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암실 속에서 다니엘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두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 거려도 방안은 그가 앉아있는 책상의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철컥"
갑작스레 문이 열리는 소리에 다니엘은 움찔하며 문쪽을 바라보았다.
문앞에 서있는 검은 그림자. 척 봐도 엄청난 거구로 보이는 그것은 성큼성큼 다니엘의 책상 맞으편으로 다가왔다.
"킁킁"
재채기를 참아내려는 콧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스탠드 불빛 속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
헝클어진 검은머리에 너저분한 턱수염을 한 중년 남성의 얼굴.
그의 목에 걸려있는 경찰 배지가 조명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반짝거렸다.
남자는 물에 젖은 상의를 두어번 털어낸뒤 털썩 의자에 주저 앉았다.
"후, 정말 지독한 날씨로군. 안 그렇소? 노튼씨"
사내는 봉지에서 눅눅해진 샌드위치 두개를 꺼내 그중 하나를 다니엘의 눈앞에 내밀었다.
아침부터 계속된 허기에 무척이나 배가고팠지만 그는 손을 내밀어 상대의 작은 호의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흐음, 안색이 안좋아 보이는데 정말 괜찮은거요?"
지극히 형식적인 안부를 물은 형사는 마치 원래부터 두개를 다먹을 심산이었던 듯이 게걸스럽게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샌드위치를 해치운 그는 길게 트름을 한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배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던 다니엘은 더 이상 못참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카일...카일 형사..맞습니까?"
"아니, 그는 다른사건이 있어 그쪽으로 갔지. 만나서 반갑소. 루틴형사요."
자신을 루틴형사라고 소개한 눈앞의 남자는 그렇게 대답하며 다니엘에게 악수를 청했다.
"하지만..."
"누가 맡든 똑같은 사건이오. 그렇지 않소? 당신이 맘에 들건 그렇지 않던 간에 오늘부로 이사건은 내 담당이 되었지.
걱정은 접어두시오 그에게서 필요한 것은 전부 인계받았으니까.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원만한 분위기에서 일을 시작하고 싶은데..."
무언가 항의를 하고 싶은 다니엘이 었지만 그에 대한 루틴형사의 태도는 완고 하기 그지 없었다.
다니엘로서는 지금 이상황이 그닥 내키진 않았지만 결국 그의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할수 밖에 없었다.
"좋소."
루틴형사는 샌드위치 소스로 더럽혀진 입가를 손등으로 훔쳐내며 책상에 놓인 사건일지를 뒤적거렸다.
"자 그럼....그...사라진 이사벨양에 관해서 말인데"
"저 이사벨이란건 그녀의 성이 아니라 이름 입니다만"
"아아~이거 실례."
퉁명스런 다니엘의 지적에 루틴형사는 넉살 좋게 이마에 손을 얹으며 사과했다.
다니엘은 정말이지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껄렁한 차림새 하며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는 듯한 무심함 이라니. 저 형사 정말 이사건을 해결할 마음은 있긴 한걸까?
이런 다니엘의 못마땅한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형사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당신의 말대로라면 그녀의 실종 시기로 추정되는 대략적인 날짜는 지금으로 부터 두달 전인 12월 무렵이로군. 맞소?
루틴형사의 물음에 다니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루틴형사는 미덥지 않다는 표정으로 턱을 쓰다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요 노튼씨, 당신이 앞서 진술했던 내용은 시작부터 납득이 가지 않소. 어째서 이렇게나 오랜시간이 지나서야 실종신고를 한거요?"
형사의 물음에 다니엘은 말없이 그의 시선을 피했다.
"뭐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지. 당신과 이사벨양은 어떤관계요?"
이어지는 침묵.
다니엘이 계속 대답을 하지 않자 루틴형사는 두손을 깍지 낀채 고압적인 자세로 다니엘을 다그쳤다.
"어떤관계냐고 묻고 있잖소. 설마하니 혈연관계는 아닐테고... 그렇다면 애인 관계요?"
"...그렇게... 볼 수 있겠군요"
개미 목소리만큼 작은 다니엘의 대답을 들은 루틴형사는 책상에 놓여 있는 볼펜을 집어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애인관계라..."
그렇게 중얼대는 루틴형사의 말투에서 다니엘은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꼈다. 아무래도 다니엘로 향한 루틴형사의 불신은 아직 끝이나지 않은듯 했다.
"게일씨의 말로는 이사벨양 쪽에선 당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던데."
"게일?! 그쓰레기가 그렇게 말하덥니까?"
형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니엘은 발끈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의 격한 행동에 의자가 뒤로 쓰러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더러운 포주자식! 그딴 벌레같은 놈의 말 때문에 날 의심 하는 겁니까?"
"아아, 진정해요."
루틴형사는 두손을 들어올려 흥분하는 다니엘을 제지 시켰다.
이사벨의 포주, 게일에대한 분노는 뜨거웠지만 심적으로 매우 유약한 다니엘 이었기에 그의 울분섞인 행동은 싱겁게 제압되었다.
"당신도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사벨양의 실종신고는 정식으로 서에 접수되었소 그리고 신고가 들어온 이상, 나는 원칙에 맞게 수사를 할 뿐이오. 알아 듣겠소?"
형사의 이야기에 이성을 되찾은 다니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루틴형사는 아까까지와는 사뭇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다니엘을 응시하며 조사의 첫 운을 떼었다.
"자 그럼 이사벨양의 실종경위에 대해 다시한번 들어 보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