다 저녁때는 약초하고 뒤뜰에 말려놓은 버섯으로 회복약 만들어 놓으래... "
" 제길! 아... 난 더 이상 못하겠다. "
고기를 굽다가 구석에 던져버리고 카츠는 뒤로 벌러덩 누워서 버렸다. 테오도 이젠 질렸는지 카츠의 옆에 누워 버리고...
둘은 한참을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렇게 누우니까... 예전에 살던 집 생각 난다. "
" 난 잘 모르겠어... "
" 하긴... 넌 그 때 너무 어렸으니까... "
" 그땐 어땠는데, 형...? "
" 글쎄... 나도 생각은 잘 안나지만, 아주 그리운 느낌이랄까... "
"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줘... "
" 음... 일단, 우리는 좀 많이 혼났었던 걸로 기억해. "
" 흐음... "
" 그리고... 항상 저녁때가 되면 아빠가 돌아오실 때 주머니에서 뭘 하나씩 꺼내주곤 했었지. "
" 아하... "
" 엄마는 매일 말썽만 부리는 우리에게 야단만 치는 거 같았는데도 지금 생각하면 무척 따뜻한 분이셨어. "
" 그 다음은...? "
" 그 다음은... ............ "
순간 카츠의 머리속에 칠흑같던 그날 밤의 일이 스쳐 지나갔다.
빨간눈을 바라보며 점점 멀어지던 아버지의 뒷모습과 피를 흘리며 커다란 동물의 발밑에 쓰러져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교차되는 순간...
카츠는 고개를 돌려 기억을 지우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테오는 형의 이상한 모습에 의아해 한다.
" 형... 왜 그래? "
" 별 일 아냐. 아무것도... "
" 아닌데... 형, 무슨 일 있는거 같은데? "
" 관두자... 너에겐 설명할 방법이 없어. 고기나 계속 굽자. "
벌떡 일어나 옷을 털어버리고 다시 고기를 구우려 하는 카츠를 보며 테오는 말해주지 않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형의 의연해 하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분위기를 직감한체 아무말도 하지 않고 형을 따라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 여어~ 친구들. 말 좀 묻게나! "
목장 울타리 너머에서 웬 굵직하고 호탕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카츠와 테오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 친구들... "
" 묻게나??? "
느닷없는 애늙은이의 말투에 어색해진 카츠와 테오는 굽던 고기를 잠시 옆에 두고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 바쁜 것 같아 미안하네만, 코콧트 마을에서 사냥 수주정보를 맡고 계시는 분이 누군지 물어봐도 될까나? "
생전 첨 들어보는 재미있는 어투를 쓰고 있는 그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얼핏보면 앳된 청년티가 가시지 않는 또래로 보였었다.
그를 보고 의아해하던 두 형제... 카츠가 먼저 물어보았다.
" 누구인지 알고는 있소만, 무슨 일로 찾는지 여쭤봐도 될까나? "
그와 똑같은 말투를 흉내내며 되묻는 카츠를 보며 테오는 옆에서 웃어대고, 그 의문의 건장한 사나이 또한 크고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 하하하핫! 이거 말이 통하는 친구 같은데 내 가까이 가서 함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 "
울타리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카츠와 테오형제에게 다가온 그는 목에 두르고 있던 짐을 풀고 뒷자리에 놓은체 깔고 있었다.
가벼운 짐이라 여겼었던 그 물건은 가까이에서 보니 상당히 큰 물건이었다. 그의 덩치가 커서 작게 보였을지도... 그런데, 저 짐에서 삐져나온 막대기는 뭘까...?
