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네이버 몬스터헌터 소설게시판에 올렸는데, 간만에 보니 반갑군요. 그냥 심심해서 올려봅니다. 재미는 없습니다. ^^ 시간나면 간간히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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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밤이었다.
창가에는 구름에 반쯤 내비친 달이 마을을 비추고 멀리 보이는 언덕에는 풀벌레들이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조용한 풍경이었다.
벽에 걸린 작은 등잔불빛들이 어두컴컴한 방안을 감싸돌고 그 불빛 아래엔 내일 시장에 팔기 위한 가죽을 다듬고 있는 아버지와 이제 막 잠들기 시작한 어린 형제들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머니가 있었다.
" 이제 잠이 든것 같아요..."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며 아내가 말을 했다.
" 다행이군... 아직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아서 보채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야. "
약간은 피곤한 듯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아버지.
자리에 일어나 아이들을 보며 미소를 지은체 아내에게 다가간다.
" 오늘 낮에 별 일은 없었지? "
" 별 일은요... 테오가 아직도 감기가 심하네요. 저녁때쯤이면 기침이 멎을 줄 알았는데... "
" 녀석들..., 한창때라 그런지 이젠 말도 듣지 않는구먼.
" 어제도 그렇게 말렸는데, 점심먹고 형이랑 벌레 잡으러 간다고 나갔다 오더니 어디서 흠뻑 젖어서 들어와 가지구선... "
" 내일 봐서 따끔히 한 번 뭐라고 해야 할듯 하군. "
남편은 다시금 작업칼을 들고 가죽을 다듬기 시작했다.
" 어렸을 적에는 카츠녀석이 동생보다 몸이 약했었는데 말야... "
" 그러게요. 지금은 동생 보살피고 놀아준다고 벌써 난리법썩이예요. "
" 어제 옆집 개와 참 재밌게 노는거 같던데... 아무래도 내일 시장에서 오는 길에 애완동물이라도 하나 사와야 하나? "
" 안 그래도, 둘 때문에 집안 동네 시끄러운데, 애완동물까지 보태면 몸이 남아나질 못해요... "
" 아이들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아서 좋잖아. "
" 당신도 참... 매일 애들한테는 야단만 치시는거 같더니... "
아이들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남편과 아내... 그들의 입가엔 좀처럼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가끔 잔기침을 하지만, 새근새근 잠이든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은 마냥 행복하게 보였다.
" 그러지 말고, 가끔은 아이들한테 따뜻하게 대해줘 봐요. "
" 둘이 똑같이 얼르기만 하면 쓰나... 아이들 버릇 나빠져. "
" 그렇잖아도 요즘 당신이 너무 야단치시는거 같다고 기침소리도 제대로 못내는 거 같던데. 벌써부터 기죽일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
" 흠... 그렇다면 내일 물건 나가는거 봐서 녀석들에게 줄 선물이라도 하나씩 준비해 볼까... 가끔은 나도 자상한 아버지 노릇도 해봐야지. "
" 선물은 됐으니까, 시장 갈 때마다 만나는 친구들이나 뿌리치고 일찍 좀 들어와요... "
" 이 사람아. 그냥 친구가 아니란 말야... 나와 예전에 목숨을 걸고 함께 한 동료란 말이지... "
벌써부터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될까봐, 가볍게 언성을 높이는 남편은... 아이들을 쳐다보며 아내의 조용히 하라는 손짓에 수그러든 듯 하다.
둘의 대화가 잠시 끝나고... 약간은 머쓱해진 남편은 가죽칼을 들고 다시 일을 하려던 찰나에 아내의 뭔가를 신경쓰는 듯한 얼굴에 의아해 한다.
" 무슨일인데? 갑자기... "
아내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마치 뭔가가 들리는 듯 조용히 귀를 기울이다가...
" 여보...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아요? "
유난히 밤귀가 좋은 아내는, 무언가를 듣고 있는듯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도 잠시 귀를 기울이며 대답하다 뭔가가 들리는 모양인듯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 그러고 보니... "
쿵.......... 쿵..........
아주 희미한것 같지만, 어디선가 커다란 바위가 떨어지는 소리가 간간히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 무슨 소리지...? "
" 글쎄요. 또 성에서 무도회 연다고 축포를 터트리는 게 아닐까요? "
" 이 늦은 시간에 무슨..... 그런데, 땅이 울리는 거 같은데...? "
쿵.......... 쿵.......... 쿵.......... 쿵........... 쿵...........
의문의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 지는 것 같았다. 소리의 진동이 커지며 점점 집안이 흔들리고 유리창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마주보던 두 사람...
결국 남편이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는 순간...
휘유우웅.................. 펑. 펑.................
갑자기 달빛만이 간간히 비추던 창가가 환해지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말을 잠시 멈추고 창밖을 응시했다.
" 무슨 일일까...? "
밖은 깜깜했지만, 멀리서는 사방에서 조명탄이 발사 되는 듯 이따금씩 까만 밤하늘에 밝게 펴지고 있었다.
" 아무래도 성안에 파티라도 열린듯 하네. "
" 그런거 같아요. "
" 가뜩이나 요즘은 장사도 안되서 일찍 나가봐야 하는데, 이렇게 늦게까지 시끄럽게 하면 어쩌자는거야... "
투덜거리며 창가에서 불빛들을 바라보는 남편.... 아내는 조용히 옆에서서 잠시 불빛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는 것이었다.
" 여... 여보... "
뭔가를 보고 놀란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남편을 부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태도에 놀란 남편은 당황한 아내의 한쪽손을 살며시 잡아주며 이야기 했다.
" 왜 그래요? "
" ............. "
조명탄이 터지며 조금씩 환해지는 밖을 보며 말문이 막힌 듯 서서히 놀라는 표정으로 아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 산이... "
" 허허... 이 사람이... 왜 그런지 말을 해요... "
남편은 아내가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창밖을 바라 보았다.
" 산이... 움직여요... "
" 무슨 말인지... 도대체... "
남편도 창밖을 여기저기를 보다 뭔가 발견한 듯 아내와 같은 놀란 표정으로 그것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가까이에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멀리에 있었고 너무나 거대했다.
하지만 조금씩 움직이며 분명히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계곡안에 있는 마을의 집들은 그 정체모를 커다란 산이 움직일 때마다 하나 둘씩 부수어져 갔으며 이 마을이 생기기 전보다 훨씬 더 오래 되었을만한 커다란 나무들도 허무하게 짓밟히고 있었던 것이다.
축포인 줄 알았던 불빛은 사방에서 군인들과 사냥꾼들이 쏘는 조명탄이었다.
간간히 대포를 쏘는 듯한 폭파가 그 커다란 물체에서 일어났지만, 그것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한발씩 커다란 몸뚱이를 옮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광경에 놀라 잠시 말문이 굳어진 아내의 옆에서 남편은 상황판단을 하며 커튼을 젖히고 급히 두 아들들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카츠! 테오! 어서 일어나거라! "
"으음... "
".............. "
" 카츠! 테오! 빨리 일어나라니까! "
아이들은 아직 잠결인지 감기 기운인지 신음 소리만을 내며 일어나지 못하고, 옆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아내가 남편에게 다급히 말하기 시작했다.
