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자. 들어봐. 전기가 흐르는 물질에서는 조금씩이나마 전자파가 흘러나오듯,
인간의 뇌파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머리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그 뇌파를 분석해서 캐치해낼수만 있다면, 역으로 신호를 흘러보내 사람을 조종할 수 있지 않을까?"
"…네 말대로라면, 전 세계 사람들을 모두 집 안에서 조종할 수 있다는 거야?"
"가능성으로는 그렇지만, 어렵겠지. 일단 그 흘러나오는 뇌파라는 게 사람마다 주파수가 다를 테니까.
반대로 말하면 주파수를 알지 못하면 컨트롤은커녕 접촉 자체를 할 수 없다는 말이 되지."
"그럼 그놈들이 내 뇌파의 주파수를 어떻게 알았다는 건데?"
"그 꿈 기록 장치라는 게 있었잖아. 난 그 장치를 이용해 뇌파의 데이터를 얻어낸 거라고 생각해.
그 외에 그 장치의 용도를 생각하긴 어려워."
그렇다. 나도 이상하게 생각했던 게 바로 그 꿈 장치다.
처음에 소장이 설명했던 대로 '꿈의 데이터를 기록하기 위해'라는 시덥잖은 목적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말인데….
계획을 위장하기 위한 장치라고 하기에는 장치의 외형도, 설명도 너무 디테일했다.
그 점이 영 이상하게 생각됐던 참인데, 이 녀석 말대로라면 설명이 된다.
다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있다.
"네 말이 맞는다면 난 내 뇌파에 대한 정보를 나 스스로 놈들에게 갖다바치고 있었다는 거로군."
"뭐…몰랐으니까. 그리고 내 가설일 뿐이니까 확실한 건 아니야."
그는 혐오감에 빠진 나를 위로하듯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이 맞는다면 조금 이상한데?"
"뭐가?"
"뇌파를 조종한다면 결국 꿈 그 자체를 조종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잖아?
그렇다면 깨어 있을 때도 나를 원격으로 조종하는 것이 가능할 텐데…뭣 하러 꿈 같은 사소한 걸 조종하는 거지?"
"아, 그건 설명할 수 있어."
녀석은 자신만만하게 말한다.
"아무리 뇌파를 조종한다고 하더라도, 원거리에서, 그것도 뇌 밖으로 흘러나오는 약간의 신호만을 이용해서 얼마나 조종할 수 있겠어?
본능에 의존하는 동물이라면 몰라도, 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을 리가 없겠지.
하지만, 잠들었을 때라면 달라지지.
뇌가 휴식에 들어가고, 긴장이 풀린 수면 상태에서라면 어느 정도 컨트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듣고보니 확실히 그럴듯한 설명이다. 이 설명대로라면 갑자기 잠이 들어 버렸던 것도 어느 정도 설명이 가능하다.
뇌를 조절하여 수면 상태로 유도한 거라면…24시간 동안 잠만 자게 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뭐, 이거야 내 가설일 뿐이고. 그 기계를 직접 볼 수 있다면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남자가 기계를 도로 갖고 간 이유도, 아마 이쪽에서 기계를 분석해서 대처법 같은 것을 알아 버리는 위험을 막기 위해서였겠지.
젠장. 하나하나가 다 계산된 행동이었어.
"그래도 아직 희망은 있어."
"뭐? 희망이라니?"
"그 데이터를 컴퓨터에 연결해서 전송 프로그램을 이용해 보냈다며? 그 프로그램은 아직 지우지 않았겠지?"
"응? …그럴걸? 적어도 내가 지운 기억은 없으니까."
나는 대답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래. 나 같은 녀석은 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이 녀석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렇군! 프로그래머인 너라면 그 프로그램을 분석해서 어떤 구조인지 파악할 수 있겠구나!"
그러나 녀석은 의외로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글쎄. 그건 좀 힘들 거야. 일단 프로그래밍이란 건 컴파일을 거치면 다시 원본 파일을 추출하는 방법이 없다고 봐야 하거든.
역컴파일이라는 일종의 해킹이 있긴 한데, 완전하지가 못한데다가, 방법도 굉장히 어렵지.
기계어는 어셈블리어로 1:1 매치가 되지만 그 어셈블리어를 가지고 다시 프로그램을 짠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프로그래머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니까.
학교에서 일반적으로 배우는 과정도 아니고."
나는 전문 용어가 너무 많이 사용되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도 내 표정을 보고 그 사실을 깨달았는지 좀 더 쉽게 설명을 한다.
"예를 들어 필름에서 사진을 뽑아낼 수는 있지만, 사진을 갖고 필름을 만들기는 어렵겠지? 그것과 비슷하지."
"흐음. 알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해 봐야지. 일단 밥부터 먹고, 너희 집으로 가서 그 프로그램 좀 보자."
녀석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자 나도 힘이 나는 것을 느꼈다.
역시 이 녀석에게 이야기를 한 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서둘러서 식어버린 밥을 마저 먹는다.
원래 여기 철판볶음밥은 10~20분이면 다 먹을 수 있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먹고 있었을 뿐이라 아직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후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 식당은 내가 졸업한 대학 근처에 있다.
대학 근처의 식당들이 대부분 그렇듯 대학생들을 겨냥해 만들어진 저렴하고 맛있는 식당이라 학생 때 많이 이용했었던 곳이다.
제일 저렴한 메뉴는 1인분에 4천 원밖에 되지 않는다.
가끔 저녁을 하기 귀찮으면 여기에 와서 저녁을 먹은 적도 있었다.
졸업을 한 후에도 나는 학생 시절 사용하던 자취방에서 계속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우리 집까지는 5분도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일부러 여기에서 만나자고 한 건 아니었고,
마침 녀석의 회사가 여기서 그렇게 멀지도 않은 편이라,
오랜만에 그 철판볶음밥을 먹어보고 싶다고 하여 여기에서 만나게 된 것이었는데,
결국, 우리 집까지 가게 되었으니 여기서 만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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