카츠와 테오를 바라보며 한번 씨익~ 웃은 그는 계속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 이 마을에 살고 있는것 같은데, 내 소개를 먼저 하지 않았군. 내 이름은 바티스라고 하네만... "
" 난 카츠, 그리고 저기는 테오. 우리는 형제이오만... "
" 하하하핫, 그 말투 참 맘에 드는데? "
" ... 감사하오... "
" 자 이제 아까 물어본 말에 대해 다시 묻고 싶소만... "
" 잠깐, 그 전에 우리도 물어볼 말이 있소... "
" 음... 그럼, 내가 먼저 대답해 주는걸로 양보하지. "
" 도데체, 지금 깔고 있는 그 막대기가 삐져나온 동그란 물건은 무엇인지... "
"... ???... 아... 하하하. 이거...? "
자리에서 일어나 막대기를 잡고 그 커다란 물건을 위로 번쩍 들었다.
꽤나 무거워 보였는데 한손으로 쉽게 들어내는 것이 대단한 완력의 소유자였다.
" 이것은 머나먼 우리 미르마을에서부터 위험한 산과 계곡을 지나 나를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하게 해준 중요한 물건이지. "
" ...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그냥 깔고 앉아있어도 되는건지...? "
" 어찌됐던 이모저모로 꽤 쓸만한 물건이니까, 이렇게 쓸모가 많으니 꽤 중요할 수밖에. "
" .................. "
바티스는 계속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코콧트 마을에서 꽤나 먼 미르라는 지방에서 할아버지의 소개장을 들고 사냥꾼이 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그 전에 하던 일은 미르라는 마을이 원래 초식공룡을 대량으로 목축하여 고기를 생산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자신의 꿈과 전혀 맞지가 않아서 혼자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 흠... 그렇군. 공룡 돌보는 거나 날고기 굽는데는 아주 전문가 수준이겠군... "
" 뭐 전문가까지는... 자, 그럼 이제는 내가 아까 물어본 말에 대해 대답해 줄 차례인거 같소만... "
" 잠깐... 일단 질문이 어렵고 가르쳐주기도 힘드니, 우리도 조건이 있소... "
" 흠... 까다로운 친구들일세? 무엇인지 들어나 봅시다... "
카츠는 천천히 그의 시선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 일단 이 고기를 좀 같이 구웁시다. "
여기는 촌장의 집 정원...
문앞에서는 촌장이 미르에서 가져온 소개장을 읽고 있었고, 앞에는 바티스가 커다란 덩치를 낮게 구부리며 앉아 있었다. 정원 구석의 나무 그늘에서는 카츠와 테오가 촌장과 바티스의 눈치를 살펴보고 있었다.
촌장은 소개장을 다 읽어본듯...
" 흐음... 그럼 네가 바로 그 코메론 영감의 손자란 말이냐? "
" 네. 그렇습니다. "
" 그래? 아직... "
" 안 죽고 살아있다고 꼭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
" .......... 여전히 넉살좋은 늙은이군... "
구석에서 촌장 할아버지와 바티스의 눈치를 살펴보던 카츠와 테오...
" 형, 아무래도 저 사람 이제 신참으로 들어올거 같지? "
" 글쎄... 그런데, 우리 또래로 보이는데, 할아버지가 아직 어려서 위험하다고 거절하시지 않으실까? "
" 그거야 우리는 아직 제대로 성공한 일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몰라. "
" 암튼, 중요한 건... 저 놈이 들어오면 이제 우리의 후배가 된다는 말이지... "
촌장 할아버지와 바티스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 저희 할아버지와 예전부터 아시는 사이셨는지... "
" 그럼, 잘 알다마다. 예전에 젊은 사냥꾼 시절에 잠시 미르지방에서 있었던 적이 있었네. 그 때 아주 톡톡히 신세를 진 적이 있지. "
" 저희 할아버지가 촌장님이 위험하실 때 생명의 은인이셨거나, 많은 도움을 주신 모양이군요. "
" 허허허... 그 반대일세... "
" 무슨 말씀이신지... "
" 내 덕분에 자네 할아버지는 자네의 할머니를 만나게 됐으니 자네가 세상에 나오게 된 건 내 역할이 컸다고 할지도 모르겠군. 내가 아니었으면 그 늙은이 아직 장가도 못 갔을테니... "
" ................. "
" 뭐,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후회는 없네. 오늘은 늦었으니 이 소개장을 들고 집 뒤에 있는 여관으로 가서 쉬게나.... "
" 그럼, 내일 당장이라도 일을 할 수 있나요? "
" 허허허... 젊은이라 성격이 급하군.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일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야... 때가 있고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있는 법이지. 여기 코콧트 마을에서 내가 사냥꾼들에게 전달하는 일은 근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 이라네. "
" 그렇다면... "
" 일단은, 자네도 이제 들어온 신참이나 다를바 없으니 내일부터 며칠간은 기본적인 훈련으로 지형도 익혀두고 요령도 배워보도록 하게. "
" 알겠습니다... "
" 흠... 그렇다면 이 일에 적합한 인솔자는 누구를... "
이 때를 놓칠세라 카츠와 테오가 번개처럼 뛰쳐나왔다.