" 여보! 아무래도 시간이 없어요. 일단은 그냥 빨리 나가야 할거 같아요! "
" 안되겠다. "
남편은 큰 아들 카츠를 들춰 업고 어머니는 작은 아들 테오를 안았다. 문을 박차듯이 열고 나가는 순간 아내가 남편의 작업책상을 보며 멈칫 하는 것이었다.
" 왜 그래! "
" 저거... 내일 시장에 가져가려고 당신이 열심이 만들어 놓은건데... "
"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야! 빨리 달려! "
카츠를 등에 업고 남편은 아내의 손을 낚아채듯 붙잡고 집밖으로 나왔다.
마을 밖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아우성, 그리고 부서진 우리의 가축들이 요란하게 터지는 총성과 조명탄에 날뛰고 있었던 것이다.
난장판에 서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는 목소리와 미리 눈치를 채고 짐을 꾸려 달려가고 있는 마차 발굽 소리에 분간을 하기가 어려웠다.
" 무슨 일입니까? "
카츠를 업고 있던 남편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소리치며 물었지만, 그 사람은 급한 듯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 계속 달려나갔다. 다른 사람을 찾아 물어보려던 찰나에...
" 이봐! 케르도! "
마을 외곽쪽에서 잡상인을 하는 이안씨였다. 급하게 싼듯한 짐을 짊어지고 뛰다가 남편을 발견한 듯...
" 저건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
" 지금 말 할 상황이 아니네. 괴물이 나타났단 말야! "
"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거죠? 공령도 없었는데! "
" 모르겠어. 윗사람들 말로는 너무 큰 일이라 사냥꾼들과 소집된 군인으로 조용히 마무리 할 모양이었던데, 상대가 상대가 아닌 모양이었던 게지. "
" 아니 그럼, 이 한밤중에도 사냥꾼들과 군인들이 토벌중이란 말인가요? 그것도 이 계곡 마을 안에서?"
남편은 기가 찼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이렇게 무책임하게 주민들을 궁지에 몰릴때까지 내버려 두다니...
" 현재 수습이 안되서 그 괴물놈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네. 빨리 피하게! "
" 이안씨는요! "
" 난 일단 뛰어볼 생각이네! 그런데, 자넨 홀몸도 아닌데, 식구대로 멀리 갈 수도 없잖은가! "
" 어디로 가야 할까요? "
" 일단 계곡이라도 벗어나세. 저 괴물놈이 너무 커서 이 안에서는 피할 방법이 없는거 같으니 마을이라도 빠져나가야 하지 않겠나! "
" 그럼, 마을 밖 강건너의 언덕이라도 올라가죠! "
" 알았네. 빨리 뛰게! "
이안씨는 몰려있는 군중속으로 급하게 사라졌다. 남편은 일단 카츠를 추스려 업고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 여보! 절대 내 손을 놓으면 안돼! "
" 네! 그런데, 여보! 테오의 열이 너무 심해요. 어디서 물이라도... "
" 안돼! 지금은 마을을 빠져 나가야해. 일단 계곡 언덕에 들어가서라도 저걸 피해야 할거 같아! "
남편은 아이들 등에 업은체 아내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마차를 끄는 이름모를 초식동물들이 앞질러 달려갔지만, 숨을 헐떡이며 아이를 안고있는 아내의 손을 이끌며 부지런히 마을밖으로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방의 총소리와 대포소리... 그리고 비명소리를 뒤로 한채 한참을 달리고 있었는데 업혀있었던 카츠가 잠에서 깼는지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 우웅... 어... 엄마... "
금방이라도 울먹이며 울음을 터뜨릴 얼굴이었지만, 아이를 안고 달리는 아내는 너무나 숨이차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 카츠! 가만히 있거라. "
" 어... 엄.... 훌쩍..... "
울먹이며 보채는 카츠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땅을 울리는 듯한 발자국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들리는 듯 했지만, 마을 밖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 때문에 더더욱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옆의 아내는 너무 지쳐 뛰지 못하는지 이제는 거의 끌려오다시피 따라오고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겨우 말을 꺼내려는 듯...
" 여... 여보, 잠시만 쉬었다 가요. "
" 안돼! 이대로 언덕까지는 올라가서 피해야 해요. "
" 그렇지만, 이렇게 한참까지는 떨어졌잖아요. "
테오를 안고 너무 많이 뛰었던 탓인지 아내의 얼굴은 창백했고 카츠도 잠에서 깨어 자꾸 보채고 있었다.
할 수 없다는 듯 남편은 아내에게 말했다.
" 그럼, 일단 언덕 밑에까지라도 갑시다. 여기는 벗어나야 해. "
그리고는 다시 숲속 가장자리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 그렇지만 숲속에는... ... 아냐. 설마 지금 이 시간에는... '
불안한 듯한 생각을 지우며 아내의 손을 잡고 달빛이 어둑해지는 숲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 속이었다.
사방에 나무들의 가지들과 잔나무 때문에 달빛도 스며들 공간이 없는 깜깜한 길을 헤집으며 어떻게든 마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내의 손을 잡고 부지런히 숲속을 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는 아직도 괴물이 마을을 빠져나가지 않았는지 계속되는 울림과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 그리고 군인들과 사냥꾼의 화력에 의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풀벌레 소리와 기분나쁜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깜깜한 가운데, 아버지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 더 깊은 곳은 너무 위험하니, 일단 여기서 잠깐 쉬었다가 소란이 끝나면 마을 집으로 돌아갑시다. "
" 네... 그래요. "
카츠를 업고 오느라 묶어두었던 끈을 풀고 잠시 아이를 내려놓았다. 업고 뛰어오는 동안 잠이 완전히 깼는지 땅에 내려놓자 마자 아이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 엄마... "
" 오, 괜찮아... 안 울지? "
아내는 숨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지만, 울먹이는 카츠를 쓰다듬어주며 달래주고 있었다.
열이 많이 나는 작은 아들 테오의 이마를 짚어보며 몸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남편... 하지만, 이미 다른 곳에 쏠려 있는 신경 때문에 깊이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숲속 길을 걷는 동안내내 바스락 거리며 따라왔던 수풀속에 뭔가를 아직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아냐... 그 놈들은 낮에만 움직인다고 들었어. 아마 버섯먹는 모스나 도둑 고양이떼 정도겠지... '
그들은 한참을 그 자리에서 괴물이 마을을 빠져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간간히 보채는 카츠를 쓰다듬어 주고 아내는 근처 샘에서 적신 물수건으로 테오의 이마에 얹어주던 남편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 여보... 테오가 열이 점점 더 심해지는 거 같아요. 지금쯤 누워서 푹 재워야 하는데, 너무 찬 바람을 많이 맞았나 봐요. "
" 그래. 이젠 점점 조용해 지는 것 같으니 일단 마을로 돌아가 봅시다. "
아내는 졸고 있는 카츠를 일으켜 옷을 추스려 주고 남편은 감기기운 때문에 신음 소리를 내는 테오를 업고 일어났다. 이제 자리를 떠나려는데, 앞서 걷던 남편이 갑자기 멈춰섰다.
그리고는 무서운 얼굴로 어둠속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남편의 이상한 태도에 아내는 의아해 하며 얼굴을 쳐다보는데 어둠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끼룩........... 끼룩............