" 할아버지!!! "
" 이녀석들..... "
" 저희가 할게요! 네? 할아버지!!! "
" 흠... "
" 할아버지... 이 근처 지리라면 저희에겐 손바닥 보는 일보다 쉬워요! "
" 내 손자들이라네... 듣기로는 손님인 자네에게 초면부터 실례가 많았다는... "
" ...................... "
바티스는 넉살좋게 웃어넘겼다.
" 하하하! 아닙니다. 덕분에 처음 온 곳인데도 긴장감이 풀어져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예전에 매일 하던 일이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구요. "
카츠가 옆에서 핑계삼아 한마디를 했다.
" 네, 사실 저희도 손님이라는 걸 눈치챘지만, 시켜주신 일에 대해 좀 더 전문가의 솜씨를 지켜 보고자... "
" 시끄럽다. 간단히 해보라는 기본적인 일도 그렇게 요령만 피워서는 절대 훈련이 될 수 없는 법이거늘... "
" ........... "
" 너희에겐 이제부터는 사냥에 관련된 훈련이란 없다! "
" 하... 할아버지.... "
" 잘못했어요... "
바티스에게 고기굽는 걸 시키다 들킨 카츠와 테오는 할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꾸중을 들으며 시무룩해지려던 찰나에 할아버지의 한 말씀...
" 그 대신 벌로 내일부터 바티스가 이 곳 지리에 익숙해질 때까지 근처 안내자를 톡톡히 해야 한다. "
" 네에.......?? "
바티스도 한 마디 거들었다.
" 하하하. 그럼, 내일부터 잘 부탁하네. 친구들~ "
기쁨에 찬 카츠와 테오...
"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
촌장 할아버지의 집에선 오랜만에 기쁨에 찬 카츠와 테오의 웃음소리가 넘치는 것 같았다.
이른 아침부터, 코콧트 마을 촌장의 집 마당에서는 어린티를 벗어난 듯한 소년 두명이 촌장이신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놀라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다시.. 말씀해 주시겠어요? "
믿기지 않는다는듯한 말투로 카츠가 촌장을 향해 되물었다.
" 듣지 못했느냐... 이제부터 너희의 실력을 잘 알았으니, 처음 기본 훈련부터 다시 시켜야겠다는 말이다. "
" 말도 안돼요! 저희도 이젠 초식공룡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실력이 있단 말이예요. "
" 초식공룡 정도는 죽기 직전까지도 공격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나 잡을 수 있다. "
" 그래도 저희도 이젠 마을에서 어엿한 사냥꾼으로 불리고 있어요. 가끔 돼지를 끌고 돌아다니는 잡상인 아저씨도 우리를 보면 어이~ 꼬마 사냥꾼, 하며 부른단 말이예요. "
" 그건 옆집 5살바기 루니에게 꼬마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
애초부터 촌장은 비록 남이지만, 친자식 처럼 키웠던 카츠와 테오 두 형제에겐 사냥꾼처럼 위험한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둘이는 워낙 열성적이고 특히나 생각이 깊은 카츠가 언제부터인지 부모님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남몰래 훈련연습을 한다는 걸 알고 지켜본터라 더더욱 말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사냥꾼이란 것은 너무나도 확실히 위험한 일이었다.
때때로 일거리를 찾아 들어오는 사냥꾼들을 따라 허드렛일을 하며 배우고 자라온 막무가내의 솜씨라, 둘이 합쳐봐야 아직은 겨우 람포스 한 두마리 정도밖에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약간은 위험한 얀쿡정도의 비룡을 사냥하는 일을 시켜 그들 스스로가 두려워서 다시는 사냥터에 가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예상은 맞았지만, 두번째는 보기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얀쿡사냥의 실패에 의해 쳐져있던 것도 잠시...
이들이 다시금 사냥일을 맡겨 달라고 조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할아버지... 제발요. "
" 안돼! 사냥꾼이란 직업은 항상 목숨을 담보로 선택해야 하는 직업인것을... 너희들처럼 미숙한 어린애들이 장난삼아 할게 아니란 말이다! "
" 할아버지도 어렸을적부터 이름있는 사냥꾼이셨잖아요. 저희 기분을 잘 알거 아니예요. "
" 난 집도 부모도 형제도 없었다. 키워주고 가르쳐준 내 주위에는 사냥꾼들 뿐이었지. 거기서 내가 해야 할일이 다른 무엇이 있었겠느냐. "
" 저희도 부모님이 없는건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좀 더 훈련하고 꼭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예요. "
" 이제보니 이놈들이... 안된다면 안되는 줄 알거라. 앞으로 너희의 일은 내가 결정해서 시켜주도록 하마. "
" 할아버지..... "
더 이상 들을것도 없다는 듯 촌장은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들의 복수다짐을 확연히 눈치챈 촌장은 아이들을 더 이상 사냥일에 빠지게 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해 볼 수밖에 없겠군... 공포심보다는 너무 쉬운 일로 아이들이 헌터일에 싫증을 느끼고 질려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방법을 쓰는게 나을듯 했다.
창가로 가서 밖에 있는 아이들을 지켜보았다. 뜰에서 풀이 죽은체 앉아 있는 아이들을 보니 괜시리 약한 마음이 드는가 싶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 먹었다.
' 나중에 혹시라도 저 아이들을 잃어버린 후회를 하는 것 보단 낫겠지... '
아이들의 안쓰러운 모습을 볼 수 없다는 듯이 촌장은 창문을 닫았다.
마을에서는 벌써부터 해마다 치루는 연례행사인 '사냥꾼의 축제' 준비로 떠들썩 대고 있었다.
집집마다 뜰에서 축제 준비를 위해 가지각색의 음식을 장만하고 있었고 냄새를 맡은 개들과 고양이가 침을 삼키며 사람들이 고기라도 한 점 던져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밖에 있는 초식룡을 길러 고기를 팔고 있는 한 목장의 울타리 옆에선 카츠와 테오가 축제를 위한 고기를 굽고 있었다.
" 테오... "
" 왜, 카츠 형... "
" 어째서 비룡을 잡고 있던 우리가 이 뜨거운 날에 마을 구석에서 고기나 굽고 있는것이냐. "
" 나도 말하기 싫어 형... 축제하니까, 도와야 한다잖아. 이것도 일이라는데 별 수 없지... "
" 내 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이런것 정도밖에 없냐는 것이지. "
" 할 수 없지 뭐... 사냥꾼 무리에선 할아버지의 말이 절대적이라는 거 형도 잘 알잖아. "
테오는 이미 체념한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고기를 굽고 있었다.
나름대로의 멋진 해석에 카츠도 고개를 끄덕이며...