작지만 날카로운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빨갛게 빛나는 두 눈동자가 가족들을 쳐다보며 조용히 울고 있었다.
아내는 겁에 질려 남편의 손을 붙들고 남편도 어둠속의 눈동자를 응시한체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 큰일이다... 총소리와 괴물놈 진동 때문에 깨어 있었구나. '
람포스였다. 숲의 암살자라 불리우며 먹던지 먹지 않던지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날카로운 이빨로 찢어서 죽인다는 잔혹한 육식 동물 중의 하나였다.
" 여... 여보... "
" 가만히 있어요! "
겁에 질려있는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에 남편이 낮게,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 아무래도 우리가 숲에 들어올 때부터 노리고 있었던 모양이군. 이쪽은 무기가 없는 걸 아는 모양이다. '
조용히 테오를 묶은 끈을 풀기 시작했다. 테오가 신음을 하며 정신을 못 차리자 천천히 테오의 목 뒤를 꼬집으며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 여... 여보... 어쩌시려고... "
남편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숲속의 빨간 눈동자를 응시하며 테오의 손을 아내에게 잡아 쥐었다.
' 람포스는 보통 떼로 다닌다는데, 밤이라 저 놈 한마리인 모양이군.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있을수도... '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주머니에서 작업용 칼을 조용히 꺼내 들었다.
" 여보... 일단 카츠와 테오를 데리고 뒤로 물러서요... "
" 당신... 설마... "
" 아뭇소리도 하지 말고 조용히 물러나요... 저 놈은 일단 소리에 민감하니 신경을 건드리지 않게 말하지 마시오. "
" ... 그렇지만, 당신 너무 위험해요... "
" 지금은 한마리 같은데, 조금 있으면 더 몰려 올거요. 방법이 없으니 빨리 처리하고 여길 빠져 나갑시다. "
" ................... "
아내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아이들을 꼭 안은체 남편을 지켜보고 있었다.
" 여보... "
" ... 네... "
" 일단 내가 저놈과 한판 붙고 목덜미를 잡고 있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힘껏 마을로 뛰어요. "
" 그렇지만 여보! "
" 여기 이대로 있으면 우리 가족 전부가 위험해 질 수 있소. "
" 그... 그렇지만... "
" 잊었소? 나도 예전에는 사냥꾼이었단 말이오... "
" 하지만, 예전이잖아요... 지금 당신은 이제 아무 무기도 없고... "
" 다른 방법이 없소. 제발 내 말대로 해 주시오..."
" 하지만, 여보..."
" 걱정하지 마시오. 꼭 돌아가리다. 나에겐 당신과 아이들이 있잖소... "
" .... 흑... 흑... "
아내는 벌써부터 남편이 걱정되는지 조금씩 흐느끼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러한 아내를 보다 못해 다독거리는 듯한 조용한 음성으로...
" 여기서 가족들 때문에 불안해 지면 일이 더 힘들어 지오. 조용히 물러나서 내가 신호를 하면 달려요... "
"... 흑... 흑... "
" 그렇게 해줄 수 있겠지... 리사... "
아내는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아이들을 끌고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칼을 움켜쥐고 한걸음씩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아내는 겁에 질려 아이들을 껴안고 있었으며, 계속 식은땀이 이마에 흘러내려 눈가가 쓰렸지만, 남편은 어둠속에서 노려보는 빨간눈을 놓치지 않았다.
' 시선에서 먼저 물러나면 그 다음은 죽음이다! '
칼에 집중된 람포스의 신경을 돌리기 위해서 왼손을 앞으로 내밀고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조용한 울음소리가 그치고 잠시 조용해 지는가 싶더니, 서서히 달빛에 람포스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3미터는 되보이는듯한 날렵한 몸에 단단하고 날카로운 발톱을 내밀며 다가오는 람포스를 경계하기 위해 남편은 칼을 더 불끈 쥐어보였다.
달빛에 비추어진 칼날의 반사빛을 순간 람포스의 눈가에 비추자 람포스가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날카로운 앞발을 세우고 덮쳐왔다.
" 끼에엑!"
" 지금이야! 여보! 빨리 달려!!! "
아내에게 소리를 친 남편은 그 자리에서 람포스의 일격을 피하며 람포스의 뒤에서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힘차게 가죽칼로 람포스 목의 옆을 찔러대고 있었다.
" 크아아아~~~ "
칼에 목을 수차례 찔린 람포스는 괴성을 지르며 목에 달라붙은 남편을 떼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고 목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꽉 매달린 남편은 아내에게 소리쳤다.
" 빨리 달려!!! "
" 그... 그렇지만, 여보! "
" 빨리가!!! "
남편은 계속 매달려 가죽칼로 목을 계속 치고 있었으며 아내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아이들을 꼭 껴안고 있기만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남편의 피하라는 외침에 아내는 순간 아이들을 떠올리며 손을 꼬옥 붙잡고 마을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아버지의 기합과 람포스의 비명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었다.
" 제... 제발 무사히... "
아내는 눈물을 짜내기 위해서인지 꼬옥 감고는 테오를 안고 카츠를 잡아끌며 숲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아이들을 붙잡고 한참을 달렸다.
람포스의 비명소리도, 남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방에서는 무언가 바스락 거리며 쫓아오는듯한 소리와, 아이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정신없이 달리는 발자국 소리만이 머리속에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렴풋이나마 숲밖의 가장자리가 보이는 듯 싶었다.
남편은 무사할까... 제발 이 아이들 만이라도...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아이들을 이끌고 빛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갑자기 등이 뜨거워졌다.
그리고는 아무생각이 없이 넘어져 버리며 안고 있던 테오를 놓쳐 버렸다.
땅에 넘어져 버렸는데, 등이 너무 뜨거워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안긴체 시름시름하던 테오가 결국 떨어져서 울음을 터뜨렸는지 울고 있었다.
땀일까... 등이 축축해져서 손을 만저보니 피였다. 다시 움직이려는데 뭔가가 등에 꽂혀서 그대로 땅에 박혀 버린 듯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픔도 잊어버린 듯 안간힘을 쓰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물가물하며 정신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의 웃는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 사방에 보이는 빨간눈들의 시선을 느끼며 결국 눈을 감고야 말았다.
" 어... 엄마... "
카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땅에서 떨어지자마자 아픔보단 갑자기 밀려드는 서러움에 울고 있었지만, 어느샌가 아버지는 보이지 않게 되고 어머니는 커다란 동물의 발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괴물은 계속 기분나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 놈과 같은 괴물들이 어둠속에서 하나둘씩 걸어나오고 있었다.
이제 5살인 테오는 아직도 열 때문에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 테오... "
"혀... 형아... 엄마... 엄마... "
이상한 일이었다. 늘 테오가 울면 잠을 잘때도 무슨 일을 할 때도 웃으며 안아주시던 어머니는 계속 움직이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카츠는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어머니가 움직이지 않자 테오를 감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커다란 괴물을 보며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집어들었다.
" 캬오오~~~~~~~~ "
카츠가 뭔가를 집어드는 듯 하자, 경계하던 람포스 한 마리가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점프를 하며 달려드는 순간, 카츠는 눈을 꼬옥 감고 있는 힘껏 막대기를 람포스의 머리에 휘둘렀다.