" 하긴... 그렇지. 우리는 사냥꾼 이었지. 사냥꾼이니 할아버지 말은 들어야겠지? "
" 그러니까, 고기나 잘 굽고 있자구. "
" 네 고기는 지금 타는 거 같은데? "
" 앗 뜨거... 형이 말 시키는 바람에 타버렸잖아! "
하지만, 카츠와 테오는 요즘 하는 일에 대해서 적잖은 불만이 쌓여 있었다.
무슨 일인지, 자신들의 차례가 되면 으례 돌아오는 일이 항상 생고기를 마련하는 것이나 약초캐기 등의 허드렛일 수준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던 것이다.
한참 동안을 투덜대며 고기굽는 둘은 얼굴에 부아가 치밀어 올라 있었다.
" 형... "
" 왜... "
" 있다 저녁때는 약초하고 뒤뜰에 말려놓은 버섯으로 회복약 만들어 놓으래... "
" 제길! 아... 난 더 이상 못하겠다. "
고기를 굽다가 구석에 던져버리고 카츠는 뒤로 벌러덩 누워서 버렸다. 테오도 이젠 질렸는지 카츠의 옆에 누워 버리고...
둘은 한참을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 이렇게 누우니까... 예전에 살던 집 생각 난다. "
" 난 잘 모르겠어... "
" 하긴... 넌 그 때 너무 어렸으니까... "
" 그땐 어땠는데, 형...? "
" 글쎄... 나도 생각은 잘 안나지만, 아주 그리운 느낌이랄까... "
"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줘... "
" 음... 일단, 우리는 좀 많이 혼났었던 걸로 기억해. "
" 흐음... "
" 그리고... 항상 저녁때가 되면 아빠가 돌아오실 때 주머니에서 뭘 하나씩 꺼내주곤 했었지. "
" 아하... "
" 엄마는 매일 말썽만 부리는 우리에게 야단만 치는 거 같았는데도 지금 생각하면 무척 따뜻한 분이셨어. "
" 그 다음은...? "
" 그 다음은... ............ "
순간 카츠의 머리속에 칠흑같던 그날 밤의 일이 스쳐 지나갔다.
빨간눈을 바라보며 점점 멀어지던 아버지의 뒷모습과 피를 흘리며 커다란 동물의 발밑에 쓰러져 있던 어머니의 모습이 교차되는 순간...
카츠는 고개를 돌려 기억을 지우려는 듯 눈을 질끈 감았다. 테오는 형의 이상한 모습에 의아해 한다.
" 형... 왜 그래? "
" 별 일 아냐. 아무것도... "
" 아닌데... 형, 무슨 일 있는거 같은데? "
" 관두자... 너에겐 설명할 방법이 없어. 고기나 계속 굽자. "
벌떡 일어나 옷을 털어버리고 다시 고기를 구우려 하는 카츠를 보며 테오는 말해주지 않은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형의 의연해 하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분위기를 직감한체 아무말도 하지 않고 형을 따라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 여어~ 친구들. 말 좀 묻게나! "
목장 울타리 너머에서 웬 굵직하고 호탕한 목소리로 누군가가 카츠와 테오에게 말을 붙이고 있었다.
" 친구들... "
" 묻게나??? "
느닷없는 애늙은이의 말투에 어색해진 카츠와 테오는 굽던 고기를 잠시 옆에 두고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았다.
" 바쁜 것 같아 미안하네만, 코콧트 마을에서 사냥 수주정보를 맡고 계시는 분이 누군지 물어봐도 될까나? "
생전 첨 들어보는 재미있는 어투를 쓰고 있는 그는 가무잡잡한 피부에 건장한 체격을 가진... 얼핏보면 앳된 청년티가 가시지 않는 또래로 보였었다.
그를 보고 의아해하던 두 형제... 카츠가 먼저 물어보았다.