그 때였다.
카츠에게 달려들던 람포스 하나가 번쩍 하는 빛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두 조각이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카츠와 테츠앞에서 나타난 커다란 검은 그림자...
달빛에 비추어진 그 사람은 온 몸이 빨간색 비늘로 덮여진 갑옷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놀란 카츠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 검은 그림자는 람포스의 중앙으로 들어갔다.
날아간 한마리 때문에 잠시 주춤해 있던 다른 람포스 무리들은 계속 울음소리를 짖어대며 그 검은 그림자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계속 주위를 빙빙 돌며 비명을 질러대는데, 그 검은 그림자는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 캬아아~~~~~ "
한마리가 중앙의 그림자를 향해 덮치자 다른 람포스 무리들도 일제히 점프를 하며 덮치기 시작했다.
람포스 떼들에 의해 그 그림자가 가리워지는 순간 온 주위가 번쩍하며 그림자에 다가든 람포스의 머리와 다른 팔과 몸통이 잘라지기 시작했다.
카츠는 그 무섭고 이질적인 광경에 온 몸이 그대로 굳어버린 듯 막대기를 치켜든체 손가락 하나 떨지도 못하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결국 그림자에게 달려들었던 람포스의 무리들은 깨끗이 온몸이 잘려 나가고, 몇몇 팔과 몸에 상처만 생긴 람포스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른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카츠와 테오...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그림자는 칼에 묻은 람포스의 피를 털며 땅에 박아두고 허리에 찬 다른 칼로 람포스 무리들의 시체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 흠... 쓸만한 것도 없는 쓰레기들. "
뒤적이던 칼을 허리에 차고 다시 땅에 박아 놓은 두개의 칼을 뽑아든 채 검은 그림자는 천천히 다가왔다.
겁에 질린 카츠는 몽둥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 어디서 어린애들 울음소리가 들리나 했더니, 꼬맹이들 둘이 이런 숲에서 무슨 일인고? "
그 정체불명의 그림자는 카츠에게 다가오며 말을 하고 있었다.
양손엔 커다란 눈이 박힌 칼을 들고 있던 군인차림 모습의 할아버지였다. 카츠를 보자 기가 찬듯...
" 요놈 봐라? 이 꼬맹이가 나뭇가지 하나로 람포스떼를 상대하려고 했겠다? "
카츠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막대기는 여전히 정체불명의 할아버지를 경계하고 있었다.
" 이 놈아... 좀 지나가자. 비켜봐... "
부들부들 떨리는 카츠의 나뭇가지 끝을 손으로 비켜치우는 듯 카츠와 테오를 지나 그 정체 불명의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목에 손을 대 보았다.
" 너무 늦었나... "
어머니의 목에서 손을 뗀 그 할아버지는 어머니께 두손을 모아 목례를 하며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천천히 뒤를 돌아 카츠와 테오를 쳐다보았다.
" 그래... 이 상황을 보니 알만하군... "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서 조용히 이야기 했다.
갑자기 카츠는 안도감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 으엉... 으어어엉...... "
" 얘야... 너희 어머니시냐... "
" 훌쩍..... "
카츠는 울먹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 아무래도 어머니는 너희들을 두고 먼저 먼 나라에 가신거 같구나. "
" 훌쩍... 훌쩍... "
" 아버지는 어디 계시느냐...? "
카츠는 계속말도 하지 못하고 계속 울며 어두컴컴한 숲속을 가리키고 있었다.
" 흠... "
할아버지는 두 아이들을 꼭 껴안으며...
" 너희 엄마와 아빠는 당분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
" 훌쩍 훌쩍... 으으응...... 엉엉엉... "
" 잘은 모르겠다만, 마을에서 이 숲까지 어떻게든 도망친 모양인데... 밤의 숲에게 결국 당하고야 말았구나... "
" 흑... 흑... "
아이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울고만 있었다.
' 우리가 라오샹룡을 처리하지 못해 생긴 이 가족의 비극은 아무래도 내가 책임을 져야겠구나... '
할아버지는 말없이 두 소년을 안아주고만 있었고, 어린 두 소년은 이제서야 안심하며 무서움을 쏟아내는 듯 한없이 울고만 있었다.
천천히 아침해가 떠오르는 숲 밖으로 조용히 걸어가고 있는 세 사람이 보이고 있었다.
앞서 걸어가는 할아버지인 듯한 사람은 간간히 흥얼거리며 가고 있었고, 뒤에는 피와 눈물로 얼굴이 뒤범벅 되어 있지만 눈빛이 살아있는 두 아이가 있었다.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이르자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춰 섰다.
카츠와 테오도 아무말 없이 할아버지의 옆에 서며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았다.
하지만, 예전에 언덕에 놀러왔을때 본 그 마을 풍경이 아니었다.
커다란 동물의 발자국만 잔뜩 찍혀있는 듯한 마을엔 이미 집이나 나무라 할 수 있는 것은 한개도 남아있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한참동안 마을을 쳐다보다가 혼잣말인 듯 조용한 말투로 중얼거리는 듯 했다.
" 결국 이번 토벌임무는 실패가 됐군. 이래선 보수도 없겠는데...? 죽은 동료들만 불쌍하게 된건가... "
카츠는 아무말 없이 할아버지의 옆에서 테오의 손을 꼭 잡고 계속 마을을 보고만 있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친구들과 함께 살아온 마을이 형체도 없어졌는데, 눈물도... 그리고 어떤 슬픈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한 테오를 보며 할아버지가 물었다.
" 얘야... 너희에겐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 "
카츠는 여전히 아무말 없이 마을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빛에 서운함이란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뭔가를 다짐하는 듯한 의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다시 카츠에게 이야기를 했다.
" 어떠냐... 이 할아버지와 함께 가겠느냐... "
아무말 없이 마을을 지켜보기만 하던 카츠...
조용히 고개를 든채 할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얼마나 한참을 걸었을까...
아이들을 위해 조금씩 쉬면서 걷다가 다시 쉬면서 걷다가를 몇 번이나 되풀이 할 무렵...
이제서야 생각이 났는지 아니면 아까부터 벼르고 있었는지, 카츠가 힘찬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불렀다.
" 할아버지... "
카츠가 부르는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는 할아버지...
" 할아버지는 이름이 뭐예요...? "
함께 가는 동안 내내 아무 말없이 따라오던 카츠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움직이지 않은채 카츠를 내려다보던 할아버지는 조용히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 할아버지의 이름은 이미 오래전에 잊어 버렸단다...
의아해 하는 카츠와 테오를 보며 할아버지는 햇살보다 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줬다.
" 다만 사람들은 나를 코콧트의 영웅이라고 부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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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온한 밤이었다.
창가에는 구름에 반쯤 내비친 달이 마을을 비추고 멀리 보이는 언덕에는 풀벌레들이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조용한 풍경이었다.
벽에 걸린 작은 등잔불빛들이 어두컴컴한 방안을 감싸돌고 그 불빛 아래엔 내일 시장에 팔기 위한 가죽을 다듬고 있는 아버지와 이제 막 잠들기 시작한 어린 형제들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어머니가 있었다.
" 이제 잠이 든것 같아요..."
아이들의 이불을 덮어주며 아내가 말을 했다.
" 다행이군... 아직 일이 마무리 되지 않아서 보채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말야. "
약간은 피곤한 듯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아버지.
자리에 일어나 아이들을 보며 미소를 지은체 아내에게 다가간다.
" 오늘 낮에 별 일은 없었지? "
" 별 일은요... 테오가 아직도 감기가 심하네요. 저녁때쯤이면 기침이 멎을 줄 알았는데... "
" 녀석들..., 한창때라 그런지 이젠 말도 듣지 않는구먼.
" 어제도 그렇게 말렸는데, 점심먹고 형이랑 벌레 잡으러 간다고 나갔다 오더니 어디서 흠뻑 젖어서 들어와 가지구선... "
" 내일 봐서 따끔히 한 번 뭐라고 해야 할듯 하군. "
남편은 다시금 작업칼을 들고 가죽을 다듬기 시작했다.
" 어렸을 적에는 카츠녀석이 동생보다 몸이 약했었는데 말야... "
" 그러게요. 지금은 동생 보살피고 놀아준다고 벌써 난리법썩이예요. "
" 어제 옆집 개와 참 재밌게 노는거 같던데... 아무래도 내일 시장에서 오는 길에 애완동물이라도 하나 사와야 하나? "
" 안 그래도, 둘 때문에 집안 동네 시끄러운데, 애완동물까지 보태면 몸이 남아나질 못해요... "
" 아이들 때문에 지루하지는 않아서 좋잖아. "
" 당신도 참... 매일 애들한테는 야단만 치시는거 같더니... "
아이들이 깰까봐 조심스럽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남편과 아내... 그들의 입가엔 좀처럼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가끔 잔기침을 하지만, 새근새근 잠이든 아이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표정은 마냥 행복하게 보였다.
" 그러지 말고, 가끔은 아이들한테 따뜻하게 대해줘 봐요. "
" 둘이 똑같이 얼르기만 하면 쓰나... 아이들 버릇 나빠져. "
" 그렇잖아도 요즘 당신이 너무 야단치시는거 같다고 기침소리도 제대로 못내는 거 같던데. 벌써부터 기죽일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
" 흠... 그렇다면 내일 물건 나가는거 봐서 녀석들에게 줄 선물이라도 하나씩 준비해 볼까... 가끔은 나도 자상한 아버지 노릇도 해봐야지. "
" 선물은 됐으니까, 시장 갈 때마다 만나는 친구들이나 뿌리치고 일찍 좀 들어와요... "
" 이 사람아. 그냥 친구가 아니란 말야... 나와 예전에 목숨을 걸고 함께 한 동료란 말이지... "
벌써부터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될까봐, 가볍게 언성을 높이는 남편은... 아이들을 쳐다보며 아내의 조용히 하라는 손짓에 수그러든 듯 하다.
둘의 대화가 잠시 끝나고... 약간은 머쓱해진 남편은 가죽칼을 들고 다시 일을 하려던 찰나에 아내의 뭔가를 신경쓰는 듯한 얼굴에 의아해 한다.
" 무슨일인데? 갑자기... "
아내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마치 뭔가가 들리는 듯 조용히 귀를 기울이다가...
" 여보...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 않아요? "
유난히 밤귀가 좋은 아내는, 무언가를 듣고 있는듯한 표정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
하던 일을 멈추고 남편도 잠시 귀를 기울이며 대답하다 뭔가가 들리는 모양인듯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 그러고 보니... "
쿵.......... 쿵..........
아주 희미한것 같지만, 어디선가 커다란 바위가 떨어지는 소리가 간간히 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 무슨 소리지...? "
" 글쎄요. 또 성에서 무도회 연다고 축포를 터트리는 게 아닐까요? "
" 이 늦은 시간에 무슨..... 그런데, 땅이 울리는 거 같은데...? "
쿵.......... 쿵.......... 쿵.......... 쿵........... 쿵...........
의문의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 지는 것 같았다. 소리의 진동이 커지며 점점 집안이 흔들리고 유리창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마주보던 두 사람...
결국 남편이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는 순간...
휘유우웅.................. 펑. 펑.................
갑자기 달빛만이 간간히 비추던 창가가 환해지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말을 잠시 멈추고 창밖을 응시했다.
" 무슨 일일까...? "
밖은 깜깜했지만, 멀리서는 사방에서 조명탄이 발사 되는 듯 이따금씩 까만 밤하늘에 밝게 펴지고 있었다.
" 아무래도 성안에 파티라도 열린듯 하네. "
" 그런거 같아요. "
" 가뜩이나 요즘은 장사도 안되서 일찍 나가봐야 하는데, 이렇게 늦게까지 시끄럽게 하면 어쩌자는거야... "
투덜거리며 창가에서 불빛들을 바라보는 남편.... 아내는 조용히 옆에서서 잠시 불빛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는 것이었다.
" 여... 여보... "
뭔가를 보고 놀란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며 남편을 부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태도에 놀란 남편은 당황한 아내의 한쪽손을 살며시 잡아주며 이야기 했다.
" 왜 그래요? "
" ............. "
조명탄이 터지며 조금씩 환해지는 밖을 보며 말문이 막힌 듯 서서히 놀라는 표정으로 아내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 산이... "
" 허허... 이 사람이... 왜 그런지 말을 해요... "
남편은 아내가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창밖을 바라 보았다.
" 산이... 움직여요... "
" 무슨 말인지... 도대체... "
남편도 창밖을 여기저기를 보다 뭔가 발견한 듯 아내와 같은 놀란 표정으로 그것을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가까이에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멀리에 있었고 너무나 거대했다.
하지만 조금씩 움직이며 분명히 이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계곡안에 있는 마을의 집들은 그 정체모를 커다란 산이 움직일 때마다 하나 둘씩 부수어져 갔으며 이 마을이 생기기 전보다 훨씬 더 오래 되었을만한 커다란 나무들도 허무하게 짓밟히고 있었던 것이다.
축포인 줄 알았던 불빛은 사방에서 군인들과 사냥꾼들이 쏘는 조명탄이었다.
간간히 대포를 쏘는 듯한 폭파가 그 커다란 물체에서 일어났지만, 그것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한발씩 커다란 몸뚱이를 옮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 광경에 놀라 잠시 말문이 굳어진 아내의 옆에서 남편은 상황판단을 하며 커튼을 젖히고 급히 두 아들들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했다.
"카츠! 테오! 어서 일어나거라! "
"으음... "
".............. "
" 카츠! 테오! 빨리 일어나라니까! "
아이들은 아직 잠결인지 감기 기운인지 신음 소리만을 내며 일어나지 못하고, 옆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아내가 남편에게 다급히 말하기 시작했다.
" 여보! 아무래도 시간이 없어요. 일단은 그냥 빨리 나가야 할거 같아요! "
" 안되겠다. "
남편은 큰 아들 카츠를 들춰 업고 어머니는 작은 아들 테오를 안았다. 문을 박차듯이 열고 나가는 순간 아내가 남편의 작업책상을 보며 멈칫 하는 것이었다.
" 왜 그래! "
" 저거... 내일 시장에 가져가려고 당신이 열심이 만들어 놓은건데... "
"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야! 빨리 달려! "
카츠를 등에 업고 남편은 아내의 손을 낚아채듯 붙잡고 집밖으로 나왔다.