" 누구인지 알고는 있소만, 무슨 일로 찾는지 여쭤봐도 될까나? "
그와 똑같은 말투를 흉내내며 되묻는 카츠를 보며 테오는 옆에서 웃어대고, 그 의문의 건장한 사나이 또한 크고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 하하하핫! 이거 말이 통하는 친구 같은데 내 가까이 가서 함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 "
울타리를 가볍게 뛰어넘으며 카츠와 테오형제에게 다가온 그는 목에 두르고 있던 짐을 풀고 뒷자리에 놓은체 깔고 있었다.
가벼운 짐이라 여겼었던 그 물건은 가까이에서 보니 상당히 큰 물건이었다. 그의 덩치가 커서 작게 보였을지도... 그런데, 저 짐에서 삐져나온 막대기는 뭘까...?
카츠와 테오를 바라보며 한번 씨익~ 웃은 그는 계속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 이 마을에 살고 있는것 같은데, 내 소개를 먼저 하지 않았군. 내 이름은 바티스라고 하네만... "
" 난 카츠, 그리고 저기는 테오. 우리는 형제이오만... "
" 하하하핫, 그 말투 참 맘에 드는데? "
" ... 감사하오... "
" 자 이제 아까 물어본 말에 대해 다시 묻고 싶소만... "
" 잠깐, 그 전에 우리도 물어볼 말이 있소... "
" 음... 그럼, 내가 먼저 대답해 주는걸로 양보하지. "
" 도데체, 지금 깔고 있는 그 막대기가 삐져나온 동그란 물건은 무엇인지... "
"... ???... 아... 하하하. 이거...? "
자리에서 일어나 막대기를 잡고 그 커다란 물건을 위로 번쩍 들었다.
꽤나 무거워 보였는데 한손으로 쉽게 들어내는 것이 대단한 완력의 소유자였다.
" 이것은 머나먼 우리 미르마을에서부터 위험한 산과 계곡을 지나 나를 여기까지 무사히 도착하게 해준 중요한 물건이지. "
" ...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물건을 그냥 깔고 앉아있어도 되는건지...? "
" 어찌됐던 이모저모로 꽤 쓸만한 물건이니까, 이렇게 쓸모가 많으니 꽤 중요할 수밖에. "
" .................. "
바티스는 계속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코콧트 마을에서 꽤나 먼 미르라는 지방에서 할아버지의 소개장을 들고 사냥꾼이 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는 것이었다. 그 전에 하던 일은 미르라는 마을이 원래 초식공룡을 대량으로 목축하여 고기를 생산 판매하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자신의 꿈과 전혀 맞지가 않아서 혼자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 흠... 그렇군. 공룡 돌보는 거나 날고기 굽는데는 아주 전문가 수준이겠군... "
" 뭐 전문가까지는... 자, 그럼 이제는 내가 아까 물어본 말에 대해 대답해 줄 차례인거 같소만... "
" 잠깐... 일단 질문이 어렵고 가르쳐주기도 힘드니, 우리도 조건이 있소... "
" 흠... 까다로운 친구들일세? 무엇인지 들어나 봅시다... "
카츠는 천천히 그의 시선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 일단 이 고기를 좀 같이 구웁시다. "
여기는 촌장의 집 정원...
문앞에서는 촌장이 미르에서 가져온 소개장을 읽고 있었고, 앞에는 바티스가 커다란 덩치를 낮게 구부리며 앉아 있었다. 정원 구석의 나무 그늘에서는 카츠와 테오가 촌장과 바티스의 눈치를 살펴보고 있었다.
촌장은 소개장을 다 읽어본듯...
" 흐음... 그럼 네가 바로 그 코메론 영감의 손자란 말이냐? "
" 네. 그렇습니다. "
" 그래? 아직... "
" 안 죽고 살아있다고 꼭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
" .......... 여전히 넉살좋은 늙은이군... "
구석에서 촌장 할아버지와 바티스의 눈치를 살펴보던 카츠와 테오...