마을 밖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아우성, 그리고 부서진 우리의 가축들이 요란하게 터지는 총성과 조명탄에 날뛰고 있었던 것이다.
난장판에 서로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는 목소리와 미리 눈치를 채고 짐을 꾸려 달려가고 있는 마차 발굽 소리에 분간을 하기가 어려웠다.
" 무슨 일입니까? "
카츠를 업고 있던 남편이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소리치며 물었지만, 그 사람은 급한 듯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 계속 달려나갔다. 다른 사람을 찾아 물어보려던 찰나에...
" 이봐! 케르도! "
마을 외곽쪽에서 잡상인을 하는 이안씨였다. 급하게 싼듯한 짐을 짊어지고 뛰다가 남편을 발견한 듯...
" 저건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
" 지금 말 할 상황이 아니네. 괴물이 나타났단 말야! "
"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거죠? 공령도 없었는데! "
" 모르겠어. 윗사람들 말로는 너무 큰 일이라 사냥꾼들과 소집된 군인으로 조용히 마무리 할 모양이었던데, 상대가 상대가 아닌 모양이었던 게지. "
" 아니 그럼, 이 한밤중에도 사냥꾼들과 군인들이 토벌중이란 말인가요? 그것도 이 계곡 마을 안에서?"
남편은 기가 찼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이렇게 무책임하게 주민들을 궁지에 몰릴때까지 내버려 두다니...
" 현재 수습이 안되서 그 괴물놈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네. 빨리 피하게! "
" 이안씨는요! "
" 난 일단 뛰어볼 생각이네! 그런데, 자넨 홀몸도 아닌데, 식구대로 멀리 갈 수도 없잖은가! "
" 어디로 가야 할까요? "
" 일단 계곡이라도 벗어나세. 저 괴물놈이 너무 커서 이 안에서는 피할 방법이 없는거 같으니 마을이라도 빠져나가야 하지 않겠나! "
" 그럼, 마을 밖 강건너의 언덕이라도 올라가죠! "
" 알았네. 빨리 뛰게! "
이안씨는 몰려있는 군중속으로 급하게 사라졌다. 남편은 일단 카츠를 추스려 업고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 여보! 절대 내 손을 놓으면 안돼! "
" 네! 그런데, 여보! 테오의 열이 너무 심해요. 어디서 물이라도... "
" 안돼! 지금은 마을을 빠져 나가야해. 일단 계곡 언덕에 들어가서라도 저걸 피해야 할거 같아! "
남편은 아이들 등에 업은체 아내의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마차를 끄는 이름모를 초식동물들이 앞질러 달려갔지만, 숨을 헐떡이며 아이를 안고있는 아내의 손을 이끌며 부지런히 마을밖으로 벗어나기 시작했다.
사방의 총소리와 대포소리... 그리고 비명소리를 뒤로 한채 한참을 달리고 있었는데 업혀있었던 카츠가 잠에서 깼는지 엄마를 찾기 시작했다.
" 우웅... 어... 엄마... "
금방이라도 울먹이며 울음을 터뜨릴 얼굴이었지만, 아이를 안고 달리는 아내는 너무나 숨이차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 카츠! 가만히 있거라. "
" 어... 엄.... 훌쩍..... "
울먹이며 보채는 카츠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땅을 울리는 듯한 발자국 소리는 점점 더 가까이 들리는 듯 했지만, 마을 밖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 때문에 더더욱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옆의 아내는 너무 지쳐 뛰지 못하는지 이제는 거의 끌려오다시피 따라오고 있었다. 숨을 헐떡거리며 겨우 말을 꺼내려는 듯...
" 여... 여보, 잠시만 쉬었다 가요. "
" 안돼! 이대로 언덕까지는 올라가서 피해야 해요. "
" 그렇지만, 이렇게 한참까지는 떨어졌잖아요. "
테오를 안고 너무 많이 뛰었던 탓인지 아내의 얼굴은 창백했고 카츠도 잠에서 깨어 자꾸 보채고 있었다.
할 수 없다는 듯 남편은 아내에게 말했다.
" 그럼, 일단 언덕 밑에까지라도 갑시다. 여기는 벗어나야 해. "
그리고는 다시 숲속 가장자리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 그렇지만 숲속에는... ... 아냐. 설마 지금 이 시간에는... '
불안한 듯한 생각을 지우며 아내의 손을 잡고 달빛이 어둑해지는 숲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 속이었다.
사방에 나무들의 가지들과 잔나무 때문에 달빛도 스며들 공간이 없는 깜깜한 길을 헤집으며 어떻게든 마을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내의 손을 잡고 부지런히 숲속을 오르기 시작했다.
멀리서는 아직도 괴물이 마을을 빠져나가지 않았는지 계속되는 울림과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 그리고 군인들과 사냥꾼의 화력에 의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풀벌레 소리와 기분나쁜 동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깜깜한 가운데, 아버지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 더 깊은 곳은 너무 위험하니, 일단 여기서 잠깐 쉬었다가 소란이 끝나면 마을 집으로 돌아갑시다. "
" 네... 그래요. "
카츠를 업고 오느라 묶어두었던 끈을 풀고 잠시 아이를 내려놓았다. 업고 뛰어오는 동안 잠이 완전히 깼는지 땅에 내려놓자 마자 아이는 엄마에게 달려갔다.
" 엄마... "
" 오, 괜찮아... 안 울지? "
아내는 숨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지만, 울먹이는 카츠를 쓰다듬어주며 달래주고 있었다.
열이 많이 나는 작은 아들 테오의 이마를 짚어보며 몸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남편... 하지만, 이미 다른 곳에 쏠려 있는 신경 때문에 깊이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숲속 길을 걷는 동안내내 바스락 거리며 따라왔던 수풀속에 뭔가를 아직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 아냐... 그 놈들은 낮에만 움직인다고 들었어. 아마 버섯먹는 모스나 도둑 고양이떼 정도겠지... '
그들은 한참을 그 자리에서 괴물이 마을을 빠져나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간간히 보채는 카츠를 쓰다듬어 주고 아내는 근처 샘에서 적신 물수건으로 테오의 이마에 얹어주던 남편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 여보... 테오가 열이 점점 더 심해지는 거 같아요. 지금쯤 누워서 푹 재워야 하는데, 너무 찬 바람을 많이 맞았나 봐요. "
" 그래. 이젠 점점 조용해 지는 것 같으니 일단 마을로 돌아가 봅시다. "
아내는 졸고 있는 카츠를 일으켜 옷을 추스려 주고 남편은 감기기운 때문에 신음 소리를 내는 테오를 업고 일어났다. 이제 자리를 떠나려는데, 앞서 걷던 남편이 갑자기 멈춰섰다.
그리고는 무서운 얼굴로 어둠속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남편의 이상한 태도에 아내는 의아해 하며 얼굴을 쳐다보는데 어둠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끼룩........... 끼룩............
작지만 날카로운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빨갛게 빛나는 두 눈동자가 가족들을 쳐다보며 조용히 울고 있었다.
아내는 겁에 질려 남편의 손을 붙들고 남편도 어둠속의 눈동자를 응시한체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 큰일이다... 총소리와 괴물놈 진동 때문에 깨어 있었구나. '
람포스였다. 숲의 암살자라 불리우며 먹던지 먹지 않던지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날카로운 이빨로 찢어서 죽인다는 잔혹한 육식 동물 중의 하나였다.
" 여... 여보... "
" 가만히 있어요! "
겁에 질려있는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에 남편이 낮게,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 아무래도 우리가 숲에 들어올 때부터 노리고 있었던 모양이군. 이쪽은 무기가 없는 걸 아는 모양이다. '
조용히 테오를 묶은 끈을 풀기 시작했다. 테오가 신음을 하며 정신을 못 차리자 천천히 테오의 목 뒤를 꼬집으며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 여... 여보... 어쩌시려고... "
남편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숲속의 빨간 눈동자를 응시하며 테오의 손을 아내에게 잡아 쥐었다.
' 람포스는 보통 떼로 다닌다는데, 밤이라 저 놈 한마리인 모양이군. 어떻게 해 볼 방법이 있을수도... '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주머니에서 작업용 칼을 조용히 꺼내 들었다.
" 여보... 일단 카츠와 테오를 데리고 뒤로 물러서요... "
" 당신... 설마... "
" 아뭇소리도 하지 말고 조용히 물러나요... 저 놈은 일단 소리에 민감하니 신경을 건드리지 않게 말하지 마시오. "
" ... 그렇지만, 당신 너무 위험해요... "
" 지금은 한마리 같은데, 조금 있으면 더 몰려 올거요. 방법이 없으니 빨리 처리하고 여길 빠져 나갑시다. "
" ................... "
아내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아이들을 꼭 안은체 남편을 지켜보고 있었다.
" 여보... "
" ... 네... "
" 일단 내가 저놈과 한판 붙고 목덜미를 잡고 있으면 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힘껏 마을로 뛰어요. "
" 그렇지만 여보! "
" 여기 이대로 있으면 우리 가족 전부가 위험해 질 수 있소. "
" 그... 그렇지만... "
" 잊었소? 나도 예전에는 사냥꾼이었단 말이오... "
" 하지만, 예전이잖아요... 지금 당신은 이제 아무 무기도 없고... "
" 다른 방법이 없소. 제발 내 말대로 해 주시오..."
" 하지만, 여보..."
" 걱정하지 마시오. 꼭 돌아가리다. 나에겐 당신과 아이들이 있잖소... "
" .... 흑... 흑... "
아내는 벌써부터 남편이 걱정되는지 조금씩 흐느끼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러한 아내를 보다 못해 다독거리는 듯한 조용한 음성으로...
" 여기서 가족들 때문에 불안해 지면 일이 더 힘들어 지오. 조용히 물러나서 내가 신호를 하면 달려요... "
"... 흑... 흑... "
" 그렇게 해줄 수 있겠지... 리사... "
아내는 흐느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아이들을 끌고 조금씩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남편은 칼을 움켜쥐고 한걸음씩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아내는 겁에 질려 아이들을 껴안고 있었으며, 계속 식은땀이 이마에 흘러내려 눈가가 쓰렸지만, 남편은 어둠속에서 노려보는 빨간눈을 놓치지 않았다.
' 시선에서 먼저 물러나면 그 다음은 죽음이다! '
칼에 집중된 람포스의 신경을 돌리기 위해서 왼손을 앞으로 내밀고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며 기회를 보고 있었다.
조용한 울음소리가 그치고 잠시 조용해 지는가 싶더니, 서서히 달빛에 람포스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3미터는 되보이는듯한 날렵한 몸에 단단하고 날카로운 발톱을 내밀며 다가오는 람포스를 경계하기 위해 남편은 칼을 더 불끈 쥐어보였다.
달빛에 비추어진 칼날의 반사빛을 순간 람포스의 눈가에 비추자 람포스가 찢어지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날카로운 앞발을 세우고 덮쳐왔다.
" 끼에엑!"
" 지금이야! 여보! 빨리 달려!!! "
아내에게 소리를 친 남편은 그 자리에서 람포스의 일격을 피하며 람포스의 뒤에서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힘차게 가죽칼로 람포스 목의 옆을 찔러대고 있었다.
" 크아아아~~~ "
칼에 목을 수차례 찔린 람포스는 괴성을 지르며 목에 달라붙은 남편을 떼어내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고 목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꽉 매달린 남편은 아내에게 소리쳤다.
" 빨리 달려!!! "
" 그... 그렇지만, 여보! "
" 빨리가!!! "
남편은 계속 매달려 가죽칼로 목을 계속 치고 있었으며 아내는 어찌할 바를 몰라 아이들을 꼭 껴안고 있기만 했다. 하지만, 계속되는 남편의 피하라는 외침에 아내는 순간 아이들을 떠올리며 손을 꼬옥 붙잡고 마을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아버지의 기합과 람포스의 비명소리가 계속 들리고 있었다.
" 제... 제발 무사히... "
아내는 눈물을 짜내기 위해서인지 꼬옥 감고는 테오를 안고 카츠를 잡아끌며 숲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아이들을 붙잡고 한참을 달렸다.
람포스의 비명소리도, 남편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사방에서는 무언가 바스락 거리며 쫓아오는듯한 소리와, 아이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정신없이 달리는 발자국 소리만이 머리속에 울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렴풋이나마 숲밖의 가장자리가 보이는 듯 싶었다.
남편은 무사할까... 제발 이 아이들 만이라도... 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며 아이들을 이끌고 빛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갑자기 등이 뜨거워졌다.
그리고는 아무생각이 없이 넘어져 버리며 안고 있던 테오를 놓쳐 버렸다.
땅에 넘어져 버렸는데, 등이 너무 뜨거워 일어날 수가 없었다. 한참을 안긴체 시름시름하던 테오가 결국 떨어져서 울음을 터뜨렸는지 울고 있었다.
땀일까... 등이 축축해져서 손을 만저보니 피였다. 다시 움직이려는데 뭔가가 등에 꽂혀서 그대로 땅에 박혀 버린 듯 일어날 수가 없었다. 아픔도 잊어버린 듯 안간힘을 쓰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가물가물하며 정신이 희미해지고 있었다. 남편과 아이들의 웃는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순간, 사방에 보이는 빨간눈들의 시선을 느끼며 결국 눈을 감고야 말았다.
" 어... 엄마... "
카츠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땅에서 떨어지자마자 아픔보단 갑자기 밀려드는 서러움에 울고 있었지만, 어느샌가 아버지는 보이지 않게 되고 어머니는 커다란 동물의 발 아래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 괴물은 계속 기분나쁜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 놈과 같은 괴물들이 어둠속에서 하나둘씩 걸어나오고 있었다.
이제 5살인 테오는 아직도 열 때문에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울고 있었다.
" 테오... "
"혀... 형아... 엄마... 엄마... "
이상한 일이었다. 늘 테오가 울면 잠을 잘때도 무슨 일을 할 때도 웃으며 안아주시던 어머니는 계속 움직이지 않으시는 것이었다.
카츠는 덜컥 겁이 났다. 하지만, 어머니가 움직이지 않자 테오를 감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둠속에서 다가오는 커다란 괴물을 보며 옆에 있던 나뭇가지를 집어들었다.