" 형, 아무래도 저 사람 이제 신참으로 들어올거 같지? "
" 글쎄... 그런데, 우리 또래로 보이는데, 할아버지가 아직 어려서 위험하다고 거절하시지 않으실까? "
" 그거야 우리는 아직 제대로 성공한 일이 없어서 그랬을지도 몰라. "
" 암튼, 중요한 건... 저 놈이 들어오면 이제 우리의 후배가 된다는 말이지... "
촌장 할아버지와 바티스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었다.
" 저희 할아버지와 예전부터 아시는 사이셨는지... "
" 그럼, 잘 알다마다. 예전에 젊은 사냥꾼 시절에 잠시 미르지방에서 있었던 적이 있었네. 그 때 아주 톡톡히 신세를 진 적이 있지. "
" 저희 할아버지가 촌장님이 위험하실 때 생명의 은인이셨거나, 많은 도움을 주신 모양이군요. "
" 허허허... 그 반대일세... "
" 무슨 말씀이신지... "
" 내 덕분에 자네 할아버지는 자네의 할머니를 만나게 됐으니 자네가 세상에 나오게 된 건 내 역할이 컸다고 할지도 모르겠군. 내가 아니었으면 그 늙은이 아직 장가도 못 갔을테니... "
" ................. "
" 뭐,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지만, 후회는 없네. 오늘은 늦었으니 이 소개장을 들고 집 뒤에 있는 여관으로 가서 쉬게나.... "
" 그럼, 내일 당장이라도 일을 할 수 있나요? "
" 허허허... 젊은이라 성격이 급하군.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아무일이나 할 수 있는게 아니야... 때가 있고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있는 법이지. 여기 코콧트 마을에서 내가 사냥꾼들에게 전달하는 일은 근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대부분 이라네. "
" 그렇다면... "
" 일단은, 자네도 이제 들어온 신참이나 다를바 없으니 내일부터 며칠간은 기본적인 훈련으로 지형도 익혀두고 요령도 배워보도록 하게. "
" 알겠습니다... "
" 흠... 그렇다면 이 일에 적합한 인솔자는 누구를... "
이 때를 놓칠세라 카츠와 테오가 번개처럼 뛰쳐나왔다.
" 할아버지!!! "
" 이녀석들..... "
" 저희가 할게요! 네? 할아버지!!! "
" 흠... "
" 할아버지... 이 근처 지리라면 저희에겐 손바닥 보는 일보다 쉬워요! "
" 내 손자들이라네... 듣기로는 손님인 자네에게 초면부터 실례가 많았다는... "
" ...................... "
바티스는 넉살좋게 웃어넘겼다.
" 하하하! 아닙니다. 덕분에 처음 온 곳인데도 긴장감이 풀어져서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예전에 매일 하던 일이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구요. "
카츠가 옆에서 핑계삼아 한마디를 했다.
" 네, 사실 저희도 손님이라는 걸 눈치챘지만, 시켜주신 일에 대해 좀 더 전문가의 솜씨를 지켜 보고자... "
" 시끄럽다. 간단히 해보라는 기본적인 일도 그렇게 요령만 피워서는 절대 훈련이 될 수 없는 법이거늘... "
" ........... "
" 너희에겐 이제부터는 사냥에 관련된 훈련이란 없다! "
" 하... 할아버지.... "
" 잘못했어요... "
바티스에게 고기굽는 걸 시키다 들킨 카츠와 테오는 할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의 꾸중을 들으며 시무룩해지려던 찰나에 할아버지의 한 말씀...
" 그 대신 벌로 내일부터 바티스가 이 곳 지리에 익숙해질 때까지 근처 안내자를 톡톡히 해야 한다. "
" 네에.......?? "
바티스도 한 마디 거들었다.
" 하하하. 그럼, 내일부터 잘 부탁하네. 친구들~ "
기쁨에 찬 카츠와 테오...
"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
촌장 할아버지의 집에선 오랜만에 기쁨에 찬 카츠와 테오의 웃음소리가 넘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