" 캬오오~~~~~~~~ "
카츠가 뭔가를 집어드는 듯 하자, 경계하던 람포스 한 마리가 갑자기 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점프를 하며 달려드는 순간, 카츠는 눈을 꼬옥 감고 있는 힘껏 막대기를 람포스의 머리에 휘둘렀다.
그 때였다.
카츠에게 달려들던 람포스 하나가 번쩍 하는 빛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두 조각이 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카츠와 테츠앞에서 나타난 커다란 검은 그림자...
달빛에 비추어진 그 사람은 온 몸이 빨간색 비늘로 덮여진 갑옷으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
놀란 카츠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그 검은 그림자는 람포스의 중앙으로 들어갔다.
날아간 한마리 때문에 잠시 주춤해 있던 다른 람포스 무리들은 계속 울음소리를 짖어대며 그 검은 그림자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계속 주위를 빙빙 돌며 비명을 질러대는데, 그 검은 그림자는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 캬아아~~~~~ "
한마리가 중앙의 그림자를 향해 덮치자 다른 람포스 무리들도 일제히 점프를 하며 덮치기 시작했다.
람포스 떼들에 의해 그 그림자가 가리워지는 순간 온 주위가 번쩍하며 그림자에 다가든 람포스의 머리와 다른 팔과 몸통이 잘라지기 시작했다.
카츠는 그 무섭고 이질적인 광경에 온 몸이 그대로 굳어버린 듯 막대기를 치켜든체 손가락 하나 떨지도 못하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자 결국 그림자에게 달려들었던 람포스의 무리들은 깨끗이 온몸이 잘려 나가고, 몇몇 팔과 몸에 상처만 생긴 람포스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기 시작했다.
영문을 모른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카츠와 테오...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그림자는 칼에 묻은 람포스의 피를 털며 땅에 박아두고 허리에 찬 다른 칼로 람포스 무리들의 시체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 흠... 쓸만한 것도 없는 쓰레기들. "
뒤적이던 칼을 허리에 차고 다시 땅에 박아 놓은 두개의 칼을 뽑아든 채 검은 그림자는 천천히 다가왔다.
겁에 질린 카츠는 몽둥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지만, 이제서야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 어디서 어린애들 울음소리가 들리나 했더니, 꼬맹이들 둘이 이런 숲에서 무슨 일인고? "
그 정체불명의 그림자는 카츠에게 다가오며 말을 하고 있었다.
양손엔 커다란 눈이 박힌 칼을 들고 있던 군인차림 모습의 할아버지였다. 카츠를 보자 기가 찬듯...
" 요놈 봐라? 이 꼬맹이가 나뭇가지 하나로 람포스떼를 상대하려고 했겠다? "
카츠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진 탓인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하지만, 막대기는 여전히 정체불명의 할아버지를 경계하고 있었다.
" 이 놈아... 좀 지나가자. 비켜봐... "
부들부들 떨리는 카츠의 나뭇가지 끝을 손으로 비켜치우는 듯 카츠와 테오를 지나 그 정체 불명의 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다가가서 목에 손을 대 보았다.
" 너무 늦었나... "
어머니의 목에서 손을 뗀 그 할아버지는 어머니께 두손을 모아 목례를 하며 잠시 그대로 서 있다가 천천히 뒤를 돌아 카츠와 테오를 쳐다보았다.
" 그래... 이 상황을 보니 알만하군... "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서 조용히 이야기 했다.
갑자기 카츠는 안도감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 으엉... 으어어엉...... "
" 얘야... 너희 어머니시냐... "
" 훌쩍..... "
카츠는 울먹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대답했다.
" 아무래도 어머니는 너희들을 두고 먼저 먼 나라에 가신거 같구나. "
" 훌쩍... 훌쩍... "
" 아버지는 어디 계시느냐...? "
카츠는 계속말도 하지 못하고 계속 울며 어두컴컴한 숲속을 가리키고 있었다.
" 흠... "
할아버지는 두 아이들을 꼭 껴안으며...
" 너희 엄마와 아빠는 당분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
" 훌쩍 훌쩍... 으으응...... 엉엉엉... "
" 잘은 모르겠다만, 마을에서 이 숲까지 어떻게든 도망친 모양인데... 밤의 숲에게 결국 당하고야 말았구나... "
" 흑... 흑... "
아이들은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울고만 있었다.
' 우리가 라오샹룡을 처리하지 못해 생긴 이 가족의 비극은 아무래도 내가 책임을 져야겠구나... '
할아버지는 말없이 두 소년을 안아주고만 있었고, 어린 두 소년은 이제서야 안심하며 무서움을 쏟아내는 듯 한없이 울고만 있었다.
천천히 아침해가 떠오르는 숲 밖으로 조용히 걸어가고 있는 세 사람이 보이고 있었다.
앞서 걸어가는 할아버지인 듯한 사람은 간간히 흥얼거리며 가고 있었고, 뒤에는 피와 눈물로 얼굴이 뒤범벅 되어 있지만 눈빛이 살아있는 두 아이가 있었다.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이르자 할아버지는 걸음을 멈춰 섰다.
카츠와 테오도 아무말 없이 할아버지의 옆에 서며 언덕에서 마을을 내려다 보았다.
하지만, 예전에 언덕에 놀러왔을때 본 그 마을 풍경이 아니었다.
커다란 동물의 발자국만 잔뜩 찍혀있는 듯한 마을엔 이미 집이나 나무라 할 수 있는 것은 한개도 남아있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한참동안 마을을 쳐다보다가 혼잣말인 듯 조용한 말투로 중얼거리는 듯 했다.
" 결국 이번 토벌임무는 실패가 됐군. 이래선 보수도 없겠는데...? 죽은 동료들만 불쌍하게 된건가... "
카츠는 아무말 없이 할아버지의 옆에서 테오의 손을 꼭 잡고 계속 마을을 보고만 있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친구들과 함께 살아온 마을이 형체도 없어졌는데, 눈물도... 그리고 어떤 슬픈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한 테오를 보며 할아버지가 물었다.
" 얘야... 너희에겐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 "
카츠는 여전히 아무말 없이 마을을 쳐다보고 있었다.
눈빛에 서운함이란 보이지 않았지만, 대신 뭔가를 다짐하는 듯한 의지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다시 카츠에게 이야기를 했다.
" 어떠냐... 이 할아버지와 함께 가겠느냐... "
아무말 없이 마을을 지켜보기만 하던 카츠...
조용히 고개를 든채 할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얼마나 한참을 걸었을까...
아이들을 위해 조금씩 쉬면서 걷다가 다시 쉬면서 걷다가를 몇 번이나 되풀이 할 무렵...
이제서야 생각이 났는지 아니면 아까부터 벼르고 있었는지, 카츠가 힘찬 목소리로 할아버지를 불렀다.
" 할아버지... "
카츠가 부르는 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는 할아버지...
" 할아버지는 이름이 뭐예요...? "
함께 가는 동안 내내 아무 말없이 따라오던 카츠가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움직이지 않은채 카츠를 내려다보던 할아버지는 조용히 입가에 웃음을 띄우며...
" 할아버지의 이름은 이미 오래전에 잊어 버렸단다...
의아해 하는 카츠와 테오를 보며 할아버지는 햇살보다 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해 줬다.
" 다만 사람들은 나를 코콧트의 영웅이라고 부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